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정은길
전 tbs 교통방송 아나운서로 <노래하는 FM>, <음악이 있는 풍경>, <주말이 좋다>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현재 자신감 있는 말하기 수업 ‘첫눈 스피치’ 대표. 기업, 기관 등에서 새로운 꿈을 찾는 이들에게 돈·여행·스피치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으며, 네이버 오디오클립 〈정은길의 돈말글〉 채널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또한 코스모폴리탄 웹 블로그 칼럼니스트, 네이버포스트 짠테크 분야 스타 에디터, 다음 카카오스토리의 여행 분야 스토리텔러 등으로 활동하며 꾸준히 글을 썼다. 지은 책으로는 『여자의 습관』 『나는 더 이상 여행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돈만 모으는 여자는 위험하다』 『3배속 재테크를 위한 부부의 습관』 『나 혼자 벌어서 산다』 등이 있다.
중학생일 때 이미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경제적 독립을 해야만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믿었다. 아나운서가 되어 본격적으로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서 악착같이 아끼고 모아 재테크에 성공했지만 ‘돈 좀 모아본 여자’로 자신감 넘치던 싱글녀 생활은 결혼과 함께 멀어졌다. 남편과 함께 아파트 대출금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행복’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리고 더 이상 돈에 저당 잡히지 않는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기 위해 최소한의 여행 자금과 이후의 정착금을 모은 후 당당히 퇴사, 남편과 함께 35개국을 일 년 동안 여행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애쓰던 삶에서 벗어나니 행복이 생각보다 가까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았다. 여행 후 3년 동안 주말농장을 일구며 계절의 변화를 총 열두 번 겪는 동안 행복의 온도가 사계절의 기운을 전부 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누군가와 억지로 비교해서 얻어낸 행복이 아닌 자연스럽게 내 삶에 스며드는 행복을 말이다. 이 책을 통해 행복한 척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주변에 휘둘리기보다 이제는 나에게 더 잘해줄 때라고 꼭 이야기하고 싶다.
나에게
더 잘해주고 싶다
“오늘 딱 나가보니까, 내가 제일 괜찮더라, 이거야. 이 정도면 내 인생 성공했다! 고생했다! 그동안 잘 살았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 김지영 씨의 아빠가 기분 좋게 술에 취해 가족들 앞에서 큰 소리로 외친 말이다. 오래전 함께 일했던 동료를 만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덕분이었다. 동료들 중에는 사업으로 퇴직금을 몽땅 날린 사람도 있었고, 여전히 공무원 생활을 하며 고만고만한 월급을 받는 친구, 퇴직 후 개인 사업을 겨우겨우 이어가는 이도 있었다. 김지영 씨의 아빠가 사정이 제일 나았다. 그는 서울에 40평대 아파트를 대출 없이 가지고 있었고, 임대료 한 푼 내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상가에서 죽 장사를 하고 있었으며(그것도 병원 근처에서), 큰딸은 교사에 둘째 딸은 서울 소재 대학생, 든든한 아들까지 있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마음이 적잖이 불편해졌다. 나의 행복과 성공을 어째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김지영 씨의 아빠가 자신보다 더 잘 먹고 잘사는 친구를 만났다면 그는 과연 그날 밤 가족들 앞에서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목청을 높일 수 있었을까?
어느 날 SNS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행복을 나눴더니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더라.”
이보다 더 사람 심리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글이 있을까.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칠 정도였다. 물론 좋은 일에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안 좋은 일에 함께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다만 그런 사람이 정말 드물다는 것과 가족 정도로 한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크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친구가 이룬 성취에 질투가 나거나 자극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의 불행을 보고 안도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타인의 상황과 나를 비교하며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한 적 역시 있지 않은가.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댓글들도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성공한 사람 이야기에는 그 성공을 깎아내리거나 흠집을 내는 말이, 실패한 사람 이야기에는 막연한 위로의 말이 정말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행복과 불행을 느낄 수 있는 걸까? 내 안에서 진정으로 비롯되는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는 없을까?
모두가 하나의 목표 지점을 바라보며 살던 시대는 지났다. 예전과 다른 형태의 가족이 많이 생겨났고 돈을 버는 방식 또한 다양해졌다. 그렇다면 내가 좀 행복해지는 데에도 용기를 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것도 쉽지 않다’ ‘저것도 힘들 거다’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아니, 내가 좀 행복해지겠다는데!”
내가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것들이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고 해서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내 인생이니 나만 만족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말하는 보통의 흐름에서 벗어나보기로 했다. 나는 보다 과감해지기로 했다.
서른한 살에 결혼을 하고 서른네 살에는 남편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었다. 남편은 회사원이 아닌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남들이 허황된 꿈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낼 때 유일하게 그의 선택을 지지해준 사람은 나였다.
“해! 나쁜 일도 아닌데 왜 안 돼?”
나는 아나운서로서 몸담았던 방송국을 그만두고 아나운서뿐만 아니라 작가나 강연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어보기로 했다. 원하는 삶의 방향성이 정해진 뒤에는 구체적인 대책 없이 남편과 함께 1년 동안 세계 여행을 다녀왔다.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이미 과감하게 살기로 결정한 내게 그다지 의미 있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선배와 상사의 눈치를 살피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애쓰던 삶에서 벗어나니 행복이 생각보다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직장인이 아니기에 승진을 한 누군가와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고, 매달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기에 연봉이 높은 누군가와 급여를 논할 수 없었다. 나의 생활 자체가 세상이 정해놓은 보통의 기준에 있지 않아서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자 멀게만 느껴졌던 행복이 서서히 실감이 났다.
그리고 또 하나, 행복에도 나름의 온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세계 여행에서 돌아와 3년 동안 주말농장을 일구며 계절의 변화를 총 열두 번 겪는 동안 행복의 온도가 사계절의 색을 전부 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의 시간과 ‘자연’스러운 행복의 온도는 아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섯 평짜리 주말농장에서 얻은 나름의 깨달음이었달까. 행복은 오로지 하하호호 웃는 즐거운 순간만을 뜻하지 않는다. 행복의 다채로운 색을 알아야 내 삶 속에 얼마나 많은 행복이 스며들어 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이 이제껏 ‘비교’의 방법을 통해서만 자신의 행복을 증명하고 발견해왔다면 이제는 사계절을 떠올리며 행복의 온도, 행복의 색깔을 스스로 찾아봤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비교의 대상이 되길 거부하는 것도 괜찮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행복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상관없이 그저 내가 직접 정하면 그만이다.
이 모든 변화는 바로 ‘내가 나에게 더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내 마음을 늘 뒤로 미뤄둔다면 행복은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 기분을 가장 먼저 다독여줄 수 있는 사람도 바로 나다. 행복을 내 곁에 가까이 두고 싶다면 내가 나를 아끼는 마음부터 갖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선택에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이 말을 주문처럼 외워보자.
“나에게 더 잘해줘야지!”
그리고 이 책을 찬찬히 훑어보자. 사계절의 온도가 마법처럼 내게 행복의 순간들을 보여줄 것이다. 주변의 애정 없는 참견과 비교급 행복에 지쳐 있다면, 이제는 나를 먼저 챙기는 방법을 꼭 발견하길 바란다.
봄날의 밭은 척박하기만 하다. 땅을 생명력이 넘치는 분위기로 반전시키려면 비료가 필요하다. 다섯 평 정도의 땅이라면 두세 개의 비료 부대를 쓰는데, 땅 위에 골고루 뿌린 뒤 농기구를 사용해 열심히 섞어준다(이튿날 몸살은 각오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수확하고 싶은 작물의 씨를 심는다. 과연 싹을 틔울지 이대로 죽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정성껏 물을 주는 것뿐이다.
행복의 시작도 척박한 밭을 일구는 것부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숙하고 어수룩한 시기를 거치지 않던가. 어서 오라는 환영은커녕 괜찮다고 보듬어주는 사람조차 없다. 여기저기서 받는 구박은 기본이고, 넘어지고 깨지며 생긴 상처를 온전히 혼자 보듬어야 한다는 세상의 진리를 가슴 시리게 깨우치게 된다. 그야말로 ‘미운 오리 새끼’가 따로 없다. 누군가는 하도 많이 까여서 자기가 양파인 줄 알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 인생에는 서툴다 못해 바보 같은 행동을 일삼는 자신이 있다. 특히 새로운 일을 처음 하게 될 때가 주로 그렇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보면 미숙하지만 이때만큼 아름다운 시절이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마음만큼은 정말 순수하며 희고 깨끗하다. 처음이라 서툰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나만 바보 같다는 생각을 가볍게 버려도 좋다.
미숙하고 서툰 모습도 ‘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의 경험만 내 과거에서 쓱 지워낼 수 없다. 그러한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위한 선택은 하나다. 약간은 부족하고 모자란 모습의 나 자신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나를 예쁘게 봐줄 수 있다면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은 어느 정도 사라진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덕분이다.
실패나 실수 없는 삶은 없다. 인생을 일부러 망치려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다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과정을 겪어낸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이지 않을까.
숫자를 뺀
나와 마주하기
대학교 졸업을 앞뒀던 오래전, 전공 교수님 한 분과 학생들 몇 명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 가게 됐다. 그곳에 있던 학생들 중 진로가 확실히 정해진 사람은 없었다. 유학을 갈까, 어떤 분야에 취업을 하면 좋을까, 어학연수는 어떨까 다들 고민이 많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그 자리에서 제일 어른인 교수님께 여러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들 중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교수님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글쎄.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네? 왜요?”
“그때 나는 너무 치열하게 살아서 고통스러운 기억만 남아 있거든. 죽을 만큼 공부를 해도 뭐 하나 확실하게 정해지는 게 없어서인지 너무 불안하더라고. 나는 불안했던 20대보다 많은 것들이 안정된 지금이 더 좋아.”
그때는 그저 교수님이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사셨구나 했다. 그런데 내가 같은 질문을 받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나 역시 많은 것들을 몰랐던 어릴 때보다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된 지금이 더 나은 것 같다(외모의 노화는 빼고). 이제는 교수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본다.
“이제야 내 인생의 ‘콘텐츠(contents)’가 차곡차곡 쌓인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은 명확한 답이 떨어지는 대화를 좋아한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결혼했다면 어느 동네에 사는지, 아이가 몇 명인지 등 질문 대부분이 그렇다. 이러한 질문의 핵심은 바로 ‘숫자’다. 나이는 당연히 숫자로 답을 할 수밖에 없고, 학교의 이름은 성적의 증명이기도 하니 이 역시 숫자를 내포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것도 마찬가지다. 직업에 따라, 혹은 다니는 회사에 따라 수입을 가늠할 수 있다. 어느 동네에 사는지는 부동산 시세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이러다 남편의 연봉은 물론 아이의 성적까지 대화의 주제가 될 판이다.
나는 평범한 대화를 가장한 채 서로를 숫자로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을 나누는 게 참 싫다. 사람의 삶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떨 때 행복해하는지, 어떤 친구를 사귀고 무슨 취미가 있는지 등이 바로 이야기의 콘텐츠에 해당된다. 교수님이 ‘지금이 더 좋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건 비로소 삶의 이야기인 자신만의 콘텐츠를 찾은 덕분일 것이다. 자신이 공부한 분야를 살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앞으로의 삶이 어느 정도 그려지는 콘텐츠 말이다.
나 역시 명확한 숫자에 답하려고 애를 쓰던 시절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는 지금이 훨씬 더 즐겁다.
나는 이제 무슨 일이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걸 말한다. 그것도 스스럼없이. 그러자 숫자를 원하는 질문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기분을 쉽게 느끼지 않게 됐다.
남자 친구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살을 빼고,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좋은 성적을 받고, 친구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기 위해 돈을 잘 벌고 싶어 하는 숫자 놀음으로는 결코 내 행복을 말할 수 없다.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삶에 행복은 없다. 그런 노력을 그만두고 갈등을 겪더라도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내 삶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마치 무엇을 심을지 고민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말이다.
따사로운 봄볕은 콧노래를 부르며 씨를 뿌리는 농부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내 땅의 특성이나 모양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남들이 심는 작물을 따라 심는 일은 그만두어도 좋다. 내 땅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척박한 밭에 비료를 섞는 봄 농사의 시작과 같다. 그 과정에서 내 인생 속 숫자를 모조리 빼버려도 행복할 수 있다.
실수와 실패를
혼동하지 말자
학창 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난 후 친구들끼리 답을 맞추다 보면 우는 아이가 꼭 있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이 무너진 듯 우는 친구의 슬픔까지 공감할 수는 없었다.
시험 문제를 틀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실수를 인생의 실패로까지 여겨왔다. 이건 엄청난 비약이자 비극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교육을 받은 탓도 있다. 학교는 우리에게 한 문제만 틀려도 성적의 등급이 바뀌고 그 결과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 달라지며 들어갈 수 있는 회사, 더 나아가 미래에 만날 배우자까지 결정된다고 겁을 주었다. 시험에서 있을 수 있는 실수를 엄청난 실패로 포장해버리는 어른들이 정말 많았다.
그러나 실상은 어떻던가. 정말로 시험에서 몇 문제 더 틀렸다고 인생의 쓰라린 실패가 계속 이어지진 않는다. 나는 재수를 했음에도 끄떡없었다. 누군가는 1년이라는 시간이 엄청 뒤처지는 것이라 말하기도 했지만, 수능을 두 번 봤다는 사실은 실제로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적성에 안 맞는 식품영양학과를 중간에 그만두고 다시 수능을 본 후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한 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식품영양학과는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이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서 고른 전공이었다. 컴퓨터를 잘 다루면 좋을 것 같아서 대학 입학 후 컴퓨터 동아리에도 들어갔다. 하지만 전공 공부와 동아리 활동에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둘 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1학년 1학기를 보내는 동안 나는 지난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점점 더 확실히 깨달았다. 고등학교 때 방송반 아나운서 활동을 했던 나는 대학교 방송국 생활이 궁금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진짜 방송국 생활도 궁금했다. 나는 1학년 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수능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 신입생으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큰 좌절 없이 진로를 변경할 수 있었던 건 실패가 아닌 실수라고 생각했던 덕분이었다. 재수를 실패로 받아들였다면 나는 원하지 않는 공부를 4년 내내 하고, 관심도 없는 직업을 지금까지 유지했을지 모른다. 입시의 실패를 여전히 쓰라리게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나는 인생이 그 정도 실패로 쓰러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길다. 이 말은 내가 저지르는 실수가 딱 한 번만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나의 또 다른 실수는 직업 선택이었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지만,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간직했던 아나운서라는 꿈에 곧바로 도전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도전할 용기가 없는 이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묻지 마 취업을 시도했다.
그렇게 방송국이 아닌 작은 광고회사로 발길을 돌렸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될지 안 될지도 모를 경쟁 PT에 참여하는 일, 밤낮 없이 제안서를 뜯어고치는 일, 수시로 변하는 광고주의 요구를 확인하는 일 등은 나와 맞지 않았다. 나는 한 달 반 만에 퇴사를 하고 아나운서 학원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도 내가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패가 아닌 실수로 받아들이자 나의 지난 선택들이 큰 잘못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실수의 크기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내 적성을 생각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자 의욕이 샘솟았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스스로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몇 개월간 아나운서 시험에 도전한 끝에 어릴 적 꿈이었던 아나운서 명함을 손에 넣었다.
대학 입시를 두 번 겪어보고 직업도 바꿔본 나는 실수와 실패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실패는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단어였다.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고작 인생의 4분의 1을 살면서 실패를 했다면 얼마나 했단 말인가. 실패가 아닌 실수가 대부분이며, 실수는 바로잡으면 그만이다.
인생에서 실패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건은 많지 않다. 시험을 망친 것도 실수고,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것도 실수다. 연애만 해도 그렇다. 몇 번의 헤어짐 끝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다고 해서 과거의 연애가 실패만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엔 그 관계를 통해 더 성숙해진다.
먹고사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취업만 하면 인생의 모든 과제가 끝날 것 같지만 밥벌이를 하는 동안에도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된다. 과감하게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고 해서 예전의 경력이 실패가 되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험이란 없다.
다시 말해 내가 한 어떤 행동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잘못됐다 해도 그걸 실패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 일을 바로잡겠다는 의지와 꼭 해결해보겠다는 책임감만 있다면 우리 인생에 실패는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진 뒤로 삶에 찾아오는 수많은 선택들이 조금은 더 쉬워졌다. 일이 잘못되어도 실패가 아닌 실수라는 생각에 고민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씨를 잘못 뿌린 걸 알았으면 얼른 옮겨 심으면 된다. 인생을 굳이 심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