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출근하는 그리스도인에게
2020년 7월 27일 ebook 발행
지은이 문애란
펴낸이 박종현
도서출판 복 있는 사람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연남동 246-21(성미산로23길 26-6)
전화 02-723-7183(편집), 7734(영업·마케팅)
팩스 02-723-7184
등록 1998년 1월 19일 제1-2280호
ISBN 978-89-6360-363-6
이 도서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목록(CIP)은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 홈페이지(http://seoji.nl.go.kr)와 국가자료공동목록시스템(http://www.nl.go.kr/kolisnet)에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CIP 제어번호: 2016028832)
※ 이 전자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0년 텍스트형 전자책 제작지원’ 선정작입니다.
작가의 편지 출근하는 J에게 글을 쓸 만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 돌아보면 후회투성이…. 그래서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겪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J도 그중 하나였다. 아름답고 조용한, 그렇지만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려고 애쓰는 J! J는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와서 조근조근 물었다. 광고 분야에서 유명한 이름을 갖고 있었던 내 이면의 삶에 관해. 출근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얼마나 처절하게 힘들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아이들, 남편과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60년 인생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가장 후회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J는 나의 답을 들으며 자신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J의 밝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삶이 정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출근하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J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을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는 용기를 내었다. 출근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기쁨이 따뜻하게 스며들기를 바란다. 주님께 감사, J에게 감사. 2016년, 문애란 |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왜 하고 있는 거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광고 일을 참 열심히 했다. 광고를 통해 광고주가 성공을 하고, 그 제품이 잘 팔리고, 광고 카피가 유행어가 되면 잠깐은 신이 났다. 하지만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마음속엔 허무함이 들어찼다. 날마다 “이거 사세요, 저거 사세요!”라고 외치는 광고를 만드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내 인생 자체가 허무하고 의미 없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선교사가 되어야겠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선교사가 뭔지도 모르면서 도피처로 삼았던 것이다.
사실 밖에서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함께 만든 광고가 칸느 광고제에서 은사자상을 받고, 국내의 광고 대상을 휩쓸고, 개인적으로는 정부에서 주는 동백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속은 곪고 있었다. 너무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를 가는 게 마치 지옥에 끌려가는 것 같았다. “웃고 있어도 나는 눈물이 난다”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회사에 가서는 직원들의 눈이 있으니까 반짝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슬픔으로 가득했고 울고 있었다.
함
정
웰콤이라는 광고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회사에서 목회사관학교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고故 하용조 목사님이 강의 참석차 회사에 왔다. 그런데 새로 지은 사옥을 구경하고 나서 한참 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세상 광고를 이렇게 잘하는데, 하나님 광고도 해보지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 처음 ‘내가 하는 일이 주님께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나를 둘러싸고 있던 어두운 세상이 완전히 뒤바뀐 듯 보였다. 마치 어제가 블랙이면 오늘은 화이트가 된 것처럼.
마침 온누리교회에서 맞춤 전도집회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광고의 타깃 마케팅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 일을 돕기 시작했다. 너무나 기쁘고 좋았다. 그러나 거기에도 함정이 있었다. 나는 그때 ‘일의 목적’에 대해서 바로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대체품을 발견했던 것뿐이었다.
교회 일을 하면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고, 회사 일을 하면 괜찮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느꼈다. 이중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회사 일을 하면 힘이 들었다. 진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 일과 교회 일 사이에서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았다. 하나님을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그분의 일을 하면 할수록 내 가랑이는 더 찢어질 듯 괴로웠다.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 일은 세속적인 것이고, 교회 일은 한 단계 높은 일을 하는 것처럼 인식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회사 일을 하는 것은 하찮게 여기고, 어떡하면 이걸 빨리 끝낼까 하는 궁리만 했다. ‘이 일을 빨리 끝내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라는 식으로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이다. 광고 인생을 돌아보면 ‘일의 목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직장인의 삶이 얼마나 괴로운 삶인지 절감하게 된다.
왜
일하는 걸까
직업 특성상 30대 초반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대통령, 정치가, 대기업 사장을 비롯해 소위 세상이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하도 나이가 지긋한 회장님들을 많이 만나니까 같이 일하던 동료가 “너 그러다 빨리 늙는다”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에게서 형무소 돌담 위를 걷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조금만 잘못하면 그 돌담에서 떨어질 것처럼 그들의 삶이 위태로워 보였다.
광고주인데도 불구하고, 주차장까지 내려와서 우리를 맞이하고 또 배웅하는 겸손한 회장님이 있었다. 함께 일할 당시에는 서울 곳곳에 빌딩이 있을 만큼 그 회사가 번창할 때였다. 그런데 2, 3년도 안 되어서 그분이 감옥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돌담에서 발을 잘못 디딘 것이다. 또 어떤 제약회사의 회장님은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줬는데, 그 후 자기 밑에서 일하던 임원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아들에게 줄을 서기 시작하니까 너무 질투가 나고 화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과 사이가 나빠졌고, 결국 가족 간에 서로 고소까지 하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가까이에서 수없이 지켜보았다. 선하게 느껴졌던 사람이든 다소 괴팍하게 느껴졌던 사람이든 예외는 없었다. 그러자 내 안에서 ‘어떤 것이 성공일까, 그 성공의 끝은 뭘까, 무엇을 위해 일하는 것일까’라는 물음표가 끊임없이 내게 답을 요구했다.
화려한
그늘
뒤돌아보면 30대와 40대의 인생은 참 화려했다. 남들의 부러움도 샀고, 언론에도 소개되었고, 박수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때 나는 진리를 몰랐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코끼리 뒷다리만 만져 보고, 거기에 내 생각을 멋대로 덧붙인 채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거의 70, 80퍼센트는 우상이 아니었을까?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이 있다. 죄인의 삶이란 빗나가서 과녁을 맞추지 못하는 삶이라고 하던데, 내 삶이 꼭 그렇지 않았나 싶다. 삶의 중심도, 가정과 직장의 균형도, 일의 목적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한 진리를 향했던 것이 아니라 어디서 들은 것, 내 생각 등에 의존했기 때문에 과녁을 제대로 향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30대와 40대는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과녁에서 빗나간 시간이었다.
만약 30대 때 성경에서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명확히 알았더라면, 나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 미국 G&MGrace & Mercy재단 회장인 앤디 밀스를 통해 성경적 관점에서 일을 이해하게 된 뒤 ‘아, 내가 일에 대해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광고 일을 정말 열심히 잘했을 텐데. 어쩌면 지금도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께서 일을 왜 만드셨는지, 나에게 그 일을 왜 하라고 명하셨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에 관한
성경적 이해
성경은 ‘일’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을 왜 만드셨는지,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 일을 주님께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바로 알아야 한다.
첫째, 왜 일을 만드셨을까?
창세기 2장 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라는 말씀이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사람이 없다고 해서 초목이 자라지 않게 하셨을까? 이는 하나님께서 창세부터 우리를 그분의 동역자이자 일하는 존재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흔히 오해하고 있듯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서 일이 생긴 것이 아니다. 처음의 낙원에서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일하는 존재로 만드셨다. 우리의 DNA 속에는 일하는 존재로서의 유전자가 있다. 그분은 일을 축복의 수단으로 주신 것이지, 괴로움의 수단으로 주신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일하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주님의 동역자로서 출근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
출근길에 ‘나는 하나님과 함께 출근한다. 나의 동역자이신 주님의 손을 잡고 간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달리는 버스 안에서, 혹은 지하철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아주 커다란 인형처럼 든든히 내 곁에 선 포근한 주님과, 그런 주님의 손을 잡고 출근하는 나의 모습을.
그렇게 생각하면 힘도 나겠지만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정직하고 온순해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좀 더 너그럽게 보게 될 것이다. 주님과 동역하기 위해 출근한다면, 직장에서 하나님의 빛을 발하기 위해 일한다면, 안 보이던 것을 볼 수밖에 없다.
둘째, 일의 목적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서 일해야 할까? 돈? 명예? 물론 일을 통해 그런 것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에는 ‘나를 위해서for me’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for you’ 일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목적으로 삼고 일해야 한다. 성경에서와 같이 하고 싶다면 말이다.
그리스도인이라도 대개는 일터에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방향이 바뀌었을 때 관계적인 측면에서나 일하는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섬김의 기적이 일어나게 될까?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옆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으면 사실 나도 짜증이 난다. ‘쟤는 일도 제대로 안 하고, 회사에 와서 꾸벅꾸벅 졸기만 하네’라며 불평하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이 내 마음을 비추면 갑자기 그 친구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좋은 쪽으로 생각이 바뀐다. ‘혹시 뭔가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집안에 무슨 일이 있나? 내가 커피라도 한잔 사 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 밖에서 들어와 너무 더워할 때 얼음물을 가져다주는 것, 물잔을 건네며 잠깐 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이런 사소한 일들 역시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방법이다. 하나님과 동역하면 옆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힘을 얻고, 나를 움직인다.
셋째, 일을 어떻게 평가하실까?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잘했다well done, 착하고good, 충성된faithful’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 성경이 말하는 일에 대한 평가의 기준이다.
첫째로 ‘잘했다’는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일의 기본이다. 더불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는 말씀처럼 최선을 다할 때 주님께서 최선의 능력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을 주신다.
믿지 않는 사람은 잘하는 것에서 끝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가지 기준이 더 있다. 두 번째 기준은 ‘착하고’이다. 다른 사람을 누르고 잘한 건 아닌지, 제품이나 서비스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닌지를 경계하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손님을 속이고 싸구려 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결코 ‘착하고’가 될 수 없다.
세 번째로 ‘충성된’은 순간순간 주님의 동역자로서, 그분과 동행했는가를 묻는 기준이다. 선택의 순간에 주님께 질문하고 답하며 동역자로서의 관계를 지키는 가운데 일했는지, 혹은 자신의 뜻대로 해놓고 그저 주님께 잘했는지 따져 물은 것은 아니었는지를 살펴보신다는 의미다.
하루를 뒤돌아보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세 가지 기준을 잘 지켰는지 점검하고, 한 주를 마감하며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그다음에는 한 달을 돌아보고, 또 1년을 돌아본다면,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그분께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 천국의 확장을 위해 일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 안에서는 교회와 일터가 우리 생각처럼 분리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터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권자로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위해 일할 수 있다. 직장에서 함께하는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 지옥을 만들 수도 있고, 천국을 만들 수도 있다. 하루하루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주님의 사역을 풍성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
내려놓기
겉으로 “주님께서 하셨죠”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한 것도 조금 있죠’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