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이브라힘 Zak Ebrahim
1983년 3월 24일에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집트 출신 산업기사, 어머니는 미국인 교사였다. 이브라힘이 일곱 살이었을 때 그의 아버지 엘사이드 노사이르가 유대방위연맹 창립자인 랍비 메이르 카하네를 총으로 살해했다. 엘사이드 노사이르는 수감중인 교도소에서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모의했다.
이브라힘은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고 어린 시절 내내 이 도시 저 도시를 전전했다. 지금은 테러에 반대하는 강연을 하고 평화와 비폭력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2013년에 뉴욕에서 열린 테드 인재 발굴 행사에 참가해, 이듬해에 테드 본 강연회 연사로 선정되었다. 그의 테드 강연은 이 책의 모태가 되었다.
이 책의 인세 수익 일부는 전 세계에서 테러로 피해를 입은 공동체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튜즈데이스 칠드런’에 기부된다.
제프 자일스 Jeff Giles
뉴욕을 기반으로 언론인이자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북리뷰> <롤링스톤> <뉴스위크>에 기사를 썼으며 <엔터테인먼트위클리> 수석편집자를 지냈다.
잭 이브라힘의 테드 강연 영상을 지금 온라인에서 볼 수 있습니다.
THE TERRORIST’S SON
by Zak Ebrahim
Copyright ⓒ 2014 by Zak Ebra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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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Korean edition was published by Munhakdongne Publishing Group in 2015 by arrangement with the original publisher, Simon & Schuster, Inc. through KCC(Korea Copyright Center Inc.), Seoul.
이 책은 (주)한국저작권센터(KCC)를 통한 저작권자와의 독점계약으로 (주)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낳은 산물에 불과하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간디
1
뉴저지 클리프사이드파크
엄마가 침대에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큰일났어.”
나는 일곱 살, 닌자거북이 잠옷을 입은 통통한 아이다. 이따금 아빠는 해 뜨기 전에 나를 깨워서는 미나레트(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이슬람 양식의 탑—옮긴이)를 수놓은 작은 양탄자에서 기도하게 했다. 하지만 엄마가 나를 깨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밤 열한시. 아빠는 집에 없다. 저지시티에 있는 모스크에서 밤늦게까지 있다 오는데 점점 귀가 시각이 늦어진다. 하지만 내겐 여전히 재미있고 다정하고 따뜻한 바바(‘아빠’라는 뜻의 아랍어—옮긴이)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내게 신발끈 매는 법을 다시 한번 가르쳐주려고 했다. 그런데 큰일이 났다고? 어떤 큰일이지? 다쳤을까? 돌아가셨을까? 물어보고 싶지만 어떤 대답을 들을지 두려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엄마가 흰 보자기를 펄럭 하고 펼치니 잠시 구름 모양으로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허리를 숙여 보자기를 바닥에 편다. 엄마는 평소와 달리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지(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압둘아지즈 엘사이드 노사이르로, 어릴 적 별명은 ‘지Z’였다—옮긴이), 엄마 눈을 보렴. 지금 당장 옷을 입어야 해. 그러고 나서 이 보자기에 네 짐을 꾸려서 단단히 묶으렴. 알겠니? 누나가 도와줄 거야.” 엄마는 문 쪽으로 향한다. “얄라(‘어서’라는 뜻의 아랍어—옮긴이). 지야, 얄라. 어서.”
내가 말한다. “잠깐만요.” 히맨 캐릭터가 그려진 담요에서 기어나와 첫마디를 내뱉는다. “보자기에 뭘 넣어야 해요? 어떤…… 물건을요?”
나는 착한 아이. 수줍고, 고분고분하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고 싶다.
엄마가 멈춰서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아무거나 필요한 거. 다시 못 돌아올지도 몰라.”
엄마는 돌아서서 방 밖으로 나간다.
누나와 동생, 나는 짐을 다 싸서 거실로 내려간다. 엄마는 브루클린에 있는 아빠 사촌과 전화하는 중이다. 우리는 그를 이브라힘 삼촌이라고 부르거나 그냥 암무(‘삼촌’이라는 뜻의 아랍어—옮긴이)라고 부른다. 엄마 얼굴이 벌게졌다. 왼손으로 전화기를 움켜쥐고 오른손으로는 귓가에서 나풀거리는 히잡을 신경질적으로 만지작거린다. TV가 켜져 있다. 뉴스 속보가 흘러나온다. “정규 방송을 잠시 중단하고……” 우리가 TV를 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엄마가 급히 전원을 끈다.
엄마는 등을 돌린 채 암무 이브라힘과 계속 이야기한다. 전화를 끊자 벨이 또 울린다. 한밤중에 소리가 요란하다. 심상치 않다.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모스크에 다니는 바바 친구다. 택시 운전사로, 이름은 마무드다. 머리가 빨개서 다들 레드라고 부른다. 레드가 다급한 목소리로 아빠를 찾는다. 엄마가 말한다. “여기 없어요.” 엄마가 잠시 귀를 기울이더니 “알았어요”라며 전화를 끊는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끔찍한 소음.
이번에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엄마가 말한다. “정말이에요?” 다시 말한다. “우리에 대해 캐물었다고요? 경찰이요?”
잠시 뒤, 거실 바닥 담요 위에서 잠이 깼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깜박 잠이 들었나보다.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죄다 문간에 쌓아두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다. 엄마가 서성거리며 지갑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엄마는 우리의 출생증명서도 다 챙겼다. 누가 요구하든 우리 엄마라는 걸 증명해야 하니까. 우리 아빠 엘사이드 노사이르는 이집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엄마는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그곳 모스크에서 샤하다(이슬람교의 신앙고백—옮긴이)를 암송하고 무슬림이 되기 전에, 그러니까 카디자 노사이르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 엄마 이름은 캐런 밀스였다.
내가 앉아서 눈을 문지르는 것을 보고 엄마가 말한다. “이브라힘 삼촌이 우리를 데리러 올 거야.”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초조함이 배어 있다. “올 수 있다면 말이지.”
나는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고, 내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기다릴 뿐. 지금쯤이면 암무가 브루클린에서 뉴저지까지 운전해서 오고도 남았을 시각이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엄마의 서성거림이 빨라진다.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터져나올 것만 같다. 누나가 나를 감싸안는다. 나는 용기를 내려고 애쓴다. 나도 동생을 감싸안는다.
엄마가 말한다. “야 알라(‘오 마이 갓’과 비슷한 뜻의 아랍어—옮긴이)! 미치겠네.”
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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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말해주지 않은 것은 이것이다. 호전적 랍비이자 유대방위연맹 창립자인 메이르 카하네가 뉴욕 매리엇 호텔 연회장에서 연설을 마친 후 아랍인의 총에 맞았다. 아랍인은 달아나면서 한 노인의 다리에도 총을 쏘았다. 호텔 앞에서 기다리던 택시에 급히 올라탔지만 다시 튀어나와 총을 든 채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그 자리를 지나던 우체국 청원경찰이 그와 총격을 주고받았다. 아랍인은 길바닥에 쓰러졌다. 뉴스 진행자는 소름 끼치는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랍비 카하네와 암살자 둘 다 목에 총상을 입었다. 어느 쪽도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TV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후속 보도를 끊임없이 내보내고 있다. 한 시간 전, 누나와 동생,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의 마지막 순간을 잠으로 보내고 있을 때 엄마는 메이르 카하네라는 이름을 듣고 화면을 쳐다보았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아랍인의 모습이었다. 엄마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아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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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시쯤 이브라힘 삼촌이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숙모와 사촌들이 준비하는 동안 기다리느라 늦었다고 했다. 삼촌이 굳이 가족을 데려온 데는 이유가 있다. 독실한 무슬림인 삼촌은 아내 아닌 여자와, 그러니까 우리 엄마와 단둘이 차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차에는 이미 다섯 명이 타고 있다. 그 사이사이에 우리 네 명이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엄마는 화가 난 게 분명하다. 엄마도 삼촌 못지않게 독실한 무슬림이지만, 우리가 있으니까 단둘이 차에 타는 건 아니어서 삼촌이 가족을 데려온 것은 시간 낭비였다.
우리는 이내 터널을 지나고 있다. 파리한 형광등 불빛이 머리 위로 휙휙 지나간다. 차 안은 숨막힐 정도로 비좁다. 우리는 팔다리가 뒤엉킨 거대한 매듭이다. 엄마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말한다. 이브라힘 삼촌이 차를 세워야 하느냐고 묻는다. 엄마가 고개를 내젓는다. “애들을 브루클린에 내려놓고 병원으로 가요. 알았어요? 최대한 빨리요. 얄라.”
병원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입 밖에 나왔다. 아빠는 병원에 있다. 큰일이 나서 실려갔다. 병원에 있다는 것은 다쳤다는 뜻이지만, 죽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브루클린에 도착하자 뒤엉켜 있던 아홉 명이 차에서 빠져나온다. 암무 이브라힘의 집은 프로스펙트 공원 근처의 커다란 벽돌조 아파트에 있다. 1층에 들어서니 이번에는 엘리베이터가 영 내려오지 않는다. 화장실이 급했던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서둘러 계단으로 향한다.
엄마가 한 걸음에 두 계단씩 올라가는 바람에 따라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2층이 흐릿하게 스쳐지나가고 이어서 3층이 지나간다. 암무네 집은 4층이다. 숨을 헐떡거리며 모퉁이를 돌아 4층 복도에 들어선다. 해냈다는 희열에 휩싸인다.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이겼다! 그런데 삼촌네 현관문 앞에 남자 세 명이 서 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두 사람이 배지를 높이 쳐들고 우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온다. 나머지 한 사람은 경찰관으로, 권총집에 든 총을 움켜쥔 채다. 엄마가 그들에게 다가가 말한다.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할말 있으면 끝나고 해요.”
남자들은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엄마를 들여보낸다. 엄마가 나를 데려가려는데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교통경찰처럼 손을 들어 가로막는다.
남자가 말한다. “아이는 두고 들어가시죠.”
엄마가 말한다. “얘는 제 아들이에요. 데려갈 거예요.”
옆에 있던 검은 양복이 말한다. “안 됩니다.”
엄마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말한다. “화장실에서 자해라도 할까봐 그래요? 제가 자식을 다치게 할 것 같아요?”
첫번째 양복이 무표정하게 엄마를 쳐다보며 말한다. “아이는 두고 가시오.” 그러고는 나를 내려다보며 억지로 미소지어 보인다. 그가 수첩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너, 압둘아지즈 맞지?”
겁에 질린 채 고개를 끄덕인다. 멈출 수가 없다. “지예요.”(훗날 지은이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 어릴 적 별명 ‘지Z’를 따서 이름을 ‘잭Zak’으로 바꿨다—옮긴이)
이브라힘 가족이 현관문으로 들어와 어색한 침묵을 깨뜨린다. 숙모가 아이들을 침실에 몰아넣고는 자라고 말한다. 모두 여섯 명이다. 맥도날드 놀이방처럼 알록달록한 2단 침대가 벽에 붙박이로 붙어 있다. 우리가 빈틈을 찾아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동안 엄마는 거실에서 경찰과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벽 너머를 향해 귀를 쫑긋 세운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낮게 투덜거리는 소리와 가구가 바닥 긁는 소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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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검은 양복들이 엄마에게 폭포수처럼 질문을 쏟아낸다. 훗날 엄마가 기억하게 될 질문은 두 가지뿐이다. “현재 집주소가 어떻게 됩니까?” “남편이 오늘밤 랍비 카하네를 쏘리라는 걸 알았습니까?”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두번째보다 복잡하다.
바바는 뉴욕에서 일한다. 맨해튼 법원 청사의 냉난방기를 수리하는데, 시 당국은 다섯 개 구區 가운데 한 곳에서 살것을 고용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래서 우리는 삼촌네로 위장 전입했다. 오늘밤 경찰이 이곳을 찾아낸 것은 등록부상의 이 작은 거짓말 때문이었다.
엄마가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경찰에게 자기는 총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사실대로 말한다.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고. 한마디도. 엄마는 폭력이라면 질색이다. 그래서 모스크 사람들은 엄마 있는 데서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엄마가 속사포 같은 질문 세례에 대답한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손은 무릎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하지만 생각 하나가 편두통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빠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 아빠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
그러다 엄마가 불쑥 내뱉는다. “TV에서 남편이 죽을 거라던데요.”
검은 양복들이 서로 쳐다본다. 하지만 대답하지는 않는다.
“남편 곁에 있고 싶어요. 그이 혼자 죽게 둘 순 없어요.”
여전히 대답이 없다.
“그이에게 데려다주실래요? 부탁이에요. 제발 그이에게 데려다주세요.”
엄마가 부탁하고 또 부탁한다. 결국 검은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