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책을 쓰고 싶거든요. 근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편집자로 일하면서 예비저자들을 만날 때마다 반복해서 들은 말이다. 이 말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고민이 시작됐다.
생각해 봤다. 새로운 책을 기획할 때 나는 무엇부터 하지?
편집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시장에 나와 있는 책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미 출간된 책들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가진 필요와 욕구를 알아보고, 다른 저자들이 자신의 콘텐츠를 어떻게 정리해 냈는지 관찰한다. 이러한 정보들에 내가 만난 저자의 특징과 강점을 대입하여 어떤 기획을 할지 생각해 낸다. 책을 최대한 많이 볼수록 참신하고 차별화된 기획 콘셉트를 탄생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게 기획의 색깔을 잡아 나가면 저자들은 감탄하며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냐’며 묻는다. 나뿐 아니라 편집자들은 때때로 이런 말을 저자들로부터 듣는다. 언제나 그렇듯 정답은 멀리 있지 않다. 저자 자신 그리고 책 속에 있다. 그것을 편집자가 먼저 발견할 뿐이다.
그래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책을 쓰고 싶은 예비저자라면, 편집자처럼 책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본다’는 말이다. 편집자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책을 많이 읽지만, 때로는 읽지 않고 본다. 참신한 기획 콘셉트를 잡기 위해 짧은 시간에 다수의 책을 빠르게 파악하는 편집자들의 노하우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이 바로 ‘편집자들이 책을 보는 기술’이다. 편집자처럼 책을 본 다음에, 그로 인해 배운 ‘대중의 필요와 욕구’와 ‘내 강점 콘텐츠를 책에 녹이는 방법’을 바탕으로 책을 쓰는 것이다. 책을 잘 볼수록 잘 쓸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에 ‘책을 잘 보는 법’과 함께 ‘내 강점 콘텐츠를 (발굴하고) 녹여서 책 쓰는 법’까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들을 최대한 꼼꼼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 책에서 ‘책을 보는’ 방식을 소개하고 있지만, 책을 늘 이렇게 봐서는 안 된다. 생각의 크기를 넓히고 성찰의 깊이를 더하는 독서의 본질은 정독精讀에 맞닿아 있다. 그러나 대중서를 기획하고 집필하는 이들은 참신한 기획을 위해 기존의 책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쓰기’도, 대중이 일상생활을 좀 더 잘 살아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실용적 지식/정보를 다룬 책에 한정된다는 점을 밝혀 둔다.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일하는 현업 종사자로서, 예비저자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은 책쓰기는 자신을 오롯이 담아내는 작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쉬운 요령을 찾기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고 좀 더 고단하더라도 ‘진정한 나’를 찾아서 담아내는 책쓰기를 하면 좋겠다. 대중은 저자의 강점 콘텐츠가 오롯이 들어간 책에 관심을 갖고 열광한다. 이런 책은 운이 나빠(?) 베스트셀러가 안 되더라도 길게 간다.
이 책을 보고 난 후 꼭 책쓰기를 시작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에 꼭 책이 필요하다면 쓰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안 써도 사는 데 전혀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본 후 반드시 자신의 강점 콘텐츠를 발견하는 일에 착수했으면 좋겠다. 그것이면 이 책의 가치는 족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고심 끝에 작성한 출간기획안과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해 보았으나 거절당해 본 경험이 있는 예비저자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투고해 본 경험이 없다 해도 과연 출판사가 내 원고에 관심을 가져 줄지 확신이 없어 투고를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사에서 ‘출간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도대체 내 원고는 무엇이 부족해서 출간을 거절당하는 것일까?
아쉽게도 저희 출판사와 방향이 맞지 않아 출간이 어려울 듯합니다. 귀한 원고를 저희 출판사에 투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판에 박힌 거절 메일이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수십 번을 받아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답장이다. 그저 세상에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책 한 권을 내고 싶었을 뿐인데 메일에 담긴 거절의 말은 ‘당신이 보낸 수준 미달의 원고는 출간할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가슴 한쪽이 콕콕 쑤셔 온다. 책을 쓰기 위해서 바쁜 저녁 시간을 쪼개어 책쓰기 관련 특강에 참석하고, 남들은 어떻게 책을 써서 출간까지 하게 됐는지 경청하고, 책쓰기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 구입해 정독한 후 공들여 원고를 썼으며, 출간기획안까지 작성해서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저희 출판사와 방향이 맞지 않아 출간이 어렵다’라니….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것을 보완하거나 수정하면 출간이 가능한지 답변이라도 받고 싶지만 출판사의 답메일에는 ‘출간이 어렵다’는 간결하면서도 완고한 거절의 메시지만 담겨 있을 뿐이다.
출판사가 여기 한 군데만 있는 건 아니니까, 라고 애써 자위하며 나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해 줄 다른 출판사에 투고해 보지만 반복되는 거절에 자존감이 뚝 떨어지길 여러 번. 투고를 거듭할수록 거절 메일이라도 보내 주는 출판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마저도 보내 주지 않는 출판사가 태반이니까. 이런 과정을 겪다 보면 머릿속에 몇 가지 궁금증이 떠오른다.
‘출판사가 투고된 원고를 검토하긴 하는 것일까?’
‘투고된 원고를 보고 출간 제의를 하는 경우가 있을까?’
‘도대체 출판사는 어떤 사람에게 책 작업을 해 보자고 제안하는 것일까?’
‘책을 한 권도 내보지 않은 예비저자에게도 기회는 있는 걸까?’
서점에 가서 바닥부터 천장까지 서가를 빼곡하게 채운 책들을 보면서, 잘하면 나도 저자가 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원고를 투고했다. 보는 눈 없는 출판사들이 엄청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예비저자를 이렇게 놓치는구나, 싶다가도 어쩌면 책은 누구나 쓸 수 있다고 했지만 아무나 쓰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내가 그 ‘아무나’인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누군가가 너는 책을 쓸 수 있다, 없다 명쾌하게 대답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런 조언을 해 줄 만한 사람은 주변에 없다. 몇 번의 반복된 거절 끝에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 예비저자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이렇게 판단을 내린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루에 적게는 한두 통, 많게는 수십 통씩 투고 거절 메일을 보내는 편집자 입장에서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출판사 편집자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저자 발굴이지만 투고된 기획안과 원고에서 흙 속에 묻힌 진주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출판사로 투고된 원고와 기획안을 통해 신인저자를 발굴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편집자들이 한숨을 쉬는 이유는 수많은 예비저자들이 중요한 것을 놓친 채 형식만 잘 갖춰서 투고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예비저자들은 자신의 원고가 거절당한 이유를 ‘원고를 못 써서’라고 생각하는데,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거절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글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는 투고된 원고의 기획이, 즉 아이템이 참신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거절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소수의 독자들을 상대로 하여 대중성이 떨어져 판매량이 높지 않을 듯한 기획, 베스트셀러 랭킹에 오른 책들의 제목과 내용을 흉내 낸 기획, 저자의 전문성과 동떨어진 기획, 저자의 개성과 매력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밋밋한 기획일 때, 편집자들은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원고를 거절한다.
초판 2천 부도 판매하기 힘든 현실에서 특정한 소수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더더욱 판매를 낙관할 수 없고, 베스트셀러를 모방한 기획은 시장에서 ‘아류’로 인식될 뿐이며, 저자의 전문성을 신뢰할 수 없는 콘텐츠는 독자의 관심과 사랑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저자의 개성과 매력이 드러나지 않은 콘텐츠는 시장에서의 차별성이 없다는 얘기이므로, 출판사가 출간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원고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기획이 참신하고 전반적인 책의 구조가 탄탄하며, 저자의 개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편집자들은 책을 출간할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여기서 ‘원고가 다소 부족하더라도’의 의미는,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이 자주 틀리고 문장이 거칠다고 파악되는 경우를 말한다. 예비저자들은 투고한 원고가 거절당한 이유를 ‘글을 잘 못 써서’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편집자들은 ‘글을 잘 못 써서’ 거절하는 게 아니라 ‘기획이 잘못되어’ 거절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기획이 잘못되었다면 원고를 수정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고 아예 새롭게 기획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획이 좋은데 원고가 다소 부족한 경우, 즉 문장이 거칠고 구성이 약하다면 편집자들은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예비저자에게 꼼꼼하게 피드백을 해서 저자가 스스로 고칠 수 있는지, 편집자 자신이 직접 수정해야 하는 건 어느 정도인지, 혹 구성작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를 면밀하게 판단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 출판 계약을 진행하고, 세 번째의 경우는 예비저자에게 원고 수정 방법과 비용 등을 포함한 계약 조건을 협의하자고 청할 수 있다. 그러니까 편집자들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기획에 대해서는, 출간하는 쪽으로 무게를 두는 것이다.
출판사는 언제나 저자를 찾고 있다. 신인 저자의 경우 낙관적인 판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출판사가 져야 할 부담이 크고 원고가 거칠어서 다듬어야 하지만, 톡톡 튀고 참신한 개성을 담은 기획만 있다면 저자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출간을 고려한다. 그러나 투고된 출간기획안 대부분이 저자의 개성이 잘 드러난 참신한 기획, 기획과 연관되는 저자의 전문성, 대중성(상업적 가치) 중 어느 한 부분도 출판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에 투고된 원고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쓰려고 결심한 예비저자라면,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해 보았으나 좋지 못한 결과를 받은 예비저자라면, 자신의 기획을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저 막연하게 어느 누군가가 좋게 봐주지 않을까, 깎이지 않은 원석 같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출간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내가 투자자라면, 나라는 상품에 1~2천만 원가량을 투자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상업출판에서 초판 제작비의 기준임. 상업출판이란 독자가 책값을 지불하고 살 만한 상업성을 담보한 출판 형태로, 기획출판과 반기획이 이에 해당함). 누구라도 출간하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기획을 했는지, 내 전문성과 직결되는 기획을 했는지, 기존에 출간된 책과 비교했을 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참신한지, 대중이 정말 필요로 하고 좋아할 만한 내용일지 객관적으로 자신의 기획을 판단해 봐야 한다.
또한 예비저자들은 원고를 검토하는 편집자들이 원고를 거절하기 위해서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편집자라면 누구나 좋은 저자를 발굴하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투고한 원고가 편집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출판편집자들은 책을 만드는 일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대중의 관심사를 사로잡을 수 있는 책 기획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출판계가 유사 이래 최고의 불황이고, 책 팔아서 먹고 살기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책이 너무 좋기에 책을 만드는 일에 인생을 건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책을 만드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그래서 예비저자들은 출판편집자들이 계약하고 싶다고 전화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참신한 기획으로 그들의 눈을 홀릴 수 있어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진짜 저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앞서 편집자들이 투고된 출간기획안과 원고에서 무엇보다 ‘기획’에 중점을 두고 검토한다는 것을 확인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편집자에 대해, 저자가 쓴 원고를 교정교열하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지, 이렇게 기획에 포커스를 맞추고 일한다는 점은 알지 못한다. 〈반짝반짝 빛나는〉이나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편집자의 모습이 소개되긴 했지만 드라마의 목적이 직업 탐구가 아니므로 단편적인 모습만 나올 수밖에 없으니 편집자란 직업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편집자는 대중이 좋아하는 상품성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 책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총감독과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고 맞춤법을 통일하여 읽힘새 좋은 책으로 만드는 것도 편집자가 하는 일 중 하나다. 그러나 편집자들은 이보다 훨씬 복합적인 일을 한다. 출판사의 규모에 따라 편집 영역과 기획 영역이 나누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편집자들이 기획부터 편집까지 모든 일을 총괄하여 진행한다. 원고는 저자가 쓰지만, 책 기획에 맞는 저자를 섭외하는 일도, 저자의 특성에 맞춰서 알맞은 책을 기획하는 일도, 편집을 포함한 모든 진행 및 홍보 계획을 세우는 일까지도 모두 편집자의 몫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저자와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하여 책의 방향성을 정하고, 주제에 맞게 원고를 재구성하거나 수정하는 것을 포함해 책이 대중이 좋아하는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게끔 조율하는 것이다. 편집자는 오케스트라로 따지면 지휘자, 판소리로 따지면 북을 치며 흥을 돋우는 고수이자 배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키를 조종하는 조타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편집자의 역할을 잘 드러낸 영화가 2017년에 개봉한 〈지니어스〉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발굴하고 스콧 피츠제럴드의 조력자 역할을 한 전설적인 편집자 ‘맥스 퍼킨스’와 천재 저자 ‘토마스 울프’의 실화를 그린 이 영화는,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저자 ‘울프(주드 로)’의 원고를 우연히 읽게 된 편집자 ‘퍼킨스(콜린 퍼스)’ 가 난해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는 울프의 필력에 반해 그에게 출간을 제의하면서 시작한다.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울프의 감성에 냉철한 편집자 퍼킨스의 열정이 더해지자 울프의 데뷔작 〈천사여, 고향을 보라〉는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쏟아지는 찬사와 함께 불타는 창작열에 휩싸인 울프는 5,000페이지짜리 두 번째 원고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앞선 작품의 성공에 큰 부담을 안게 된 울프는 더 큰 성공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만, 냉철한 편집자 퍼킨스는 울프가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곁에서 묵묵히 도와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저자 울프가 편집자인 퍼킨스에게 의지하며 함께 원고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 있다. 방대한 분량의 원고 중에서 어느 부분 하나 버릴 것 없다고 울부짖는 울프와 불필요한 원고는 과감하게 쳐내야 한다고 말한 퍼킨스. 그는 결국 중요한 건 ‘이야기’라는 점을 지적하며 울프가 스스로 원고를 삭제할 수 있도록 조언한다. 자칫 저자의 고집으로 원고가 방향을 잃고 헤맬 수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짚어 낸 그는 본래 기획 의도에 맞게 원고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고, 원고란 저자 개인의 만족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닌 대중과 함께 소통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울프뿐만 아니라 다수의 저자들이 ‘자신이 쓰고 싶은 것’과 ‘대중이 알고 싶어 하는 것’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한다. 편집자는 바로 그 혼란에서 중심을 잡아 주는 사람이다. 대중의 기호와 필요를 저자가 원고에 잘 반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듯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편집자의 중심 잡기는 저자의 원고가 훨씬 더 대중성 있고 상품성 있는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게 해 준다.
원고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 주는 퍼킨스의 조언에 따라 울프는 전보다 더 나은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 수정에 몰두하고, 저자로서 더욱 성장한다. 결국 두 사람은 3년간의 끈질긴 작업 끝에 두 번째 책도 성공으로 이끌어 낸다. 울프는 책의 성공을 편집자인 퍼킨스에게 돌리지만, 퍼킨스는 오히려 겸손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네 것이야. 편집자는 익명으로 남아야 해. 내가 원한 것은 그저 사람들이 네 글을 읽는 것이고, 나의 직업은 좋은 책을 독자들의 손에 쥐여 주는 것이야.”
더불어 퍼킨스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네 책의 가치를 훼손시킨 게 아닐까 걱정했어. 내가 정말 책을 더 좋게 만들고 있는 것이 맞나? 아니면 상업적인 무언가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이 말을 통해 퍼킨스 역시 저자인 울프처럼 두 번째 책에 대한 부담이 컸음을 유추할 수 있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저자만큼 편집자들도 많은 고민을 한다. 자신이 작품에 제대로 기여하고 있는지, 혹 자신의 판단이 작품에 잘못된 영향을 미쳐 좋은 작품을 망쳐 버리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러나 편집자의 고민은 저자보다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서가 아닌, 저자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진한 감동과 여운을 선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역할은 참신한 원고를 써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라면, 편집자의 역할은 저자의 작품이 기획 방향을 잃지 않고 대중에게 더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다듬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와 편집자의 관계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저자 없이 책 만드는 편집자가 없듯이 편집자 없는 저자도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훌륭한 저자들은 편집자를 자신의 작품을 함께 만드는 사람이라 인정하며 작품의 공을 편집자에게 돌린다. 토마스 울프가 맥스 퍼킨스에게 공을 돌린 것처럼 말이다.
늘 저자 뒤에 서서 저자를 뒷받침해 주므로 편집자는 ‘그림자 노동자’에 가깝지만, 빛나는 작품 뒤에서 기획을 완성시키는 최고의 조력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좋은 저자와 편집자가 팀을 이뤄 작업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자신의 성공 뒤엔 훌륭한 편집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한 명의 편집자와 수십 년째 작업하는 소설가가 있는가 하면, 편집자가 출판사를 옮기자 편집자를 따라 출판사를 옮긴 것도 모자라 성공한 작품의 판권도 함께 이전하도록 허락한 사례도 있다. 이렇듯 저자와 편집자는 팀을 넘어 의리로 함께하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저자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편집자는 저자의 장점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단점은 최대한 보완하여 책 속에 담아낸다. 서로가 최선의 최선을 거듭하여 만들고 다듬은 책이 독자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괜찮은 저자 뒤엔 괜찮은 편집자가 있다는 소리가 괜히 나온 건 아닐 듯하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자신의 기획이 대중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집자와 의견을 나누며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