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오 카쿠
Michio Kaku
현재 뉴욕 시립대학교 헨리 시마트(Henry Semat) 석좌 교수인 미치오 카쿠는 끈이론, 우주론 등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이론물리학계의 세계적 석학이다. 또한 숨가쁜 변혁을 겪고 있는 현대 우주를 거대한 지식과 빛나는 통찰력, 번뜩이는 논증으로 밝힌 《평행우주》를 집필한 저명한 과학 저술가이다. 그 외에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올해의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비전》과 《아인슈타인을 넘어서》, 《초공간》, 《불가능은 없다》 등 출간하는 책마다 과학사를 빛낸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194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일본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를 숨마쿰라데(최우수 등급)로 졸업하고, UC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디스커버리 채널의 인기 과학 프로그램 〈사이파이 사이언스Sci Fi Science〉를 비롯해 BBC와 사이언스 채널 등 여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활약하고 있으며, 140여 개의 방송국을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되는 국제라디오프로그램 〈엑스플러레이션Exploration〉과 〈사이언스 판타스틱Science Fantastic〉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박병철
연세대학교와 동대학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진대학교 물리학과 초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번역가 및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엘러건트 유니버스》 《우주의 구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Ⅰ,Ⅱ》 《평행우주》 《불가능은 없다》 《멀티 유니버스》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어린이 과학동화 《라이카의 별》이 있다.
| 이 책에 도움을 주신 분들 |
우선 무엇보다도,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인터뷰를 허락해준 다음의 과학자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이들의 설명과 아이디어는 이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스티븐 와인버그 Steven Weinberg | 노벨상 수상자, 텍사스대학(오스틴) |
머리 겔만 Murray Gell-Mann | 노벨상 수상자, 산타페연구소, 캘리포니아공과대학 |
레온 레더만 Leon Lederman | 노벨상 수상자, 일리노이과학원 |
요세프 로트블라트 Joseph Rotblat | 노벨상 수상자, 성 바솔로뮤St.Bartholomew병원 |
월터 길버트 Walter Gilbert | 노벨상 수상자, 하버드대학 |
헨리 켄들 Henry Kendall | 노벨상 수상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사망) |
앨런 구스 Alan Guh | 물리학자, 매사추세츠공과대학 |
마틴 리스 경 Sir Martin Rees | 영국 왕립천문학장, 케임브리지대학 |
프리먼 다이슨 Freeman Dyson | 물리학자, 프린스턴 고등과학원 |
존 슈바르츠 John Schwarz | 물리학자, 캘리포니아공과대학 |
리사 랜들 Lisa Randall | 물리학자, 하버드대학 |
리처드 고트3세 J. Richard Gott III | 물리학자, 프린스턴대학 |
닐 디 그레이스 타이슨 Neil de Grasse Tyson | 천문학자, 프린스턴 대학, 하이든 플라네타리움 천문관Hayden Planetarium |
폴 데이비스 Paul Davis | 물리학자, 애들레이드Adelaide대학 |
켄 크로스웰 Ken Croswell | 천문학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
돈 골드스미스 Don Goldsmith | 천문학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
브라이언 그린 Brian Greene | 물리학자, 컬럼비아대학 |
쿰룬 바파 Cumrun Vafa | 물리학자, 하버드대학 |
스튜어트 사무엘 Stuart Samuel | 물리학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
칼 세이건 Carl Sagan | 천문학자, 코넬대학(사망) |
다니엘 그린버거 Daniel Greenberger | 물리학자, 뉴욕시립대학 |
V. P. 나이어 V. P. Nair | 물리학자, 뉴욕시립대학 |
로버트 커쉬너 Robert Kirshner | 천문학자, 하버드대학 |
피터 워드 Peter D. Ward | 지질학자, 워싱턴대학 |
존 배로 John Barrow | 천문학자, 서식스Sussex대학 |
마르시아 바투시악 Marcia Bartusiak | 과학평론가, 매사추세츠공과대학 |
존 카스티 John Casti | 물리학자, 산타페 연구원 |
티모시 페리스 Timothy Ferris | 과학평론가 |
마이클 레모닉 Michael Lemonick | 과학저술가, 《타임》지 |
풀비오 멜리아 Fulvio Melia | 천문학자, 애리조나대학 |
존 호건 John Horgan | 과학평론가 |
리처드 뮬러 Richard Muller | 물리학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
로렌스 크라우스 Lawrence Krauss | 물리학자,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Case West ern Reserve대학 |
테드 테일러 Ted Taylor | 원자폭탄 디자이너 |
필립 모리슨 Philip Morrison | 물리학자, 매사추세츠공과대학 |
한스 모라벡 Hans Moravec | 컴퓨터과학자, 카네기멜론대학 |
로드니 브룩스 Rodney Brooks | 컴퓨터과학자,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인공지능연구소 |
도나 셜리 Donna Shirley | 천체물리학자, 제트추진연구소(JPL) |
댄 워트하이머 Dan Wertheimer | 천문학자, ‘세티앳홈SETI@home’,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
폴 호프먼 Paul Hoffman | 과학평론가, 《디스커버》지 |
프랜시스 에버릿 Francis Everitt | 물리학자, ‘중력탐사BGravity Probe B’, 스탠퍼드대학 |
시드니 퍼코비츠 Sidney Perkowitz | 물리학자, 에모리Emory대학 |
또한, 지난 수년 동안 나와 물리학 토론을 주고받으면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아래 사람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T. D. 리 T. D. Lee | 노벨상 수상자, 컬럼비아대학 |
셸던 글래쇼 Sheldon Glashow | 노벨상 수상자, 하버드대학 |
리처드 파인만 Richard P. Feynman | 노벨상 수상자, 캘리포니아공과대학(사망) |
에드워드 위튼 Edward Witten | 물리학자, 프린스턴 고등과학원 |
조세프 리켄 Joseph Lykken | 물리학자, 페르미연구소 |
데이비드 그로스 David Gross | 물리학자, 캘비Kalvi연구소(샌타바버라) |
프랑크 윌첵 Frank Wilczek | 물리학자, 캘리포니아대학(샌타바버라) |
폴 타운센드 Paul Townsend | 물리학자, 케임브리지대학 |
피터 반 누이벤후이젠 Peter van Nieuwenhuizen | 물리학자, 뉴욕주립대학(스토니브룩) |
미구엘 비라소로 Miguel Virasoro | 물리학자, 로마대학 |
분지 사키타 Bunji Sakita | 물리학자, 뉴욕시립대학(사망) |
아쇼크 다스 Ashok Das | 물리학자, 로체스터대학 |
로버트 마샤크 Robert Marshak | 물리학자, 뉴욕시립대학(사망) |
프랑크 티플러 Frank Tipler | 물리학자, 툴레인Tulane대학 |
에드워드 트라이언 Edward Tryon | 물리학자, 헌터Hunter대학 |
미첼 베겔만 Mitchell Begelman | 천문학자, 콜로라도대학 |
위에서 이미 언급되었지만, 이 책과 관련해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켄 크로스웰에게는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의 편집자인 로저 스콜Roger Scoll은 내 책을 두 권이나 다듬어준 베테랑으로서, 그의 노력 덕분에 책의 품격이 한결 높아졌으며 그의 조언은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지난 3년 동안 이 책의 갈 길을 인도해준 출판대리인 스튜어트 크리체프스키Stuart Krichevski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 책머리에 |
우주론cosmology은 우주의 탄생과 진화과정,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운명 등 우주의 전반적인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주론은 지난 세월 동안 종교적 도그마의 장벽과 싸우면서 서서히 발전해왔으며, 그사이 여러 차례 혁신적인 변화를 겪었다.
우주론의 첫 번째 혁명은 1600년대에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시작되었다.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등 위대한 천문학자들이 남긴 업적에 자신이 망원경 관측으로 얻은 자료를 추가하여 경이로 가득 차 있던 우주를 과학적인 탐구대상으로 전환시켰다. 이 시기에 우주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뉴턴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발견한 운동의 법칙을 우주에 적용하여 천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서술한 최초의 과학자가 되었다. 그 후 우주론은 천체에 대한 마술적이고 신비적인 선입견을 떨쳐버리고 “모든 천체들은 계산 가능하며 재현 가능한 힘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20세기에 제작된 초대형 천체망원경들은 우주론의 제2혁명기에 불을 댕겼다. 1920년대에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은 윌슨산천문대에 있는, 반사거울의 직경이 무려 100인치나 되는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한 끝에 모든 은하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서로 멀어지고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우주가 정적인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는 역사 깊은 가설에 종지부를 찍었다. 허블의 망원경에 포착된 우주는 ‘팽창하는 우주’였던 것이다. 이것은 시공간이 선형적으로 평평하지 않고 역동적으로 휘어져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재확인한 결과로서, 우주의 기원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최초의 이론이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우리의 우주가 혼돈스러운 폭발로부터 생성되었다는 대폭발이론, 즉 빅뱅이론big bang theory이 자연스럽게 대두되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모든 천체들은 탄생초기에 있었던 대폭발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바깥쪽으로 흩어지고 있다. 빅뱅이론은 조지 가모브George Gamow와 그 동료들의 선구적인 연구에 힘입어 더욱 확고한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여기에 원소의 기원에 관한 프레드 호일Fred Hoyle의 연구결과가 더해지면서, 베일에 싸여 있던 우주의 진화과정은 서서히 그 비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주론의 제3혁명은 5년 전쯤 시작되어 지금도 한창 진행되고 있다. 앞선 혁명들과 마찬가지로 세 번째 혁명 역시 관측기구의 발달로부터 촉진되었다. 신형 위성과 레이저, 중력파감지기, X-선 망원경, 고성능 슈퍼컴퓨터 등의 최신장비들이 개발되면서 우주론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현재 우리는 우주와 관련하여 역사상 가장 신뢰할 만한 관측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우주의 나이와 구성성분, 그리고 우주의 궁극적인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는 단계에 접근하고 있다.
현대의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점점 빠르게 팽창하면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만일 팽창이 끊임없이 계속된다면, 결국 우주전체가 암흑과 냉기로 가득 차서 모든 생명체가 사라져버리는 ‘거대한 동결big freeze’의 시점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은 방금 위에서 언급했던 ‘우주론의 제3혁명기’를 주제로 삼고 있다. 앞서 출간했던 나의 저서 《아인슈타인을 넘어서Beyond the Einstein》와 《초공간Hyperspace》은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 주장하는 고차원 시공간을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지만, 이 책에서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있었던 우주론의 발전상을 주로 다룰 예정이다. 우주론은 최근에 실시된 천체관측과 이론물리학의 새로운 도약에 힘입어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나의 목적은 우주론과 관련하여 사전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이다.
1부에서는 초기우주론의 기본적인 특성과 함께 빅뱅이론의 최첨단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이론inflation theory을 주로 다룰 예정이며, 2부에서는 다중우주이론multiverse theory,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포함하여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을 비롯하여 웜홀wormhole과 휘어진 시공간, 그리고 고차원 시공간 사이의 연결고리를 주로 다루게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범주를 넘어선 최초의 이론이라 할 수 있는 초끈이론과 M-이론은 우리의 우주가 여러 우주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3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거대한 동결’과 현대과학이 예측하고 있는 우주의 종말을 다룰 것이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1조 년 후에 태어날 우리의 후손들이 이 우주를 떠나 더욱 살기 좋은 우주로 이주할 수 있을 것인지, 또는 뜨거운 우주로 되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인지를 신중하게 예측해볼 것이다.
요즘은 중력파감지기를 비롯하여 도시의 크기와 맞먹는 입자가속기 등 최첨단의 장비들이 상용화되거나 거의 완성단계에 와 있으며, 이로부터 새로운 관측자료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지금이 우주론의 황금기로 접어드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물리학자가 되어 우주의 기원과 미래의 운명을 연구하고 싶다면, 바로 지금이 최적기라는 것이다.
차례
이 책에 도움을 주신 분들
책머리에
제1부_우주THE UNIVERSE
1탄생초기의 우주
WMAP 위성 • 우주의 나이 • 인플레이션
다중우주 • M-이론과 11차원 우주 • 우주의 종말
초공간으로의 탈출
2역설적인 우주
벤틀리의 역설 • 올베르스의 역설
반항적인 아인슈타인 • 상대성이론의 역설
공간을 휘어지게 만드는 힘 • 우주론의 탄생 • 우주의 미래
3빅뱅
천문학의 원조, 에드윈 허블 • 도플러효과와 팽창하는 우주
허블의 법칙 • 빅뱅 • 우주적 광대, 조지 가모브
우주의 핵 취사장 • 마이크로파배경복사
타고난 반골, 프레드 호일 • 정상상태이론 • BBC 강의
별 속에서 진행되는 핵융합반응
정상상태를 부정하는 증거들 • 별의 탄생과정
새의 배설물과 빅뱅 • 빅뱅의 후유증
Ω와 암흑물질 • COBE 위성
4인플레이션과 평행우주
인플레이션이론의 탄생 • 통일을 위해
통일의 순간-빅뱅 • 가짜진공 • 자기홀극문제
평평성문제 • 지평선문제 • 인플라톤에 대한 반응
혼돈인플레이션과 평행우주 • 무無에서 창조된 우주
다른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 대칭성의 붕괴
대칭성과 표준모형 • 검증 가능한 예견들
초신성-람다(Λ)의 재등장 • 우주의 위상 • 미래
제2부_다중우주THE MULTIVERSE
5차원입구와 시간여행
블랙홀 • 아인슈타인과 로젠 • 회전하는 블랙홀
블랙홀의 관측 • 감마선 폭발 • 반 스토쿰의 타임머신
괴델의 우주 • 손의 타임머신 • 음에너지의 문제점
침실 속의 우주 • 고트의 타임머신 • 시간 역설
6평행양자우주
환상특급 • 괴물 같은 마음의 소유자, 존 휠러
결정론인가, 불확정성인가? • 숲속의 나무
슈뢰딩거의 고양이 • 폭탄 • 경로합
위그너의 친구 • 결어긋남 • 다중세계
비트에서 비롯된 존재 • 양자컴퓨터
양자적 공간이동 • 우주의 파동함수
7모든 끈의 모태, M-이론
M-이론 • 끈이론의 역사 • 10차원 • 떠오르는 끈이론
우주의 음악 • 초공간의 문제점 • 왜 하필 끈이론인가?
초대칭 • 표준모형 유도하기 • 넘쳐나는 끈이론
초중력의 수수께끼 • 11차원 • 브레인 세계
이중성 • 리사 랜들 • 충돌하는 우주 • 미니블랙홀
블랙홀과 정보 역설 • 홀로그램우주
우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인가? • M-이론은 물리학의 끝인가?
8디자인된 우주?
우주적 우연 • 인류학적 원리 • 다중우주 • 우주의 진화
911차원의 메아리를 찾아서
GPS와 현실 • 중력파감지기 • LIGO 중력파감지기
LISA 중력파감지기 • 아인슈타인의 렌즈와 고리
거실에 숨어 있는 암흑물질 • 초대칭과 암흑물질
슬론 스카이 서베이 • 열에 의한 교란을 보정하다
라디오망원경의 약진 • 11차원 관측하기
대형 강입자가속기 • 탁상용 입자가속기 • 미래
제3부_초공간으로의 탈출ESCAPE INTO HYPERSPACE
10모든 것의 종말
열역학을 지배하는 세 개의 법칙 • 빅 크런치
우주의 5단계 • 생명체는 살아남을 것인가?
평행우주로 탈출하기
11우주탈출
문명의 I, II, III단계 • I단계 문명 • II단계 문명
III단계 문명 • IV단계 문명 • 정보의 분류 • A〜Z형
탈출 1단계 : 만물의 이론을 구축하고 검증하기
탈출 2단계 : 웜홀과 화이트홀 찾기
탈출 3단계 : 블랙홀 탐사선 띄우기
탈출 4단계 : 천천히 움직이는 블랙홀 만들기
탈출 5단계 : 아기우주 만들기
탈출 6단계 : 초대형 가속기 만들기
탈출 7단계 : 내파 유도하기
탈출 8단계 : 초광속우주선의 개발
탈출 9단계 : 압축된 별의 음에너지 활용하기
탈출 10단계 : 양자적 전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기
탈출 11단계 : 마지막 희망
12다중우주를 넘어서
역사적 조망 • 코페르니쿠스원리와 인류학적 원리의 대립
양자적 의미 • 다중우주의 의미
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우주의 의미
스스로 의미 창조하기 • I단계 문명으로 전환하기
옮긴이의 말
용어 해설
후주
1
탄생초기의 우주
시인은 우주의 일부가 됨으로써 우주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논리적인 과학자는 우주를
자신의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래서 과학자의 머리는 여러 갈래로 분열되기 쉽다.
—체스터턴G. K. Chesterton
어린 시절에 나는 자기모순에 빠져 정신적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 우리 부모님은 불교적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고래와 방주, 소금기둥, 아담의 갈비뼈와 사과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한 성경공부에 푹 빠져 있었다. 특히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우화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옛날이야기였다. 어린 내가 보기에,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는 불교의 명상보다 대홍수와 불타는 관목, 바다 가르기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성경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그 시절에 교회에서 들었던 영웅담과 비극적 이야기들은 나의 도덕관념 속에 깊이 각인되어, 지금까지도 나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무렵의 어느 일요일, 나는 친구들과 함께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공부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고 명령하자 이 세상에 빛이 드리우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것은 열반의 세계를 조용히 떠올리는 불교식 명상보다 훨씬 드라마틱했다. 그런데 순진했던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지도교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요, 하나님한테도 엄마가 있었나요?” 당시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치던 여선생은 학생들의 질문에 짤막하고 냉정하게 대답하곤 했다. 아마도 짧은 대답 속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유도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하나님에게는 엄마가 없었을 거예요.” 나는 또다시 물었다. “엄마도 없는데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목사님과 상의해서 다음에 가르쳐주겠다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당시의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나름대로 논리상의 모순을 발견하고 몹시 당혹스러웠을 뿐이었다. 불교에서는 신이 등장하지 않고,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다고 하는데, 교회에서는 왜 이 세상의 시작을 말하면서 엄마도 없는 신을 내세우는 것일까? 훗날 나는 전 세계의 신화를 공부하면서, 종교에서 말하는 우주가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창조설과, 우주는 탄생이나 사멸 없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영원불멸설이 바로 그것이었다.
두 가지 상반되는 견해가 사물의 일부를 조금씩 설명하고 있다면 ‘둘 다 맞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우주의 특성에 관한 한 위의 두 가지 주장이 모두 맞을 수는 없다.
그 후, 나는 여러 문화권이 비슷한 우주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창조설화에 의하면 태초의 우주는 ‘우주적 알cosmic egg’에서 시작되었다. 이 알은 혼돈으로 가득 찬 바다를 표류하고 있었으며, 반고盤古라는 소년이 계란 모양의 원시우주 안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히 잠에서 깨어난 반고는 알을 두 조각으로 가른 후 껍질의 위쪽부분을 떠받친 채 하루에 약 3m씩 1만 8,000년 동안 자신의 키를 키워나갔다. 그리하여 반고가 떠받치고 있던 껍질은 하늘이 되었고 그가 밟고 있던 껍질은 땅이 되었으며, 기력이 쇠진해 숨을 거두던 순간에 자신의 몸으로 이 세상을 만들었다. 그의 피는 강이 되었고 두 눈은 태양과 달이 되었으며, 그의 목소리는 천둥이 되었다고 한다.
반고의 이야기처럼 무無의 상태에서 우주가 창조되었음을 주장하는 창조설화는 다른 문화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우주는 완전한 혼돈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실제로, ‘혼돈chaos’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심연abyss’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바빌론과 일본에서 전해지는 창조설화도 무미건조하다는 면에서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집트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라Ra는 대양을 표류하던 알에서 탄생했으며, 폴리네시아의 신화에서는 코코넛 껍질이 우주적 알을 대신하고 있다. 또한, 마야인들은 이 이야기에 약간의 변형을 가하여 우리의 우주가 5,000년을 주기로 탄생과 소멸을 반복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창조신화들은 불교나 힌두교의 우주관과 눈에 띄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불교와 힌두교에서 말하는 우주는 태어나지도, 파멸되지도 않으면서 시간을 초월한 존재이다. 그 속에 사는 개개인들은 여러 가지 수준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높은 수준의 존재인 열반涅槃은 우주와의 합일을 이룬 영원불멸의 상태로서, 깊은 명상수행을 거쳐야 이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힌두문학의 대표적 저술 중 하나인 《마하푸라나Mahapurana》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일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그는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대체 어디 있었다는 말인가?… 시간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창조되지 않았으며,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그곳에 존재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두 종류의 창조신화들은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충의 여지도 전혀 없어 보인다. 이 우주는 무언가에 의해 창조되었거나, 아니면 원래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 중간에 해당하는 우주란 개념상으로도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강력한 관측장비가 개발되면서 우주의 창조에 관한 상반된 개념들은 과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화해무드로 접어들고 있다. 고대의 창조신화는 이야기꾼의 상상력에 따라 그 내용이 좌우되었지만, 현대의 과학자들은 다양한 관측위성과 레이저, 중력파감지기, 간섭계, 초고속 슈퍼컴퓨터, 그리고 인터넷 등 현란한 장비를 이용하여 우주창조에 관한 혁신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론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얻어진 관측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상반되었던 창조신화들이 점차 통합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현대의 우주론을 종교적 용어로 서술하면 “영원한 열반의 바다 속에서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우주는 거대한 ‘바다’ 속을 표류하는 물방울에 비유될 수 있다. 현대의 우주론에 의하면 우주는 끓는 물에서 생성된 작은 물방울이며, 이런 물방울은 11차원 초공간으로 서술되는 열반의 세계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생성되어 사방을 표류하고 있다. 오늘날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은 우리의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탄생했으며, 영원의 바다 속에서 여러 개의 다른 우주들과 함께 표류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여러분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빅뱅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은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법칙을 따르고 있는가? 다른 우주들은 언제 태어났으며 어떤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다른 우주들은 생명체가 전혀 없는 불모지일 수도 있고, 겉모습은 우리의 우주와 비슷하면서 단 하나의 양자적 사건에 의해 우리로부터 분리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앞으로 세월이 흘러 우리의 우주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워지면 좀 더 살기 좋은 다른 우주로 이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이 모든 주장들은 관측위성이 전송해온 방대한 양의 관측자료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개중에는 빅뱅의 잔해로 추정되는 사진도 있다. 과학자들은 특히 빅뱅 후 38만 년이 지난 시점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이 무렵에 빅뱅의 잔광殘光이 처음으로 온 우주를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WMAP 위성은 빅뱅의 잔해에 해당되는 복사radiation를 생생하게 관측하여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WMAP 위성
“믿을 수가 없어!”, “이건 사건이야, 일대 사건이라구!” 2003년 2월, 위성으로부터 전송된 관측데이터를 분석하던 한 무리의 천문학자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2001년에 발사된 WMAP 위성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이 이름은 우주론의 창시자였던 데이비드 윌킨슨David Wilkinson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이 빅뱅 후 38만 년이 지난 초기우주에 관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데이터를 전송해온 것이다. 별과 은하를 생성시키고 남은 원시우주의 에너지가 그 후로 지금까지 수십억 년 동안 우주를 배회하고 있다는 것은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었으나, WMAP 위성이 새로 전송해온 에너지 분포 데이터는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정확한 것이었다. 자료로부터 재현된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빅뱅의 잔해로 전 우주공간에 퍼져 있는 복사에너지)의 지도는 학자들의 넋을 빼앗아갈 정도로 정밀하기 그지없었다. 《타임》지는 ‘창조의 메아리Echo of Creation’라는 제목으로 이 기사를 대서특필했으며, 그 후로 천문학자들이 하늘을 바라보는 눈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었다.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의 존 바콜John Bahcall은 WMAP 위성의 관측결과가 “우주론을 사색적인 이론에서 정밀한 과학의 장으로 끌어올린 쾌거”라고 평가하였다.1 초기우주에 관한 관측데이터가 사상 처음으로 홍수처럼 쏟아지면서, 우주론학자들은 인류가 밤하늘을 관측해온 이후로 줄곧 떠올려왔던 유서 깊은 질문에 비로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인가?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앞으로 우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배경복사를 관측할 목적으로 1989년에 발사된 COBE 위성Cosmic Obsever Background Explorer satellite은 1992년에 처음으로 대략적인 데이터를 전송해왔다. 자료의 정확성이 떨어져서 초기우주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내지는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당시의 천문학계는 크게 흥분하여 ‘신의 얼굴The Face of God’이라는 제목하에 초기우주의 모습을 재현한 사진을 전 세계에 발표하였다. 사실, COBE 위성이 전송해온 데이터는 ‘대략적인 모습’이었다기보다, 우주의 ‘유아기 시절의 모습’이었다. 지금의 우주를 80살 난 노인에 비유했을 때, COBE와 WMAP가 보내온 자료는 태어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갓난아기의 모습에 해당된다.
WMAP 위성이 보내온 자료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확했던 이유는 거기 탑재된 망원경이 엄청나게 멀리 있는 천체를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온갖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 차 있는 우주공간은 일종의 타임머신으로 생각할 수 있다. 빛의 속도는 매우 빠르긴 하지만 무한히 빠르지는 않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별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다. 달 표면에서 반사된 빛이 지구에 도달할 때까지는 약 2초가 걸리므로, 우리는 항상 달의 2초 전 모습을 보고 있는 셈이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달하려면 대략 8분 20초가 소요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밤하늘에 빛나는 모든 별들은 각기 다른 시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지구로부터 10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이 망원경에 잡혔다면, 관측자는 10년 전 그 별의 모습을 보고 있는 셈이다. 1광년이란 빛이 1년 동안 진행하는 거리로서, 약 9조 4,600억km이다. 멀리 있는 은하로부터 방출된 빛은 수억 년 내지 수십억 년 동안 우주공간을 여행해야 지구의 망원경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빛들은 공룡이 태어나기도 전에 은하에서 생성된 ‘빛의 화석’인 셈이다.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천체들 중 가장 멀리 있는 것은 퀘이사quasar(준항성체)인데, 이들은 지구로부터 무려 120억 내지 130억 광년이나 떨어진 우주의 변방에서 지금도 외롭게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런데, WMAP 위성은 이보다 먼 곳에서 날아온 복사를 관측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우주론학자들은 천체관측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옥상에서 맨해튼 시의 전경 내려다보기’에 비유하곤 한다. 100층이 넘는 초고층건물의 옥상에서 시내를 굽어보면 지표에 붙어 있는 물체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건물의 지하실을 빅뱅이 일어난 시기로 간주한다면, 멀리 있는 은하는 10층 정도의 높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망원경으로 관측 가능한 퀘이사는 7층 정도에 해당된다. 그리고 WMAP 위성이 관측한 우주배경복사는 지표로부터 1cm 남짓한 곳에서 방출된 것이다. 이로부터 예측된 우주의 나이는 약 137억 년이다. 100억 년도 아니고 130억 년도 아닌 137억 년을 자신 있게 주장한다는 것은, 이 값의 오차가 1% 이내임을 뜻한다.
WMAP의 주된 임무는 천체물리학자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이룩해온 이론상의 업적을 관측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WMAP 프로젝트는 1995년에 NASA에 처음으로 제안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에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2001년 6월 30일, WMAP 위성은 델타 II호 로켓에 실린 채 태양과 지구 사이의 궤도를 향해 발사되었는데, 정확한 목적지는 라그랑주Lagrange 제2지점(지구 근처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지점, 흔히 L2라고 함)이었다. 이 지점에서 WMAP는 항상 태양, 지구, 달의 반대편을 향하도록 설계되었으므로, 광활한 우주공간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WMAP의 임무는 6개월을 주기로 전 우주공간을 이 잡듯이 뒤져서 우주배경복사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다.
WMAP는 최첨단 관측장비로 중무장한 위성이다. 여기 탑재된 감지기는 극도로 예민하여 빅뱅 때 전 우주를 뒤덮었던 마이크로복사파까지도 감지해낼 수 있다. 위성의 본체는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으며, 가로 3.8m, 세로 5m의 크기에 무게는 840kg에 불과하다. 또한, 보통 크기의 전구 5개에 불과한 419와트의 전력으로 작동되는 천체망원경은 마이크로복사파의 관측데이터를 지구로 꾸준히 전송해오고 있다. WMAP는 지구로부터 약 160만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지표에 붙어 있는 천체망원경과 달리 대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주 저편에서 날아오는 희미한 신호도 감지할 수 있다.
2002년에 WMAP는 온 하늘을 뒤져서 처음으로 관측데이터를 보내왔고,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에 또 한 차례의 데이터 전송이 이루어졌다. 현재 WMAP 위성은 천체관측 역사상 가장 정밀한 배경복사 지도를 지구로 보내오고 있다. 우주배경복사의 분포상태와 온도는 1948년에 조지 가모브에 의해 처음으로 예측되었는데, 가장 최근에 수신된 자료에 의하면 배경복사의 온도는 절대온도 2.7249K~2.7251K(영하 270°C 근처) 정도이다.
천문학자들은 WMAP가 보내온 자료를 토대로 하늘의 모습을 재현했다(아래 그림 참조). 언뜻 보기에는 검은 점들이 무작위로 찍혀 있는 썰렁한 추상화를 연상케 하지만, 사실 이 그림에는 우주탄생 직후의 무질서와 혼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림 속에 나타난 작은 점들은 ‘우주의 씨앗’으로서, 격렬한 팽창을 통해 지금의 우주를 만들어낸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이 작은 점들은 거대한 성단과 은하로 성장하여 밤하늘을 비추고 있다. 따라서 작은 점들의 분포상태를 분석하면 빅뱅이 일어났던 무렵의 우주지도를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얻어진 관측데이터는 실로 방대하여 이론학자들이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이다. 내가 보기에는 요즘이야말로 우주론의 황금기로 접어드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2007년에 유럽에서 발사될 예정인 플랑크 위성Planck satellite은 마이크로파배경복사를 지금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관측할 수 있다. 현재의 우주론은 상상과 추론이 난무하던 불확실성의 시대를 벗어나, 정확한 관측자료에 입각한 확실성의 세계로 옮겨가고 있다. 그동안 우주론학자들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평을 감수해야 했다. 심혈을 기울여 이론을 내놓아도, 그것을 검증할 만한 관측데이터가 태부족했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수상했던 레프 란다우Lev Landau는 “우주론학자들은 종종 틀릴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이론을 의심하지는 않는다”고 했고, 과학자들 사이에 회자되는 명언 중에는 이런 말도 있다. “한번 사색에 빠지면 더욱 깊은 사색으로 빠져들고, 이것이 반복되면 우주론이 탄생한다.”
나는 하버드대학 학생이었던 1960년대 말에 잠시 우주론을 공부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우주의 근원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당시의 우주론은 언뜻 보기에도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실험에 입각한 과학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느슨한 이론에 불과했다. 그 무렵에 우주론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이 우주가 대폭발로부터 탄생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정적인 모습으로 존재해왔는지를 놓고 연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관측자료가 워낙 부족했기 때문에, 그들의 논쟁은 항상 주어진 데이터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원래, 데이터가 적을수록 논쟁은 격렬해지는 법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주론학자들은 부족한 자료 때문에 제대로 된 연구를 수행하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에도 의견일치를 보기가 매우 어려웠다. 일례로, 윌슨산천문대의 앨런 샌디지Allan Sandage는 천문학자들과 우주의 나이에 관해 토론을 벌이던 중, 누군가가 빈정대는 투로 “내 말이 끝난 후에 제기되는 주장은 모두 틀린 것이다”라고 선언하자,2 “그건 정말 바보 같은 독선입니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이건 전쟁이라구요!”라고 응수했다.3
우주의 나이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나이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난 수세기에 걸쳐 학자와 성직자, 그리고 신학자들은 아담과 이브에서 시작된 계보로부터 우주의 나이를 추정해왔으며, 지난 세기에는 지질학자들이 바위에 남아 있는 방사성원소를 분석하여 지구의 나이를 대략적으로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한편, WMAP 위성은 빅뱅의 메아리를 잡아냄으로써 가장 믿을 만한 우주의 나이를 제시해주었다. 이로부터 추정되는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 정도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우주론학자들은 우주의 나이가 행성과 별의 나이보다 적다는 모순적인 사실에 직면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관측자료가 태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한 모순이었다. 과거에는 우주의 나이를 10억 내지 20억 년쯤으로 추정하였는데, 이는 지구의 나이(45억 년)와 가장 오래된 별의 나이(120억 년)와 비교할 때 말도 안 되는 값이었다. 물론, 최근 들어 이 모순은 완벽하게 제거되었다.
WMAP 위성은 2,000년 전에 그리스인들이 제기했던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유서 깊은 질문에도 혁신적인 답을 제시했다. 20세기의 과학자들은 이 질문의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엄청난 양의 실험을 끈질기게 수행한 끝에, 우주를 이루는 모든 원소들을 수소로부터 시작해 근 100종의 원소가 등장하는 주기율표 속에 요약하였다. 그 이후로 주기율표는 현대 화학의 기초가 되었으며, 전 세계의 모든 고등학교에서 필수적으로 교육되었다. 그러나 WMAP 위성은 이 확고한 믿음까지도 일순간에 날려버렸다.
WMAP 위성이 관측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물질들(산, 행성, 별, 은하 등)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총물질과 에너지의 4%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4% 중 대부분은 수소와 헬륨이 차지하고 있으며, 무거운 원소는 0.03%밖에 되지 않는다. 즉, 우주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물질들은 우주의 0.03%밖에 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보면 우주론은 현대과학을 원자가설이 탄생하기 전인 100년 전의 시점으로 되돌려놓은 셈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관측자료에 의하면, 우주의 23%는 미지의 ‘암흑물질dark matter’로 이루어져 있다. 암흑물질은 은하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맨눈이나 망원경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측자료는 없다. 은하수Milky Way galaxy(우리의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의 도처에 골고루 퍼져 있는 암흑물질은 은하수 안에 있는 모든 별들의 질량을 합한 것보다 10배나 큰 것으로 추정된다. 암흑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유리에 의해 빛이 굴절되는 것처럼 빛의 궤적에 변형을 일으키기 때문에, 광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그 존재를 간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의 천문학자 존 바콜은 WMAP의 관측결과를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의 우주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괴상망측하지만, 이제 비로소 그 특성이 밝혀지기 시작했다.”4
그러나 WMAP가 보내온 관측자료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우주의 73%가 미지의 암흑에너지dark energy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일상적인 물질 4%와 암흑물질 23%를 더해도 27%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73%에 해당하는 암흑에너지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암흑에너지의 개념은 1917년에 아인슈타인에 의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가 곧 폐기처분되었는데(아인슈타인은 이 일을 가리켜 자신이 저지른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고백했다), 최근 들어 천문학계에 다시 등장하면서 우주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커다란 요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현재 암흑에너지는 은하들을 서로 멀어지게 만드는 반중력antigravity의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으로 우주의 궁극적인 운명은 바로 이 암흑에너지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진공 속에 숨어 있는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아직도 규명되지 않고 있다.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의 크레이그 호건Craig Hogan은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암흑에너지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이 문제에 관한 한, 아무런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5
최신 버전의 입자이론을 근거로 해 암흑에너지의 양을 계산해보면, 우리의 예상치보다 10120배나 큰 값이 얻어진다(1 다음에 0이 120개나 붙어 있는 ‘끔찍한’ 숫자이다). 과학 역사상 이론과 실험의 차이가 이 정도로 크게 벌어진 사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최첨단의 과학이론이 우주의 운명을 좌우하는 에너지를 계산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로 난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정체를 규명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노벨상의 영예를 안게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
천문학자들은 WMAP 위성으로부터 홍수처럼 쏟아지는 데이터를 소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 결과, 과거의 우주개념은 거의 폐기되었고 새로운 우주론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WMAP 위성의 설계팀을 이끌었던 찰스 베넷Charles Bennett은 “지금 우리는 논리적으로 통일된 우주론의 초석을 쌓았다”고 선언하였다.6 현재 가장 최첨단의 우주론으로는 MIT의 앨런 구스Allan Guth가 빅뱅이론을 수정하여 처음으로 제안했던 인플레이션이론inflation theory(‘팽창이론’이라고도 하나, 빅뱅이론에서 말하는 팽창과 구별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으로 표기하기로 한다-옮긴이)을 꼽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론에 의하면 빅뱅이 일어나고 1조×1조 분의 1초가 지났을 때 반중력이 엄청난 크기로 작용하여, 우리의 우주는 기존의 빅뱅이론에서 예견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팽창되었다. 이 시기에 나타난 팽창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여,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물체와 신호는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금지령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 움직이는 것은 물체나 신호가 아니라 공간 자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간 속에서 일정한 크기를 점유하고 있는 물체들은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그리하여 빅뱅이 일어나고 몇 분의 1초가 지났을 때, 우주는 거의 1050배라는 엄청난 규모로 팽창되었다.
인플레이션(팽창)의 위력을 실감하기 위해, 팽창하는 풍선을 상상해보자. 이 풍선의 표면에는 별과 은하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별과 은하로 가득 차 있는 우리의 우주는 풍선의 내부가 아닌 표면에 해당된다. 이제, 풍선의 표면에 미세한 원을 하나만 그려보자. 이 조그만 원은 망원경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있는 ‘관측 가능한 우주’를 나타낸다(관측 가능한 우주를 원자 하나의 크기에 비유한다면, 전체 우주의 크기는 ‘실제 관측 가능한 우주’만큼 크다!). 그러면 풍선이 아무리 크게 팽창되어도 조그만 원이 바깥에 있는 별이나 은하를 ‘잡아먹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우주초기에는 인플레이션 팽창이 엄청난 빠르기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초기에 관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 있던 우주는 영원히 관측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우주의 팽창은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났기에, 풍선 위에 그려진 조그만 원, 즉 관측 가능한 우주의 주변은 평평한 것처럼 보인다. WMAP 위성의 관측결과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지구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인간의 눈에는 둥근 지면이 평평하게 보이는 것처럼, 우주는 엄청난 스케일에 걸쳐 휘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 평평하게 보이는 것이다.
우주의 탄생초기에 급격한 팽창이 일어났다고 가정하면, 우주가 평평하고 균일하게 보이는 이유를 이와 같이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물리학자 조엘 프리막Joel Primack은 인플레이션이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론이 틀린 것으로 판명된 사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7
다중우주
인플레이션이론은 WMAP 위성의 관측데이터와 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다. “인플레이션은 왜 일어났는가? 우주의 급격한 팽창을 야기한 반중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인플레이션으로부터 현재의 우주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은 학계에 발표된 것만도 무려 50여 종이나 되지만, 이들 중 어떤 이론도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급속팽창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나, 팽창의 얼개를 설명하는 확고한 이론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기원이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이와 똑같은 현상이 언제 다시 반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즉, 인플레이션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아이디어는 스탠퍼드대학의 러시아 물리학자 안드레이 린데Andrei Linde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되었는데, “어떤 물리적 과정이 우주의 갑작스런 팽창을 야기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면, 이와 동일한 현상은 우주의 다른 부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작은 부분이 어느 순간 갑자기 팽창하여 봉오리를 이루고, 그로부터 아기우주baby universe가 태어나 다시 봉오리로 성장하여 아기우주를 재생산하는 과정이 영원히 반복된다. 이것은 공기 중에서 비눗방울을 불 때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비눗방울이 충분히 커지면, 일부 비눗방울은 두 개의 작은 방울로 분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는 새로운 우주를 낳으면서 영원히 번식을 계속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각본에 따르면, 빅뱅은 지금도 우주의 도처에서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수많은 ‘방울우주’가 떠다니는 망망대해 속에서 하나의 방울 속에 실린 채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경우에는 ‘우주universe’라는 단어 대신 ‘다중우주multiverse’나 ‘거대우주megavers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린데는 ‘스스로 자신을 복제하는 우주’를 가리켜 ‘혼돈인플레이션chaotic inflation’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다중우주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도처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론을 처음 주창했던 앨런 구스는 “인플레이션이론을 연구하다보면 다중우주이론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8
다중우주이론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우주도 언젠가는 아기우주를 잉태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우주도 과거의 어느 시점에 부모우주로부터 탄생해 한창 자라나는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의 천문학자 마틴 리스 경Sir Martin Rees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주는 여러 집합체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거기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우주들이 각기 다른 물리법칙을 따르면서 고유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 속한 우주는 아마도 복잡성과 의식意識이 허용되는 우주일 것이다.”9
다중우주론을 접하다보면 “다른 우주들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곳에도 지적인 생명체가 살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들과 교신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등등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칼텍Caltech(캘리포니아공과대학)과 MIT,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을 비롯하여 세계 각처에서 이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평행우주parallel universe들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타당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지금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M-이론과 11차원 우주
평행우주의 개념은 원래 과학자들이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가설이었다. 그래서 이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다른 학자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거나 자신의 연구경력에 손상이 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실험적 증거가 전혀 없는 대상을 연구주제로 삼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위험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초끈이론과 M-이론이 이론물리학의 첨병으로 부각되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M-이론은 다중우주의 특성을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신의 마음 읽어내기Read the Mind of God”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만일 초끈이론과 M-이론이 맞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이것은 2,000년 전에 그리스인들이 우주에 대한 이해를 처음 시도한 이후로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끈이론 및 M-이론과 관련하여 학계에 발표된 연구논문은 무려 수만 편에 이르고 있으며, 관련학회도 전 세계에 걸쳐 수백 회나 개최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 주요 대학의 물리학과에서는 초끈이론을 연구하는 팀이 활동 중이거나, 초끈이론을 배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초끈이론은 아직 실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지만(이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실험장비의 수준이 이론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옮긴이), 이론물리학자와 수학자, 그리고 실험물리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실험물리학자들은 앞으로 만들어질 중력파감지기와 초대형 입자가속기가 초끈이론과 M-이론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초끈이론은 빅뱅이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제기되었던 질문, “빅뱅 이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궁극적인 답을 제시해줄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을 완수하려면 지난 수백 년 동안 현대물리학이 쌓아온 모든 지식과 관련 데이터를 총동원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찾는 것은 지엽적인 이론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을 찾기 위해 생의 마지막 30년을 고스란히 바쳤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까지 제시된 이론들 중에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힘들을 하나의 체계 속에 통합할 수 있는 이론은 초끈이론(또는 초끈이론의 최신 버전이라 할 수 있는 M-이론)뿐이다. M-이론의 ‘M’은 막膜, membrane의 첫 글자를 따온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신비한mystery’, ‘마술 같은magic’, 또는 ‘어머니mother’의 첫 글자로 통하기도 한다. 초끈이론과 M-이론은 근본적으로 같은 이론이지만, M-이론은 여러 개의 초끈이론을 하나로 통합하는 이론으로서, 한층 더 신비하고 복잡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모든 만물의 궁극적인 기본단위가 조그만 입자라고 생각했으며, 이 기본입자를 ‘원자atom’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 원시적인 원자가설은 오랜 세월 동안 그 명목을 유지해오다가 현대에 이르러 강력한 입자가속기가 개발되면서, 원자는 전자electron와 원자핵atomic nuclei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핵은 더욱 작은 구성입자로 이루어져 있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원자의 세부구조가 더욱 자세히 알려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입자가속기로 실험을 하는 와중에 뉴트리노neutrino(중성미자)와 쿼크quark, 메존meson(중간자), 렙톤lepton, 하드론hadron(강입자), 글루온gluon, W-보존W-boson 등 별의별 희한한 소립자들이 무더기로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왜 이토록 많은 종류의 입자들이 한꺼번에 존재하는 것일까? 이 의문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지독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초끈이론과 M-이론의 기본 개념은 아주 간단하다.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입자들이 바이올린의 끈string이나 북의 막membrane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입자들은 그 출신성분이 무엇이건 간에 모두 끈이나 막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들이 진동하는 패턴에 따라 우리의 눈에 각기 다른 입자로 보인다는 것이다. 단, 여기서 말하는 끈이나 막은 일상적인 3차원 공간이 아니라 11차원 초공간 속에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입자물리학자들은 전자를 무한히 작은 점입자point particle로 간주해왔다. 이 관점을 유지한 채 그 많은 소립자의 존재를 설명하려면, 수백 가지의 점입자들을 새로 도입해야 하는데, 이것은 누가 봐도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이론 자체도 복잡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초끈이론을 도입하면 이 난처한 상황이 말끔하게 정리된다. 만일 누군가가 초강력 현미경을 개발하여 소립자 규모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수백 가지의 점입자가 아니라 단 하나의 ‘진동하는 끈’뿐이기 때문이다(단, 끈의 진동패턴에 따라 입자의 종류는 달라진다). 즉, 소립자들이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정말로 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관측하는 기구가 너무 미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작은 끈들은 각기 다른 진동수와 다른 패턴으로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다. 만일 이들 중 하나를 골라서 기타 줄을 퉁기듯이 잡아뜯는다면, 끈의 진동패턴이 바뀌면서 다른 입자로(예를 들면 쿼크 같은 입자) 변환될 것이다. 그리고 끈을 또 한 차례 쥐어뜯으면 쿼크의 특성이 사라지면서 (예컨대) 뉴트리노로 바뀔 것이다. 이와 같이, 초끈이론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을 ‘각기 다른 형태로 진동하는 끈’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그 많은 입자들을 일일이 상대할 필요가 없다. 즉, 초끈이론은 다양한 패턴으로 진동하는 하나의 끈으로부터 모든 입자들을 유추해내기 때문에, 통일된 이론체계를 세우는 데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논리에 의하면, 지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실험을 통해 밝혀진 물리학의 모든 법칙들은 끈과 막의 조화법칙으로 요약될 수 있다. 화학은 이 끈으로 연주할 수 있는 멜로디에 비유할 수 있고, 우주는 끈으로 연주되는 교향곡에 해당된다. 또한,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신의 마음’은 초공간에서 일어나는 우주적 공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만일 우주가 끈으로 연주되는 교향곡이라면, 그 곡은 누가 작곡했는가? 이 문제는 12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우주의 종말
WMAP 위성은 초기우주의 모습을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우주의 종말까지 구체적으로 예견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우주의 탄생초기에 은하들을 서로 멀어지게 했던 반중력이 우주의 궁극적인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과거의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팽창속도가 서서히 느려진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팽창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우주의 질량과 에너지의 73%를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이 은하들 사이의 거리를 더욱 빠르게 증가시키면서 우주의 팽창을 가속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천체망원경연구소Space Telescope Institute의 애덤 리스Adam Riess는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 운전자는 붉은색 신호등 앞에서 속도를 늦췄다가 푸른색 신호로 바뀌면 다시 가속페달을 밟는다. 우주의 팽창은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10
팽창을 저지할 만한 사건이 전혀 발생하지 않은 채 앞으로 1,500억 년이 지나면, 은하수 주변에 있는 다른 은하의 99.9999%는 관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은하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멀어져서, 빛조차도 지구에 도달하지 않을 것이다. 은하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방출된 빛이 지구의 망원경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현재 관측 가능한 은하는 약 1,000억 개 정도인데, 1,500억 년 후에는 이 숫자가 수천 개로 줄어들 것이다. 그 후로 시간이 더 흐르면 은하수 근방에 있는 36개의 은하들만이 관측 사정거리에 남을 것이며, 나머지는 지평선 너머로(관측 가능한 영역 밖으로) 사라질 것이다.
국소적으로 뭉쳐 있는 은하들 사이의 중력은 팽창을 극복할 정도로 강하기 때문에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만일 이 시기에도 하늘을 관측하는 천문학자가 있다면 그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국소적으로 뭉쳐 있는 은하들은 서로 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득한 미래의 천문학자들은 이 우주가 36개의 은하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적인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고 믿을 것이다.
반중력이 계속해서 작용한다면 우주는 완전한 동결상태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공간이 팽창하면 온도는 계속 하강하고, 절대온도 0K(영하 273°C)에 이르면 모든 분자의 움직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체들도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앞으로 수조 년이 지나면 별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핵융합반응이 일제히 멈추면서 모든 별들은 빛을 잃고 우주는 암흑으로 덮일 것이다. 우주의 팽창이 아무런 대책 없이 계속된다면 하늘에는 검은 왜성dwarf과 중성자별neutron star, 블랙홀 등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시간이 더 흐르면 블랙홀의 모든 에너지가 증발되면서 소립자들로 이루어진 차가운 안개만이 우주를 표류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차갑고 황량한 우주에서는 제아무리 지능이 뛰어난 생명체라 해도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가 없다. 열역학의 법칙에 의하면,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정보도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은 ‘동사’라는 끔찍한 최후를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먼 미래에 우주가 동사한다는 이론은 18세기부터 제기되어 있었다. 진화론의 원조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우주의 종말을 인식하고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먼 미래의 인간들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획득한다 해도, 서서히 진행되는 종말의 과정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11 불행히도, WMAP 위성이 보내온 데이터는 다윈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초공간으로의 탈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궁극적으로 소멸한다는 것은 철학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운명론이 아니라 엄밀한 물리법칙의 결과이다. 생명체는 거주지의 환경이 악화되면 그곳을 탈출하거나 적응하는 능력이 있긴 하지만, 범우주적으로 동결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생명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얼어죽거나, 아니면 그곳을 탈출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수조 년 후에 우주의 종말을 맞이할 우리의 후손들은 차원을 넘나드는 방주를 만들어 더 젊고 따뜻한 우주로 이주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타임머신을 발명하여 온도가 높았던 과거의 우주로 시간이동을 감행할 것인가?
순전히 이론적인 가설이긴 하지만, 일부 물리학자들은 최첨단의 물리학을 이용하여 차원을 넘나드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의 이론물리학자들은 ‘신비한 에너지’와 블랙홀을 통해 다른 우주로 이동하는 방법을 연구하느라 오늘도 칠판을 난해한 수식으로 가득 메우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수백만 년, 또는 수억 년 후에 태어날 인간들은 과연 물리법칙을 이용하여 다른 우주로 이주할 수 있을 것인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우주론을 연구 중인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웜홀wormhole은 (만일 정말로 존재한다면) 공간을 빠르게 이동하는 가장 이상적인 교통수단이다. 웜홀을 통하면 은하의 반대편으로 여행을 갔다가 저녁식사 시간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12
그리고 만일 초공간이나 웜홀의 입구가 너무 작아서 탈출을 시도할 수 없다 해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경우에는 그동안 인류가 이루어놓은 모든 문명과 정보를 분자의 규모로 축소시켜서 차원입구를 통해 전송하면 된다. 그러면 인류의 모든 문명은 초공간에서 (초소형 규모이긴 하지만) 완전히 동일한 형태로 재현될 것이다. 즉, 초공간은 이론물리학자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우주의 종말에 처한 지적 생명체의 문명을 구원하는 최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의 내막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주론학자와 물리학자들이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어야 한다.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우주의 종말을 논하는 것은 종교적 맹신이나 공상과학소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우주론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조명해본 후에, 최첨단의 우주론이라 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이론으로부터 다중우주의 개념이 도출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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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인 우주
만일 내가 창세기에 살고 있었다면, 후손들을 위해 우주의 질서를 파악할 수 있는 몇 가지 힌트를 남겨놓았을 것이다.
— 현인 알퐁스Alphonse the Wise
빌어먹을 태양계! 빛은 희미하고 행성들은 너무 멀고,
혜성은 수시로 행성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이건 누가 봐도 엉터리로 만들어진 시스템이 분명하다. 내가 만들어도 이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 제프리 경Lord Jeffrey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이 세상은 거대한 연극무대이며
모든 인간들은 그 위에서 연기에 몰두하고 있는 배우에 불과하다.
그들은 무대에 등장하는 시간과 퇴장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중세시대에 이 세상은 정말로 하나의 무대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면서 영원히 그 모습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했던 세상은 소규모의 정적靜的인 무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구를 제외한 모든 천체들은 하늘에서 완벽한 궤적을 그리고 있으며, 그들 역시 지금의 운동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고 믿었다. 어쩌다가 하늘에 혜성이라도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것이 왕의 죽음을 예견하는 징조라고 생각했다. 1066년에 영국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혜성이 나타났을 때, 해럴드Harold 왕이 이끌던 색슨족의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더 이상의 진군을 포기했고, 그 덕분에 윌리엄William의 군대가 영국을 장악하여 새로운 국가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이 혜성은 1682년에 또 한 차례 영국에 나타났는데, 이때에도 전 유럽이 공포에 휩싸였다. 평범한 농부에서 왕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혜성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오만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대체 저 혜성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느닷없이 하늘에 나타난 혜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왕은 과연 저 불길한 혜성으로부터 안전할 것인가?
부유한 아마추어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Edmund Halley는 자신이 발견했던 혜성의 신비함에 매료되어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였던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혜성의 운동을 관장하는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뉴턴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혜성은 거리의 역제곱에 비례하는 힘(즉, 혜성에 작용하는 힘은 태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약해진다)의 영향을 받아 타원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저는 20년 전부터 혜성의 궤적을 망원경으로 관측해왔는데(그는 현대의 천문학자들이 사용하는 반사망원경을 처음으로 발명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혜성의 운동에 중력법칙을 적용하면 타원궤도가 자연스럽게 얻어집니다.”
핼리는 확신에 찬 뉴턴의 대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대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1 뉴턴은 여전히 차분한 어조로 간단하게 말했다. “그야, 계산을 해봤으니까 아는 거지요.” 핼리는 전 유럽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신비한 혜성의 비밀을 중력의 법칙으로 밝혀낸 뉴턴의 천재성에 그저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발견한 혜성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에 한껏 고무된 핼리는 사비를 들여 뉴턴의 새로운 이론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뉴턴은 핼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1687년에 그 유명한 논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줄여서 《프린키피아Principia》라고도 함)를 출판했다. 인류의 과학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되는 이 한 편의 논문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신비와 경이의 대상이었던 천체의 운동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는’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후로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유럽인의 사고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당대의 우주관을 대표하는 논문으로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뉴턴의 이론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남긴 시구에 잘 묘사되어 있다.
자연, 그리고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은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신이 “뉴턴이 있으라!”고 선언하자 모든 것은 백일하에 드러났다.
혜성의 타원궤적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면, 한번 나타난 혜성이 다시 나타나는 시기도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핼리는 과거의 기록을 뒤져서 1531년과 1607년, 그리고 1682년에 나타났던 혜성들이 모두 같은 혜성이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1066년에 영국의 역사를 바꿔놓았던 정체불명의 물체도 바로 이 혜성이었다. 당시 이 혜성은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전역에서 관측되었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도 이 혜성을 목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핼리는 이 혜성이 1758년에 다시 나타난다고 예견했고, 그의 예언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러나 핼리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자신의 예견을 확인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1758년 성탄절에 나타난 혜성을 바라보며 핼리의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확신하면서 거기에 ‘핼리혜성’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뉴턴이 중력법칙을 발견한 것은 페스트가 전 유럽을 휩쓸던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으므로 케임브리지를 비롯한 모든 대학은 휴교에 들어갔고, 뉴턴은 학교를 떠나 고향인 울즈소프Woolsthorpe에 머물면서 전염병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뉴턴은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장차 인류의 역사를 바꾸게 될 하나의 질문을 떠올렸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듯이, 달도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을까? 그는 천재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과와 달, 그리고 행성들이 모두 중력의 법칙을 따르고 있으며, 거리의 역제곱에 비례하는 (또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 현상을 서술할 만한 수학이 없었으므로, 뉴턴은 미적분학calculus이라는 수학의 한 분야를 직접 개발하여 떨어지는 사과와 달의 운동을 완벽하게 설명하였다.
뉴턴의 대표작인 《프린키피아》에는 천체를 비롯한 모든 물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역학법칙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 법칙들은 훗날 다양한 기계와 증기기관 등을 발명하는 원천이 되었고 이로부터 유럽의 산업혁명과 근대화가 촉발되었으니, 인류가 이룬 현대문명의 상당부분은 뉴턴의 법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초고층 건물과 수많은 다리들, 그리고 모든 우주선들은 뉴턴의 법칙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뉴턴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운동법칙만이 아니다. 그는 신비한 천체들을 지배하는 법칙이 지구의 일상사를 지배하는 법칙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놀라운 사실을 간파함으로써, 기존의 세계관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천체를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삶의 무대에 적용되는 법칙은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벤틀리의 역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우주의 생성과정에 대하여 다양한 역설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삶의 무대라는 우주는 과연 얼마나 넓게 뻗어 있는가? 우주는 유한한가? 아니면 무한히 큰 무대인가? 사실 이것은 꽤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유서 깊은 질문이었다. 로마시대의 철학자였던 루크레티우스Lucretius는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든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주는 모든 방향으로 무한히 뻗어 있다. 만일 우주에 끝이 있다면 어딘가에 경계가 있어야 하고, 이는 곧 우주의 바깥에 무언가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 그런데 우주를 이루는 모든 차원들은 아무런 방향성도 없고 그 외부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도 확인된 바 없으므로 우주는 끝이 없어야 한다.”2
그러나 뉴턴의 이론에 의하면 우주가 유한하다거나, 또는 무한하다고 주장하는 이론들은 한결같이 어떤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우주의 유한/무한을 가정하면, 아주 간단한 질문조차도 역설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프린키피아》를 출간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른 뉴턴조차도 자신의 중력이론에 풀리지 않은 역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692년, 성직자였던 리처드 벤틀리Richard Bentley는 뉴턴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에는 뉴턴이 고민하던 문제가 정중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만일 중력이라는 것이 잡아당기는 방향으로만 작용한다면, 은하를 이루고 있는 모든 별들은 결국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와해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주가 유한하다면, 그곳은 고요하고 정적인 무대가 아니라 모든 별들이 한데 뭉개지면서 처참한 종말을 맞는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벤틀리는 반대의 경우도 지적했다. “그런데 만일 우주가 무한하다면 임의의 물체를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잡아당기는 힘도 무한할 것이므로, 이 경우에도 모든 별들은 조각조각 찢어지면서 혼돈에 찬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언뜻 보면 벤틀리는 이 한 통의 편지로 뉴턴을 곤경에 몰아넣었을 것 같다. 우주가 유한하건(별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면서 뭉개지는 우주), 또는 무한하건(별들이 사방으로 찢겨지는 우주) 간에, 뉴턴의 중력이론은 우주의 처참한 종말을 필연적으로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벤틀리는 중력이론을 우주에 적용했을 때 나타나는 역설적인 결과를 최초로 지적한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뉴턴은 한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벤틀리의 논박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뉴턴 자신은 무한하면서도 균일한 우주의 개념을 선호하고 있었으므로, 우주가 정적이라는 가설을 어떻게든 옹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떠올린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았다. 우주공간에 떠 있는 하나의 별이 무한히 많은 다른 별들에 의해 당겨지고 있다면, 오른쪽으로 끌어당기는 힘과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은 서로 상쇄된다(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들도 같은 원리로 상쇄된다). 모든 별들이 이런 식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정적인 우주가 유지된다는 것이 뉴턴의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중력이 항상 인력으로만 작용한다는 가정하에서 벤틀리의 역설을 피해가려면, 이 우주가 “무한하면서 균일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뉴턴은 위와 같은 논리로 벤틀리의 논박을 피해갔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였던 그가 이런 궁색한 변명으로 만족할 리는 없었다. 그는 벤틀리에게 보낸 답장에서 “저의 논리에 틀린 점은 없지만,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합니다”라고 적어놓았다. 뉴턴이 생각했던 ‘무한하면서 균일한 우주’는 카드로 쌓아올린 집처럼 불안정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엔 안정된 것 같지만, 약간의 장애를 만나면 곧바로 와해될 수밖에 없는 불안한 이론이었다. 이런 아슬아슬한 우주에서는 별 하나가 조금만 요동을 쳐도 주변의 균형이 연쇄적으로 와해되어, 결국 우주전체가 하나의 중심을 향해 붕괴된다. 뉴턴은 ‘신의 전능한 힘’이 이런 대형사고를 막아주고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다음과 같은 글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태양과 항성들이 중력에 의해 한 지점으로 와해되지 않으려면 전지전능한 신의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3
뉴턴에게 있어, 우주는 탄생초기에 신이 태엽을 감아놓은 시계와도 같았다. 이 시계는 뉴턴이 발견한 운동의 법칙에 따라 태엽이 풀리면서 매 순간마다 특정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만일 이것이 이상적인 시계였다면 한번 태엽을 감아놓은 후로는 더 이상 신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뉴턴은 이 우주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 점으로 와해되지 않으려면 가끔씩 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즉, 무대에서 연기 중인 배우들의 안전을 위해 신이 가끔씩 무대와 세트를 보수한다는 것이다).
올베르스의 역설
우주가 무한하다고 주장하는 모든 이론들은 벤틀리의 역설과 함께 이보다 더욱 난해한 역설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하인리히 빌헬름 올베르스Heinrich Wilhelm Olbers가 처음으로 제기했던 이 역설은 “밤하늘은 왜 검게 보이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17세기 초에 케플러를 비롯한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무한히 크고 균일하다면, 어떤 방향을 바라봐도 그곳에는 무한히 많은 별들이 보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밤하늘에서 임의의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시켰을 때, 관측자의 눈이 향하는 곳으로 무한히 긴 직선을 그리면 무한개의 별이 이 직선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관측자의 눈에는 무한한 양의 빛이 도달해야 하고, 따라서 밤하늘은 엄청난 빛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눈에 보이는 밤하늘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이 문제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지독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올베르스의 역설은 벤틀리의 역설과 마찬가지로 언뜻 보기엔 간단한 것 같지만 그 속사정이 매우 복잡 미묘하여, 오랜 세월 동안 철학자와 천문학자들을 괴롭혀왔다. 벤틀리와 올베르스의 주장이 역설로 간주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한히 큰 우주에서 무한히 많은 천체로부터 발생한 중력이나 빛이 서로 더해지면 무한히 강한 위력을 발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 후로 수백 년 동안 수많은 해결책이 제시되었지만 전 세계의 학자들을 설득시킬 만한 해답은 나타나지 않았다. 케플러도 이 역설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 우주가 유한하다는 속 편한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우주가 유한한 크기의 껍질 안에 들어 있다면 유한한 양의 빛만이 우리의 눈에 들어올 것이므로 올베르스의 역설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올베르스의 역설은 너무도 난해하여, 현대의 과학자들도 종종 그 핵심을 놓치곤 한다. 1987년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천문학 관련서적의 무려 70%가 잘못된 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독자들도 올베르스의 역설에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제일 먼저 “멀리 있는 별에서 방출된 빛은 지구로 여행하는 동안 먼지와 가스층에 흡수되기 때문에 지구에 모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올베르스는 자신이 주장했던 역설을 1823년에 책으로 출간하면서, 방금 언급한 ‘가스층 흡수이론’을 해답으로 제시하였다. “그 많은 별에서 방출된 빛이 지구에 모두 도달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지와 가스층이 빛을 흡수해주지 않는다면, 지구에는 지금보다 9만 배나 강한 빛이 도달하여 모든 생명체들은 도저히 살아갈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악조건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를 만들었을 것이다.”4 지구가 엄청난 빛과 열에 노출되어 펄펄 끓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올베르스는 우주공간의 먼지와 가스구름이 빛의 상당부분을 차단해준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수의 중심부는 엄청난 빛과 열을 방출하면서 맹렬하게 타고 있지만 먼지구름에 가려 있기 때문에 맨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은하수의 중심은 사수자리Sagittarius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망원경으로 바라봐도 맹렬한 불꽃은 관측되지 않는다.
그러나 먼지구름 이론만으로는 올베르스의 역설을 완전하게 해결할 수 없다. 먼지와 가스층이 우주공간을 메우고 있다 해도, 오랜 세월동안 무한히 많은 별들로부터 방출된 빛에 고스란히 노출되다보면 먼지구름은 결국 별의 표면처럼 강렬한 빛을 발산하게 된다. 따라서 지금쯤이면 먼지구름에서 방출된 빛이 밤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해결책으로, 멀리 있는 별일수록 빛이 희미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역시 올베르스의 역설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왜 그럴까? 밤하늘의 한 부분을 바라보면 멀리 있는 별일수록 희미하게 보이지만, 멀리 갈수록 별의 개수는 더욱 많아지기 때문이다. 즉, 거리가 멀어지면서 빛이 희미해지는 효과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별이 많아지는 효과와 정확하게 상쇄되어, 밤하늘은 여전히 밝아야 하는 것이다(우주가 균일하다고 가정하면 별의 밝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별의 개수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우주공간은 거리에 상관없이 밝아야 한다).
독자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올베르스의 역설을 처음으로 해결한 사람은 미국의 추리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였다. 평소 천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죽기 직전에 《유레카Eureka》라는 제목의 산문시집을 출간했는데, 여기에는 그가 생전에 모아두었던 천체관측자료들이 난해한 산문시로 요약되어 있다. 이 시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을 잠시 읽어보자.
별들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면 밤하늘은 눈부시게 빛나야 한다.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별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멀리 있는 천체로부터 방출된 빛이 아직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5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틀렸을 리가 없다”고 과감하게 결론지었다.
놀랍게도, 포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천문학자들을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었다. 결국 우리가 속한 우주는 무한히 늙은 우주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주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돌연히 탄생했기 때문에 유한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멀리 있는 별들로부터 방출된 빛은 아직 무한히 먼 거리를 이동하지 못한 상태이다. 즉,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별에서 방출된 빛은 아직 지구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천문학자 에드워드 해리슨Edward Harrison은 올베르스의 역설을 처음으로 해결한 사람이 소설가 포였음을 간파하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포의 산문시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시인이었던 그가 어떻게 그토록 심오한 직관을 키울 수 있었는지, 언뜻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로부터 14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각급 학교에서는 잘못된 지식을 가르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아마추어 천문가에 불과했던 그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6
1901년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켈빈 경Lord Kelvin도 올베르스의 역설을 해결했는데, 그가 사용했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밤하늘을 바라볼 때,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별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별의 과거 모습을 보고 있다. 별에서 방출된 빛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달되긴 하지만(빛의 속도는 초속 30만km이다), 어쨌거나 속도가 유한하기 때문에 특정 거리를 진행하려면 반드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별이 아주 멀리 있다면, 빛이 그곳에서 지구까지 주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0억 년이 넘을 수도 있다. 켈빈은 간단한 계산을 통해 “밤하늘이 밝게 빛나려면 우주는 적어도 수백조 광년(1014광년) 이상 뻗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의 우주는 아직 그 정도로 나이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밤하늘이 검게 보이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별의 수명이 유한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들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생사生死를 반복하는데, 그 주기는 대략 수십억 년 정도이다.
인공위성에 탑재된 허블우주망원경이 최근에 보내온 관측자료를 보면, 포의 예측이 옳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허블망원경은 어린아이들이 흔히 떠올리는 질문에도 매우 정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먼 별까지의 거리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천문학자들은 이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허블우주망원경을 제작하였고, 대기의 상태와 무관하게 항상 천체를 관측할 수 있도록 위성에 실어 우주공간으로 띄워 보냈다. 우주의 변방에서 날아오는 지극히 희미한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허블망원경은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직업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허블망원경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와중에도 오리온자리 근처의 한 지점에 수백 시간 동안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어서, 한 번 초점을 맞추는 데 무려 4개월씩 걸리기도 한다.
2004년에 놀라운 기사가 전 세계 일간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적이 있었다. 빅뱅 때 형성된 수만 개의 은하집단으로부터 날아온 희미한 빛이 허블망원경의 렌즈에 도달한 것이다. 우주망원경연구소의 안톤 쾨케모어Anton Koekemoer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마침내 우리는 우주의 시작을 보았다”고 선언했다.7 각 신문에는 지구로부터 130억 광년 떨어져 있는 희미한 은하집단의 사진이 대대적으로 게재되었다. 이 은하에서 방출된 빛은 무려 130억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여행을 한 끝에 지구 근처에 있는 허블망원경의 렌즈에 도달한 것이다. 현재 추정되는 우주의 나이는 대략 137억 년이므로, 이 은하들은 빅뱅의 초창기라 할 수 있는 7억 년경에 빅뱅의 잔해인 가스들이 응축되면서 생성되었을 것이다. 천문학자 마시모 스티바벨리Massimo Stivavelli는 격앙된 목소리로 “허블망원경이 우리를 빅뱅의 시점으로 데려다주었다”고 선언했다.8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가장 멀리 있다는 은하의 너머에는 대체 어떤 것들이 존재하고 있을까? 그 너머에 또 다른 은하가 있다면 망원경에 잡힌 것은 가장 멀리 있는 은하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 해서 은하가 발견된 곳을 우주의 끝으로 간주할 수도 없다. 망원경이 보내온 사진을 자세히 보면 은하들 사이가 암흑으로 덮여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밤하늘이 검게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암흑의 세계는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배경복사’라는 마이크로파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밤하늘이 검게 보이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빛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인간의 눈이 가시광선 이외의 빛을 볼 수 있다면, 빅뱅의 잔해인 마이크로파가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장관을 매일 밤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반항적인 아인슈타인
뉴턴의 운동법칙과 중력법칙은 너무도 성공적이었기에, 과학은 근 250년이 지난 후에야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도약의 첨단에는 아인슈타인이라는 걸출한 천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현대과학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선구자답지 않게, 다소 엉뚱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스위스의 취리히에 있는 국립공과대학 폴리테크닉연구원Polytechnic Institute의 학사과정을 1900년에 마친 후 마땅한 취직자리를 얻지 못해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지도교수가 그의 자만심 강하고 오만한 자세를 싫어하여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대학 시절에 교수의 강의가 신통치 않다는 이유로 종종 수업을 빼먹곤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자신을 실패자로 여겼으며, 부모에게 학비를 받아쓰는 것도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심지어는 괴로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였다. 당시 아인슈타인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부모님은 나 때문에 행복한 적이 거의 없었어. 특히 내 학비를 대기 위해 정말로 어려운 생활을 해오셨지. … 지금 나는 무위도식하면서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짐만 될 뿐이야. …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 …….”9
물리학으로 취직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보험회사를 첫 번째 직장으로 택했다. 그러나 회사에서 주는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였는데, 이것 때문에 직장상사와 말다툼을 벌인 후 결국 회사에서 해고되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여자친구였던 밀레바 마리치Mileva Maric가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자,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아이가 사생아로 태어난다는 생각에 더욱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그때 태어난 아인슈타인의 딸 리세럴Lieseral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그 무렵에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으면서 아인슈타인은 평생 지우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아들을 인생의 낙오자로 여겼다.
1901~1902년은 아인슈타인의 평생을 통틀어 최악의 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친구였던 마르첼 그로스먼Marcel Grossman이 아인슈타인을 스위스 베른에 있는 특허청의 하급사원으로 추천함으로써, 인류가 낳은 불세출의 천재는 절망으로 얼룩진 암울한 시기를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상대성이론의 역설
사실, 베른의 특허청은 뉴턴 이후로 가장 위대하고 혁명적인 물리학이론이 탄생하기에 그다지 적절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이점을 갖고 있었다. 그곳에서 아인슈타인은 특허관련 서류들을 일찍 정리한 후 의자에 편히 앉아 어린 시절부터 줄곧 생각해왔던 꿈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아론 번스타인Aaron Bernstein의 《자연과학 입문서People’s Book on Natural Science》를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집중해서”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번스타인은 “전깃줄을 타고 전송되는 전보를 똑같은 속도로 따라가면 어떻게 보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어린 아인슈타인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빛과 동일한 속도로 빛을 따라간다면 어떻게 보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제기하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만일 내가 c라는 속도(진공 중에서 빛의 속도)로 빛을 따라간다면 빛은 정지해 있는 전자기장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전자기학에 관한 맥스웰의 방정식에 의하면 빛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10 소년 아인슈타인은 빛과 같은 속도로 빛을 따라가면 빛은 정지상태의 파동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도 ‘정지된 빛’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이 논리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20세기가 밝을 무렵, 물리학은 뉴턴의 역학 및 중력이론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이론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1860년대에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은 빛이 진동하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혼합체라는 사실을 간파하여 고전전자기학의 이론체계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이 서로 상충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냄으로써, 고전물리학의 명예로운 퇴장을 최초로 예견하였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 방정식의 해解에서 맥스웰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맥스웰의 방정식에 의하면 빛은 관측자의 운동상태와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속도로 진행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좇아가면서 빛의 속도를 측정한다 해도, 그 값은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빛의 속도 c는 모든 관성계(등속으로 움직이는 기준좌표계)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당신이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거나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을 때, 또는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혜성에 올라타고 있을 때에도 당신이 바라보는 빛의 속도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관측자가 제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해도, 앞서가는 빛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이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우주공간을 표류하고 있는 우주비행사가 빛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비행사는 우주선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여서 빛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 만일 이 광경을 지구에 있는 관측자가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그의 눈에는 빛과 우주선이 거의 동일한 속도로 달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빛과 속도경쟁을 하고 있는 우주비행사의 눈에는 빛이 여전히 자신으로부터 c의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다. 우주선이 정지해 있을 때나, 부지런히 달리고 있을 때나, 빛의 속도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운동상태가 다른 두 사람이 동일한 사건을 관측했을 때,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뉴턴의 고전역학에 의하면 우주선은 빛을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제작하는 것이 문제이지, 일단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만들기만 하면 먼저 출발한 빛을 따라잡는 것은 오직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우주선의 속도가 빛보다 느리다 해도, 빛을 따라가면서 측정한 빛의 속도가 정지해 있을 때 측정한 빛의 속도보다 느리게 나타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누가 측정하건 간에’ 항상 동일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고전물리학의 근간에 커다란 오류가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의 머릿속에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존의 물리학을 송두리째 갈아엎는 대혁명의 전조였다. 그는 신중한 사고를 펼친 끝에, “시간은 관측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빠르기로 흐른다”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했다. 관측자의 운동속도가 빠를수록 시간은 더욱 천천히 흐른다. 다시 말해서, 시간은 뉴턴의 생각과 달리 절대적인 양이 아니었던 것이다. 뉴턴은 시간이 전 우주에 걸쳐 동일한 속도로 흐르고 있으며, 지구에서의 1초는 화성이나 목성에서의 1초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같다고 생각했다. 뉴턴의 시간은 범우주적으로 맞출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시간은 우주의 각 지점마다 다른 속도로 흐르는 ‘상대적인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발견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관측자의 운동속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면 물체의 길이와 질량, 에너지 등도 속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11 예를 들어, 달리는 자동차는 이동방향으로 길이가 줄어든다. 그리고 속도가 빠를수록 수축되는 정도도 커진다. 이 현상은 흔히 로렌츠-피츠제럴드 수축Lorentz-FitzGerald contraction이라 불린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물체는 질량이 증가한다. 속도가 광속에 이르면 시간은 느리게 가다 못해 더 이상 흐르지 않게 되며, 길이는 0으로 줄어들고 질량은 무한대가 된다. 물론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빛을 제외한 어떤 물체도 광속과 같거나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없다는 또 하나의 놀라운 결론을 내렸다.
한 시인은 상대성이론으로 유도된 신기한 결과를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했다.
피스크라는 이름의 젊은이는
현란한 칼 솜씨의 소유자였다.
그가 휘두르는 칼은 너무도 빨라서
피츠제럴드의 수축에 의해
마치 둥그런 원반처럼 보였다.
뉴턴이 중력법칙을 발견하여 천체의 움직임과 사과의 움직임을 하나의 통일된 이론으로 설명한 것처럼,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spacetime’이라는 하나의 체계 속에 통합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교환될 수 있는 양임을 간파하여 이들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물체의 속도가 빠를수록 질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운동에 의한 에너지가 물질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에너지가 질량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반대현상도 가능하다. 적절한 환경이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