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1부 타이탄
2부 돛에 바람을 싣고
3부 사냥꾼의 장례식
에필로그
작가의 말
1
광남 씨는 손을 씻었다. 벌써 네 번째. 세 번째에 비하면 비누 거품을 덜 냈다. 두 번째보다는 손놀림이 가벼웠고. 첫 번째보다야 빨리 헹궜다. 그래 봤자 얼마 차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마디가 굵은 손가락 사이사이와 짧게 자른 손톱 밑 하나하나를 거쳐,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과 볕에 그을린 손등 구석구석을 지나, 뼈가 도드라진 손목에서 각질 없는 팔꿈치까지, 뽀드득거리도록 문대는데 십 분밖에 안 걸렸다.
세상에…… 물기를 닦으며 몸서리쳤다. 어디서 나타난 걸까. 수건 구김을 잡아 펴다가 변기 안으로 곁눈질을 던졌다. 헉 소리가 났다. 입때 성냥개비만 한 다리 두 개가 물 위에 동동 떠 있는 것이다. 주먹을 날리듯 변기 레버를 내리쳤다. 털투성이 다리들이 물살을 따라 맴돌다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변기 앞에 쪼그려 앉은 광남 씨는 여차하면 누를 기세로 손가락 두 개를 레버 위에 걸쳐놓았다.
물은 더디게 차올라 이내 잔잔해졌다. 통통하게 살 오른 다리 한 쌍은 떠오르지 않고 수면에는 전등 빛만 희끄무레했다. 눈을 몇 번 깜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중을 싣고 버티느라 발바닥과 종아리가 저렸다. 더러운 놈……. 변기 안을 노려보며 세면대 수도를 틀었다. 오른손은 찬물에 적시고 왼손은 더듬더듬 비누를 찾아 들었으니, 이제 물에 불어 쭈글쭈글한 손을 다섯 번째로 씻을 차례.
처음에는 귀뚜라미인 줄 알았다. 아침상을 치우고 돌아서는데 싱크대 구석에 시커먼 것이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귀뚜라미는 아닌 것 같았다. 풍뎅이인가. 풍뎅이 더듬이가 저렇게 길었나? 귀뚜라미인지 풍뎅이인지는 시동 걸듯 다리를 몇 번 꼼지락거리더니 조리대 위로 쏜살같이 달렸다. 그 엄청난 속도를 보고서야 알아차렸다. 저토록 빠르게 움직이는 다른 곤충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그놈이다. 오랫동안, 그러니까 여기 내려온 후론 본 적이 없어 설마 나타나리라 상상 못 했던 놈.
놈은 개수대 앞에서 멈춰 섰다. 더듬이 하나를 광남 씨 쪽으로, 다른 하나를 수챗구멍 쪽으로 바짝 뻗친 채. 음식 찌꺼기를 노리는 것이리라. 심장이 왼 가슴팍을 찼다. 놈은 눈치라도 챈 듯 더듬이를 까딱거렸다. 광남 씨는 발을 떼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눈으로만 좌우를 살폈다. 눈알 굴리는 소리가 놈에게까지 들릴 것 같아 얼굴이 후끈해지면서 모공에 땀이 찼다. 시야 끄트머리에 식탁 위 휴지 갑이 걸렸다. 몇 장 뽑지? 대여섯 장이면…….
재고 따지기 전에 손이 먼저 휴지 갑을 통째로 들어 올렸다. 그사이 놈은 개수대 벽으로 성큼 내려가 있었다. 광남 씨는 찬찬히 턱을 들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수챗구멍에서 놈까지는 한 뼘, 광남 씨에게서 놈까지는 한 발짝, 잡을 기회는 단 한 번. 콧잔등에 솟아난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려 화살촉 같은 코끝에서 대롱거리다 짧은 인중으로 내려앉더니 얄팍한 입술 굴곡을 넘어 갸름한 턱 밑에 닿았다.
슬그머니 발뒤꿈치를 들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간신히 매달려 있던 땀방울이 턱 끝에서 떨어지려는 찰나, 놈은 미끄러지듯 수챗구멍으로 내달렸고 광남 씨는 도약하듯 싱크대로 몸을 날렸다. 개수대 내려치는 소리가 광남 씨 몸무게만큼 부엌 안에 울려 퍼졌다. 잡았나? 구멍 안으로 들어가 버렸나?
휴지 갑을 들어 올리자 으깨진 명란젓 같은 게 묻어 나왔다. 고개를 돌려 숨을 참았다. 악취는 예상 못 했는데 놈에게선 장마철 하수구에서나 올라올 법한 구린내와 땀 찬 겨드랑에서나 풍길 법한 암내가 한꺼번에 났다. 치미는 구역질을 눌러 참으며 개수대를 내려다보았다. 한숨이 목젖을 쳤다. 놈은 반송장이었다. 수챗구멍 안으로 들어간 대가리는 살아서 꼼지락꼼지락, 개수대 바닥에 붙은 아랫도리는 뭉개져서 흐물흐물. 잡았다, 잡기는……. 근데 이걸 어떻게 처리하나.
플라스틱 수채통을 전부 들어냈다. 놈은 딸려 나오는 와중에 더듬이를 매가리없이 까딱거렸다. 질색한 광남 씨는 욕실까지 냅다 뛰었다. 변기에 와르르 쏟아붓는데 용기 가장자리에 붙은 놈이 떨어질 기미 없이 덜렁거리기만 했다. 변기 안 벽에 대고 탁탁 쳐봐도 소용없었다. 정말이지 내키지 않았지만, 휴지 한 뭉치를 뽑아 쥐고 삭삭 긁어 떼어내야 했다.
변기 물을 내리자마자 부엌으로 가 세제와 철 수세미를 꺼내 들었다. 회색 수채통은 허옇게 바래질 때까지 세척하고 스테인리스 개수대는 흠이 생기도록 닦고 또 닦았다. 휴지 갑도 빼놓지 않았다. 종이상자며 휴지 전부를 태우고 잿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심중 안녕과 평화가 먼저였다. 알이나 병균 같은 게 어딘가 들러붙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마무리로 소독약을 뿌리고 나서야 화장실로 돌아온 광남 씨는 세면대 앞에 서서 차분히 손을 씻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놈 한 마리 때문에 한 시간 넘게 난리를 친 다음이었다.
2
폭양 아래 누런 대지가 아지랑이를 피워 올렸다. 광남 씨는 수건을 목에 두르고 소쿠리를 머리에 뒤집어쓴 후 오두막을 나섰다. 집 모퉁이를 돌면 낮 볕을 가려줄 그늘막이 나온다. 언덕배기 밑, 엮은 나뭇가지들로 기둥을 세우고 이중 삼중 호박 넝쿨로 지붕을 만든 텃밭 머리는 거지반 밭일로 하루를 보내는 광남 씨에게 제법 훌륭한 쉼터다.
잰걸음으로 그늘막에 들어선 광남 씨는 소쿠리를 벗어놓고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입가를 실룩거렸다. 이십 평 남짓 무르익는 과일채소들 앞에 서면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어쩌면 자신이 타고난 농사꾼은 아닐까 싶어 절로 미소가 번지는 것이다. 불모지 같던 자갈밭을 몇 번이나 갈아엎고 가꾼 덕에 이제는 먹을 만큼 기르고 뿌린 만큼 거둘 수 있게 되었으니 왜 아니겠는가.
광남 씨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멀리 금수산을 바라보았다. 숲은 이달 들어 부쩍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피부에 와 닿는 기운도 지난달과는 확연히 달랐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공기엔 부드러운 냉기가 섞여 있었다. 콧구멍을 양껏 열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개울 쪽을 지나쳐 온 듯한 대기에서 파릇파릇한 이끼 내가 났다. 그러고 보니 근자의 어느 날엔 은행 향이 오두막까지 짙게 번졌었고 여문 과일 향도 입맛을 궁금케 했었다.
눈을 감았다. 산속을 가르는 바람이 소리 높여 귓가로 다가왔다. 몸에 스민 그 바람과 공기가 펄떡거리는 혈관을 따라 머릿속에 모여들자, 아침나절 놈이랑 한바탕 소란 피운 일 따윈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역시 이사 오길 잘했어.
“파티하기 좋은 날씨네요.”
뒤통수를 울리는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가을이죠, 이젠?”
언덕배기를 올려다보았다. 단풍보다 화려한 티셔츠를 입은 노상용이 커다란 검정 그랜드체로키 옆에 서 있었다. 희끗희끗한 고수머리가 햇살 아래 양철지붕같이 은빛을 냈다. 저 윤기 나는 단발머리는 그냥 기른 것처럼 보여도 사실 꽤 신경써서 기른 것이다. 서울 갈 때마다 관리해준다는 원장이란 남자를 언젠가 자기 집으로 초대한 노상용이 지금처럼 어정쩡한 위치에 서서는 광남 씨에게 인사시킨 적이 있다. 내로라하는 숍이니, 손가락 안에 꼽히는 헤어디자이너니 소개하면서 건네는 명함을 얼결에 받아든 광남 씨는 사십이 년 동안 집에서만 머리를 다듬는 관계로 두 번도 생각 않고 내다 버렸다.
“오늘 같은 날씨엔 클래식이 어울리겠는데요.”
갈색 눈을 반짝이며 노상용이 세 번째로 말을 걸었다. 그때까지도 딱히 대꾸할 말이 없던 광남 씨는 발부리에 두었던 소쿠리를 집어 들며 그냥저냥 대꾸했다.
“어디 가세요?”
“제천 시내에서 간단하게 브런치나 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 좀 사 오려고요.”
“아…… 예.”
광남 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노상용은 광남 씨를 보는지 금수산을 보는지 알 수 없는 시선을 어딘가에 두고는 역시나 알 수 없는 미소를 그곳 어딘가에 흘렸다.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가 여유롭게 생활하는 은발의 유명 건축가. 사람들은 노상용을 두고 그렇게 말했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탄탄한 몸매와 180센티미터를 훌쩍 넘는 키가 왠지 그런 근사한 표현들에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 불기 시작하니까 준비할 게 꽤 되네요.”
차 뒤에서 무언가를 싣고 있던 노상용의 아내가 트렁크 문을 닫으며 얼굴을 보였다. 서영실. 나이를 정확히 물어본 적은 없지만, 노상용과는 아마 일고여덟 살 차이가 나거나 어쩌면 띠동갑쯤 될지도 모른다. 좌우간 겉모습만 보면 서영실은 사십 대 초반으로밖에 안 보였다. 이 부부가 유일한 광남 씨 이웃이었다.
“아휴, 뭐 따시게요? 저녁때 우리 집엔 그냥 오셔도 되는데…….”
조수석에 오르려던 서영실이 광남 씨와 소쿠리를 번갈아 보더니 눈은 미소를 띠면서도 입은 삐죽였다.
“고 선생, 그럼 이따 봅시다.”
노상용은 급히 서영실을 조수석에 태우고는 슬쩍 손을 들어 보이더니 운전석에 올랐다. 광남 씨는 묵직한 시동 소리를 듣고서야 엉거주춤 손을 흔들었다. 흔들면서 서둘러 목에 두른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렸는데, 언덕배기를 덜거덕거리며 내려가는 SUV가 두 개짜리 머플러에서 회색 연기와 함께 기름 냄새를 뿜었기 때문이었다. 차, 그것도 거대한 디젤차라니. 저럴 거면 그냥 도시에서 살지 뭐 하러 여긴 온 걸까.
‘이웃끼리 저녁이나 하게요.’
멀어지는 오염 덩어리를 바라보다가 노상용 말이 생각났다. 광남 씨는 자신이 사는 오두막보다 몇 배나 큰 노상용 집을 돌아보았다. 유명 건축가 솜씨답게 한눈에도 뭔가 있어 보이는 저 집은 목재로 뼈대를 세운 후 벽돌 마감과 유리 장식을 덧댄 이 층 건물로 작년 봄부터 지난달 초까지 짓는 데만도 꼬박 일 년 반 가까이 걸렸다. 짓는 내내 소음과 공해는 말도 못 했다. 짓고 나서도 마찬가지였고.
한 달 가까이 온갖 사람이 찾아와 앞마당에서 통돼지며 생선을 굽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면서 웃고 떠들어댔다. ‘환경과 인간’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잡지사에서 취재도 나왔다. 광남 씨는 드나드는 사람들과 그들이 타고 온 각종 자동차를 찜찜한 표정으로 지켜보았고, 그 고급 차들에서 나오는 매연과 음식 타는 냄새를 불쾌한 표정으로 맡았으며, 소음에 가까운 음악과 왁자지껄한 수다를 밤새도록 눈 흘기며 들었다.
사람들 발길이 뜸해진 지난주 노상용은 늦은 감이 있네 없네, 바빴네 어쨌네, 너스레를 떨면서 광남 씨에게도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거절할 마땅한 구실이 없고 내심 그 근사한 집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호기심이 일던 터라 ‘예’ 했는데 그게 오늘인 모양이었다.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오래 혼자 살다 보니 날짜 가는 걸 자주 까먹는 광남 씨였다. 세어봐야 덧없는 걸 뭐…….
멀거니 이층집을 올려다보다가 소쿠리를 그늘막 아무데나 던져버리고는 수건 끝자락으로 먼지를 털어내며 텃밭에서 그냥 나왔다. 갑자기 피곤해진 데다 점심 짓기가 귀찮아진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휴’ 하는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뭐 따시게요?’ 하는 서영실 말이 어쩐지 ‘뭐’ 나부랭이 같은 건 텃밭에서 따오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던 까닭이었다.
‘사람이 왜 그래?’
터벅터벅, 읍내나 다녀올까 싶어 포치에 세워둔 자전거를 향해 걷는데 불쑥 아내 말이 떠올랐다. 떨어져 산 지 수년이 지나도 이따금 그놈의 잔소리는 굶주린 모기처럼 귓가로 달려든다. 쫓아내듯 손사래를 친 광남 씨는 자전거에 엉덩이를 걸치기 전 으레 그랬듯 핸들과 안장을 닦다가 오늘따라 차체 여기저기로 팔을 뻗어 자꾸만 걸레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세차나 한번……. 자전거를 끌고 텃밭 머리로 되돌아갔다.
뱀처럼 똬리 튼 고무호스를 수도에 연결했다. 긴 호스를 통과하는 물이 더디고 약하게 졸졸거리는 동안 비누 거품 잔뜩 낸 수세미를 들고 자전거 곳곳에 덮인 흙먼지를 벅벅 닦았다. 황색 포말로 도색했다 싶을 만큼 전체를 문댄 광남 씨는 호스 구멍을 엄지로 반쯤 막아 들어 올렸다. 어느새 단단해진 물줄기가 일렁이는 대기를 뚫고 직선으로 뻗어 나가자 시원하게 물세례를 받은 차체가 때 옷을 벗어내며 반짝였다. 낡고 오래된 자전거가 저토록 빛나 보이는 순간은 지금뿐이다. 광남 씨는 그 찰나를 위해 샴페인을 터뜨리듯 호스 끝을 상하좌우로 더 크고 세게 흔들었다.
‘깔끔 좀 그만 떨어.’
함께 살던 시절 아내는 청소라도 할라치면 매번 짜증스럽다는 얼굴로 소리를 빽 지르곤 했다. 지저분한 여자였다. 뭐든 흘리고 더럽히는……. 언제나 치우고 닦는 쪽은 광남 씨. 사실을 말하자면 좀 심하게 치우고 닦기는 했다.
집 안에 먼지 한 톨 있는 것을 참지 못해 아침저녁으로 대청소를 하고, 창문을 열어놓으면 미세먼지가 들어온다고 닫고 닫아놓으면 이내 공기가 텁텁하다면서 여는 짓을 잠자리에 들기까지 수십 번은 반복하고 그때마다 청소기를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으며, 한 번 하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샤워를 하루에 두세 번은 하는 데다 십 분 이상 걸리는 손 세정을 수시로 해댔다. 광남 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당연히 남들 사용한 변기에는 궁둥이를 댈 수 없어 큰 볼일은 반드시 집에서만 봐야 했으니, 결혼한 지 나흘째 되던 날인가 근무가 한창일 오전 열 시 반에 헐레벌떡 집으로 뛰쳐 들어와 옷을 홀딱 벗고 화장실로 직행해 똥을 싸고 샤워를 마친 후 다시 옷을 챙겨 입고 회사로 돌아가는 모습을 광남 씨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뭔 신기한 걸 구경한 사람처럼 입을 떡 벌렸던 아내는 그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온 광남 씨에게 회사에서 뭐라 안 하더냐고 물었다. 광남 씨가 한 직장에 삼 개월 이상 다닌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아내는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 후 한 달 동안 열두어 번 더, 근무하다 집에 와서 거사를 치르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던 광남 씨는 그 한 달이 지난 다음, 더는 화장실 문제로 허겁지겁할 필요 없이 집에서 느긋하니 변기에 궁둥이를 붙이고 여유롭게 샤워할 수 있었는데 그게 다 직장에서 뎅겅 잘려버린 덕택이었다. 그때쯤엔 아내도 이미 광남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어 남편이 아닌 남들 편을 들기에 이르렀다.
“사장님이 좋은 양반이네. 두 달씩이나 참아주고……. 깔끔 좀 그만 떨어. 사람이 왜 그래?”
아내와는 맞선을 통해 만났다. 광남 씨 나이 스물다섯. 키 162센티미터에 2년제 대학을 졸업한 광남 씨는 이십 대 중반에 이미 자산가 아닌 자산가가 되어 있었다. 오십 넘어 자식 하나를 겨우 얻은 부모가 아들과 살던 왕십리2동 20평대 아파트 한 채와 선산이 있는 제천의 손바닥만 한 밭뙈기, 그리고 당신들이 평생에 걸쳐 끼고 있던 금가락지 한 쌍을 남기고는 세상을 떴기 때문이었다.
사십구재가 끝난 어느 날, 목련이 하나둘 져가는 가로수길을 걷던 광남 씨는 왠지 컴컴한 집구석에 혼자 귀가하기 머쓱해 불현듯 가정을 꾸리겠단 일념으로 배짱도 좋게, 아니 뭣도 모르고 ‘한 커플’이라는 결혼정보회사에 두 달 치 월급을 털어 넣고 회원 가입을 했다. ‘한 커플’은 석 달 동안 여덟 번 만남을 주선했다. 만남은 하나같이 삼십 분을 넘기지 못했고 그 후 아무런 소식 없이 또 한 달이 지나갈 때쯤, 회사로 연락을 해볼까 어쩔까 하는 참에 담당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회원에서 탈퇴해달라는 것이었다. 광남 씨가 이유를 묻자 잠시 망설이던 매니저는 작정한 듯 입을 열었다.
“만나셨던 여자분들 중 세 분이 항의해 왔어요. 자기를 뭐로 보냐고요. 그중 두 분은 탈퇴했고 한 분은 소비자원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하셔서 회비를 몽땅 돌려드렸어요. 이런 말씀까진 좀 그렇지만 그 회비 제 돈으로 해드린 거예요.”
안 그래도 우는 상이던 매니저가 자기도 먹고살아야지 않겠냐며 사정하는 통에 광남 씨는 뭐라 항변할 수 없었고 단지, 그럼 자신이 낸 회비도 전부 돌려받을 수 있느냐고만 물었다. 매니저는 다시 우는소리를 했다. 결국, 광남 씨는 회비 중 삼 분의 일만 돌려받기로 하고 ‘한 커플’에서 쫓겨나다시피 했으니 그 환불받을 돈 역시 매니저 주머니에서 나올 거였다. 회원탈퇴를 하기로 한 날 매니저는 돈이 든 봉투를 손에 든 채 측은한 얼굴로 광남 씨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재혼 여성은 어떠신지…….”
광남 씨는 아무 말 않고 돈 봉투를 낚아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그날따라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갈아타야 할 마을버스나 저녁 찬거리를 살 마트가 아닌 금이 쩍쩍 간 콘크리트 건물 이 층에 붙은 핑크색 간판이었다. 홀린 듯 멍하니 글자를 오 분 정도 올려다본 광남 씨는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 때가 덕지덕지 묻은 벽에 몸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계단을 올라 사무실 앞에 서서는 문에 붙은 회사명을 다시 찬찬히 봤다. ‘원앙 결혼중개소’.
문을 열자 덩그러니 책상 앞에 앉아 손톱을 깎던 여자가 벌떡 일어나 호들갑스럽게 광남 씨를 맞이했다. 환갑쯤 돼 보이는 소장이라는 여자는 두껍고 짙은 화장 때문인지 유독 웃는 모습이 서커스 무대에 올라온 피에로처럼 보였는데 광남 씨는 그 피에로에게서 한 시간 가까이 ‘원앙 결혼중개소’의 전통과 역사, 제도와 실적 등에 대해 하품 나게 듣고서야 ‘한 커플’ 매니저에게서 받은 돈 봉투를 건넬 수 있었다.
피에로에게선 일주일 후에야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김미영’이라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고는 뭘 물어볼 틈도 없이 여자 칭찬만 반복해서 늘어놓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삼 분 남짓 통화에서 얻은 거라곤 ‘진국에 참하다, 생활력 강하고 추진력 좋다’라는 정보가 다였다. 축축하니 장맛비가 내리던 다음날 오후 북가좌동 삼거리커피숍 ‘숲속의 빈터’에서 김미영을 만났을 때 스물다섯 광남 씨가 건넨 첫마디는 이거였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김미영은 조금 놀라는 듯했다.
“소장님이 말씀 안 해줬어요?”
“안 한 거 같은데…….”
광남 씨 말에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던 김미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그렇지 않아도 아래 흰자위가 많은 눈을 치켜뜨며 중얼거리듯 답했다.
“서른…….”
광남 씨는 콧구멍 평수를 넓혔다.
“다섯이요.”
어렵사리 나이를 나눠 말한 김미영이 힘들었다는 듯 이마에 난 땀을 손등으로 꾹꾹 찍어 눌렀다. 광남 씨는 시선을 피해 허둥대다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커피 한 모금을 꿀꺽 삼켰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뜨거운 커피가 목구멍을 지지다시피 하고 내려가 위장을 천불나게 하는 바람에 토해내듯 기침을 하다 눈물까지 찔끔 났다.
“어머, 괜찮으세요?”
김미영은 부산스레 가방을 뒤져 손수건을 꺼내 광남 씨 앞으로 내밀었다. 휴지를 뽑으려던 광남 씨는 어째야 하나 망설이다가 말없이 두 손으로 손수건을 받아 눈가에 고인 눈물과 입가에 묻은 커피를 콕콕 찍어 닦았다. 장미 향수를 잔뜩 뿌린 것 같은 손수건엔 날씨가 습해서인지 살짝 쉰내가 섞여 있었다.
“그거요, 제가 만든 거예요.”
손수건에 시선을 두며 김미영이 수줍게 웃었다. 양쪽 입꼬리 밑으로 보조개가 쏙 파였다. 건빵에 난 구멍 같은 두 보조개가 희한하게도 밋밋하고 둥근 낯바닥에 비로소 생기와 입체감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특징 없는 과자에 앙증맞은 구멍 두 개를 뚫은 것도 어쩌면 저런 상술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던 광남 씨는 어쩐 일인지 그 순간 김미영 얼굴이 나이보다 열 살쯤은 어리게 보였다.
“저기…… 그 손수건 한번 펴보세요.”
보조개를 거둔 김미영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광남 씨는 서른다섯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시키는 대로 했다. 흰 면포 가장자리에 꽃 한 송이가 수놓여 있었다. 뭔 꽃인지는 모르겠으나 선이 삐죽삐죽한 걸 보아 말마따나 산 게 아니라 만든 건 맞아 보였다.
“가장 좋아하는 꽃이에요, 장미.”
김미영은 꽃 이름을 힘주어 말했고 광남 씨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손수건에 왜 장미 향수를 잔뜩 뿌렸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손재주가 상당하시네요. 잘 썼습니다.”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지껄인 광남 씨가 손수건을 가지런히 접어 김미영에게 건넸다.
“아니, 아니, 그냥 갖고 계세요.”
김미영은 양손을 흔들며 사양했다. 광남 씨는 굳이 갖고 있기도, 눈물과 커피 자국이 난 걸 억지로 주기도 뭣해 김미영과 자신의 커피잔 사이에 내려놓았다.
“대기업 과장님이시라고…….”
손수건 위치를 흘끔거리며 김미영이 물었다.
“예?”
광남 씨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으로 시선을 떨궜다. ‘과장’은 회사에서 주로 나이 어린 아르바이트생들이 광남 씨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외모만 보면 딱 과장이라고. 실상은 대형유통업체 창고관리자였고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이었다.
“과장은 아니고, 그냥 물류부서에서 일합니다.”
침묵이 흘렀다. 할 말이 사라진 광남 씨는 얼결에 뜨거운 커피잔을 들어 훌떡 비웠는데 나중에 집에 가서 보니 입천장 역시 훌떡 벗겨져 있었다. 그날 이후 피에로에게도 김미영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 전화를 한 건 김미영이었다.
“저기…… 생태공원에 같이 바람 쐬러 안 가실래요?”
광남 씨는 대꾸하지 않았다.
“제 손수건…… 아직 그쪽이 갖고 계시는데…….”
책상 위로 시선을 돌린 광남 씨는 납작하니 개켜진 손수건을 바라보았다. 어느 틈엔가 자신을 따라왔던 그 물건을 지난 주말 세탁기를 돌리려다 발견하고는 따로 손빨래하고 햇볕에 바짝 말려 다림질까지 해놓았다. 별 뜻은 없었다. 언제나처럼 다른 옷가지처럼 그저 하던 대로 했을 뿐.
“듣고 계세요? 광남 씨?”
다소 초조한 목소리가 휴대전화 안에서 광남 씨를 찾았다. 여전히 입을 다문 광남 씨는 아무리 봐도 장미와는 거리가 먼 듯한 꽃문양만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삐쭉삐쭉 수놓인 선들 위로 너부죽한 김미영 얼굴이 그려졌다. 건빵 구멍 같던 두 보조개도.
“전화가 끊어졌나, 여보세요?”
“예…….”
광남 씨는 김미영을 그렇게 다시 만났고 그해 가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금가락지를 각자 하나씩 나눠 끼었다.
“여보세요?”
아내였다.
“애 바꿔.”
읍내로 나와 공중전화 앞에 선 광남 씨는 동전 투입구에 백 원짜리 열 개를 차례로 쑤셔 넣으며 말했다.
“배식아, 전화 받아.”
장미 가시 같은 아내 목소리를 들으며 광남 씨는 타고 온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간만에 구석구석까지 닦아 광이 나는 저 중고자전거는 구형 쏘나타를 팔아 산 것인데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져온 거라곤 저게 다였다. 정리라고까지 할 건 없었지만 어쨌든 처분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팔아치웠다. 휴대전화까지. 덕분에 전화를 걸려면 이곳 매포 읍내까지 나와야 하는 수고가 따랐으나 요즘은 이런 촌에서도 공중전화 찾기가 힘들어 그마저 감사할 판이었다. 삼 년 전 읍내 곳곳을 한참이나 돌아다닌 끝에야 발견한 것이니 아마 이 지역에 달랑 하나 남은 공중전화일 터.
“아빠?”
수화기를 타고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광남 씨는 대답하려다 멈칫했다. 언제부터인가 전화를 할 때마다 아들 목소리는 매번 달라져 있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음성. 변성기에 접어든 아들 목소리는 익숙해지기 무섭게 달라져 최근 통화를 할라치면 그 변화 속도에 발맞추기가 버겁고 어색했다. 오늘은 아이도 어른도 아닌 것을 넘어 여자도 남자도 아닌 것 같은 쉰 목소리가 광남 씨 기분을 쌉싸름하게 만들었다. 아들이 자라는 세월은 금세 버무려 먹어치우는 겉절이처럼 번번이 날것으로 다가와 익지 않은 채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돈 부쳤어요?”
아들은 안부 대신 용건을 물었다. 광남 씨는 “응” 했다. 올해로 중학교 삼학년이 된 배식은 작년 초부터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졸랐다. 중학생이 된 후로 성적은 내내 꼴찌에 가까웠기에 여느 부모들처럼 반에서 1등 하면 사주겠노라 편법을 썼던 광남 씨는 당연히 포기할 거라 믿었다가 올 봄방학 때 배식이 보내온 성적표를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아들 이름이 분명하게 박힌 성적표에는 1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부터 봄내 여름내 읍내로 나가 허드렛일을 하며 말도 안 되게 비싼 스마트폰 값을 버느라 허리가 휠 뻔했다.
“너무 유행 타는 건 사지 말고 전화번호는 다음 연락 때 알려줘. 그리고…….”
“알았어, 알았어.”
배식이 빨리 전화를 끊고 싶어 해 광남 씨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손이랑 발 잘 씻고. 아빠가 그랬지? 손만 잘 씻어도 병에 안 걸려. 목욕도 자주 하고.”
“알았다니까. 내가 애야?”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하긴 애초부터 아들은 떨어져 지내는 아비를 향한 애틋함이나 그리움 같은 걸 지니지 않았고 광남 씨 또한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옆에서 뭣 하나 제대로 챙긴 것도 없으면서 엄마라는 지저분한 여자와 단둘이 살게 만든 아버지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목욕 같은 거 너무 자주 하지 말라고 그랬단 말이야.”
아이가 웅얼거리듯 말했다.
“응?”
“엄마가 그러는데 몸에 기름기 빠진대. 피부도 안 좋아지고.”
광남 씨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 정신 빠진 여자가…….
“엄마 바꿔봐.”
배식이 엄마를 부르자 저만치서 ‘끊어. 엄마 나가봐야 해.’라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났다.
“들었지?”
한숨을 짧게 내뱉으며 배식이 말했다. 광남 씨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눌렀다.
“그래 끊자. 근데, 엄마 말 들으면 안 돼. 아빠 말대로 해. 알았지?”
“알았어. 끊어요.”
수화기를 내리자 잔돈이 우르르 쏟아졌다. 근 한 달 만에 아들과 통화한 값어치는 삼백 원이 다였다. 동댕이쳐지듯 쏟아져 나온 백 원짜리들을 쓸어 담으며 광남 씨는 이를 갈았다. 무식한 여자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디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더럽게……. 그때였다. 광남 씨 머릿속에서 거대한 이미지 하나가 떠올랐다.
털이 숭숭 난 다리 세 쌍으로 배식을 안고선 기다란 더듬이 끝으로 으깨진 명란젓 같은 걸 찍어 아들에게 먹이고 있는 시커먼 벌레 한 마리. 더듬이에 묻은 걸 맛나게 핥아먹는 배식을 음흉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놈은 웬일인지 사람 눈을 하고 있었다. 유난히 흰자위가 많고 흐리멍덩해 보이는, 이를테면 아내 눈 같은……. 광남 씨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병원에 한번 가봐.’
공중전화 부스를 나와 자전거에 올라타려는데 또다시 아내 말이 떠올랐다.
‘당신, 그거 병이야.’
틈날 때마다 아내는 그 말을 했지만 광남 씨는 귓등으로 흘렸다. 병원이라면 정신병원을 말하는 것 아닌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신병자라니. 남들보다 더 깔끔할 뿐인데. 그걸 결벽증이라 할 수는 있겠지만 결벽증 때문에 정신병원에 간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광남 씨의 결벽증은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기도 했으나 그것은 일종의 완벽주의였고 집안 내력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 쪽. 해병대 출신이자 환경미화원이었던 아버지는 엄격한 데다 애정표현에 인색한 양반이어서 그 성격과 어울리게 군대식 사고방식을 고수하던 가장이었다. 집안 규칙은 물론이거니와 흘리듯 내뱉는 모든 말까지 식구들은 군소리 없이 따라야 했으니 아버지는 매일 취침 전 집 안 상태를 점검했고 어느 자리에서 혹여 삐뚜름한 게 나올라치면 잔소리를 하거나 얼차려를 가했는데, 매번 잔소리를 듣는 쪽은 엄마였고 얼차려 당하는 쪽은 광남 씨였다.
나이 오십 넘어 늦둥이를 보았기에 웬만한 아버지들 같으면 금쪽같고 손주 같아 어화둥둥 키우련만, 광남 씨가 태어나자마자 드디어 어버이가 됐으므로 어버이연합에 가입해 열성적으로 회원 활동을 하던 아버지는 애당초 그 웬만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광남 씨는 늘 사소한 것, 예를 들어 물건을 잃어버린다든지 사준 학용품을 또 사달라고 한다든지 밥알이나 반찬을 흘린다든지 하는 문제로 덜렁대는 아이, 사치 조짐이 보이는 아이, 단정치 못한 아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혼났다.
어린 광남 씨로서는 억울한 부분이 꽤 많았다. 물건을 아껴 쓰고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를 쓰거나 주의를 기울여도 집 열쇠나 지우개나 연필 깎는 칼이나 십 원짜리 동전 같은 물건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기 일쑤였고, 밥을 먹을 때도 아버지가 앞에 앉아 감시하듯 빤히 쳐다보면 괜히 주눅이 들어 밥을 입으로 넣는지 코로 넣는지 헷갈려 밥알이나 반찬을 흘릴 때가 더러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때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벌을 주거나 심할 때는 손부터 날렸다.
그러다 보니 광남 씨는 일찌감치 아버지에게 감정을 표현하거나 의견을 피력하는 걸 당연하다 생각하기보다는 일종의 천박한 짓, 그러니까 후레자식이나 한다는 말대답쯤으로 알고 자랐다. 대적할 수 없는 절대자……. 그 아버지는 유난히 청결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특히나 목욕. “이놈의 세상은 치우고 치워도 더러워.” 아버지는 그 말을 달고 살았다. 청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주중엔 욕실에서, 일이 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전엔 대중목욕탕에서, ‘더럽다’를 연발하며 목욕을 영원히 끝내지 않을 사람처럼 온몸을 씻어댔다.
그런 연유로 광남 씨는 다섯 살 때부터 주말마다 새벽 네 시 반이 되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목욕용품을 챙겨 아버지를 따라 집을 나서야 했고,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동네 목욕탕 앞에서 이십 분 넘게 기다리고 섰다가 다섯 시쯤 목욕탕 주인이 부자를 보고 진저리치듯 혀를 내두르며 문을 열어주면 아무도 몸을 담그지 않은 뜨거운 탕 속에서 숨막힐 때까지 때를 불려야 했으며, 피부 껍데기가 벗겨지도록 아버지의 때밀이에 몸을 맡겨야 했다. 벗겨진 피부에 앉은 모공 딱지들이 떨어질 때쯤 되는 다음 주말이면 새벽 기상과 새살 벗기기는 여지없이 반복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정년퇴직을 코앞에 둔 아버지의 완벽주의와 청결은 퇴직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한 히스테리와 결합해 극에 달했다. 집안은 날마다 살얼음판이었고 엄마와 광남 씨는 숨조차 아버지 기분을 살피며 쉬어야 할 지경이었으니, 그해 봄 어느 오전에 벌어졌던 그 사건은 그저 적기에 파종했다는 말 외에는 다른 표현이 없었다.
입학하고 한 달 좀 안 되었을 즈음 아직 학교가 낯설기만 했던 여덟 살 광남 씨는 수업 중 손을 들고 “화장실 갔다 올게요”라는 말을 못 해 마려운 똥을 참고 또 참다가 수업이 끝난 후에야 궁둥이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가족 아닌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중화장실은 처음인지라 어쩐지 불안하고 찜찜해 바지를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팬티에 그만 싸고 말았다. 묵직한 바지를 부여잡은 채 엉거주춤 식은땀만 연신 흘리던 광남 씨는 수업 종소리에 화들짝 놀라 팬티를 벗어 휴지통에 버리고는 교실로 돌아가는 대신 집으로 와버렸다.
일은 거기서 터졌다. 현관에서 구린내를 풍기며 훌쩍이는 아들과 짠한 눈으로 달래던 엄마가 하필 그날따라 당직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아버지에게 딱 걸리고 만 것이다. 사태를 추궁한 아버지는 말없이 광남 씨를 욕실로 데려가 옷을 벗기고 샤워를 시킨 다음 기다리란 말과 함께 부엌에서 곱게 갈린 소금 한 주먹을 쥐고 나와 발가벗은 채 욕조에서 떨고 서 있는 광남 씨를 당신 무릎에 엎어놓고는 엉덩이와 항문에다 사정없이 소금을 뿌리며 벅벅 문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고운 소금이라 한들 소금은 소금인 것을 그 짠 것이 연한 피부에 닿아 마찰이 가해지니 광남 씨는 아프고 무서워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아버지는 나이가 몇 살인데 똥을 못 가리느냐, 나쁜 기운 몰아내게 소독하는 것이니 가만있어라, 아랑곳없이 자기 말만 해대다 앞으로는 매일 팬티 검사를 하겠노라, 새로운 규칙만 더 보탰다.
이날부터 화장실에 대한 압박감 비슷한 것이 생긴 광남 씨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가끔 팬티에 변을 묻히게 되었다. 덕분에 아버지의 팬티 검사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어졌고, 광남 씨는 정말이지 그만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퇴직하고 히스테리가 발작 수준으로 심해진 아버지에게 남보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