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존 칼빈
장로교의 신학을 세운 프랑스의 개신교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이다. 1509년에 프랑스의 작은 도시 누아용에서 태어난 칼빈은 어려서부터 사제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차근차근 그 길을 밟으며 파리에서 공부하다가 아버지의 요청으로 오를레앙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부르주로 옮겨 계속 법학을 공부하던 중 그는 회심하고 개혁신앙을 따르게 되었다. 1533년 니콜라스 콥의 파리 대학 학장 취임 연설문을 작성해준 칼빈은 가톨릭교회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 바젤로 피신하여 거기서 《기독교강요》를 집필, 초판을 펴냈다.
그는 기욤 파렐의 요청으로 제네바로 건너가 목회하며 본격적인 개혁운동에 임했다. 제네바를 그리스도의 정신이 지배하는 복음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엄격한 개혁에 반발하는 시민 반대에 부딪쳐 제네바를 떠나 스트라스부르에 머물렀다. 그러나 1541년에 제네바 시의회의 초청으로 다시 제네바에 부임하여 교회 조직을 정비해나갔다. 반대파의 계속되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에 합당하게 살도록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로 개혁신앙운동을 이어나갔다.
칼빈은 신학과 교리만이 아닌 거룩한 신앙과 삶까지 강조한 목회자였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주장하며 신앙의 진정한 권위는 성경에 있음을 선언했다. 그는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에 정통했고 법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논리 전개 역시 매우 치밀했다. 그의 지성이 참 진리로 무장되었기 때문에 대표작 《기독교강요》를 비롯해서 수많은 성경 주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다.
지은이 오병학
지은이 오병학 총회신학교를 졸업했다. 한국크리스천문학협회 회원이며 푸른성서연구회를 인도하면서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4년간 극동방송국에서 설교를 담당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규장 신앙위인 북스〉, 〈동화만화 시리즈〉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그리스도인을 본받아》, 《어거스틴의 참회록》 등이 있다.
저자의 말
복음 진리의 빛으로 교회를 변화시킨,
하나님의 사람
존 칼빈, 그가 종교개혁에 남긴 큰 업적은 아직도 놀라운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은 명성에 걸맞지 않게 매우 초라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매우 간소하게 치러졌기 때문이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시에 가장 훌륭한 제자였으며 또 최초로 그의 전기를 썼던 베자는 칼빈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묘사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태양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가 짧은 생애 동안에 이룩하여 놓은 복음적 정신은 이 세상에 훨씬 더 밝은 빛을 비추게 되었으니, 그의 죽음은 참으로 숭엄하기까지 했다.
1517년 10월 31일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젊은 수도사 마르틴 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크의 성당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모두 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만약 존 칼빈이 제네바를 중심으로 개혁운동을 전개해 나가지 않았다면 아마 이 땅에 오늘과 같은 개신교회가 생겨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칼빈 당시에는 종교개혁운동의 중심지가 독일에서 제네바로 옮겨졌을 정도였다. 그는 개혁신앙의 창시자로서 역사 위에 그 위상이 더욱 돋보이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그는 개신교의 원줄기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생전에 프랑스로 들어가 활동하는 여러 개혁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려의 글을 보낸 적이 있다.
여러분이 박해를 이겨내고 최후의 승리를 쟁취할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주님처럼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승리의 보장입니다.
반대파의 수많은 방해와 위협 속에서도 묵묵히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목표를 바라보며 나아갔던 그의 삶과 신앙의 행적은, 거짓 신앙이 가득 찬 오늘날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되며, 동시에 능히 세상을 이길 힘을 준다.
오병학
Chapter 1
어린 시절
“선생님은 참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당신은 우리 시대를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이 선생님을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개혁운동을 성공시키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높이며 칭송했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결코 훌륭한 사람이나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 그러셨듯이 나도 한 평범한 시민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나를 들어 쓰셨을 뿐이지요.”
이처럼 그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필요한 일을 맡기시기 위하여 자기를 들어 쓰셨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의 말대로, 그가 이룬 업적에 비해서 그의 가문은 그리 좋은 가문이 아니었다. 명예도 부도 권력도 가지지 못했으며, 오히려 하류층이라고 할 정도였다.
존 칼빈(John Calvin, 그는 프랑스 사람이므로 ‘장 칼뱅’Jean Calvin이라고 읽어야 한다. 하지만 그의 이름이 영어식 표기인 ‘칼빈’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그의 신학과 생애를 연구하는 〈세계칼빈학회〉에서도 그를 ‘칼빈’이라고 부르고 있는 까닭에 이 책에서도 ‘칼빈’이라고 통일하여 쓴다)은 1509년 7월 10일에 프랑스에 있는 작은 지방 도시의 하나인 누아용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라르 칼뱅과 잔느 르프랑의 다섯 아들 중 네 번째 아들이었다. 칼빈의 다섯 형제 중에서 둘은 일찍 죽었다.
그가 태어난 누아용은 작은 도시였다. 그러나 가톨릭 주교들의 주요 계파를 형성하는, 교회사에서는 의미와 역사가 깊은 곳이었다. 큰 성당 하나와 수도원 둘, 시교구 넷이 있어 종교 도시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조용하고 아늑한 도시가 누아용이었다. 제라르는 당시 성당 공증인의 한 사람으로서 교회 법정의 서기 일을 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직 나이 어린 존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는 원래 누아용에서 살고 있었나요?”
“아니. 내가 젊었을 때에 폰 레베크에서 살았단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30년이 더 되었구나.”
폰 레베크는 누아용에서 약 2마일 떨어져 있는 작은 항구도시였는데, 포도주를 생산하여 오우즈 강을 이용해 여러 다른 곳으로 운반하는 상업도시였다. 오우즈 강은 세느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이었기 때문에 배를 통하여 편리하게 운송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왜 폰 레베크를 떠났어요?”
“네 할아버지를 따라서 하던 일에 그만 싫증이 났거든.”
“할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포도주 통을 배에 실어 나르는 뱃사공 일이었어. 또 시간 나는 대로 손수 술통도 만들어야 했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단다.”
칼빈의 할아버지는 폰 레베크에서 평생 동안 술통을 만들고 그 술통을 배로 운반하는 사공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이었던 제라르 역시 일찍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그 일을 해왔다. 그러다가 위의 두 형이 그 일에 싫증을 내고 파리로 떠나버렸다.
그것을 본 제라르의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다.
‘형들도 아버지의 일이 싫어서 떠나버렸는데 왜 나만 여기서 고생해야 하지?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동안 아버지처럼 술통을 만들고 나르는 일만 해야 할 거야.’
이렇게 생각한 그 역시 1480년에 형들처럼 폰 레베크를 떠나 이곳 누아용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그럼 아버지는 여기 오자마자 곧 성당 일을 했나요?”
“아냐. 누가 다른 곳에서 살다온 사람에게 무작정 성당 일을 맡겨 주겠니. 처음엔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했지. 우선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그때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술통 만드는 일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내게 희망을 주었지. 그래서 힘들어도 꾹 참고 견뎠단다.”
정말 그랬다. 제라르는 아무 계획 없이 낯선 지방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제법 영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을 잘했고,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 눈에 띄었다. 그는 신앙심도 깊은 사람이어서 성당에 열심히 출석했으며 누가 무슨 일을 맡겨도 매우 성실하게 해냈다. 그래서 성당의 참사회에서는 그를 공증인으로 삼았고 성당 법정의 서기 일까지 맡겼다.
이제까지 밑바닥 생활만 해왔던 제라르로서는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안정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겐 성당의 공증인과 법정의 서기라는 직업이 별것 아니었겠지만 그에게는 분에 넘치는 지위가 아닐 수 없었다. 술통을 만들고 나르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당 일을 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단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그런 일을 꿈이나 꿀 수 있었겠니.”
“그렇구나. 정말 잘된 일이에요.”
“존. 사람은 언제나 정직하고 성실해야 해. 내가 하나님의 섭리로 성당 일을 맡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서 얻은 일은 아니란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섭리를 베풀지는 않으시거든. 항상 그랬듯이 나는 성당에서도 늘 진실하고 성실했어. 그렇기 때문에 그런 중요한 직책까지 맡을 수 있었던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예, 아버지. 잘 알겠어요.”
제라르는 후에 성당이 교황에게 바치는 서류의 공증인이 되었고, 이런 일 때문에 성당의 참사회에서는 그에게 더욱 높은 대접을 해주었다. 이렇게 그는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어 지위를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재물도 늘어나 중산층에 속할 만큼 되었다. 그래서 그는 가끔씩 자신의 생활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지난날과 비교하면서 흐뭇해하곤 했다. 또한 출세의 기쁨을 맛본 터라,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끊임없이 출세를 바라며 준비하고 노력했다.
제라르 칼뱅은 40세가 넘어서야 잔느 르프랑을 만나서 결혼했다. 늦은 결혼이었지만 잔느 르프랑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밀 수 있었다.
존의 어머니 잔느 르프랑은 누아용 토박이였던 부유한 여관 주인의 딸이었다. 제라르는 뛰어난 미인이자 가톨릭 교리를 철저하게 지키는 신앙인 잔느를 아내로 맞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갔다.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자네가 누구이기에 갑자기 와서 내 딸과 결혼하겠다는 건가?”
“예, 제 이름은 제라르 칼뱅입니다. 지금 누아용에서 성당의 공증인이자 법정 서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보아하니 결혼할 시기가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결혼을 못했단 말인가?”
“일에 너무 열중하다 보니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성당의 공증인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음, 생각해보기로 하지. 우선 돌아가 있게나.”
잔느 르프랑의 아버지는 제라르의 나이가 많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성당의 공증인이요 법정 서기라는 직책에 호감이 갔다. 돈은 많았으나 낮은 신분 때문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터라, 딸이 그와 결혼을 하면 신분에서 오는 열등감을 조금은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둘의 결혼을 허락했다. 이렇게 둘의 결혼은 쉽게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 성격이 다르긴 했지만 행복하게 잘 살았다. 제라르 칼뱅은 신앙심이 깊으면서도 성취 욕구가 강한 편이었으나 잔느 르프랑은 경건한 신앙생활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겸손한 성품의 여자였다.
이들은 곧 큰아들 샤를르를 낳았고, 이어서 프랑수아, 앙투안, 그리고 존 칼빈을 낳았다. 다섯 번째이자 막내를 낳은 후에는 어려서 죽은 셋째 아들 앙투안의 이름을 붙였다. 훗날 둘째인 프랑수아마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존은 삼형제로 자라났다.
중세 말의 유럽에서는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엄격하게 정신훈련을 시켰다.
제라르 칼뱅의 아들들도 엄한 가정교육 아래에서 자랐다. 작은 잘못에도 채찍을 맞곤 했다. 그래서인지 칼빈의 큰형인 샤를르는 고집스럽고 반항심이 컸다.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누아용 주교가 수행하는 일의 많은 부분을 대신 담당했으나, 명예롭지 못한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다. 막내 앙투안은 훗날 형 존 칼빈을 따라 스위스 제네바로 가서 출판 사업을 벌이는 등 형의 교회 개혁에 큰 도움을 주었다.
Chapter 2
어머니를 떠나보내다
엄하긴 하지만 그래도 칼뱅 가의 형제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다. 재산도 넉넉해서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다. 그 당시는 첫 교육을 집에서 시작했다. 칼뱅 가의 형제들도 가정교육을 시작했는데, 존은 영리해서 학과 공부도 잘 따라갔다.
“여보,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야 다 같지만 존은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가 좋은 것 같소. 앞으로 성직자가 되면 좋을 텐데 말이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원을 모르실 까닭이 있나요. 틀림없이 그대로 이루어주실 거예요.”
존의 부모님은 그에게 남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 잔느는 존이 다섯 살 나던 해에 성 스데반 축일인 12월 26일에 존을 데리고 우르스캄 수도원을 방문했다. 아들의 신앙심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우르스캄 수도원은 지어진 지 오래되어서인지 건물들이 고풍스러워서 더욱 아늑해 보였다. 어린 존의 눈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검정색 수도복을 입은 수도사들의 모습이었다. 옷도 보통사람들과 다른 데다 걸음걸이도 점잖아서 매우 신기했다.
“어머니,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응, 수도사들이야.”
“수도사가 뭔데요?”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 결혼과 가정을 포기하고 수도원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이지.”
“아, 그렇구나.”
그러나 어쩐 일인지 어린 칼빈의 눈에 수도사들의 얼굴은 무겁고 어둡게만 보였다.
“하나님만 사랑할 수 있다면 마음이 아주 기쁘겠네요?”
“당연하지. 그래서 사람들이 수도사가 되는 거란다.”
“그렇다면 참 이상해요. 저 수도사들 얼굴을 좀 보세요. 하나도 기쁜 것 같지 않은걸요?”
하나님만 사랑하면서 섬기는 사람들이라면 기쁨으로 밝은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할 터인데, 존의 눈에 비친 수도사들의 얼굴은 온통 어둡기만 했다.
당돌한 질문에 어머니 잔느 역시 잠시 당황했다. 아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잔느는 약간 더듬거리며 어렵게 대답을 들려줄 수밖에 없었다.
“수도생활이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괴로운 일이기도 하단다. 언제나 엄숙한 태도로 생활해야 하니까. 그래서 수도사들의 표정이 밝지 않고 어두워 보이는 거야.”
어린 존은 어머니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어둡고 무거운 수도사들의 얼굴. 이것은 존의 마음에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았다. 이렇듯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예리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일도 쉽게 지나쳐버리지 않았다.
수도원 안에 들어오니 여기저기에 성상(聖像, 예수님과 마리아, 사도들의 모습을 형상화 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잔느는 어느 여인상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간절히 빌었다.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존이 물었다.
“어머니, 이분이 누구예요?”
“응, 성 안나시란다.”
“성 안나가 누군데요?”
“성모님이 누군지는 너도 알고 있지?”
“그럼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죠.”
“성 안나는 그 성모님의 어머니시란다. 그러니 얼마나 훌륭한 분이니.”
그 사이에도 수도원을 방문한 사람들은 성 안나의 성상 앞에다 작은 꽃다발을 바치고 수없이 입을 맞추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성상을 어루만지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기도 했다.
“오, 성 안나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린 존은 이런 장면이 낯설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성당에서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 상 앞에 허리를 굽혀 절하면서 비는 일은 많이 보았지만 여러 성상들 앞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왜?”
“저도 성 안나께 뽀뽀하고 싶어요.”
“정말이니? 네가 입을 맞추어드리면 성 안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니. 참 기특한 생각이구나.”
존은 남들이 하는 대로 두 눈을 감고서 입술을 그 성상에다 대었다. 그러나 성상에서 전해지는 것은 싸늘한 감촉뿐이었다. 성상에서 입술을 떼자 기도문을 외웠다.
“성 안나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그 모습이 자랑스러워 잔느는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존이 성상에 입을 맞추면서 기도한 일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는 훗날, 성상 앞에서 기도하며 경배하는 일은 우상숭배와 다름없는 일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수십 년 후에 그는 이때의 일을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성상숭배는 곧 우상숭배라고 단정하는 글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에 어머니와 함께 우리 교구 안에 있는 한 수도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날 수도원에서 보았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날은 마침 성 스데반 축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성상보다 성 스데반의 성상 앞에 모여들어 열심히 기도했다. 나와 어머니 역시 그 성상을 찾아보았다. 성 스데반 성상 주위로는 그를 돌로 쳐 죽인 폭도들의 동상까지 만들어 세워져 있었고, 스데반을 지키는 천사 미가엘 성상 곁에는 간악한 사탄의 동상도 만들어져 있었다. 성 스데반이 순교를 당한 현장을 기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꾸며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이때 결코 웃고만 지나칠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사람들은 스데반의 성상 앞에서뿐 아니라 폭도들의 조각 앞에서까지 절을 하는가 하면, 그 앞에다 묵주와 꽃다발을 바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스데반의 동료들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 일은 도리어 약과였다. 사람들은 미가엘 성상 곁에 세워진 사탄의 형상에게도 절을 하고 그 앞에 촛불을 밝혀놓기도 했다. 거기에 세워진 조각상들이 모두 거룩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하는 데서 빚어진 일이었다.
이런 일을 보게 된 것은 훗날 내게 아주 좋은 암시를 주었다. 사탄의 형상 앞이 아니라 그 어떤 거룩한 분의 앞이라 하더라도, 성상에 대한 경배는 우상숭배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잔느는 영리한 존이 남편의 소원처럼 성직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그 소원을 뒤로 한 채 존이 겨우 여섯 살이 되던 1515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참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랄 시기에 어머니를 잃은 존은 큰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존은 아이답지 않게 말이 없어지고 시무룩한 표정에 늘 우울한 모습이었다.
어느 날 제라르가 존을 데리고 아내의 무덤을 찾았다. 그러자 존은 어머니의 묘비를 끌어안고 멍하니 서 있었다.
“존, 어머니가 지금 다시 살아서 돌아왔으면 좋겠니?”
그러자 어린 존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
“어머니가 무척 보고 싶지?”
“네.”
“어머니가 늘 너에게 말씀하셨지? 이 땅에는 슬픈 일이 많지만 저 하나님나라에는 즐거움밖에 없다고.”
“….”
“지금 어머니의 몸은 비록 땅에 묻혀 있지만 영혼은 하나님나라에 계신단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 알겠니?”
“그렇지만 난 어머니가 내 곁을 떠난 것이 싫어요. 만약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어머니가 나도 데리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우리가 비록 헤어져 있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거야. 그러니 슬픔을 조금만 참아보자꾸나.”
엄하기만 하던 아버지가 자상한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지만 아버지의 위로도 그의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어머니를 잃은 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슬픔을 참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나 문득문득 어머니 생각이 선명하게 떠오를 때면 밤을 지새면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어머니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존에게 새어머니가 생겼다. 아버지 제라르 칼뱅이 아이들을 모두 돌보기가 어려워 재혼을 한 것이다. 새어머니는 그 후 딸 둘을 낳아서 식구도 더 늘어났지만 옛날과 같은 행복은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이때쯤 아버지는 누아용 성당의 주교 아래서 비서직까지 맡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방 유지로서 탄탄한 지위를 굳혀가고 있었다. 본래 주교의 비서직은 대대로 상류층 인사들이 차지했던 자리였다. 그런데 제라르 칼뱅이 그런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자리가 바뀌자 신분도 바뀌어 그는 당당히 상류층 인사가 되었다. 아니, 그가 일부러 상류층 인사의 행세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대접해주었다.
제라르 칼뱅은 원래 성공에 대한 욕심이 큰 사람이었다. 그가 당시 성당에서 하던 일은 행정적인 일이었다. 종교혁명이 일어나고 사회가 변화되던 그 즈음의 가톨릭교회는 굳어진 관료 조직이었기 때문에,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교회에서 직책을 높이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았다. 제라르 칼뱅은 그것을 잘 알고 이용하여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는 샤를르와 존이 누아용 성당의 신부로 임명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아들들도 자신과 같은 성공의 길을 가기를 소원했다. 그러면서 어린 샤를르와 존이 신부의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주선했다.
아버지 제라르는 영리한 존에게는 남다른 기대를 걸고 있었다.
“존. 나는 네가 장차 신부가 되었으면 해. 그게 이 아버지의 소원이란다.”
“저도 신부가 되고 싶어요. 그래야 하나님의 일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꼭 필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아두어야 해.”
“그게 뭔데요?”
“귀족들과 잘 사귀어두는 거야.”
“신부가 되는 일과 귀족들과 사귀는 일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신앙이 좋다고 그냥 신부가 되는 게 아니야. 결국 귀족들의 손을 거쳐서 신부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기억해라.”
“…?”
“나는 지금도 신부만이 아니라 주교까지도 되고 싶지만 이젠 너무 늦었단다. 그렇지만 너만은 기어코 주교가 되도록 해줄 거야.”
“하지만 아버지, 전 신부는 되고 싶지만 귀족들과 사귀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신부가 귀족들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굳이 신부가 되고 싶지도 않아요.”
“아직 네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단다.”
존은 귀족이 아니면서 귀족의 행세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그들과 잘 사귀어두어야 신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매우 불편해졌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목표를 바라보면서 전혀 다른 방법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당연히 이루어지는 세상, 어쩌면 이런 작은 모순 속에서 존 칼빈의 개혁정신이 싹텄는지도 모른다.
칼빈의 외모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지나치게 내성적이기도 해서 좀처럼 자기 마음을 다른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속에 담겨 있는 사고력이나 판단력은 어느 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