2024년 6월 5일 : 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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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금

내가 죽고 나서도 나는 돌을 던질 것이다.

이번 편지엔 세 권의 첫 시집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첫 시집이자 유고시집이 된, 차도하 시인의 <미래의 손>입니다. 1999년생 시인이라는 소개와 함께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2021)이라는 산문집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 신춘문예로 데뷔해 차곡차곡 쌓아온 62편의 시가 이제 타는 듯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책장에 놓입니다.

몸에 든 멍을 신앙으로 설명하기 위해 신은 내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내가 물비린내를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_ 「침착하게 사랑하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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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쪽 : 그것은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선생도 신도 아닌
시를 쓰게 될 중학생의, 미래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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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물구나무를 서면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이라는 발상에서 시집의 제목이 왔습니다. '왕관을 오래 쓰지 못하고 나는 옆으로 쓰러진다'(p. 86)는 같은 시의 한 줄처럼 이 왕관은 결국 일시적인 것인데요, 운동감이 있는 이 일시적인 상태가 경쾌하게 느껴집니다. 시집의 제목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사람들 머리카락을 쳐다보는 걸 좋아하긴 했어요. 누군가 헤어스타일이 바뀌면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칭찬하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친구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해주는 건 퍽 다정한 일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머리카락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다정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보이는 것을 금지하는 곳도 있죠. 그리고 누군가에게 머리카락을 맡기면 이상하게 수동적인 상태가 되지 않나요? 몸이되 몸이 아니고, 영혼이라고 하기에는 지독히 물질적이어서 언제든 잘려나가고 변형 가능한 머리카락의 미묘한 위상이 저를 한참 매혹시켰습니다.
시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의 8연 (신하들의 충성은 다 어디로 갔는지/아무리 눈을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네/나의 잘못으로 충성이 사라진다면 애초에/그대들에게 충성이란 무엇인가)을 쓰면서는 두렵더라고요. 시의 화자가 물구나무를 서는 순간, 자신을 폐위시키려는 무리를 마주한 왕의 독백으로 흘러갑니다. 갑자기 리얼리티 레벨이 달라지면서 머리카락의 늘어진 모양과 왕관이라는 이미지의 유사성으로 힘겹게 시가 연결됩니다.

과연 벽지는 어디까지 봤을까요? 저는 일상이 얼마만큼 확장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전생이 아니고 무의식도 아닙니다. 그래서 맥락이 끊깁니다. 머리카락이 쏟아내는 말이고 왕관이 쏟아내는 말이길 바랐습니다. 강한 정념은 있지만 이것을 서정시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대머리는 왕관이 없다는 거냐. 대머리에 대한 편견이 있는 거냐 하는 피드백을 받았는데, 저는 대머리야말로 머리카락이 잘리는 감각이 무엇인지, 머리카락의 부재가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 더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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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MD는 지금 스마일

2010년 <트렁커>로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고은규 작가의 네번째 장편소설입니다. <알바 패밀리>(2015) 이후 9년 만에 출간한 장편소설인데요, 많은 이슈가 한 달을 이어지지 않는 다이내믹한 우리네 삶의 스케줄을 떠올려보면 작가로선 막막할 정도로 긴 시간이지 않았을까 감히 짐작해봅니다.

소설은 이런 막막함을 위로합니다. 소설을 쓰는 은섬과 작업실 동료들은 귀신이 들린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글이 안 써질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러 '작가 전문 퇴마사'를 초빙해 글쓰기를 방해하는 '잡귀'를 퇴치하기로 합니다. 퇴마사는 은섬 곁에 '작희'라는 여인이 서 있다고 하는데요, 마침 은섬은 이작희라는 여인의 팔십년 전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은섬은 글쓰기에 묶인 여성 삼대의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청탁도 없는데 혼자서 벽을 보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어떤 일이 특별히 ‘뭘 해줄’ 것도 아닌데, 그것에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쓰는 그 여자들의 규방이 떠오르는 은근하고 기발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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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지금 : 한겨레출판

한겨레출판이 장르 문학 시리즈를 론칭했다고요? 어쩐지 유니크한 이 조합 덕분에 요즘 한겨레출판은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받고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올해로 29회를 맞는 한겨레문학상을 주최하고 심윤경, 최진영, 장강명, 강화길, 박서련 등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발굴해왔던 터니까요. 문제의식 짙은 진중한 작품을 출간해온 것으로 모두 생각하는 한겨레출판으로선 새로운 한 걸음이긴 합니다. 하지만 떠올려보면 김초엽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을 비롯해 천선란 작가와 조예은 작가까지 반짝이는 지금 이곳의 이야기들을 바지런히 내어놓고 있었는걸요.

독서의 원초적 즐거움으로의 회귀, 전자책에서 종이책, 작가와 출판사와 독자를 잇는 유연한 배턴으로 출판의 선순환을 이루고자 하는 야망을(?) 턴이라는 네이밍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턴 시리즈의 첫 주자는 조예은 작가여야만 했습니다. 2022년 출간해 신드롬을 일으킨 《트로피컬 나이트》를 비롯해 《칵테일, 러브, 좀비》 등 특유의 스타일로 사랑받아온 작가의 최신작 《입속 지느러미》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지느러미가 달린 괴물을 조심해” 하고 속삭이는 듯한 이 소설을 읽기 전에 괴물에 대한 작가의 뿌리 깊은 애정을 낱낱이 엿볼 수 있는 초판 한정 부록 <터닝북_조예은> 일독을 권합니다. 디자이너의 말대로 “출판사의 곳간을 털어 만든” 이 책자는 특수지를 사용해 영롱한 자태를 자랑해요. (여러분, 곧 소진되오니 작가의 팬이라면 소장하셔야만 해요!)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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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통과한 첫 시집

어떤 첫 시집은 느리게 무르익습니다. <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 등의 시산문을 먼저 발표한 이유운이 활동을 시작하고 5년 만에 '반투명의 상태로 놓여 있는 사랑의 형상'을 담은 첫 시집을 냈습니다. 문학동네시인선 100번 기념 티저 시집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의 제목이 된 시구가 담긴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 쓰다 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 「편지의 공원」을 쓴 시인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오병량은 11년 만에 한 권의 시집으로 엮였습니다. 시집으로 엮이기 전부터 시 읽는 독자의 마음에 각인된 문장이 놓인 문학동네 시인선 212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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