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내게로 왔다
학생편집자
김동준, 서승현, 윤호진, 이근민, 조영민
이 책에는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좌충우돌 경험담이 그려지고 있다. 이들의 일상이 과학자의 꿈을 키우거나 장래를 고민하는 어린 독자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쓴이
김남현 수리과학과 10
김동준 수리과학과 10
김동훈 물리학과 12
김민재 건설및환경공학과 11
김세은 전기및전자공학부 14
민서영 산업디자인학과 11
박민재 수리과학과 11
박중언 전산학부 12
박진호 수리과학과 12
반지윤 생명화학공학과 12
배영경 물리학과 13
서승현 전기및전자공학부 11
안수경 전기및전자공학부 12
양성진 무학과 15
양홍선 생명화학공학과 12
윤호진 물리학과 11
이경율 산업및시스템공학과 10
이근민 물리학과 13
이민석 원자력및양자공학과 12
이민수 전기및전자공학부 11
이용재 생명과학과 12
이장민 화학과 12
이찬호 전기및전자공학부 12
임재원 수리과학과 09
정우주 화학과 12
조영민 바이오및뇌공학과 12
추천사
| 추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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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순간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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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는 매년 카이스트 학생을 대상으로 ‘내가 사랑한 카이스트, 나를 사랑한 카이스트’라는 주제로 학생들의 글쓰기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동문의 기부로 시작된 일이 이제 카이스트의 정식 사업이 되어 올해로 제4회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 책 『과학이 내게로 왔다』는 그 네 번째 결과물입니다.
‘내가 사랑한 카이스트, 나를 사랑한 카이스트’라는 말에서 ‘카이스트’란 단지 물리적 공간으로써의 카이스트뿐만이 아니라 이 울타리 안에서 청춘을 보내는 학생들이 경험하는 수업・실험실・우정・사랑・기숙사 생활 등등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들에 대한 진솔한 기록을 모은 ‘내가 사랑한 카이스트, 나를 사랑한 카이스트’ 총서는 필자인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날을 구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울타리 바깥의 독자들에게는 카이스트라는, 약간은 특별한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어찌 보면 ‘남달랐을 것 같은’ 친구들의 성장기 혹은 일상을 엿보는 장이었습니다.
『과학이 내게로 왔다』는 학생들이 ‘과학이라는 것이 매우 재미있는 어떤 것이구나!’를 느낀 순간에 대한 기록입니다. 카이스트에 입학한 학생들은, 한국의 교육 체계 속에서 좀 더 일찍 관련 사교육을 받는다거나 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 일상의 어느 순간에 반짝 ‘과학이 이런 재미를 주는 것이구나.’ 하고 느낀 이후 좀 더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서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한 결과 현재 카이스트에서 공부하고 있게 된 듯합니다.
이 책은 그런 학생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모은 것입니다. 조그만 장난감, 주변에서 마주친 벌레, 감동적인 책 한 권, 인상 깊은 영화 한 편, 마음을 울리고 머릿속을 때리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 덕분에 문득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생겨난 관심이 이후의 지속적인 호기심으로 이어지게 된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소박하게 자기 이야기를 쓴 것인데 재미있습니다. 그러니 즐겁게 읽어 주십시오. 지금 중・고등학교에서 어려운 ‘과학’ 때문에 끙끙대는 친구들이라면 조금 더 편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 시절을 지나면서 과학과는 완전히 멀어진 자리에 있다고 여기는 어른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는 한 번쯤 그런 순간이 없었던 것일까?’ 하고 돌이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보면 ‘아! 그 순간에 조금만 더 밀고 나갔다면 나도 과학을 참 흥미롭게 벗 삼을 수 있었겠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에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되는 순간, 과학과 친해지거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그 순간과 마주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상경(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들어가는 글
| 들어가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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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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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카이스트 글쓰기 대회인 ‘내가 사랑한 카이스트, 나를 사랑한 카이스트’ 수상작을 모아 놓은 작품집이다. 글쓰기 주제는 ‘과학과 처음 만나고 좋아하게 된 순간, 내가 과학을 좋아하게 된 이유’였고, 각 작품에는 과학을 좋아하게 된 저마다의 이유가 녹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독자들은 각각의 글 속에서 과학에 대한 카이스트 학생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전문 과학자들의 글을 보면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질서 정연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로 세상이 아름답기만 하거나 질서 정연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아름답지 않거나 알기 어려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 과학자들의 글만 보고 과학에 대한 환상을 품은 채 대학 생활을 시작한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기대와 맞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 『과학이 내게로 왔다』는 오히려 지식과 정보를 잘 풀어주는 기존의 과학 도서들과 차별이 된다. 이 책은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카이스트 학생들이 과학을 배워 가면서 느낀 점을 진솔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들의 특권은 자신이 무언가 모르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에는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좌충우돌 경험담이 그려지고 있다. 이들의 일상이 과학자의 꿈을 키우거나 장래를 고민하는 어린 독자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할 때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각자 찾아야 하는 것으로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이유는 때로 우리가 만들기도 하고, 때로 우리가 열심히 찾아야 만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어떤 방법으로 찾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멀리 동떨어진 사람의 글이 아닌, 보다 가까운 사람의 생생한 경험담을 읽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과학고등학교처럼 특수한 환경이나 상황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경험한 것이 다르다고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지켜봄으로써 조금 더 입체적인 시각에서 자신과 주변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은 배우는 교육 과정도 다르고 학습 환경도 다르지만, 독자는 그들이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알게 된 점이 있다면, 무엇을 배우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느끼는가이다. 지식은 찰나지만 인생의 태도는 인생의 전반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들이 아직도 좌충우돌을 거듭하고 있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커다란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김동준(내사카나사카 학생편집장)
제1장 과학의 참맛을 알려 준 과학자와 과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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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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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및전자공학부 12 안수경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임의의 두 정수를 각각 n제곱(n은 3이상의 정수)하여 더한 결과는 다른 제3의 정수의 n제곱으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경이적인 방법으로 이 정리를 증명했다. 그러나 이 책의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 옮기지는 않겠다.’
여백이 부족해 적지 않겠다니…… 얼마나 오만한 태도인가? 이 말은 수학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 그만큼 많이 패러디가 되고 회자되었던 정리이다.
내가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 대전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는 것은 사이먼 싱이 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 덕분이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 나의 장래희망 란에 수학자를 기재하기 시작했던 본격적인 계기는 분명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덕분이다.
어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유치원에 다닐 때에도 나는 수학을(사실 수학이라기보다는 산수에 가까웠겠지만) 잘했다고 한다. 더하기, 곱하기 숙제가 나오면 친구들이 내 숙제를 베끼는 것이 일상이었다는 걸 보면 곧잘 하기는 했나 보다. 하지만 어릴 때의 내가 수학을 좋아했던 것은 ‘잘하기에 좋아했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잘하니 우쭐하고 그 기분이 좋아 더 열심히 하고 그러면 더 잘하고. 그래서 좋아했던 것 같다.
또한 아버지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다니시는지라 어릴 때부터 과학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자주 과학관을 가면서 과학은 자연스러운 그 무엇이 되었다. 다만 그때까지 과학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든가 흥미를 느끼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수학을 잘해서 좋아하고 과학이 태생적으로 익숙했기에’ 서점에 가면 수학, 과학 코너로 쪼르르 달려가서 새로 나온 책이 없나 두리번두리번 살피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났던 책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나를 진정한 수학, 과학의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5년 5월 21일이었다.(지금도 가지고 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책 밑에 찍힌 도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빨간 표지에 주황빛 도는 노란 글씨로 비장하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 적힌 책을 들고 신이 나 집으로 돌아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가 숙제를 하다가 잘 시간이 되어 이부자리를 폈다. 그리고 오후에 샀던 책을 꺼내 들었다. 무슨 내용일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니.
앤드류 와일즈와의 운명적인 만남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내용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는 수학 수수께끼 내기를 좋아했다. 그가 냈던 많은 수수께끼는 금방 또는 약간의 시간만 투자해도 풀렸지만 단 하나, 3세기가 지나도록 많은 수학자가 덤벼들어도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이다. 실제로 마지막 정리인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았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근대의 정수 이론 및 확률론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페르마.
“임의의 두 정수를 각각 n제곱(n은 3이상의 정수)하여 더한 결과는 다른 제3의 정수의 n제곱으로 표현할 수 없다.”라는 정리는 사실 피타고라스의 정리(직각삼각형의 두 변의 제곱의 합은 빗변의 제곱이다)의 아주 단순한 확장판에 불과하다. 수학에 관심이 있다면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수학자들도 금방 풀릴 것이라 생각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정수론의 대가라고 여겨지던 수학자들이 속속 실패하자 점점 이목을 끌게 되었다.
심지어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지 못한 것을 비관해 자살하는 수학자까지 생기게 되었다니 그 유명세를 알 만하다. 심지어 아서 포기스의 『악마와 사이먼 플래그』 중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악마가 조용히 말했다.
“이봐, 자네 혹시 이거 아나? 다른 행성에 사는 최고의 수학자들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거야. 토성에 갔더니 수학에 도가 텄다는 굉장한 친구가 있더군. 마치 기둥에서 빠져나온 버섯처럼 생긴 녀석이었지. 편미분 방정식을 암산으로 술술 풀어낼 정도로 대단한 녀석인데, 그 친구도 그 문제만은 완전히 두 손 들었대.”
총명했던 소년 앤드류 와일즈는 이 난제를 한 허름한 동네 도서관에서 읽게 된다. 후일에 회상하기를 그는 그때 이 문제를 풀어야겠다는 어떤 운명적인 힘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일생을 바쳐 풀어내기로 결심하고 수학자가 되어 7년간의 은둔 생활 끝에 결국 350년간 수많은 수학자의 무릎을 꿇렸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어낸다. 1997년의 일이다. 내가 책을 읽었던 해가 2005년이니, 고작 8년 전의 일이었던 셈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전율이 일었다. 앤드류 와일즈가 운명적인 힘에 이끌려 평생을 바쳤던 그 학문은 내가 알고 있던 단순한 수학이 아니었다. 완전무결한 그 무엇, 세상의 욕심이나 향락에서 벗어나 순수한 이상향을 추구하는 그 무엇이었다. 수학자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인 것 같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플라톤이 역설했던 ‘이데아’의 개념과 비슷하다.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새벽까지 학원 숙제를 하고 자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하지만 나는 초등학생 때 자정을 넘겨 잔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던 밤에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던 것이다. 다음 날의 학교 수업에 지장을 줄까 걱정해 늦더라도 2시 전에는 늘 잠에 들었던 안수경이 그야말로 무아지경으로 몰입하여 책을 읽은 것이다.
책장을 덮은 후 내가 수학을 대하는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그냥 사칙연산의 연장선인 간단한 산수가 아니라 철학에서 출발했던 수학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맛봤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하디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스킬로스(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중 한 명)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다 해도 아르키메데스(고대 그리스의 자연과학자)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언어는 사라지지만, 수학적 아이디어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불멸’한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나 수학자들은 이 단어에 가장 근접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작은 심장을 뜨겁게 만든 수학
이때부터 내 장래희망은 수학자였다. 친구들이 의아한 얼굴로 “수학자는 무슨 일을 하는데?” 하고 물으면 “어…… 나도 몰라.” 정도로밖에 대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수학자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그게 어느 순간 과학자로 변했고 그 과학자의 꿈은 여전히 유지가 되고 있으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내게 주었던 수학적 영감은 엄청난 것이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나를 매혹했던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문제를 증명해 낸 앤드류 와일즈의 삶이다. 앤드류 와일즈는 열 살에 이 문제를 발견하고는 운명적 이끌림을 느꼈고 실제로 평생을 바쳐 아무도 풀 수 없을 것 같던 난제를 풀어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는 와일즈가 고작 열 살일 때 인생의 목표를 정했다는 사실이다.
ⓒC.J. Mozzochi, Princeton N.J
● 앤드류 와일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후 한 부분에 오류가 있음이 밝혀졌다. 그래서 그는 오류를 피할 수 있도록 증명을 보완하였다.
책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접했던 내 나이가 만으로 열한 살 이었으니 내게도 와일즈처럼 운명적 이끌림이 곧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두근거림, 설렘이 생겼다. 나는 그때, 지금은 그저 배우는 시기이고 삶의 방향은 먼 훗날에 잡힐 것이라는 수동적 태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중대한 시기라는 생각을 배웠다. 나를 책임지는 것을 배운 후 나는 수학, 과학 서적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앤드류 와일즈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어낸 것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나 부 또는 명예에 대한 추구가 아니었다. 순전히, 정말 순전히 학문적인 동기였고 이상적인 동기였다. 그리고 350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이 난제를 내 손으로 풀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은 어리다면 어리지만 또 적지만도 않은 나이다.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해도 세상이 선함으로만 가득 찬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즈음 나에게는 오롯이 순수한 학문적 열정으로 똘똘 뭉쳐 평생을 살아 낸 그의 삶이 어떤 구원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이 정리가 증명된 것이 책을 읽었던 시점에서 겨우 8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도 내게 큰 충격이었다. 큰일은 역사책 속에나 있을 법하다고 여겼었다. 짧게는 몇 십 년 전, 길게는 수천 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한눈에 보아도 정수론의 역사에, 수학의 역사에 그어진 굵은 하나의 획이 10년도 지나지 않은 최근이라니! 이때 나는 현재가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지금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역사 속에 적혀지고 기록될 것이라는 생각. 나도 수학 역사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은 초등학생의 작은 심장을 뜨겁게 했다. 이때의 경험은 아직까지도 내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무의식적인 판단 기준이 되곤 하는 것 같다.
앤드류 와일즈는 1953년생이고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마도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내가 10년 전에 받았던 그 영감보다 더욱 강렬한 영감을 받고 있을 것이다. 수학의 살아 있는 역사, 산증인이 바로 눈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마 매 수업이 특강 같지 않을까?
앤드류 와일즈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은 받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필즈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그였지만 그 상을 받지 못한 이유는 40세 이하에게만 주어진다는 나이 조건을 넘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단 한 명에게만 수상되는 상을 받았다. 바로 ‘볼프스켈’상이다. 이는 볼프스켈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푼 사람에게 주라고 남긴 10만 마르크의 상금이다. 상이 제정된 지 90년이 지나서야 상은 제 주인을 찾아갔고 물론 볼프스켈상은 폐지되었다.
흔히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의 안수경은 이 말을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피곤한 줄도 모르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었을 그때에 이미 수학 그리고 과학은 내게 한 발씩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앤드류 와일즈에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운명처럼 다가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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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을
닮은 맥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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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및전자공학부 11 서승현
“단순함이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서야 얻어지는 가장 높은 수준의 목표이다. 수많은 음을 연주하고 또 연주한 끝에 단순함이라는 값진 보상이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Simplicity is the highest goal, achievable when you have overcome all difficulties. After one has played a vast quantity of notes and more notes, it is simplicity that emerges as the crowning reward of art.”
-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
피아노의 화가, 쇼팽
음악은 내 고등학교 생활의 동반자였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국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까지 문과, 이과, 예체능 중 하나를 결정해 집중적으로 공부할 의무가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다행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과 학업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병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음악과 공부를 똑같이 좋아하지는 않았다. 당시 음악에 푹 빠져 있던 나에게 수학, 과학 공부는 2순위였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 하루는 학교 교향악단에서 타악기 연주자로, 하루는 재즈 밴드에서 피아니스트로, 또 하루는 합창단에서 반주자로 정기 연습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곤 했다. 집에 돌아와서 피아노 레슨을 받고, 노을 지는 풍경을 담은 내 방 창문을 등지고 앉아 저녁까지 피아노 연습을 했다.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를 줄 걱정에 더 이상 연습을 할 수 없는 밤 8시쯤이 되어서야 나는 주섬주섬 책가방을 뒤져 과제를 시작하고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이마저도 공연이 있는 날이면 밤 11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와 꾸벅꾸벅 졸면서 가장 급한 숙제를 겨우 끝내고는 잠이 들었다.
음악과 함께하던 고등학교 생활에서 내게 가장 큰 존재는 쇼팽이었다. 낭만주의 음악의 꽃을 피운 그의 작품을 듣노라면 그에게 ‘피아노의 시인’보다는 ‘피아노의 화가’라는 별명을 붙여 주고 싶었다. 왈츠부터 프렐류드, 소나타, 발라드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은 늘 나에게 음 하나하나를 아껴 가며 고심해 완성한 다채로운 색감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쇼팽의 가장 큰 매력은 마치 몇 백 가지의 물감을 써서 그린 그림이지만 전혀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깔끔함에 있다. 낭만파 음악에 단순함의 미학이라니. 낭만파 음악은 곧 섬세한 감정의 반영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은가?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와 달리 명확한 규칙이나 질서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고 배웠던 나에게 쇼팽의 어구는 혼란스러웠다. 이런 내가 쇼팽의 가치관을 이해하게 된 계기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혁명’을 공부하면서이다.
● 폴란드의 작은 마을, 젤라조바 볼라에 위치한 쇼팽 박물관. 그의 생가를 개조한 박물관으로 1945년 개관하였다.
그의 ‘에뛰드 Op. 10 제12번 혁명’을 들으면 러시아 군의 바르샤바 침입 소식을 듣고 그의 마음속에 이는 조국애와 분노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조국에 대한 사랑과 러시아 군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왼손 선율과는 달리 단편적인 오른손 선율은 곡을 좀 더 장렬하게 만들어 줌과 동시에 절제된 듯한 슬픔을 보여 주었다. 마치 주먹을 꼭 쥐고 눈물을 참는 독립투사를 떠올리게 했다.
힘들지만 음악에 젖은 삶이 너무나 행복했던 내가 낭만파 음악의 절제미를 쫓으면서부터 음악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 대신에 고민거리를 안겨 주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혁명을 연주하면 비통한 표정의 폴란드 인 대신에 서러움에 어찌할 줄 모르는 울보 아이를 그려 냈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풍경을 담은 유화와 같은 왈츠가 나의 손에 쥐어지면 다섯 살 꼬마 아이가 크레파스로 서툴게 그린 창밖의 풍경 같았다.
나에겐 피아노라는 새하얀 빈 도화지와 쇼팽의 작품이라는 색색의 물감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도화지를 아름답게 채울 수 있는 능력은 주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새하얀 빈 도화지를 아름답게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점점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에 도달할 수 없음에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했다.
‘수없이 많은 음을 연주했을 때에야 더 없는 보상으로 나타난다는 간결함의 아름다움은 도대체 언제쯤 나에게 코빼기라도 비출까?’
‘연습을 더 많이 한다고 해서 거장인 쇼팽이 의도한 낭만파 음악의 절제된 감정 표현을 과연 비슷하게라도 흉내 낼 수는 있을까?’
부담감은 나를 연습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게 하였고, 나는 무대에서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때에 실수한 끔찍한 기억은 공연을 피하고 싶은 순간으로 만들고 말았다.
“모든 수리과학은 물리와 수리 법칙 간의 관계를 기본으로 한다. 그리하여 정확한 과학의 목적은 자연의 문제를 숫자를 이용하여 양적화 함으로써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All the mathematical sciences are founded on relations between physical laws and laws of numbers, so that the aim of exact science is to reduce the problems of nature to the determination of quantities by operations with numbers.”
-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물리학의 쇼팽, 맥스웰
나와 과학의 진정한 만남은 햇살 가득한 어느 주말 오후였다. 활짝 열린 창문 아래, 나는 동남아의 쨍쨍한 햇볕을 받으며 월요일 아침에 제출해야 할 물리 숙제를 꾸역꾸역 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곧 있을 독주회에서 연주할 쇼팽의 스케르초를 배경 음악 삼아 물리 교과서를 넘기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중 하나인 윤디 리가 연주한 스케르초를 들으며, 나는 숙제에 집중하지 못한 채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였다.
‘만약에 쇼팽이 살아 있었다면 윤디 리에게 박수를 보냈을 거야.’
그러고는 책상 옆 피아노에 놓여 있는 쇼팽 악보를 쳐다보며 내 자신을 자책하였다.
‘나는 왜 이렇게 쇼팽을 아름답게 해석하지 못할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는 다시 숙제에 집중하려고 물리 교과서로 애써 시선을 옮겼다. 내 눈앞에 펼쳐진 책장은 전기와 자기는 본질적으로 같다는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었다.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내용에 나는 금방 다시 집중을 잃고 이리저리 시선을 옮겼다. 교과서, 악보, 교과서, 악보. 물리, 음악, 물리, 음악. 맥스웰, 쇼팽, 맥스웰, 쇼팽.
물리학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식으로 맥스웰의 방정식을 꼽는다. 맥스웰은 전기, 자기, 빛의 너무나 복잡한 삼각관계를 단 4가지의 방정식으로 깔끔하게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이 4가지 방정식은 단순하고도 우아하며, 심지어 대칭적인 아름다움까지 지니고 있다.
●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업적은 과학사의 큰 획을 그었다. 2000년 영국 BBC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 100명을 선정하였는데, 맥스웰은 아인슈타인과 뉴턴에 이어 3위에 꼽혔다.
이렇게 보니 맥스웰이 추구하고 표현한 아름다움은 쇼팽이 추구하고 표현한 아름다움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마치 쇼팽이 그의 뒤섞인 감정을 셀 수 없이 많음 음으로 표현했지만 결국 그 음들을 몇 가지의 강렬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함축했던 것처럼 말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다 간 음악과 물리라는 분야의 거장인 쇼팽과 맥스웰의 가치관과 업적은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하나의 음에서 화음으로 그리고 다시 하나의 음으로
음악과 물리를 나란히 놓고 보니 둘 사이에는 의외로 닮은 점이 많았다. 과학자들은 인생을 바쳐 세상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궁극적인 이론을 찾고자 한다. 이런 과학자들의 꿈과 믿음은 마치 다양한 소리를 탐구하여 이 세상의 아름다움의 끝을 추구하려는 음악가들의 열망처럼 느껴졌다.
한 음, 한 음이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드는 음악처럼, 물리도 결국에는 화음에 관한 학문이다. 물리 공식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맞물려 우리 주변에 보이는 현상의 본질을 아름답게 설명해 준다. 이론과 응용이 화음을 이루어 세상 속의 패턴을 설명하는 답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물리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음악과 물리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달랐다. 음악은 주변의 수많은 소리를 탐구해 아름다운 화음을 쌓아가는 예술이라면, 물리는 자연의 화음을 탐구하는 학문 같았다. 수없이 많은 음이 겹겹이 쌓여 만든 화음 안의 음 하나하나를 떼어 내는 과정 같았다. 또 음악과 물리는 정답이라는 부분에서 다른 관점을 보였다.
비록 나는 쇼팽이 자신의 곡에서 의도했던 낭만주의 음악 속의 절제된 미를 좇았지만, 하나의 곡은 연주자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음악에서는 각각의 해석이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는 자연 현상의 본질을 찾아내는 학문이다. 여러 개의 모범 답안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고 심지어 나만의 모범 답안을 만들 수 있는 음악과 달리, 물리는 이미 정해져 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의 답을 찾는 학문이었다.
나만의 연주를 만들고 쇼팽의 단순미 아래에서 나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 음악과의 씨름에 지쳐 있던 나에게 확실한 답이 있는 물리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답이 없는 것 못지않게 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하는 괴로움도 크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순진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답이 없음에 지친 나에게 물리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지니면서도 뚜렷한 답을 가지는 신선한 존재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나의 순진함이 지금의 나를 과학으로 이끌게 되었다.
고등학생인 나에게 가슴보다는 머리로 생각하는 물리는 너무 딱딱하고 차가워 보여 정이 가지 않았다. 감정을 충실히 반영하며, 때때로 사람의 심금을 울려 기쁨에 환호하고 슬픔에 복받치게 하는 음악과는 전혀 다른 학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런 둘 사이에는 접점이 있을 수 없다고 내 맘대로 단정 지었다. 하지만 햇살 가득했던 그 주말 오후, 물리는 음악과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매력을 가진 존재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렇게 나만의 편견 속에 갇혀 있던 과학과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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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그와트로
갈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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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13 이근민
나는 ‘해리 포터’ 세대이다. 『해리 포터』가 처음 나왔을 때 나는 책을 읽고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얼마나 멋진가? 지팡이를 몇 번 휘두르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 거기에 펄럭이는 망토까지 하다니, 어린 나에겐 아주 멋져 보였다. 그렇게 『해리 포터』가 10년간 출간되는 동안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원서도 읽었다. 나는 해리와 가장 친한 친구였고, 론과 함께 거대한 거미들과 싸웠으며 헤르미온느와 마법 공부를 했다. 하지만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상상을 하다 현실로 돌아오면 마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과학은 현실의 마법처럼 다가왔다. 과학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딱 한 가지를 집어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지만 굳이 뽑자면 가장 큰 이유는 마법사가 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왜 마법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을까? 나에게는 마법사가 자신의 주변 환경을 원하는 대로 바꾸고 원하는 현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었다.
현실 세계의 투명 망토와 마법 지도
『해리 포터』에서 가장 흥미를 끌었던 물건은 투명 망토와 마법 지도이다. 물론 다른 마법들과 하늘을 나는 빗자루도 가지고 싶었지만 이 두 물건은 활용도가 높고 내가 책을 읽을 당시 아직 현실 세계에 비슷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빗자루는 아니지만 우리는 하늘을 나는 의자를 발명했다. 나무를 순간적으로 크게 자라게 하는 마법은 없지만 나무가 크게 자라도록 할 수 있는 약물은 존재했다. 비교적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투명 망토와 마법 지도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해리 포터에서의 투명 망토는 사람이 입으면 완벽하게 투명해지는 망토이고 마법 지도는 호그와트 성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표시해 주는 지도이다. 해리는 이것으로 몰래 무언가를 가져와야 하거나 밤에 학교를 돌아다닐 때 유용하게 사용했다.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의 존재를 숨길 수 있고 다른 모든 사람의 위치를 알 수 있다니 활용성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투명 망토와 마법 지도를 가지고 나는 무엇을 할까 상상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투명 망토가 개발되었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게 되었다. 자세히 읽어 보니 원리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망토 뒤에 달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후 앞에 달린 화면으로 사진을 보여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화면으로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거나 할 수는 없었다. 더불어 화질에도 영향을 받아 가까이서 보면 티가 났다.
또 다른 연구원들이 만든 방법은 특정 주파수의 빛을 통과시키는 망토이다. 모든 가시광선을 통과시키는 것은 아니므로 투명하지는 않지만 특정 파장의 빛에 대해서는 투명하므로 개발한다면 제대로 된 투명 망토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완벽하지는 않지만 두 방법 모두 투명 망토에 꽤나 근접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내가 판타지라고 치부하고 상상만 하던 때에 이 사람들은 마법을 현실화시킨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해리 포터가 사는 세상의 마법사들이 어쩌면 내가 사는 세계에서는 과학자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최근에는 더욱 간단하고 값이 싼 렌즈 4개를 가지고 투명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렌즈를 통과한 빛의 굴절을 이용해서 앞에 물체가 없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마법 지도는 우리 세계에서 GPS라고 불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해리 포터의 마법 지도와 가장 근접한 기술은 스마트폰과 함께 나왔다고 생각한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것도 마법 지도와 완벽하게 같지는 않다. 사람의 위치보다는 스마트폰의 위치를 알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나온 후부터 손에서 핸드폰을 내려놓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기에 스마트폰의 위치는 사람의 위치와 같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핸드폰을 잃어버려도 검색으로 자기 스마트폰의 위치를 알 수 있듯이 이 방법을 적용하면 마법 지도와 꽤나 근접한 핸드폰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기술과 과학의 발전으로 상상만 가능했던 일들이, 정말 마법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며 나의 꿈은 마법사에서 과학자로 옮겨 갔다.
내가 과학에 관심을 키워 갈 때 확실하게 나를 과학의 길로 들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역사 수업 중에 들은 이야기였다. 역사 수업은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내용이었다. 수업 중 선생님께서 태평양 전쟁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며 ‘Cargo Cult’, 즉 화물 숭배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태평양에 있는 섬들에 가 보면 나무로 만든 비행기 모형과 관제탑 그리고 땅을 평평히 다진 활주로 비슷한 것까지 있다고 한다. 비행기도 없는 섬의 원주민들이 왜 이런 것을 만들었을까?
ⓒ Tim Ross
●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에 위치한 나라, 바누아투는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문명이 닿지 않은 오지가 많았다. 그래서 신세계의 문물은 화물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진은 숭배 의식이 치러졌던 곳으로 바누아투의 탄나 섬에 위치한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 태평양의 작은 섬들은 처음에는 일본군에게 점령을 당했다가 전쟁 막바지에는 미군이 군사 기지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 번도 섬 밖의 세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원주민들은 기계화된 군대와 보급 물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신들이 찾아왔다고 믿었다. 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