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30일 :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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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금

너무 많은 찡그림을

관념으로서의 날씨와 실제 체험하는 날씨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습니다. 저의 관념적인 눈부신 날씨의 이데아는 '한강 공원에 돗자리 펴놓고 누워서 와인 먹다 책보다 한숨 잠'인데요. 막상 실제로 해보면 바람 불어서 눈도 따갑고... 물결에 빛 반사되면 눈이 시리고... 체력 이슈로 다음 날 잔병치레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서윤후의 다섯번째 시집의 제목이 품은 대비의 이미지가 심정적으로 와닿습니다. 눈부신 나날은 참 좋지요. 하지만 그 눈부심을 향해 뛰어들려면 나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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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쪽 : 책 속에는 슬픈 일이 일어날 때마다 공원과 해변과 숲을 찾아가는 네가 나오지. 나는 이미지를 통해 짐작하는 장소였는데 너눈 악몽이 물어다 놓은 난장 위를 기어서라도 가는 곳이었지. 나도 모르게 어느새 네 옆을 걷게 되는 주소이기도 했었는데
<견본 생활> 부분

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악마대학교>의 악마들은 인간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점수를 얻어 지옥 대기업에 스카우트되기를 바랍니다. 악마가 되어도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게 ‘웃프게’ 읽혔는데요. (사랑, 돈, 영생이 아닌) 이 경쟁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김동식 작가를 소소하게 괴롭게 한 작은 사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 정말 소소한 대답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는데…… ‘소화력’입니다. 젊은 시절의 저는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치킨을 시키면 혼자서 한 마리를 다 먹었습니다. 짜장면은 무조건 곱빼기고,식당 메뉴판의 ‘특’이 기본값이었습니다. ‘메인 메뉴 + 미니 메뉴’ 세트를 보면 흥이 났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은 소름 돋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다 먹으려면 ‘특’ 말고 보통을 먹어야 하는 게 아닐지 고민하는 사람 말입니다. 부디 젊은 여러분은 위장에 물음표가 없을 때 많이 먹으시길.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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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MD는 지금 스마일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은 즐겁습니다. 독립출판물로 먼저 알려져 정식출간 후 큰 울림을 전한 <경찰관속으로>의 원도가 첫 장편소설을 출간했습니다. 불키드 작가가 참여한 표지 이미지의 주인공들과 눈이 마주칩니다. 아무래도 실적으로는 내세울 게 없는 우당 파출소의 동기 송구, 해랑, 대복은 환상의 팀워크로 실적이 되지 않는 일만 주구장창 하며 사람들을 구합니다. 새 경찰서장이 부임한 후 통폐합의 위기에 처한 파출소를 구원해야 합니다.

1장 첫 타석은 데드볼, 2장 잘 쳐봐야 3할, 3장 평균 자책점, 4장 스토브 리그, 5장 우천 취소, 6장 삼진 아웃, 7장 퍼펙트게임, 에필로그 영구 결번으로 이어지는 목차가 재미있습니다. 야구 경기의 흐름으로 조직사회를 서술하는 활달한 이야기로 소설가 원도의 일면을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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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지금 : 무제

저희는 요즘 김금희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 <첫 여름, 완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 책이 저를 사람 만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1인 출판사 사장님들, 대체 어떤 삶을 살아 오신 건가요. 얼마 전 회사에 들어온 저희 직원이 그럽디다. 이렇게 종이 많이 쓰는 회사도 처음이래요. 하루에 열여덟 시간을 종이와 싸우고 글자와 싸웁니다. 이메일과 싸우고 수화기와 싸우고, 난 진짜 싸움도 못하는데 자꾸 싸움을 거는 이 삶이,

나쁘지만도 않습니다. 제법 즐겁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김금희 작가님의 글 속에 파묻혀 살다보니 더욱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겠지만 즐거우면 됐다는 마음으로 밤 열두시에 이 글을 적습니다. 업무 시간 안에 써서 보내드렸어야 했는데, 까먹고 지금 씁니다. 오늘 서점 MD님들과 미팅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참 어렵고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연신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열심히 하겠다’고만하고 나왔습니다. 그러다 이 글을 쓰는 걸 까먹었어요. 생각해보니 알라딘 MD님도 만나고 왔는데 왜 말씀을 안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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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엔 노동X소설

노동문학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으실지요? 제겐 <난.쏘.공>, <노동의 새벽>, <소금꽃나무> 같은 작품이 스쳐지나가는데요, 여기 '동시대 한국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는 규칙을 공유'하는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의 단편소설 앤솔러지가 있습니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프리랜서는 약 400만 명이라고 합니다. 노동의 형태가 다채로워지면서 노동을 말하는 소설의 방향도 여러 방향으로 뾰족뾰족 가지가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2025년 앤솔러지에 이름을 올린 작가는 김동식, 서수진, 예소연, 윤치규, 이은규, 조승리, 황모과, 황시운입니다. 안마사로 일하는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안마사 이야기를, 휠체어 사용자인 <그래도, 아직은 봄밤>의 황시운은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에 대해, 2025년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그 개와 혁명>의 예소연은 플랫폼 노동과 별점 갑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뼈 때리는' 제목과 함께 2024년의 월급사실주의 앤솔러지와 함께 읽어보시며 우리 일하는 존재들에 대해 골똘히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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