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패트릭 해리스 (Neil Patrick Harris)
배우이자 프로듀서, 감독, 사회자, 작가, 남편, 그리고 사랑스러운 쌍둥이의 아버지이다. 그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마법예술학교(The Academy of Magical Arts)의 교장을 역임했다. 『아싸 마술 클럽(The Magic Misfits)』은 그의 청소년 소설 데뷔작이다.
THE MAGIC MISFITS
by Neil Patrick Harris
Copyright ⓒ 2017 by NEIL PATRICK HARRIS
All rights reserved.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Kuhn Projects through EYA(Eric Yang Agency).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20 Jaeum&Moeum Publishing Co., Ltd.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에릭양 에이전시를 통해 Kuhn Projects와 독점 계약한 (주)자음과모음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일러두기
1. 모든 주는 옮긴이의 주다(첨자).
2. 원문의 대문자는 볼드체로, 이탤릭체는 이탤릭체로 옮겼다.
3. 마술 관련 용어는 영어 표현 그대로 한국어로 표기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술을 믿나요? 안녕, 여러분! 맞아요. 여러분에게 말하는 거예요. 어때요? 마술을 믿어요?
여러분이 만약 이 책에 나오는 소년이라면 아니라고 말하겠죠.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마술을 믿는다고 생각해요. 온 사방에 마술이 있다고 말이죠. 그건 사실이에요. 절 못 믿겠나요? 어디 한번 제 눈을 보면서 마술 같은 거 안 보인다고 말해 보세요!
아이아이아이아이아이아이아이아이아이
아이아마아이아이아수아이우이아울아이
아이아이아이아이아이아이아이아이아이
제가 해 놓은 게 보이나요? ‘눈(eye)’을 크게 뜨고 잘 봐요. ‘아이(I)’ 속에 숨어 있는 걸…….
(그만 웃어도 돼요. 제가 그렇게까지 웃기지는 않았잖아요?)
이제 잠깐만 진지하게 말해 보죠.
마술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어떤 사람들에게 마술은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거나 사람을 반으로 톱질한 다음에 다시 붙여 놓는 것이죠(다행히도). 또 어떤 사람들은 신선한 가을날을 마술처럼 느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해 주는 부드러운 포옹을 마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저에게 마술은 이야기, 게임, 퍼즐을 의미하죠. 아니면 한순간에 숨을 멎게 만드는 놀라운 일일 수도 있고요.
마술은 온갖 형태와 크기와 색깔과 맛과 냄새와 느낌으로 나타난답니다. 심지어 책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어요. 어쩌면 여러분이 들고 있는 바로 이 책 말이에요. 아닐 수도 있겠죠. 지레 앞서 나가고 싶지는 않네요.
하지만 때때로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마술을 찾아내는 게 어려울 수도 있어요. 이 책에 나오는 소년처럼이요. 솜사탕을 빙글빙글 돌리느라 너무 바빠서, 창가에 앉아 있는 새들에게 정신이 홀딱 팔려서, 다락방을 정리하느라 너무 피곤해서 주변에 존재하는 마술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죠. 하지만 단언컨대, 마술은 존재한답니다. 그저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만 알면 돼요. (냄새를 맡아 봐요! 맛을 봐요! 눈을 써요! 아니면 머리를 쓰거나!) 물론 가끔은 여러분이 직접 마술을 해 볼 수도 있겠죠.
마술을 배우고 싶나요? 제 생각엔 배울 수 있을 것 같네요. 좋아요. 절 따라 해 보세요. 심 살라 밤!
유감입니다. 별로 크게 외친 것 같지 않네요. 자, 저를, 따라 해, 보세요. 심 살라 밤!
더 크게. 심 살라 밤!
훌륭합니다. 여러분이 좋은 학생이라는 걸 알겠어요.
이제 책장을 넘겨…….
잠깐, 잠깐, 잠깐! 그대로 멈춰요…… 스톱!
이런 바보를 봤나. 제가 아무래도 앞에 써 놓은 ‘아이’들을 보다가 최면에 걸린 게 분명해요. 우리의 마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중요한 한 가지를 까먹을 뻔했지 뭐예요. (드럼을 울려 주세요! 두두두두두…….) 그게 뭐냐 하면 말이죠…….
이 책을 언제 어디서 읽어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아요. 버스에서도 읽을 수 있고, 비행기에서도, 아니면 건초 나르는 수레 뒤에서도 읽을 수 있겠죠. 이를 닦는 중에나 머리를 빗는 중에, 또는 애완견의 털을 빗겨 주는 동안에도 읽을 수 있을 테고요. 침대에 누워서도, 침대 아래에서도, 어쩌면 침대 위에서 공중 부양을 하면서도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언제 어디에서 읽으라는 말은 못 해요. 어떻게 읽으라는 말도 당연히 못 하죠. 눈을 뜨고 읽을 수도 있겠고, 어쩌면 눈을 감은 채로 읽을 수 있을 수도 있을 거예요(알겠지만,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요). 거꾸로 읽거나 거울에 비춰 읽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더러 읽어 달라고 할 수도 있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책 속에 마술 레슨이 들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제 각 장마다 모험과 역경, 그리고 흥분과 재미가 담긴 이야기들을 읽게 될 겁니다(이게 꼭 제가 말한 순서대로 진행되는 건 아니지만요). 이때, 마술 레슨들이 무대 공연의 비밀을 밝혀내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만약 이 두 종류의 장을 순서대로 읽는다면 “와우!”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걸요. 모험 이야기도 읽고 마술도 배우게 될 테니까.
마술사의 비밀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면, 그것들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의 세대들이 더 놀라운 위업과 도전을 성취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게 제가 마술의 비밀을 여러분과 나누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마술의 비밀을 이웃들을 속이는 데 사용해서는 절대 안 돼요. 동네 골목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비밀들을 폭로해도 안 되고요. 사람들이 미소를 짓도록 하는 게 가장 가치 있는 마술의 트릭이라는 말을 믿어 줬으면 좋겠어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걸 말이죠.
이런, 말이 길어졌네요. 이제 들어가 볼까요?
준비됐죠?
좋습니다.
책장을 넘겨 주세요.
하나
마을 경계에 있는 어두운 조차장에서 두꺼운 커튼 같은 안개를 뚫고 사람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형체는 나란히 늘어서 있는 빈 철로들을 따라 내달리기 전에 뒤를 한 번 돌아보았죠.
자, 여러분은 어쩌면 멀리 가로등만이 빛을 비추고 있는 외딴 조차장을 덮은 짙은 안개 속에서 그림자처럼 어둑한 형체가 나타난다는 상상만으로도 몸을 움찔하겠지요. 하지만 겁먹을 필요 없답니다. 그 형체는 ‘카터 로크’라는 빼빼 마른 소년일 뿐이니까요.
그래도 만약 신경이 쓰인다면, 그건 분명 카터를 쫓아 조차장으로 달려오고 있는 남자 때문일 거예요. 그 남자는 이렇게 고함을 질러 대고 있죠. “카터! 이리 돌아와! 도망가지 말고! 혼내지 않겠다!” 거짓말이에요. 이 남자는 카터를 혼내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거든요.
다행히도 카터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터는 가방끈을 꽉 쥔 채 쉼 없이 다리를 움직이면서 짙은 안개 속을 있는 힘껏 헤쳐 나갔어요. 그러면서 칙칙폭폭 소리와 함께 다가온 기차가 어느 선로에서 기차역을 빠져나가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경적 소리가 귀청을 울리자 카터는 철로를 성큼성큼 건너갔죠.
선로 몇 개를 지나자 귀에 익은 금속성의 소리가 들렸어요. 녹슬었지만 화려한 색깔의 열차가 덜거덕덜거덕 다가왔습니다. 점점 속도를 올리면서 안개를 뚫고 나오고 있었죠. 이제 카터는 열차를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소년은 선로를 뛰어넘으면서 움직이는 기차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역 아래쪽에서 객차가 줄줄이 들어왔습니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보라색, 새빨간색, 검은색, 오렌지색, 다시 새빨간색.
그 색색의 기차를 보자 카터는 그가 처음으로 봤던 마술 트릭이 떠올랐어요. 어떤 손이 부드럽게 얼굴로 다가와 귀에서 빨간색 실크 손수건을 꺼냈지요. 그 빨간색 손수건은 노란색 손수건에 연결되어 있었고, 노란색은 파란색에, 파란색은 초록색에, 계속 그렇게 이어져 있었어요. 그건 카터가 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기억 중 하나랍니다.
카터는 저도 모르게 등에 멘 가방을 만져 보았어요. 작은 나무 상자가 안에 잘 들어 있나 확인하려고요. 나무 상자는 잘 있었답니다.
카터는 기차를 따라 달리면서 올라탈 만한 객차가 없나 살펴보았어요. 소년의 뒤에서 자갈을 밟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러더니 거칠고 무자비한 고함 소리가 울렸습니다. “카터! 어디 한번 기차에 타 보시지!” 쨍그렁거리고 쿵쾅거리는 기차의 소음도 남자의 고함 소리를 묻어 버리지 못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더 가까이, 거의 바로 뒤에서 들렸어요. “이 동네와 팀벅투 사이의 도시와 마을 전체에 내 눈과 귀가 있어! 넌 절대 못 빠져나가! 내 말 들려? 절대 못 달아난다고!”
카터는 남자에게 잡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그 대신 기관차에 정신을 집중했죠. 육중한 기차 바퀴가 선로 위를 구르자 바퀴에서 빛이 번쩍였어요. 기차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고, 각 객차의 무게는 거의 1톤 가까이 나가죠. 그런데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척 빠르게 움직여요. 만약 카터가 기차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가 자칫 발이라도 헛디딘다면 그대로 끝난다는 말이죠.
그때, 밝은 노란색 객차가 소년의 바로 옆을 지나쳤어요. 카터는 그 노란색 객차를 보면서 애완동물 가게 창가에 전시되어 있던 새장에 갇힌 새를 떠올렸죠. 새는 자유롭게 날도록 태어난 동물이잖아요? 카터는 바로 이 노란색 객차가 그를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줄 징조라고 생각했어요.
객차의 발판이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어요. 움직이는 기차에 뛰어오르는 건 어쩌면 힘들고 무서운 일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카터는 전에도 이런 걸 많이 해 봤답니다. 그래서 소년에게는 누군가의 귀 뒤에서 동전을 빼내거나 한 손으로 트럼프 카드를 섞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카터를 쫓던 남자 역시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는 게 카터에게는 쉬운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카터가 막 발판을 붙잡으려는데 남자가 카터의 가방을 홱 잡아채서는 소년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어요.
“싫어!” 카터가 소리쳤습니다.
둘은 자갈밭을 뒹굴면서 노란 객차의 바퀴 옆까지 굴러갔습니다. 금방이라도 망가질 것 같은 선로 위를 기차는 쿵쿵, 쿵쿵쿵, 쿵쿵, 쿵쿵쿵, 하며 나아갔어요. 그 메아리치는 소리에 놀라 카터는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기차가 자기를 두고 떠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하기 싫었죠.
그래서 카터는 계속 움직였습니다. 소년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삼촌의 손에서 가방을 확 낚아챘습니다. 그리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자갈을 박차고 기차의 마지막 차량을 향해 뛰어올랐어요. 발판은 열린 뒤쪽 문 바로 옆에 걸려 있었죠. 카터는 날랜 손길로 맨 아래쪽 가로대를 단단히 붙잡았어요. 카터는 발판 위로 몸을 끌어 올린 다음 달리고 있는 기차의 뒤쪽에 매달렸어요.
소년은 숨을 고른 뒤 기차 위로 올라가 객차 지붕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채찍처럼 휘날렸어요. 기차 앞머리에서 경적 소리가 다시 울렸어요.
뒤를 돌아보니 카터를 쫓던 남자는 선로에 무릎을 꿇은 채 분노에 차서 팔을 치켜들고 밤공기 속으로 고함을 질러 대고 있었어요. 이내 남자는 조그만 점이 되어 멀리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죠. 카터는 “잘 있어요” 하며 손을 흔들었어요. 마을에, 잘레프스키 여사에게, 그리고 자기를 뒤쫓던 남자에게. 만약 ‘잘 지내지 마세요’라고 인사하는 방법이 있었다면 카터는 분명 남자에게 그렇게 했을 거예요.
해가 뜨면서 하늘이 아름다운 파란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기차의 흔들림과 시끄럽게 울렁대는 금속 소리가 익숙해지면서 거세게 뛰던 심장이 진정되었고, 소년은 턱이 빠져라 하품을 했어요. 카터는 아래로 내려와 기차 칸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수백 개의 상자들이 나무 팔레트 위에 쌓여 있었어요.
둘
짜잔! 여기서 잠시 과거를 회상할 거예요.
알아요. 이야기가 한창 진행되려는데 딱 멈추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지요. 하지만 이다음에 일어날 일을 말하기 전에 여러분이 카터에 대해 알아야 할 게 몇 가지 있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요. 이 남자애는 누구지? 왜 달아나고 있는 거야? 누구에게서 달아나는 걸까? 카터의 탈출에 대한 이야기로 곧 다시 돌아갈 거라고 약속하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여러분이 저에게 구속복을 입히고 열쇠를 없애도 좋아요. 세상에, 무서워라!
아무튼…… 이야기를 계속해 보죠.
★★★
카터는 삼촌에게서 마술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삼촌에게 배운 것들은 그냥 속임수였어요. 마술은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마술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적어도 카터는 그렇게 믿었어요.
카터는 아주 어릴 때부터 경이롭고 행복하고 환상적인 것들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건 카터의 잘못이 아니었어요. 때로는 착한 사람들에게 아주 나쁜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까요.
카터는 사랑스러운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엄마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날 해변에 내리쬐는 햇살 같은 미소를 짓는 분이었죠. 아빠는 귀에서 동전을 꺼내고 카드 한 벌을 허공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답니다. 그들은 북쪽의 작은 도시 외곽 나무가 우거진 구불구불한 길가에 있는 하얀 테두리의 작고 빨간 오두막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은 어린 카터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죠.
부모님은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베이비시터가 경찰에 신고했을 때까지도 카터는 그저 아빠의 마술 트릭이길 바랐답니다. 하지만 그다음 날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자, 카터는 차갑고 힘든 진실을 마주해야 했어요.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걸, 부모님이 끝내 사라지고 말았다는 걸 말이죠.
어린 카터는 먼 친척에게 맡겨졌어요. 그 친척의 이름은 실베스터 ‘슬라이’ 비턴이었죠. 편의상 우리는 그를 슬라이 삼촌이라고 할 거예요.
슬라이 삼촌은 작고 강단 있는 남자로, 솔기는 다 닳아빠진 데다가 좀먹어 생긴 구멍을 천으로 덧댄 갈색 트위드 재킷을 늘 입고 다녔죠. 기름때가 낀 장발을 대충 뒤로 묶고, 헝클어진 턱수염으로 뾰족한 턱을 겨우 가렸어요.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별명*이 여우를 닮아서 붙은 거라고 말했지만, 카터는 항상 삼촌은 여우보다 족제비를 더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삼촌은 종종 족제비처럼 굴었거든요.
* ‘슬라이(sly)’에는 ‘교활하다’라는 뜻이 있다.
이 남자는 카터를 돌보는 게 달갑지 않았답니다. 카터도 이 족제비와 같이 사는 게 행복하지 않았죠.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카터는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슬라이 삼촌도 카터의 아버지처럼 마술 트릭을 알았어요. 카터의 코에 화장지를 갖다 댄 다음에 재채기를 시켜서 유리잔에 동전을 폭포처럼 쏟아지게 할 수 있었죠. 그런 다음 동전들을 하나씩 사라지게도 할 수 있었고요. 이 마술을 보고 카터는 어안이 벙벙해졌답니다.
카터는 삼촌에게 마술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 달라고 졸랐어요. 조수를 두는 게 이득이 될 거라고 생각한 슬라이 삼촌은 카터에게 그가 아는 걸 전부 다 가르쳐 주었죠.
알고 보니 카터는 타고난 마술사였어요. 얼마 안 가 카터는 슬라이 삼촌의 트릭을 모두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삼촌보다 훨씬 더 잘했죠. 카터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어요. 길고 탄력 있는 손가락 덕에 카터는 손이 빨랐고 카드 섞는 솜씨도 뛰어났어요. 동전들을 사라지게 한 다음 방 저편에서 다시 나타나게 할 수도 있었죠. 허공에서 난데없이 카드를 나타나게 할 수도 있었어요. 심지어 슬라이 삼촌의 재채기 트릭을 개량해서 동전 대신 각얼음을 사용하기도 했답니다(사람 콧구멍에서 커다란 얼음이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인상적이었죠).
슬라이 삼촌은 자기 조카가 본인이 오랫동안 써먹은 최고의 마술 기법을 개량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축하해 줄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은 아니었어요. 다만 카터가 그의 앞에서 재채기를 하며 각얼음을 쏟아냈을 때 이게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카터의 생일에 슬라이 삼촌은 파티를 열어 주는 대신 카터를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거리를 걷던 사람들 중 한 커플 앞에서 카터가 첫 번째 마술 쇼를 하게 했어요.
카터는 그들에게 다가가는 동안 부스스한 금발을 초조하게 옆으로 넘기면서 창백해진 볼을 꼬집었어요. 푸른 눈이 커다래졌죠. 커플은 소년이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 즐거운 듯했어요. 카터는 우선 카드 한 벌을 꺼내서 여자에게 한 장을 고르라고 한 다음 카드를 두 손 사이에 감춰서 자기에게는 절대 보여 주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자, 딱 붙들고 계세요.” 소년이 말했죠. “제가 무슨 카드를 골랐는지 맞혀 볼게요. 다이아몬드 퀸인가요?”
“맞아, 맞아!” 여자가 놀라며 말했어요. 그리고 손에 있는 카드를 확인하려던 그녀는 놀라 소리를 질렀답니다. “카드가 사라졌어!”
“이거 말인가요?” 카터가 손에 쥐고 있는 카드를 들어 올리며 물었죠.
“어떻게 한 거지?” 남자가 말했어요.
“당연히 마술로 그랬죠.” 카터가 대답했어요. 그런데 사실 카터는 진짜 마술이 있다는 걸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소년은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다른 것으로 관심 끄는 방법을 몇 가지 알고 있었답니다. 카터는 점점 대담해져서 이렇게 덧붙였죠. “자, 그럼 이제 제게서 가져간 카드를 돌려주시겠어요?”
“난 카드를 가져간 적이 없는데.”
“그럼 아저씨 주머니에 있는 건 뭐예요?”
남자가 상의 가슴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거기에는 다이아몬드 킹이 있었어요.
커플이 웃음을 터뜨렸어요. 카터는 손목을 튕기듯 빠르게 움직여서 화려한 색깔의 종이 꽃다발을 만들어 냈죠. 그걸 여자에게 건넨 다음 슬라이 삼촌이 가르친 대로 허리 숙여 인사를 했어요. 커플은 계속해서 박수를 쳤답니다.
여자가 카터의 뺨에 키스를 했어요. 남자는 5센트 동전을 줬죠. 삼촌은 카터를 훠이훠이 쫓아내고는 그들과 악수했어요.
카터는 태양처럼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 젊은 커플에게 기쁨을 안겨 주었으니까요. 소년은 그들의 미소를 보면서 부모님과 그분들의 웃음을 떠올렸어요. 파티 따위는 아무 상관 없었어요. 정말 멋진 생일이었죠. 최소한 삼촌이 남자의 손목시계와 여자의 결혼반지를 훔쳤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슬라이 삼촌은 카터를 이용했던 거예요. 카터는 악당들이 순진한 사람들에게서 도둑질하는 이야기를 정말로 많이 알고 있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카터는 누군가가 부모님을 훔쳐 간 느낌이었죠.
소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좋았던 기분이 풍선에서 바람이 새어 나가듯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답니다.
★★★
슬라이 삼촌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좋은 보호자는 아니었어요. 그 반대였죠. 여러분은 이미 그가 도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답니다. 사기꾼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을 말해요.
카터의 삼촌은 ‘초단기 사기’를 즐겼답니다. 초단기 사기는 며칠 혹은 몇 주에 걸쳐서 남을 속이는 일을 뜻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가능한 빨리, 눈 깜박할 사이에 돈이나 귀중품을 슬쩍했죠. 자신의 물건을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달았을 즈음엔 슬라이 삼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어요.
이게 바로 카터에게 집이 없었던 이유랍니다. 소년은 친구도 자기 침대도 가져 본 적이 없었어요. 학교에 다녀 본 적도 없고, 안전한 느낌을 주는 곳에 머물러 본 적도 없었죠. 카터와 삼촌은 운이 좋은 날에는 노숙인 쉼터에서, 운이 나쁜 날에는 어두운 골목에서 잠을 자면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끊임없이 옮겨 다녔어요. 어쨌거나 다른 사람의 물건을 사라지게 만드는 버릇이 있다면, 본인 역시 자취를 감추는 방법을 아는 게 최선이니까요.
심지어 슬라이 삼촌은 때때로 카터를 두고 며칠씩 사라지기도 했답니다. 카터는 삼촌이 어디로 갔는지, 다쳤거나 문제가 생겼는지, 다시 볼 수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슬라이 삼촌은 언제나 설명 한마디 없이 돌아오곤 했죠. 그럴 때 카터는 어디 갔다 온 거냐고 묻지 않는 편이 낫다는 걸 알았어요. 특히나 삼촌의 눈이 냉혹함과 분노로 번들거리고 멍과 긁힌 상처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을 경우에는 말이죠.
카터는 혼자 있을 때는 트릭을 연습하거나 근처 도서관에 가곤 했어요. 소년은 희망과 강인함과 놀라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에 푹 빠져들었죠. 하지만 기관사, 체육, 파이 조리법에 대한 책도 좋아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카터는 스스로를 돌보는 데 아주 능숙한 아이가 되었어요. 또한 재주넘기 전문가가 되었고, 달달한 음식을 꿈꾸는 사람이 되었지요.
세월이 흐를수록 카터의 인내심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의 삼촌은 사기꾼이었어요. 카터도 그걸 알았죠. 그럼에도 슬라이 삼촌이 언젠가는 한 마을에서 직업을 얻고 정착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건 미약하고 어쩌면 불가능한 희망일지도 모르지만, 카터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계속 바랐답니다. 유난히도 상쾌했던 어느 봄밤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저기 있는 아저씨 보이지?” 슬라이 삼촌이 카터에게 속삭였어요. “네가 가서 저 아저씨 시계를 슬쩍해 왔으면 좋겠다.”
“제가 몇 번씩 말씀드렸는데요.” 카터가 말했어요. “전 도둑질 안 해요.” 소년은 몇 년 전에 삼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고 나서 이 규칙을 스스로 정했어요. 절대 삼촌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이죠. 이건 카터가 그때부터 지켜 온 규칙이었답니다.
“이 쬐끄만…….” 슬라이 삼촌이 카터의 셔츠를 거칠게 움켜쥐었어요. 그때 경찰이 나타났습니다. 경찰봉을 빙빙 돌리면서 거리를 따라 걷고 있었죠. 슬라이 삼촌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마치 사랑하는 아들이라도 되는 양 카터를 끌어안았어요. “……햇살 덩어리 같은 녀석! 아, 안녕하세요, 경찰관님.”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걸어갔어요.
경찰이 시야에서 벗어나자 슬라이 삼촌은 카터의 옷깃을 잡고 으르렁거렸어요. “좋아, 그럼 내가 일하는 동안 눈 똑바로 뜨고 망을 봐.”
카터의 삼촌이 생각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어요. 그는 훌라후프를 발명하거나 중장비를 운전하지도 않았고, 농장에서 장군풀을 기르거나 동물원 뱀이 아이들을 물지 못하게 훈련시키지도 않았죠. 슬라이 삼촌에게 일이란 사기꾼들이 하는 일과 똑같았어요. 남들에게서 훔치는 것 말이에요.
카터는 손가락으로 가죽 가방의 모서리 부분을 문질렀어요. 소년이 가진 물건 전부가 그 가방에 들어 있었죠. 트럼프 카드 한 벌, 컵 세 개, 동전 세 개(동전 중 하나에는 앞면에 깊게 긁힌 자국이 나 있었어요), 공깃돌 몇 개, 여벌 양말, 밧줄, 배달원 모자, ‘LWL’이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작은 나무 상자. 상자는 잠겨 있어서 열 방법이 없었지만 그래도 카터에게는 상관없었어요. 부모님이 남긴 것 중 유일하게 갖고 있는 물건이었으니까요.
“저는 그냥 숙소로 돌아가는 게 낫겠어요.” 카터는 슬라이 삼촌에게 속닥였어요. “배가 아파요.”
“거긴 임시 시설이다.” 슬라이 삼촌이 딱 잘라 말했어요. “네가 지질하게 굴게 놔둘 것 같아? 그딴 생각은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위험할 뿐이야. 자, 반바지 똑바로 올려 입고 날 도울 준비나 해. 알았어?”
카터는 슬라이 삼촌이 희생자를 찾아 거리를 탐색하는 동안 불만을 속으로 삼켰어요. 잠시 후 아까 그 경찰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경찰은 어슬렁거리면서 천천히 가게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죠. 카터가 휘파람을 불었어요. 지금 무슨 범죄를 저지르고 있든 멈추라는 신호였죠. 경찰이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지자 카터는 다른 경찰이 없는지 좌우를 둘러보았어요. 아무도 보이지 않자 카터는 슬라이 삼촌에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슬라이 삼촌이 골목 어귀로 들어가 마침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기, 잠깐만요. 이거 얼마나 쉬운지 좀 볼래요? 와 보세요, 진짜 쉬운 게임이에요. 단 1분이면 돈을 두 배로 딴다고요. 숫자 세는 것만큼 간단하다니까?” 행인들은 쉽다는 말에 끌린 게 분명했어요. 슬라이 삼촌이 펼친 테이블 앞에 발걸음을 멈췄으니까요.
카터는 슬라이 삼촌은 일할 때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어요. 남을 속일 때 삼촌은 백만 와트짜리 전구처럼 환하게 빛났답니다. 재미있고 매력적이고 전기처럼 잽싸졌죠. 삼촌이 미소를 지으면 나이 든 여자들은 볼이 발그레해졌고, 부루퉁했던 남자들은 박수를 쳤으며, 떼쟁이 아기들은 눈깔사탕 받을 준비를 했죠.
하지만 일하지 않을 때 삼촌의 눈은 싸늘하고 어두워졌어요. 그럴 때 삼촌의 곁에 있는 건 딱딱한 모서리투성이인 깜깜한 방을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일이었죠. 한 걸음만 잘못 디뎌도 발가락을 심하게 찧어서 눈물이 핑 도는 거예요. 그동안 카터는 발가락을 무척 많이 찧었답니다.
“이리 와 보세요, 신사 숙녀 여러분.” 슬라이 삼촌이 골목에서 외쳤어요. “양말이 벗겨질 정도로 놀라 자빠질 게임이 있다니까요!”
“그 전에 삼촌이 당신들의 양말을 벗겨 가지 않는다면 말이지.” 카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삼촌이 일하는 동안 해가 지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싸늘한 공기에 카터는 소름이 오소소 돋았어요. 계절은 여름에 가까웠고 근처 공원의 나무들은 녹음이 짙었지만 구름이 해를 가리자 카터는 몸을 떨었어요. 가방에 스카프나 재킷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슬프게도 소년은 둘 다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계속 감시해야 했기 때문에 카터는 삼촌의 손놀림을 유심히 연구했어요. 슬라이 삼촌은 손이 빨랐어요(그렇지만 카터는 자기 손이 더 빠르다는 걸 알고 있었죠). 삼촌이 사람들을 속여 돈을 훔칠 때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이른바 ‘야바위 게임’이었죠.
야바위 게임은 작은 사발 세 개를 테이블 위에 엎어 놓고 시작해요. 슬라이 삼촌은 마른 콩 한 개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다음 세 개의 사발 중 하나에 감추었어요. 그런 다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자기가 사발을 움직이는 동안 잘 지켜보라고 했어요. 슬라이 삼촌이 움직임을 멈추면 어느 사발에 콩이 들었는지 사람들이 알아맞히는 거였죠.
“쉬운 거 같은데.” 지나가던 다른 행인이 말했어요. “한번 해 봐야겠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선생님.” 슬라이 삼촌은 콩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다음 사발로 덮고 다른 사발 두 개를 양쪽에 놓았어요. “먼저 거세요. 그렇죠, 돈을 테이블에 놓으시면 됩니다. 자, 이제 콩이 든 사발을 잘 보세요.” 삼촌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