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천희
안보윤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로 제1회 자음과모음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중편소설 『알마의 숲』, 장편소설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이 있다.
일그러지다.
세계를 떠올리면 늘 저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과 사물과 감정과 상식에 ‘일그러진’을 붙이면 이 세계가 되었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 순환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대개 일그러진 그림자들이 서로의 목을 밟고 서 있었다. 나는 제일 밑바닥에서 낡은 가죽 주머니에 숨겨간 단어들을 조물거리며 놀았다.
_‘작가의 말’에서
2010-08-18 18:31:09
……모르겠어요. 이젠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날, 거기 있었던 게 맞나요? 동네 애들이 빠짐없이 모두, 303동 옥상에 모여 있었어요? 제 손이…… 우리 몸이 정말로 그렇게 움직였나요? 미주 누나를 우리가…… 형사님, 딱 한 번만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이제 조서도 다 썼고 카메라도 껐잖아요. 그러니까 말해주세요. 우리가 정말, 구제불능의, 파렴치한 성폭행범이 맞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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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7 21:08:54
삼층까지 다 아저씨네가 쓰는 거예요? 경찰서라는 거 되게 크구나. 여기 문들도 다 방인가봐요. 조사1실, 조사2실…… 우리 학교 복도도 이렇게 생겼는데. 복도에 과학실, 실습실, 음악실, 팻말이 쫙 붙어 있어요. 근데 과학실은 잠가놓고 아무도 안 써요. 과학수업 시간에 화학실험도 안 하고 해부도 안 하고 우린 맨날 비디오만 봐요. 선생님은 그냥 다, 외우면 된대요. 직접 안 해봐도 알려준 대로 외우기만 하면 백 점이라고. 근데요 아저씨, 나 여기 왜 온 거예요? 아저씨가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오는 동안 되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모르겠어요. 암만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거든요.
아, 잡아당기지 마요, 안 그래도 팔 저려 죽겠는데. 나 수갑은 왜 찼어요? 경찰서 올 때 원래 수갑 차고 오는 거예요? 아저씨들이 집으로 들이닥쳐서 막 팔 꺾고 벽에 얼굴 처박고 막, 그렇게 끌고 와도 되는 거예요? 이쪽 어깨 빠진 거 같아요. 얼굴도 화끈거리고. 내 턱 까졌어요? 피 나요? 아우 씨, 진짜 아픈데. 영화에서나 그렇게 하는 줄 알았는데 졸라 리얼하데요. 동영상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음 대박이었을 텐데 아깝다. 테러범 진압하는 동영상 본 적 있는데, 뭐였더라, 무슨 은행인가 쇼핑몰에서 몸에 폭탄 두르고 나대는 복면 때려잡는 장면이 딱 그랬어요. 특공대가 줄타고 유리창 깨고 날아다니면서 막. 근데 나는 뭐 폭탄은커녕 빤스만 입고 있었는데 억울하게 처맞고. 아저씨, 근데 이거 누구 옷이에요? 냄새나요. 여기로 들어가요? 아 씨, 여기도 냄새나네. 페브리즈 같은 거 없어요? 냄새 싹싹 뭐 그런. ……아저씨 졸라 과묵하시네요. 난 씨발, 불안해 미치겠는데.
우리 할머니 불러주세요. 밖에 없어요? 아까 막 소리지르면서 따라오는 거 같았는데. 우리 할머니 목소린 딱 들으면 알아요. 벙어리라서 식도발성인가 뭐 그런 거 하거든요. 담배를 하도 피워서 목 어디를 잘라냈다는데 목소리 완전 깨요. 백 명이 동시에 트림하는 소리랑 똑같아요. 승호는 물개가 껑껑대는 소리라던데, 병신, 지가 물개를 언제 봤다고. 암튼 우리 할머니 불러줘요. 아직 집에 있음 전화라도 해주세요, 내 옷 좀 갖다달라고. 이거 냄새나서 못 입고 있겠어요, 디자인도 구리고. 아 진짜, 여긴 뭐 꼴랑 책상 하나랑 의자밖에 없는데 냄새가 왜 이렇게 난대요, 누가 똥쌌나.
……몰라요. 여기 왜 왔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아까부터 물어봤잖아요, 왜 잡혀왔느냐고. 아저씨가 계속 씹었지만.
……이상하네. 암만해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있잖아요, 저번에 경훈이 형이 오토바이 훔치다 걸렸을 땐 안 이랬거든요. 그 형은 진짜 나쁜 짓 한 건데도 형사 아저씨들이 팔만 잡고 갔거든요. 조인트 까고 수갑 채워서 막 개새끼처럼 질질 끌고 가진 않았거든요. 생각할수록 억울하네, 씨발.
아, 됐어요. 뭐요. 욕 안 했어요. 아파서 그래요, 어깨도 아프고 얼굴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다 왔는데 수갑 안 풀어줘요? 조사실 들어왔잖아요. 어, 이 방 팻말은 빈 딱지네. 취조? 취조준비실? 그게 뭔데요? 뭘 준비해요?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됐고, 일단 수갑부터 풀어줘요. 기분 졸라 더러워요. ……내가 뭘 어쨌길래요? 뭐라뇨, 아저씨가 방금 그랬잖아요. 여긴 죄지은 놈들 빨가벗기는 데라고. 죄지은 것도 없는데 그럼 난 왜 데려왔어요? 뭘 발뺌을 해요, 암것도 한 게 없다니까.
2010-08-17 21:48:29
……박성재. 열네 살요. 주민번호는 몰라요. 그걸 뭐하러 외워요. 할머니 건 아는데 그거 부를까요? <방과후 전쟁활동> 보려고 성인 인증할 때 외워놨어요. 졸라 재밌는 웹툰인데 그것도 몰라요? 아깐 나에 대해 다 안다면서요, 내가 누는 오줌 색깔까지 다 안다고 졸라 이빨까더니. 내가 뭘 졸라밖에 안 해요. 존나, 조올라, 열라, 다 할 줄 아는데.
수원중학교 1학년 7반 13번. 친구야 당연히 있죠. 제일 친한 친구는, 김기열요. 또 누가 있느냐면, 고승호랑 주교창이랑 그렇게요. 교창이는 한 살 어린데 그냥 친해요. 다 같은 아파트 살거든요. 우리 동네 개후져서 아무도 이사 안 와요. 아파트도 지은 지 백 년은 된 것 같은 임대고. 딴 동네 가면 그지 새끼라고 놀려서 우린 우리끼리만 놀아요. 뭐 하고 노느냐면, 인원 모이면 축구 하거나 돈 생기면 PC방 가서 게임하거나 싸움하거나. 싸움요? 딴 동네 애들하고 하죠. 걔네가 자꾸 놀리거든요. 우리 동네 애들 잡아다 패기도 하고. 그럼 우리도 가만 안 둬요, 형들이랑 쫓아가서 몰빵 놓고 튀지. 아파트라고 해봤자 콧구멍만해서 애들끼린 서로 다 알아요. 누가 몇 동 사는지 어느 학교 다니는지 몇 살인지.
몰라요. ……냄새난대요, 우리 아파트. 다들 가난하고 노인네들 엄청 많으니 냄새도 나겠죠. 여름 되면 무슨 빨래도 아니고 계단이랑 놀이터에 노인네들만 쫙 널려 있는데 완전 좀비 군단이 따로 없어요. 영화 찍으면 분장할 필요도 없을걸요. 턱이 다 비틀려서 입도 못 다물고 막, 배꼽까지 다 보이게 늘어난 러닝 하나 덜렁 입고 돌아다니고. 짜장면 그릇에 씌운 랩을 젓가락으로 뜯으면 쭈글쭈글 밀리잖아요. 살가죽 처진 꼬라지가 딱 그거예요. 속옷도 안 입고 아무데나 퍼질러 앉아서 침 흘리고 담배 피우고 가래 뱉고. 아 씨, 생각만 해도 쏠리네. 아저씨, 왜 사람은 늙으면 그렇게 구질구질해져요? 곰팡이 난 것처럼 얼굴도 시커멓고 얼룩덜룩, 입냄새 졸라 나서 옆에 가기도 싫어요. 예? 우리 할머닌 안 그래요. 가래도 안 뱉고 속옷도 다 입고 다니고 입냄새도 안 나요. 다른 집은 기초수급비 나오면 그걸로 한 달 뭉개는데 우리 할머니는 공공근로도 나가고 폐지도 주워요. 저번에 시민공원 잡초 뽑고 받은 돈으로 내 아디다스 운동화도 사다주고 그랬어요. 완전 간지 나는 걸로. 에이 씨, 아저씨 때문에 집에서 쓰레빠 끌고 왔잖아요, 이거 화장실 쓰레빤데. ……우리 할머니 진짜 밖에 없어요? 나 데리러 안 온대요?
동네 애들요? ……다 비슷한데. 사는 것도 하고 다니는 것도 다 비슷해요. 우리도 늙으면 그 노인네들처럼 아파트 앞에 널려 있겠죠 뭐. 특별히 떠오르는 거? 없는데요. 이상한 사람…… 그건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다 이상하고 어떻게 보면 다 정상이고. 아 씨, 왜 때려요. 저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다 똑같단 말예요. ……아무거나요? 그냥 아무거나 말하면 되는 거예요? 그럼 집에 보내주는 거죠?
성격, 음, 애들 성격은 그냥 다 착해요. 거짓말 아니라 진짜 착해요. 기열이는 할아버지랑 아빠랑 셋이 사는데요, 걔네 할아버지가 되게 이상한 병에 걸렸거든요. 살인가 근육인가가 저절로 흐물흐물해지는 병이래요. 제대로 못 걷고 픽픽 넘어져서 병원에 간 거였는데, 첨엔 머리가 이상한 거라고 하더니 엄청 비싼 검사 받고 나니까 병 이름 알려주더래요. 계속 몸이 녹아서 마지막엔 순두부처럼 될 거라고. 제가 보기엔 지금도 그래요. 혼자 몸 뒤집는 것도 못해서 방에 누워만 있거든요. 기열이가 할아버지 밥도 먹이고 물도 먹이고 얼굴이랑 등도 씻기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그래요. 걔네 아빠는 조타수라는데 한번 배 타면 석 달씩 집에 안 들어오거든요. 할아버지 돌보느라 기열인 소풍이고 수학여행이고 한 번도 안 갔어요. 걔네 집 가면 구린내 끝내줘요. 하루종일 싸서 뭉개놓은 똥 냄새가, 아우 씨. 여름엔 파리랑 벌레 들러붙어서 완전 끝장인데 기열이는 그거 다 닦고 할아버지 엉덩이에 땀띠약도 발라주고 그래요. 학교에서 효행상도 받았어요. 치사하게 상품은 없었지만. 문상이라도 끼워주지 쪼잔하게. 암튼 슈퍼 가면 거기 아줌마가 기열이 효자라고 라면이랑 고추참치 캔이랑 우유랑 막 집어줘요. 가끔 돈도 주던데요. 기열이네 엄마가 옛날에 집 나갈 때, 차비 하라고 돈 빌려준 사람이 슈퍼 아줌마래요. 그래서 그런지 기열이네 아빠는 술 마시면 거기 가서 이것저것 깨부수고 그러는데, 어지른 거 싹 치우고 잘못했다고 비는 것도 기열이가 다 해요.
승호는, 그 새끼 졸라 족제비같이 생겼어요. 기열이는 곰 새끼 같은데. 반 기집애들이 아이돌처럼 생겼다고 승호 되게 좋아해요. 아이돌은 무슨, 얍삽하게 맨날 꼼수만 부리는 새낀데. 공부도 더럽게 못해요. 저는 그래도 수학 육십 점 받은 적 있거든요. 걔는 그거 반도 못 맞혀요. 근데 잔머리 하난 끝내줘요, 걔가. 예? 아뇨, 그런 적 없어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 새끼도 착하긴 해요. 승호네 아줌마 몸이 안 좋아서 휠체어 타고 다니거든요. 소아마비랬나 뭐랬나, 허벅지랑 종아리가 제 팔목보다 더 가늘어요. 되게 어릴 때부터 그랬대요. 우리 아파트에 무지 많아요, 어디 약간 모자라거나 아픈 사람요. 근데요 아저씨, 이거 그만 풀어주심 안 돼요? 손가락도 저리고 손목도 아프고 막, 죽겠는데. 도망 안 가요. 아저씨가 아까 문 잠갔잖아요. 집에 가는 길도 모르고. 애들이 그러는데 내 달리기 졸라 후지대요. 폼도 후지고 남들 걷는 것보다 더 느리다고 축구 할 때마다 욕먹는데요. 아아, 진짜 아픈데…… 승호요. 네, 고승호. 걔네 집이 303동 꼭대기 층이에요. 엘리베이터가 있긴 한데 워낙 고물이라 툭하면 멈추고, 점검한다고 한 달에 서너 번은 꺼져 있고 그래요. 꼭대기 사는 사람들만 좆빠지는 거죠. 하긴 그게 아니더라도 아줌마가 나다닐 수 없는 게, 아파트 앞이 쫘악 내리막길이거든요. 길도 엄청 꼬불꼬불해요. 저번 장마 때 휠체어째 뒤집어져서 굴러내려가다 벽에 처박혀 죽을 뻔한 다음부터 승호네 아줌만 집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가요. 이렇게 뚱그런 원반에 바퀴 네 개 달린 의자 아세요? 아줌마 그거 타고 집안에서만 굴러다녀요. 그래도 승호네 집이 제일 부자예요. 아버지 회사 다니고 누나도 돈 벌고. 우리 중에 엄마 아빠 다 있는 사람은 승호밖에 없어요. 그래서 좀 얄밉죠. 키도 쪼끄만 새끼가, 용돈 받았다고 나대면 막 쥐어 패주고 싶어요. 아줌마 봐서 때리진 않아요. 걔네 집 놀러가면 아줌마가 샌드위치도 만들어주고 피자도 시켜주고 그러거든요. 승호네 아빠랑 누나는 돈 버느라 바쁘니까, 시장 가서 뭐 사오고 형광등 갈고 하는 거 승호가 다 해요. 아줌마 팔 닿는 데가 딱 요기까지라서 그 위에 있는 건 다 승호 책임이에요. 저번에 갔더니 걸레로 벽지랑 천장이랑 닦고 있던데요. 냉동실 청소도 하고 유리창도 닦고. 뭘 싫어해요? 내가 승호를요? 아니요, 친구라니까요. 그냥 가끔 눈꼴실 때가 있어서 그렇죠, 뭐. 다들 그렇잖아요.
교창이는, 예전에 친했던 애들 중에 영창이라고 있었는데 걔 동생이에요. 영창인 이 동네 안 살아요. 재작년인가 형들 따라서 집 나갔는데 형들 다 돌아오고 나서도 혼자 안 왔어요. 어디 조폭 똘마니로 잡혀갔단 얘기도 있고, 가출팸에 묶였단 얘기도 있는데 잘은 모르겠어요. 교창이가 애들한테 하도 맞고 다녀서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건데, 지금은 워낙 친해져서 잘 지내요. 같이 집 나갔던 형들은…… 우리 동네 형들이 좀…… 경훈이 형요? 아저씨 경훈이 형을 어떻게 아세요? 그 형 졸라 양아치예요. 동네 사람들 다 알아요. 여기 애들치고 형한테 명치 안 까여본 애 없을걸요. 실실 쪼개다가 갑자기 확 까는데 진짜 숨도 못 쉬어요. 왜 까느냐고요? 그야 담배 뚫어오라고요. 가난한 동네라 애들 다 돈 없어요. 뒤져봐야 개털만 날리니까 심부름 시키고 심심풀이로 패고 그러는 거죠. 그러다 면상이 재수없음 잡아놓고 한 달씩도 까요. 돈은 딴 동네 애들한테서 뜯어오거나 오토바이 훔쳐서 만들고요. 빈집털이 같은 것도 한다던데요. 그 형, 전과 있거든요. 전에 다니던 학교도 그래서 잘렸어요. 요즘? 요즘은 동네에 안 와요. 얼마나 안 왔느냐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참이에요, 슈퍼에서 말보로 레드도 팔 정도니까. 아, 그게, 경훈이 형이 말보로 레드만 피우거든요. 애들이 그걸 하도 훔쳐가니까 슈퍼 아줌마가 아예 그 담배를 들여놓질 않는 거예요. 심부름할 때마다 졸라 먼 동네까지 뚫으러 가야 되니까 오래 걸리고, 그럼 경훈이 형한테 반항한다고 막 까이고. 교창이가 특히 많이 까였죠. 경훈이 형이 각 잡고 까기 시작하면 일단 바지부터 벗기거든요. 교창인 바지마다 지퍼가 다 터졌었다니까요. 네? 바지요? 그건 그냥 벗기는 건데요. 뭘 만져요? ……왜요? 아뇨, 그냥 벗겨놓고 때려요, 도망 못 가게. 그게 다예요.
경훈이 형은, 싫죠, 씨발, 그 개새끼 진짜, 진짜 싫고…… 무서워요. 또 맞을까봐. 예전에 등에 구멍 뚫릴 때까지 밟힌 적도 있어요. 오토바이 훔치는데 망보라 그래서 싫다고 했더니 스파이크로 졸라 밟잖아요. 스파이크화요, 그거 왜 육상부 애들 신는 거 있잖아요. 신발 바닥에 나사못 같은 게 팍팍 튀어나와 있는 건데 몰라요, 아저씨? 경훈이 형 뭐 훔칠 때마다 그거 신어요. 급하면 쫓아오는 사람 얼굴 까고 튄다고요. 그날은, 신어놓고 자기도 까먹었는지 막 밟다가 내 등짝에서 피 줄줄 나니까 개놀란 눈치더라고요. 다음부터 나는 일절 안 건드렸는데 그럼 뭐해요, 등짝에 꺼먼 구멍만 일곱 개는 뚫렸는데, 씨발. 언젠가 나도 그 새끼 등짝에 똑같이 북두칠성 찍어줄 거예요. 졸라 양아치 주제에 맘잡았다고 깝치는 거 보면 진짜 웃기지도 않아요. ……경훈이 형 동네 뜬 지 한참 됐다니까요, 무슨 기술학교 들어가서 자격증 공부한다고. 이 동네 오면 애들하고 어울려서 또 사고 치니까 아예 집에 안 들어오는 거래요.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요, 동네 애들도 우리 할머니도. 철든 거라고 하는데 철은 개뿔, 딴 동네 가서 걔들 후리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 형네 엄마만 신나서 떠들고 다녀요. 똑같이 구정물 먹고 커도 씨암탉 되는 놈 들개 밥 되는 놈 따로 있다고. 무슨 뜻인진 모르겠지만요.
……아저씨, 지금 몇시예요? 열시엔 자야 되는데. 우리 반에서 내 키가 제일 작거든요. 여긴 왜 창문도 없어요? 답답해요. 머리 아프고 목마르고…… 물이라도 주심 안 돼요? 아저씨 먹던 거 그거 한 모금만 줘도 되는데, 진짜 입만 댔다 뗄게요. 아저씬 퇴근 안 해요? 일단 집에 갔다가 내일 다시…… 네, 다 얘기하면 집에 보내주겠단 거잖아요. 그럼 빨리, 빨리 얘기할래요. 근데 무슨 얘기를?
정미주? 그게 누군데요?
아, 미주 누나. 당연히 알죠. 우리 옆 동 사는데요. 301동 이층요. 호수는 모르겠고 엘리베이터 내려서 왼쪽 두번째 집인가 그래요. 동네 애들끼린 어디 사는지 대충 다 안다니까요. 미주 누나는 왜 물어봐요? 누나랑요? 음, 평범한데. 놀이터나 슈퍼 앞에서 만나면 얘기는 하는데 같이 놀러 다니고 그러는 건 아니에요. 누나는 학교 안 다니니까 거의 집에 있고요. 길에서 마주치면 형들이 가끔 농담도 걸고 장난도 치고. 누나가 잘 받아주거든요, 리액션도 별나고. 소문? 무슨 소문요? 미주 누나에 대한 소문은 뭐…… 뭐가 있었지? 아, 그 누나 애기 때 열이 엄청 오르는 바람에 바보가 됐대요. 완전 바보까진 아닌데 머리 되게 나쁘거든요. 나눗셈도 아직 못하고. 머리가 너무 뜨거우면 뇌가 익어버린다고, 그래서 형들이 삶은 뇌, 라고 놀리는 걸 들은 적 있어요. 그거 말고는…… 누나네 갓난쟁이 애기 있거든요. 열여섯 살인가 차이 나는 동생인데, 그게 동생이 아니라 누나 딸이라는 소문도 있어요. 하루는 누나가 애기를 업고 나왔는데, 애기 머리에다 자기 브라자를 모자처럼 씌워서 나왔더래요, 히힛. 근데 그건 형들이 지어낸 얘기라던데. 누나 놀리려고. 다른 거요? 뭘 말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거 말고 다른 소문은 들은 적 없는데. 대부분 거짓말이고요. 찾아가요? 누나네 집에…… 누가요? 뭘 다 알고 있다는…… 누나네 집을 내가 왜 찾아간단 거예요?
그런 적 없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가 어디 사는지 아파트 사람들 다 안다니까요. 몇 동 몇 호에 누가 사는지, 그 집에 누가 어떻게 아픈지 다들 알아요. 그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요. 이상해요? 왜요? 우린 다 아는데, 나는 아는데요. 우리 오른쪽 옆집에는, 그러니까 704호에는 할아버지 혼자 살아요. 701호엔 되게 쪼그맣고 허리 굽은 할머니 혼자 사는데 주말마다 아들 식구가 찾아오고요. 702호엔 유치원 다니는 남자애 키우는 부부가 사는데 되게 젊어요. 고등학교 때 애기 가져서 결혼한 거래요. 703호엔 할머니랑 내가 살고요, 803호 종수 형은 경훈이 형이랑 중학교 동창이고, 경훈이 형네는 301동 십이층 살아요. 이게 왜 이상하단 거예요?
나쁜 짓…… 한 거 없는데요. 없어요. 거짓말 아…… 아니에요. 미주 누나한테는 그냥, 장난은 좀 쳤는데, 아, 아파요. 아저씨 왜 자꾸 머리 때려요, 진짜.
……알아요. 아니요. 집에 가고 싶어요. 네, 솔직히…… 솔직하게 말만 하면…… 아 씨, 진짜 미치겠네. 솔직히, 형들이랑 같이 장난친 적은 있어요. 딱 한 번요.
미주 누나가요, 가슴이 진짜 크거든요. 거짓말 안 치고 이따만해요. 원래 뚱뚱하기도 하고. 가슴 한쪽이 누나 동생 머리통만해서 형들이 그걸로 자주 놀렸어요. 누나가 제일 좋아하는 게 담배예요. 형들 말로는 초등학생 때부터 피웠대요. 형들이 운동장 한 바퀴 뛸 때마다 담배 한 개비씩 준다고 말하면 그 누나, 졸라 열심히 뛰어요. 온몸이 다 출렁거려서 그렇지 되게 빨리 뛰는데, 저번엔 일곱 바퀴도 뛴 적 있어요. 가슴이 막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니까 그거 구경한다고 형들이 계속 뛰게 시키는 거예요. 저도 옆에 있었는데, 같이 놀리고 막, 그랬어요. 이제 진짜 안 그럴게요. ……그것만인데. 속인 거 없어요. 아 진짜 왜 자꾸 때려요. 아 왜, 아프, 아 진짜, 씨, 개기는 게 아니라 아픈데 그럼 어떡해요. 우리 하, 할머니 불러줘요. 왜 없어요, 밖에서 우리 할머니 목소리 들렸는데. 그럼 전화 걸어줘요. 집에 보내주든가! 졸려 뒈지겠는데 잠도 못 자게 하고 할머니도 못 보게 하고 계속 여기 가둬놓고 씨발, 수갑도 풀어줘요. 풀어준대놓고 왜 의자에다 묶어놔요. 이제 손가락에 감각도 없는데, 내가 살인범도 아니고, 계속 이상한 것만 물어보고, 물도 안 주고 때리고 씨발, 또 때리고 또 또 때리고 씨발……
2010-08-18 02:37:58
……박성재요. 수원중학교 1학년 7반 13번, 친한 친구는 김기열…… 고승호, 주교창요. 기열이는 졸라 착한 새끼고요, 아니, 아주, 착한 친구예요. 교창이는 어려요. 아저씨 이거 또 말해야 돼요? 벌써 세번짼데 진짜…… 졸려요, 눈도 따갑고…… 미치겠네, 무슨 얘기를 자꾸 하라고, 아 씹, 아프다니까 자꾸, 아아, 아프다고요.
2010-08-18 04:11:37
……박성재입니다. 수원중학교 1학년 7반 13번…… 미주 누나, 알아요. 집도 알아요. 찾아가본 적은 없지만, 아, 아니, 가본 적 있을지도 몰라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부르러 간 적 있어요. 네? 왜 불렀느냐면…… 운동장 뛰라고? 운동장 뛰라고 불렀어요. 가슴 보려고요.
2010-08-18 05:03:22
가슴, 만진 적 있어요. 미주 누나 가슴요.
김사장 아저씨가, 그 아저씨는 저기, 부동산 하는 아저씬데 동네에서 제일 부자라서 김사장이라고 불러요. 나는, 아니, 저는 사실, 봤거든요, 김사장 아저씨가 미주 누나 가슴 만지는 거. 부동산에 불러다 놓고 담배 주면서 막 이렇게 만졌어요. 그러고 나서는 누나가, 형들한테 담배 한 개 주면 한 번 만지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형들은 무시하고 갔는데 저는 봤으니까…… 김사장 아저씨가 진짜로 누나 만지는 걸 봤으니까…… 누나한테 담배 있다고 거짓말했어요. 누나 잘 속거든요. 일단 만지고 도망갔는데 누나가 진짜 빨라서, 잡히자마자 머리 엄청 맞고 종아리 까이고. 누나가 너는 김사장 아저씨랑 똑같은 놈이라고, 고물상 할아버지랑 박 뭔가, 뭐 그런 사람들 줄줄이 대면서 그 사람들이랑 똑같다고 욕했어요.
……진짜 그게 다예요. 이젠 진짜 다 말했어요. 미주 누나 가슴 만진 거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집에 좀 보내주세요, 네?
왜요? 저 왜 집에 못 가요? 감옥요? 저 감옥 가요? 그때 진짜 딱 한 번 그랬어요. 제대로 만지지도 않았는데, 그냥 이쯤에서 물컹하고, 아니 그게 아니라,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뭐든 솔직하게 말하면 집에 보내준다고. 그래서 말한 건데 이러는 게 어딨어요. 성폭행……? 많이 들어는 봤는데 뭔 뜻인지 잘 몰라요. 근데 그거, 되게 나쁜 짓인 건 아는데. 막 무기징역 받고 사형당하고 그런 거잖아요. 전자발찌 차고 평생 살아야 된다 그러던데…… 진짜요? 제가 한 게 성폭행이에요? 누나 가슴 만진 게요? 저 진짜, 진짜 잠깐, 아니 막 엄청 그런 것도 아니고 장난이었는데…… 아, 어떻게…… 그럼 전 어떻게 해요, 감옥 가서 평생…… 할머니가 그런 놈들은 인간쓰레기라고 그랬는데…… 전 몰랐어요. 진짜 몰랐어요. 궁금해서, 할머니 가슴이랑 뭐가 다른지 궁금해서, 커다랗고 푹신푹신해 보이니까 기분좋을 것 같아서 그랬던 거뿐이에요. 형들도 가끔 그러니까 해도 되는 건 줄 알았어요. 잘못했어요, 절대 다신, 다신 안 그럴게요.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아저씨, 아니, 형사님, 제발요.
장애인이라서…… 만만하고 우스워서 그랬다고요……?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형들이 막 미주 누나 바보라고 하지만 누나 웃기고 말도 되게 잘하는데, 담배 좋아하고 그냥 그런 건데, 그런 게 장애인은 아니잖아요. 장애인은 저기 뭐지 그게, 다리 없어서 못 걷고 소리 못 듣고 그러는 게 장애인이잖아요. 승호네 아줌마처럼 휠체어 타고 다니면 장애인인 거 알겠는데 누나 같은 사람이 왜 장애인이에요? 누나는 그냥, 좀 모자라긴 한데 그게 막 병신 같은 건 아니고 장난치면 되게 재밌는 정돈데. 반응이 재밌으니까 그런 거지 장애인이라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로요. 누나가 장애인인 줄도 몰랐는데…… 성폭행이 그런 건지도 몰랐고 저는, 아니, 발뺌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전 어떻게 해요?
……형사님 말 잘 들을게요. 대답도 잘할게요. 그럼 진짜 봐주실 거예요? 진짜, 진짜 집에 보내주실 거예요? 뭐든 시키는 대로 잘할게요. 잘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2010-08-18 05:31:48
7월 19일이면…… 무슨 요일이에요? 월요일……에는 학교에 있었을 거예요. 학교 끝나고 뭘 했느냐면, 음, 잘 기억 안 나는데 중요한 거예요? 아마 축구 했을 거예요. 비 안 오는 날엔 우리 아파트 사는 애들이랑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하다 오거든요. 학원 안 가는 애들이 우리밖에 없어서요. 경훈이 형요? 당연히 없었죠. 교창이도 없었어요. 걔는 초등학생이라 우리보다 더 일찍 끝나요. 그 시간이면 벌써 집에 가 있었을걸요. 누구누구 있었느냐면, 사실은 축구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했다면요.
네, 저는, 저는 7월 19일 학교가 끝난 뒤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습니다. 김기열, 고승호, 주교창을 포함해 모두 다섯 명이었고. 근데 이 부분 이상한데요, 그날 교창이 없었을 거예요. 걔 다니는 학교랑 우리 학교가 가깝긴 한데, 초딩이 우리 운동장에 들어와서 놀진 않아요. 잘 생각해봐도 없었어요. 진짜, 진짜 잘 생각해봤다니까요. 교창인 없었어요. 경훈이 형도 당연히 없었죠. 네? 아, 그렇긴 한데…… 그건 아닌데…… 우리 동넨 축구 할 데 없거든요. 주차장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널려 있어서 못하고요. 아파트 앞은 다 내리막길이라 공 못 차요. 다른 데서 축구 해본 적도 없어요. 아, 예전에 세차장 밀고 빌라 지을 때, 싹 밀린 공터에서 몇 번 차본 적은 있어요. 아뇨, 작년인데요. 거기 지금은 빌라 다 지었어요. 사람도 살고요. 7월이면 벌써 공사 끝났을 땐데 상관없어요? 그럼, 네, 뭐. 저는 7월 19일 학교가 끝난 뒤 동네 공터에서 축구를 했습니다. 김기열, 고승호, 주교창…… 잘 생각해보니까 교창이도 있었던 것 같아요. 모두 다섯 명이서 축구를 했어요. 그때 기열이가 장난으로 미주 누나 가슴 만져본 사람 손들어, 그랬고요. 가슴이 아니에요? 엉덩이? 그런 적 없는데. 섹스요? 몰라요, 아 씨, 쪽팔려. 그런 거 말해본 적도 없어요. 기열이가 얼마나 내성적인데요. 승호요? 걔가 좀 얍삽하긴 해도 그런 말 막 하는 애 아니에요. 굳이 따지자면 기열이보단 승호가 더 어울리긴 하지만요. 음…… 본 적은 있어요. 성인잡지요. 다른 반 애가 가져온 건데 승호가 빌려와서…… 네, 승호가요. 그건 그냥 가져온 애랑 승호가 친구라…… 승호는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우리 중에서 여자애들 제일 많이 만나본 것도 승호고요. 네, 승호가 그랬어요. 그런데요 형사님, 이렇게만 말하면 집에 보내주는 거 맞죠? 아무 일도 없는 거 맞는 거죠? 약속하셨잖아요. 저 말고 다른 애들도 아무 일 없는 거 확실하죠? 그래도 기열이나 승호한테 얘기하심 안 돼요.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절대로요. 네, 그럼 말할게요. 7월 19일 공터에서 축구 하는 중에 고승호가 미주 누나랑 섹스해본 사람 손들어, 라고 말했어요. 네? 해볼? 할? 알았어요. 고승호가, 미주 누나랑 섹스할 사람 손들어, 라고 말했습니다.
승호가 담배를 샀고, 승호가 자기 용돈으로 담배를 샀고, 승호가 자기 용돈으로 담배 두 갑을 사고는 미주 누나네 집으로 가자고 했어요. 301동 이층, 엘리베이터 내려서 왼쪽으로 두번째 집요. 미주 누나한테 담배 갖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말했더니 누나가 나왔어요. 우리 다섯 명은 303동 옥상으로…… 그런데 303동 옥상에 올라가본 적이 없는데요. 아파트 옥상 전부 다 잠겨 있어요. 몇 년 전까진 열려 있었다는데, 형들이 옥상에서 술 마시고 소주병을 던졌대요. 그다음부터는 맨날 잠겨 있어서 아무도 못 들어가요. 자물쇠도 완전 주먹만큼 크고요. 네? 열었다고요? 누가요? 형들이…… 빈집털이도 했으니까 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 형들이, 네, 형들이 열어놨어요. 형들이 자물쇠를 열어놓은 걸 알고 303동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CCTV…… 그게 어쨌는데요? 우리가 안 찍혔…… 아저, 아니, 형사님, 거기 안 찍혔다는 건 안 갔다는 거잖아요? 안 갔으니까 엘리베이터 CCTV에 우리가 안 찍힌 거잖아요. 그럼 괜찮은 거 아니에요? 아, 아뇨, 할게요, 말해요, 그러니까 뭐라고…… 네. 우리는 CCTV에 찍히지 않기 위해 일부러 계단을 통해 303동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미주 누나는 중간쯤에, 아니, 맨 뒤에서 따라왔어요. 승호가 앞장서고 기열이가 그 뒤에. 다른 애들은 그냥 말 안 하고 쫓아왔어요. 옥상으로 올라간 뒤엔 제가 담요를, 담요? 무슨 담요요? 그냥 바닥에서 하면 무릎이 아프다니, 뭘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아, 아파요, 자꾸 같은 데 때리지 마요. 담요, 담요 있었어요. 본 것 같아요. 어디서 났느냐면…… 모르겠는데…… 누가 가져왔나. 주워왔나봐요. 아, 교창이. 평소에 자잘한 심부름은 교창이가 해요. 제일 어리잖아요. 그럼 담요도, 네, 주교창이 일층에 널려 있는 빨래 중에서 담요를 훔쳐왔습니다. 제가 그 담요를 받아서 옥상 바닥에 깔았습니다. 그리고 미주 누나를 눕히고, 그 위에.
……저기요, 형사님. 이건 진짜 이상하잖아요. 저는 애들이랑 축구 한 적도 없고, 아니, 축구 한 적은 있지만 7월 19일인지는 모르겠고. 더군다나 그땐 동네에 공터도 없었는데요. 아니, 축구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게 아니라요. 축구 한 적은 있는데, 네, 학교 끝나고는 거의 축구를 했죠. 달리 할 것도 없고. 그럼 그날도 축구를 했을…… 그럼 축구는 그렇다고 쳐도요. 승호가 그런 말을…… 아뇨, 한 번도 안 해본 게 아니라요. 네, 저기, 가끔 그런 얘기를 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막, 미주 누나랑 그럴 거냐고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는데. 승호랑 저기, 네, 얘기해본 적은 있어요. 여자애들 얘기, 야한 얘기 한 적은 있는데…… 그렇죠. 네, 그럼 얘기해놓고 제가 기억 못했을 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승호가…… 아뇨, 제가 그런 적은 없어요. 진짜 없어요. 만약 말했다면…… 저나 기열이는 아니니까, 승호가 그랬을 거 같아요. 승호가 말했어요.
근데 옥상에서 미주 누나를 그랬……다는 건요, 그건 진짜 아닌데요. 형들요? 형들이 뭘 하고 다니는지는 저야 모르죠. 경훈이 형…… 그 형은 진짜 나쁜 새끼예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별 이유도 없이 형한테 맞았어요. 애들도 진짜 많이 맞았고요. 제 등에 북두칠성 찍힌 것도 그 형 때문이고. 교창이는 아직도 앞니 하나가 없고요, 기열이도 전에 싸대기 맞아서 고막 터질 뻔한 적 있어요. 네, 전과도 있고. 그렇죠, 나쁜 놈은 계속 나쁜 짓을…… 빈집도 털고 오토바이도 훔치고 애들도 패고 그랬으니까…… 미주 누나한테 나쁜 짓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승호요? 걔는 잘 안 맞았어요. 왜냐하면 걔는 우리 중에 돈도 있었고, 걔네 아빠 성격이 완전 불같아서 경훈이 형이 건드렸음 가만 안 있었을걸요. 네? 친했……던 건 아닌데. 승호랑 경훈이 형이 친했던 건 아닌데요. 걔도 가끔 맞았고. 바지요? 아뇨, 승호는 바지 벗긴 적 없어요. 아, 그런가. 그럼 둘이 친했나봐요. 네. 나쁜 놈은 벌을 받아야죠. 저도 경훈이 형이 나쁜 짓 한 거 다 벌받았음 좋겠어요. 동네에 다시는 안 왔으면 좋겠어요. 그 형도 맛 좀 봐야 돼요. 우리가 형 때문에 얼마나 죽을 맛이었는데 이제 와서 맘잡겠다고 토끼고, 씨발. 그러니까 승호가 미주 누나를 그렇……게 한 건 경훈이 형이 시켜서…… 그럼 승호는 괜찮은 거죠? 경훈이 형이랑, 형들만 감옥 가는 거죠? 네, 다 외웠어요. 그러니까 7월 19일에 승호가, 경훈이 형이 시킨 것 때문에 승호가, 미주 누나랑 애들 데리고 303동 옥상으로 올라갔어요. 담요는 교창이가 훔쳐왔고, 담배는, 승호가 샀어요.
우리가 미주 누나를 잡고 있으니까, 옥상 환풍기 뒤에 숨어 있던 경훈이 형이 나왔어요. 경훈이 형이 미주 누나 바질 벗기…… 아, 진짜 이건 아닌데. 전에 바지 벗겼던 건 그냥, 동네 애들 때릴 때, 우리가 심부름 늦게 했을 때랑 집합시간 어겼을 땐데. 여자 바지 벗긴 적은 없거든요. 바질 한 번도 벗긴 적 없단 소리가 아니라요, 다른 애들은 벗긴 적 있는데, 네, 경훈이 형이요. 경훈이 형이 바지를 벗겼죠. 정해놓은 건 아니고요. 그때그때 눈에 띄는 애, 형한테 걸리면 아무나…… 그럼, 여자애가 걸릴 때도 있었……을까요? 헷갈려 죽겠어요. 네, 형사님이 말하는 대로만, 하라는 대로만 잘 외우면 백 점. 집에 갈 수 있어요. 제가 기억을 잘 떠올려서 말만 잘하면. ……그럼 벗겼나? 아니, 벗긴 걸 봤다는 소리가 아니라요. 우리 바지 벗긴 적이 있으니까 누나 바지를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건데…… 진짜요? 미주 누나가 그랬어요? 우와 씨발, 졸라 황당하네. 진짜 미주 누나를…… 우와, 미주 누나가 그렇게 말했다면서요. 그럼 맞나봐요. 그런 것 같아요. 경훈이 형이, 그런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경훈이 형이, 미주 누나 바지 벗긴 것 같아요. 네, 벗겼어요. 제가 봤어요.
경훈이 형이 미주 누나를 성폭행, 했습니다. 다른 애들요? 다른 애들은 뭐 그냥…… 팔이나 다리를 잡고 있었어요. 저는, 저는 옆에서, 망을 봤습니다. 솔직히, 저기, 미주 누나 가슴도 만졌어요. 형 다음에는 고승호와 김기열이 미주 누나를 성폭…… 형사님, 걔넨 안 했어요. 경훈이 형이 다 시킨 거잖아요. 근데 걔네가 왜 그래요? 아니, 그건 아닌데, 도둑질…… 해본 적 있어요. 문방구에서요. 애들이랑 축구 끝나고 문방구에 갔는데 주인아저씨가 완전 바쁜 거예요. 단체 준비물이 있었는지 애들이 뭘 주문하면 아저씨 혼자 문방구 안쪽에 딸린 쪽방에서 그걸 꺼내왔어요. 아저씨가 바쁠 때 볼펜을, 몇 개 훔쳤어요. 하이테크는 볼펜 하나에 삼천원씩 하거든요. 그거 훔쳐다 애들한테 천원에 팔았어요. 그게, 다른 애들이 다 하니까 저도 한번 해본 건데. 진짜 반성하고 있어요. 다시는 안 할 거예요. 네, 그때 하이테크를 훔친 건 다른 애들이 다 해서였어요. 다른 애들이 도둑질을 하니까 저도 덩달아. 제가 도둑놈에 진짜 나쁜 새끼여서가 아니라 다들 하니까 호기심에요. 네, 형사님 말대로요. 네, 그럼 다시, 303동으로 가서요. 경훈이 형이 미주 누나를 그랬어요. 다른 애들이 그걸 봤죠. 형이 하니까 다른 애들도 덩달아…… 네, 그렇다고 걔네가 진짜 나쁜 새끼라는 게 아니라, 하이테크 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