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을 올려 받기 위해 부모님과 협상을 해 본 적이 있나요? 형이나 누나 또는 동생과 컴퓨터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툰 적은요? 또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해 먼저 말을 걸거나 선물을 준 적은 없나요?
이런 행동들은 넓게 보아 모두 ‘외교外交’라고 할 수 있어요. 외교에서 ‘교’는 ‘사귄다’는 뜻이고 여기에 ‘바깥(밖)’을 뜻하는 ‘외’가 더해졌으니, 외교는 나 말고 다른 이들과 사귀는 일을 말해요. 우리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면서 서로에게 바라는 것들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나라끼리도 서로 관계를 만들며 살아가지요. 보통 나라끼리 관계를 맺는 일을 외교라고 합니다.
주변 몇몇 나라와의 관계가 중심이던 옛날이나, 온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오늘날에도 외교는 중요한 나랏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외교를 잘해야 내 나라의 존재를 알리고 당당하게 나라를 꾸려 갈 수 있거든요. 예전에 이런 중요한 일을 맡아 나라 사이에서 징검다리 구실을 해 온 사람이 오늘날 말하는 외교관, 바로 ‘사신’이지요.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서 외교를 책임지던 사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임무를 위해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은 사신, 나라가 곤경에 처했을 때 목숨을 걸고 떠난 사행, 우리 문화를 다른 나라에 알리고 다른 나라의 앞선 문물을 들여온 문화 사절단……. 이 책을 통해 사신들이 어떻게 나라를 지켰는지, 사신들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운 문화를 누리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신 이야기와 더불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외교에 관한 이야기예요. 외교는 나라 사이에 관계를 맺는 일이지만 우리나라를 세계에 보여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를 보여 주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 바로 한국 사람이지요. 세계 곳곳을 여행하거나 그곳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보여 주는 얼굴이자 외교관이에요. 특히 문화 활동을 하는 한국 사람의 활약은 외교에 큰 구실을 하지요. 요즘 아시아에서 시작된 이른바 ‘한류 열풍’은 이제 아시아를 넘어 다른 지역으로도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어요. 한류의 중심인 드라마나 K-pop과 같은 대중문화를 이끄는 문화인들은 우리나라를 널리 알리고 한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드는 주역이랍니다.
이렇듯 오늘날 외교는 나랏일을 보는 외교관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에요. 앞으로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를 빛낼 여러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외교의 참뜻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우리 문화를 지키면서도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넉넉한 마음 자세가 진정한 사귐의 기본이라는 사실도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우리 역사 속 사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2012년 6월 정명림
우리 막내 이모는 작가 지망생이다. 더러 신문이나 문학잡지에 원고를 보냈는데 번번이 퇴짜를 맞아 풀이 많이 죽어 있는 상태다. 그런 이모가 잔뜩 들뜬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한동안 글을 쓰네 안 쓰네 하시더니 새로운 일을 벌인 모양이다.
“언니, 재원이 어디 있어?”
이모는 다짜고짜 나부터 찾으며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어서 와. 근데 재원이는 왜? 무슨 볼일 있어?”
“언니, 재원이 게임 잘 하지? 게임에 대해선 아는 것도 많겠지?”
“아유, 게임 얘기는 꺼내지도 마. 아주 지긋지긋하니까.”
엄마는 게임이라는 말만 들어도 혀를 끌끌 찬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그동안 나와 게임 때문에 벌인 분쟁만 해도 세계 대전을 능가할 정도니 말이다. 컴퓨터 전기선은 여러 번 뽑혔지만 컴퓨터를 내던져 버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엄마는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만큼 마음이 모질지 못한 데다 나름대로 자존심과 교양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라 그런 물리적인 해결 방법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 엄마 친구들과 통화하는 걸 들으면 엄마 마음속으로는 컴퓨터를 백 대도 더 부숴 버렸다는 걸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게임이 좋은데. 한창 아이템을 모으고 있을 때 엄마가 전선을 뽑아 버려 날린 아이템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안 온다.
어찌 되었건 이모가 날 찾은 건 게임에 관한 도움이 필요해서였다. 엄마는 이모를 끔찍이 생각해서 이모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편이다. 나는 게임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얼른 방에서 나왔다.
“이모, 안녕하세요?”
“마침 집에 있었구나. 너 이모 좀 도와주라. 이모가 게임 시나리오를 쓰려고 하거든.”
“게임 시나리오요?”
“그래, 이번에 공모전이 있어.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 시나리오야.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재미있게 역사에 대해 알아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야.”
“역사요? ‘제국의 시대’ 같은 건가?”
난 약간 김이 새는 느낌이었다. 역사라면 공부? 누가 게임을 하면서 공부하려고 하나. 무엇을 하든 공부와 연관 지으려는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게임을 하는 건 공부 때문에 아픈 머리를 식히려고 하는 거 아닌가? 물론 나야 아픈 머리 때문에 게임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모가 더 이상 일을 벌이기 전에 그만두시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동안 글이 안 써진다며 심란해하던 이모를 생각하니 아무 말 안 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어때? 괜찮겠지?”
“네, 뭐.”
“아직 게임 소재는 못 정했는데 게임 만들기 좋은 내용으로 정해야겠지? 너는 게임 형식이나 진행 방법으로 어떤 게 적당할지 생각해 줘. 나보다는 네가 해 본 게임이 많을 테니 말이야.”
이모는 한껏 들떠서 말했다. 휴, 우리 이모를 어찌하면 좋을까. 하나마나한 일에 이모뿐만 아니라 내 노력까지 바칠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아무래도 내 생각을 얘기해야 할 것 같았다.
“저, 이모. 그런데요…….”
“왜?”
“이거 꼭 하셔야 돼요?”
“…….”
“사실 애들은 놀려고 게임하는데 공부를 위한 게임은 좀 아니라고 봐요. 그것도 역사는 애들이 지겨워하는 과목인데.”
“역사가 지겹니?”
“아니, 뭐……. 저야 이모 덕분에 재미있어하지만 딴 애들 보면 너무 어렵고 지겹다고……. 아니, 애들이 다 그런 건 아니고 몇몇 애들이…….”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지? 그래서 애들이 역사를 좋아한다는 거야, 싫어한다는 거야. 이모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서 그런지 난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모가 깔깔대며 웃는 게 아닌가.
“그래서 역사가 지겨우니까 게임으로 해도 지겹다고? 그러니까 이모는 괜한 헛수고하지 말라는 거구나. 아이구, 고맙네. 이모 생각해 주는 기특한 조카로군.”
어? 이게 아닌데. 이모가 이렇게 여유 있게 받아 넘길 줄은 몰랐는데. 이쯤은 다 짐작한 일이란 말인가?
“역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야. 다루어야 할 사건도 많고 어려운 말도 많이 나오니까. 그러니까 재미있게 해보자는 거지. 지금도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이 많이 있잖아. 네가 전에 하던 ‘제국의 시대’도 그렇고 ‘바람의 나라’ 같은 것도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고.”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런 게임들은 소재만 역사에서 가져왔을 뿐 내용은 가상의 이야기야. 난 실제 우리 역사를 다루는 게임 시나리오를 쓰려고 해. 어때, 이런 게임이라면 지겨운 역사 공부에도 무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니? 물론 공부한다는 느낌이 들게 하면 안 되겠지만.”
난 갑자기 의욕이 솟구쳤다. 이모가 이쯤 생각했으면 헛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어찌 되었건 게임 아닌가. 엄마의 눈치에서 벗어나 게임을 할 수도 있을 테니 나로서는 절대 손해날 일이 아니었다. 그래,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그럼 제가 할 일이 뭐예요?”
“먼저 컴퓨터부터 켜 봐. 요즘 네가 하는 게임을 좀 가르쳐 줘.”
“네, 그런 것쯤이야. 히히.”
윙~.
컴퓨터 전원이 켜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이모가 왔다.
난 문소리가 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못마땅해하는 엄마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모를 도와 드리려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벌써 켜 놨냐? 적당히 해라. 나도 네 엄마 눈치 보이니까.”
“헤헤. 오늘은 어떤 걸로 할까요?”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을 봐야 하는데……. 그래, 네가 요 며칠 전에 하던 것 좀 다시 보여 줘.”
“네, 이모.”
“어유, 보통 때도 이렇게 고분고분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신이 나서 게임 방식을 설명했다. 또 그동안 모아 놓은 아이템과 적군과 싸워 이겨 만든 성을 보여 드렸다. 옆에 앉아 찬찬히 게임 방식을 보던 이모가 입을 열었다.
“아이템을 모으고 거래를 하고 성을 쌓고……. 나도 좀 해 봐야겠구나.”
“대부분 게임이 다 비슷해요. 아이템 모으고 레벨 높이고 하는 거요.”
“그럼 됐어. 나도 그동안 이것저것 뒤져 봤는데 게임 소재를 사신으로 하면 어떨까?”
“사신? 아, 그거! 나 알아요! 청룡, 백호……. 또 뭐더라?”
“아이구, 그 사신 말고 딴 사신 말이야.”
딴 사신? 뭐가 또 있나? 아유, 이모가 엄마한테 내가 사신도 모른다고 말할 게 틀림없는데 그럼 또 엄마 잔소리를 들어야 하나. 그나저나 청룡하고 백호하고, 또 뭐지?
“지금 얘기하는 사신은 나랏일 하는 사신이야. 임금이 나랏일로 다른 나라에 심부름을 보내는 신하를 말하는데 지금으로 치면 외교관이라고 할 수 있지.”
“아, 그 사신. 알죠, 알아요! 사신.”
“에그, 잘난 척은. 역사적으로 사신을 보면 재미난 일도 많고 극적인 일도 많아. 또 무엇보다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으니까 게임 만들기는 딱 좋을 것 같거든. 이것 좀 볼래? 이모가 쓴 건데, 이 게임의 목적이야.”
게임의 목적은, 게임하는 사람이 외교에 필요한 언어 능력을 키우고 다른 나라 풍습을 익히는 과정에서 색다른 재미를 주고자 함이다. 또, 다른 나라와 교섭을 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을 모으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퍼즐을 통해서 단순히 오락에만 그치지 않는 지적인 만족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게임을 하면서 사신이 하는 일과 사신에게 필요한 조건, 그리고 역사에서 활약한 사신에 관하여 자연스럽게 알도록 한다.
“다 읽었니? 네 생각은 어때?”
난 누가 ‘네 생각은 어때?’하고 물을 때가 가장 곤란하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다. 사신에 대해 뭐라도 알아야 게임을 만들기 좋은지 어떤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럴 때는 대개 모른다고 하지만 이모 일을 도와 드리기로 했는데 성의 없이 대답할 수는 없다.
“괜찮은 거 같은데요.”
“정말? 그렇지? 그럼, 그럼.”
괜찮다는 내 한마디에 이모는 만족스러운 듯 활짝 웃었다. 난 그냥 말한 건데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모가 좋아하시면 된 거지.
“그런데 이모, 우리가 사신을 왜 꼭 알아야 해요?”
“뭐? 그거야 사신이 중요하니까…….”
이모는 말문이 막힌 듯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열을 올리며 말씀하시던 이모 얼굴이 갑자기 굳어진 듯 보였다. 내 질문이 뭐 잘못 됐나?
“아니, 뭐. 이모,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실 건 없고요, 전 그냥 이모가 왜 사신으로 하려는지 궁금해서…….”
뜻밖의 이모 반응에 나도 좀 당황스러웠다.
“아니야. 그건 아주 중요한 질문이야. 무슨 일을 하든 왜 그걸 하는지가 중요하잖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것 말고 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해. 아니면 다른 소재를 찾아야 되는데……. 아무튼 좀 생각을 해 봐야겠다. 그럼 나중에 보자.”
말을 마치자 이모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방을 휙 나가 버렸다. 붙잡을 틈도 없이 이모가 가 버려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곧 컴퓨터로 눈길을 돌렸다. 잠시 뒤 밖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원! 이모 가신 지가 언젠데 아직도 컴퓨터 앞에 붙어 있어. 너 당장 끄고 숙제해!”
에그, 그렇지. 엄마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어.
“그냥 보기만 했어요. 그리고 숙제는 없고요.”
난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이모는 왜 이리 금방 가 버린 거야.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갑자기 심각해진 이모 얼굴을 떠올리니 나도 덩달아 심각해지는 느낌이다. 하긴 애써 소재를 찾았는데 버리게 되면 너무 아까울 것 같기는 하다. 다른 소재를 찾기가 쉽지도 않을 테고. 나도 뭔가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신은 다른 나라에 가서 나랏일을 보는 사람인데 요즘으로 치면 외교관이라고 했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지? 그동안 학교에서도 사신에 대해서는 그다지 배운 게 없다. 그럼 몰라도 되는 거 아닌가? 별로 안 중요하니까 안 배운 거겠지, 뭐. 혼자서 생각하려니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이모는 왜 그런 걸 하려고 하는 걸까? 이모는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따르릉~.
전화벨 소리에 이어 엄마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모인가?
“재원아, 이모가 너 좀 와 보라신다. 얼른 가 봐. 가서 쓸데없이 오래 있지 말고 볼일 끝나면…….”
엄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나는 한달음에 길 건너편 이모 집에 도착했다. 이모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나를 맞아 주는 이모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우리가 사신을 왜 꼭 알아야 하냐고 물었지? 너는 뭐 생각한 거 없니?”
“저야, 뭐……. 이모는 답을 찾으셨어요?”
“네 물음대로라면 마땅한 답은 못 찾았어. 사실 사신을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모가 왜 사신으로 게임을 만들어 너희에게 알려 주고 싶은지는 찾았어.”
역시 이모는 멋있다. 이모는 무엇이든 억지로 하라거나 무작정 우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모를 좋아하는 이유다. 이모가 이렇게 말하니까 슬슬 호기심이 생긴다.
“일단 원고 좀 봐. 게임 소재를 소개하는 글이야.”
사신을 선택한 까닭은 오늘날 나라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를 지키고 다른 나라를 존중하는 외교 정신을 배우기 위해서다. 사신을 주제로 한 온라인 게임을 통해 우리 역사에서 빛나는 외교 성과를 가져온 사신의 활약과 실패한 외교 활동을 알아보고 그 안에 담긴 교훈을 되새기고자 한다.
세계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각각의 문명은 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교류를 통해 발전해 왔다. 그렇다면 문명의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일을 맡은 이들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은 중요하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는 서로 다른 문명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국제 경쟁의 시대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렇듯 다른 문명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신을 통해서 다른 나라와 함께 살아온 우리 역사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 속 인물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