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세계 최초의 경영대학원으로 설립된 이래 자타공인 최고의 MBA로 추앙받고 있는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이곳에 모이는 학생들의 목표는 모두 다른 듯하면서도 결국은 같다. 바로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성공’하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이 우수강의로 손꼽는 ‘성공학 강좌(Success Course)’를 와튼스쿨에서 최초로 개설한 사람이 바로 G. 리처드 셸 교수다. 30년 넘게 경제학, 경영학, 협상기술을 가르쳐 온 그의 인생 전반전은, 그야말로 굴곡 그 차체였다.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군사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다니던 그는 베트남전 발발을 계기로 반전 운동에 동참, 학교를 그만두고 페인트공, 기금 모금기업 홍보직원 등으로 일하다가 인생의 답을 찾으러 배낭 하나만 메고 세계 일주에 나선다. 하지만 그리스, 인도, 이란, 아프가니스탄을 거치다가 카불에서 죽을 고비를 맞이하고는 내면의 수련을 위해 스리랑카의 불교 수도원을 찾았고, 이후 네팔, 태국, 홍콩, 대만을 경유해 마침내 한국의 송광사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구산 스님으로부터 승려가 되라는 권유까지 받지만, 내면의 탐색을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법학대학원을 다닌 끝에 37살에 와튼스쿨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후 와튼스쿨에 ‘성공학 강좌’를 최초로 개설하였고, 현재는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동료 교수가 된 《그릿》의 저자 앤절라 더크워스를 포함한 수많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체득한 성공의 의미와 방법을 가르쳐왔다. 1986년 교수로 임용된 이래 현재까지 우수강의상 및 우수교수상을 총 29차례나 받았다. 특히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연속으로 와튼스쿨 우수강의상(Wharton Excellence in Teaching Award)을 수상했다.
이렇듯 명실공히 와튼스쿨 최고의 인기 강의로 자리 잡은 성공학 강좌에서 셸 교수가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딱 두 가지다. “당신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졸업을 앞두고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그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금방 깨닫게 된다. “성공은 자각(自覺)에서 시작된다”고 믿는 셸 교수는 와튼스쿨 성공학 강좌의 정수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와튼스쿨은 딱 두 가지만 묻는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800-CEO-READ(現 Porchlight Books)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선정된 바 있다. 셸 교수는 이외에도 《협상의 전략(Bargaining for Advantage)》, 《구애의 기술(The Art of Woo)》 등의 저작을 펴냈고, 또한 구글, GE, 존슨&존슨, 시티그룹, 세계경제포럼 등에 연사로 초청되어 맞춤 세미나 강연을 담당해 왔으며, FBI 위기 협상팀에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옮긴이 김윤재
연세대학교 인문학부에서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현재 출판기획과 번역에 종사하고 있다. 활자매체가 생존을 위협받는 디지털 세상에서도 책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을 계속하고자 한다. 옮긴 책으로 『해빗』, 『태어난 게 범죄』, 『트리거』, 『마인드셋』, 『메신저』 등이 있다.
Springboard: Launching Your Personal Search for Success
Copyright ©2013 by G. Richard S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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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edition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Portfolio, an imprint of Penguin Publishing Group, a division of Penguin Random House LLC
This Korean translation published by MINDBUILDING in 2022 by arrangement with Portfolio in care of Penguin Random House LLC through AlexLeeAgency 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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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제 학생 여러분,
제게 너무나 많은 가르침을 줘서 감사합니다.
어떠한 기만이나 착각 없이, 있는 그대로
정확히 사물을 직시할 용기를 내야만
비로소 성공으로 가는 길에 빛이 비칠 것이다.
《주역》
“우리가 《와튼스쿨은 딱 두 가지만 묻는다》를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성공을 정의하고 달성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풍부한 연구와 공정성은 물론 인문학적인 통찰을 담고 있기에, 더욱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과 책장에 자리 잡을 만한 가치가 있다.”
_800-CEO-READ
“성공을 달성하는 법에 대한 이 탁월한 저서는 협상, 설득, 대인관계 분야에서 저자의 명백한 전문성이 뒷받침되어 있음은 물론, 이런 종류의 탐구에 필요한 요소를 정확히 갖추고 있다. ‘상식’과 ‘격려’ 말이다.”
_〈북리스트〉
“리처드 셸의 《와튼스쿨은 딱 두 가지만 묻는다》는 개인적으로든 직업적으로든 더욱 유익한 삶을 위한 안내서다. ‘이래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기쁨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진정한 인생의 소명을 받아들이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고무적인 이야기들이 이 책에 현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_〈리얼 비즈니스Real Business〉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든 커리어의 중대한 변화를 고려 중이든 상관없이, 이 책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의미의 원천을 발견하여 자신만의 경로를 설정하고 성공을 정의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_〈패스트 컴퍼니〉
“리처드 셸은 와튼스쿨에서 유일하게 ‘성공의 의미’를 다루는 강의를 개설했고, 수차례 우수강의상을 수상한 교수다. 그 강의를 몸소 체험했던 학생으로서, 나는 이제 그가 그 엄청난 가치를 지닌 통찰을 독자들과 나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낀다. 리처드는 당신이 성공이란 정말 무엇인지 숙고하도록 도울 것이며, 내가 아는 한 그는 그 작업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안내자다.”
_앤절라 더크워스,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 《그릿》 저자
“오랜 경험과 지혜가 이 한 권의 통찰력 있는 책에 녹아 있다. 독자들은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변화시키는 데 나서게 될 것이다.”
_캐럴 드웩, 스탠퍼드대학 교수, 《마인드셋》 저자
“인생이라는 게임에 대한 환상적인 코칭! 자기 인생의 소명을 달성하는 일은 사업적인 소명의 달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 책은 그 방법을 알려 준다!”
_마셜 골드스미스, 《트리거》 저자
“이 책에서 리처드 셸은 성공을 성취의 목표가 아닌 삶의 태도로 받아들이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사고방식은 당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을 것이다.”
_다니엘 핑크, 《드라이브》 저자
“이렇게 멋진 책이라니! 성공을 향한 여정이 지혜에 기댈 수 있다면, 성장과 실현의 여정이 될 수 있다. 리처드 셸은 이미 당신 내면에 깃들어 있는 지혜에 접속하는 법을 보여준다.”
_차드 멩 탄,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저자
“리처드 셸은 마음과 가슴을 모두 솜씨 좋게 이끌면서, 직장과 가정에서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구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당신은, 당신이 항상 원해 왔지만 깨닫지 못했던 삶을 창조하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는 현명한 멘토를 만나게 될 것이다. 셸은 성공을 향한 첫 번째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일 말이다.”
_숀 아처, 《행복의 특권》 저자
“리처드 셸은 과학적 근거가 탄탄하면서도 현명하고 실용적인, 또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풍성히 담은 글을 쓴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 모두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다.”
_배리 슈워츠, 스워스모어대학 교수, 《선택의 심리학》 저자
“이 고무적인 가이드는 월요일 아침에 깬 당신의 현실에 소명을 불어넣을 도구를 제공할 것이다.”
_로라 밴더캠, 《시간 전쟁》 저자
“이 책은 물론 인쇄물이지만, 사실은 나침반에 가깝다. 그리고 이 나침반의 바늘은 바로 당신을 향하고 있다. 당신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긍정적인 욕구를 찾아내어, 성공을 향한 여정을 떠나라.”
_윌리엄 J. 바이런, 세인트조셉대학교 교수,
《자신감을 갖고 일을 찾아라Finding Work Without Losing Heart》 저자
“리처드 셸은 당신이 자기 이해, 의미 있는 일, 깊은 인간관계에 근거하여 성공적인 삶을 향한 길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피켈을 챙겨라. 중요한 여정 앞에 놓은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이보다 더 뛰어난 안내서는 찾지 못할 것이다.”
_조시 루이스, 벤처투자 기업Salmon River Capital
하버드대학은 대부분의 학문 분과branch를 다 가르치지.
랠프 왈도 에머슨
정말 그래요. 뿌리는 빼고 가지branch만 가르쳐서 문제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에머슨은 소로의 후견인이었으며, 둘 다 하버드대학교 출신이다 ‐옮긴이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 와튼스쿨 교수인 저는 세상에 주로 협상, 설득, 인간관계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주제들에 대해 두 권의 베스트셀러를 펴냈고, 학사 과정과 MBA 과정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외에도 네이비씰Navy SEAL과 FBI의 인질협상관부터 포시즌스 호텔 고위 임원이나 구글의 관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 또한 맡고 있죠.
현재의 이런 모습만을 보는 사람들은, 제가 서른일곱 살이 돼서야 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20대 대부분을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 채 지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더군요. 하지만 그때야말로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지요. 당시 경험했던 강렬한 실패로 인해 처음으로 ‘성공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요.
과연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되짚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군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학비 면제와 생활비 지급 조건으로 졸업 후 해군 장교로 입대해 6년간 복무하기로 했죠. 군인 집안 출신인 제게는 당연한 선택인 듯싶었습니다. 아버지는 해군 장교로 퇴역 후에 버지니아 군사대학교에서 지도자로 활동했고, 할아버지 두 분 모두 직업 군인 출신이었죠.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이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죠. 그 전쟁의 명분을 이해할 수 없었고, 주변에도 전쟁을 반대하는 친구들, 교수들이 많았던 탓에 저는 장학금을 포기하고 징집 영장을 학교에 반이납했습니다. 평화주의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면서, 저의 군인 집안은 자부심은커녕 위기와 갈등의 원인으로 전락해 버렸지요.
상징적인 행동이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죠. 징집 영장을 반납했던 그날, 제 인생의 맥락이 끊어진 듯 느껴졌습니다. 문학과 글쓰기를 계속 공부하긴 했지만, 제가 누군지 더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죠. 대학을 졸업한 후에 저는 군복을 입게 되리라는 과거의 당연했던 기대와는 달리 사회복지사가 되어 난방, 수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 덕에 아무리 가혹한 환경에서도 사람은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죠.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에 그 일을 그만두고는 시간제 페인트공 일을 시작했습니다. 부모님과의 대화는 단절됐고 명절에도 찾아뵙지 않았죠. 제 속에서 ‘성취’라는 단어가 산산이 부서진 겁니다. 어떻게 다시 얻을 수 있을지도 알지 못했죠.
이 책을 쓰게 된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여정은 예기치 않게 시작된다
사회학자들의 정의에 따르면, 20~35세 사이의 이른바 ‘오디세이 시기Odyssey Years’에 사람들은 자기 고유의 가치와 목표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갑작스러운 해고나 이혼으로 인해, 혹은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야 이 시기가 시작되기도 하죠. 이 시기에는 인생의 다음 단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파악해야 합니다. 때로는 가족이나 문화로 인한 갈등, 또는 경제적 압박에 시달릴 수도 있지요. 사람마다 각자의 고유한 여정을 겪기에 어디서 끝을 맺을지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저의 오디세이 시기는 ‘마술magic’로 시작됐습니다. 자기계발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확언, 시각화, 자기최면, 마인드 컨트롤 기법을 익혔고, 나아가 초월 명상법, 그리고 심리치료술까지 익혔죠. 페인트공으로 일하는 동시에 지역 극장에서 연기를 하기도 했고, 심지어 인민혁명순회극단이라는 어설픈 좌익 극단과 함께 순회공연을 다니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주한 활동과는 달리 제 삶 자체는 절망적이었지요. 페인트칠을 하는 시간 내내 저는 ‘속된 성공의 판타지’를 꿈꾸곤 했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의 시인이 되었다가 유력 국회의원에도 당선되는 식이었죠. 이런 공상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창틀 하나가 다 칠해져 있곤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생생했던 백일몽 하나가 있습니다. 로비스트와 컨설턴트 들이 득실거리는 워싱턴 D.C 한복판의 멋진 사무실의, 크고 멋진 화분과 환한 창문 앞에 서서 도로 위 사람들과 자동차들을 내려다보는 모습이었죠. 화분까지 딸린 사무실을 쓰다니, 저는 대단한 인물임이 틀림없는 겁니다.
그때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했나 봅니다. 결국 나중에는 거의 상상했던 그대로 현실이 되었거든요. 페인트칠에 지쳐서 신문 구인광고를 뒤지며 사무직 일자리를 찾던 때였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교외의 사무단지에 가서 부동산 영업직 면접을 보게 됐죠. 말끔한 차림의 면접관은 제게 ‘향후 5개년 계획’을 묻더군요. 물론, 제게 그런 계획이 있을 리 만무했죠. 5년은커녕, 5일 뒤에 뭘 할지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면접관이 이어서 던진 질문은, 제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특히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뭡니까?”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을 때 단어 구사력만큼은 동기들 중에서도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이후, 제 구직활동의 방향은 바뀌게 됐습니다.
워싱턴 D.C의 전화번호부에서 잡지, 신문, 조합 소식지, 광고회사, 기금 모집 단체 등등 글쓰기 능력이 필요할 만한 곳은 죄다 뒤져서 일일이 전화를 걸었죠. 그러다가 어느 기금 모집 컨설팅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면서 일이 풀렸습니다. 이 회사는 마침 사회복지 관련 업무를 맡을 만한 직원을 찾고 있었고(해당 분야에 새로운 고객이 생겼기 때문에) 저는 작문 테스트에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출근 첫날 제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창문 옆에 화분이 놓여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 사건으로 인해 저는 커리어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세 가지 얻을 수 있었지요. 첫째, 공상만으로도 즐거울 수는 있지만, 실제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는 실행에 나서야 한다. 둘째, 일자리를 구하려면 내가 남보다 더 잘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입을 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교훈은,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깨달을 수 있었죠.
바로 성공이란 ‘장소’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새 직장은 페인트공보다 나을 게 전혀 없었던 겁니다. 급여도 높았고 어디 가서 내세울 만한 전문직이긴 했지만, 화분이 놓인 사무실이 가슴에 안고 있던 질문에 별다른 답을 주지는 못했던 것이죠. 단지 제가 전문가 흉내를 내며 연기하는 배우처럼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1976년 6월 어느 날,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평생 모은 3,000달러와 배낭 하나 걸쳐 메고 세계일주에 나섰습니다. 언제 돌아올지, 아니 과연 돌아오기나 할지 알 수 없었죠. 그저 제 인생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다시 얻을 수 있길 간절히 원할 뿐이었습니다.
처음에 도착한 그리스에서는 가급적 싼 호스텔에서 묵었고 때로는 공원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북부 아토스 산의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부터 갈릴리 호수의 언덕까지 걸으며 내내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죠. 동서양의 교차점인 이스탄불에 이르니, 인도 뉴델리까지 매일 운행하는 급행버스가 다닌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단 35달러만 내면 도중에 어디서든 내렸다가 하루, 일주일, 혹은 한 달 후에라도 다시 탈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버스에 올라 이스탄불에서 이란으로, 또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의 오디세이는 궤도를 완전히 이탈하게 됩니다.
인생의 밑바닥에 닿다
그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여행 과정을 죄다 일기로 기록해 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헤라트, 칸다하르를 거쳐 카불까지 아프가니스탄을 가로지르는, 이틀간의 흙먼지로 가득한 고달픈 여정이 끝나가고 있었죠. 200킬로미터쯤 지나 새로운 분쟁지역에 들어설 때마다 버스는 정차해서 경비대원을 교체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승객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붕 위에 탔던 사람까지 전부 버스에서 내려 나무 그늘이나 양철지붕 오두막 아래서 차를 마셨죠. 운전사 옆에 총을 메고 서 있던 군인들이 내리고 새로운 지역의 보호를 담당하는 새로운 군인들이 올라타고 나면, 운전사는 승객들을 불러모아 버스를 출발시켰습니다. 카불에 들어서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버스에서 내려 진흙투성이 거리로 발을 내딛는데 약간 어지럼증이 느껴졌습니다. 그제야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게 떠올랐습니다.
“호텔은 어디죠?” 운전사에게 묻자 그는 손가락을 들어 근처의 낮은 건물들 쪽을 가리켰습니다. 온몸과 배낭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하룻밤에 50센트짜리 싸구려 호텔의 마지막 남은 방을 얻을 수 있었죠. 사실 방이라기보다는 복도에 더러운 이불보를 커튼처럼 두르고 그 아래 간이침대를 놓은 게 전부였습니다.
짐을 풀고 호텔을 나와 시내로 향하려는데, 갑자기 어지럼증이 심해지더니 50미터도 채 가지 못하고는 정신을 잃고 길가에 쓰러지고 말았지요.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진창에 누운 채였고, 주변에 호기심이 가득한 검은 얼굴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더군요. 더러운 아프가니스탄 군복을 입은 남자가 양손을 무릎에 대고 허리를 구부린 채 저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일어서라며 손을 내밀더군요.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건 확실했지만, 가까스로 일어설 수는 있었죠.
인생의 바닥을 쳤다는 걸, 바로 그 순간에 정확히 알아차리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호텔로 비틀거리며 돌아온 그날 아침, 제가 바로 그런 상태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죠. 몇 분 뒤, 옆방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던 호주 여행객들로부터 제 현기증의 이유를 배웠거든요. 그들 중 한 명이 저를 거울 앞으로 데려가더니 눈을 들여다보라고 하더군요. 흰자위가 퀭한 노란색이었습니다.
“간염肝炎이에요.” 그가 일러주었죠.
그때 만약 누군가가, 제가 앞으로 법학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보스턴의 연방항소법원 서기로 일하다가 와튼스쿨에서 법학, 윤리학,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될 거라고 말했다면, 분명 그 사람이 제정신인지 의심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날, 제 삶의 무언가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1년간 저 자신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계까지 몰아붙여 결국 외로움과 괴로움에 병까지 얻었으면서도 여전히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깊은 절망감이 엄습해 왔죠.
변화란 때로, 더는 정체 상태에 머무를 수 없는 경우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날 밤 호텔 복도의 간이침대에 누워 있던 제게, 여행 중의 정체 상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대상이었던 거죠.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작정 떠돌아다니기만 해서는 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리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운명은 그 밤에 바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자녀Children of God’라는 종교 단체 소속의 유럽인 10대 두 명이 한밤중에 저를 찾아와, 커튼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고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적힌 갈색 종이봉투를 내밀더군요. 그 안에는 갓 구운 쿠키 두 개와 귤 한 알과 함께, 모세 다비드라는 선지자의 글귀가 들어 있었습니다.
또한 나중에 일기에 적었듯이, 그들은 깊은 신념에 근거한 목적의식이 삶을 어떻게 바꿔놓는지에 대한 강렬한 인상도 제게 남겨주었지요. 모세 다비드의 종말론적 가르침에는 별 감흥을 받지 못했지만, 그 두 젊은이의 신념이 가진 힘은 저를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들 역시 카불 뒷골목의 호텔에 이르기까지 저와 똑같은 여정을 거쳐 왔을 겁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도 함께 겪고 있었죠. 하지만 절망에 빠져 있는 저와는 달리, 그들은 유쾌함과 활기가 넘쳤고 너그러웠지요. 대체 저는 무엇을 놓친 걸까요?
어둠의 심연에 빠지려는 찰나의 저를 이 두 ‘천사’가 구해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만의 관점을 찾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희망과 욕구의 작은 불꽃을 일으켜주었지요. 다음날 눈을 뜨자, 몸은 여전히 아팠지만 그 전과는 달라진 제 자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렇게 썼지요. “발견의 여정이란 새로운 지평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데 있다.” 이 말의 의미를 카불에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깎아지른 듯 아름다운 산맥에 더는 눈길이 가지 않더군요. 그 대신 그 산들을 바라보는 저 자신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그 단서를 찾으러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겁니다.
나는 어떻게 승려가 될 뻔했나
건강을 되찾은 몇 주 후부터, 저의 여정은 외적인 여행보다 내면의 경험에 집중하는 쪽으로 변화했습니다. 카이베르 고개를 넘어 파키스탄과 인도로 향하면서 힌두교의 수행처인 아시람에서 명상법을 배웠고, 마침내 스리랑카의 칸두보다Kanduboda 불교 수도원에 자리를 잡게 되었죠. 현자 시발리 테라Venerable Seevali Thera 스님의 인내 어린 지도 아래 하루 열여덟 시간씩 앉아 성찰 명상 수련을 한 끝에, 인식, 신념, 변화, 고통과 죽음의 본질을 어느 정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루살이의 부산스러움 속에 사로잡혀 이미 배웠던 것들을 얼마나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죠. 조금씩, 제 자신과 가족, 그리고 제 감정이 점점 선명하게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이러한 깨달음을 달성하길 바랍니다.
불교 명상법의 기초를 배우고 나자 저는 부처의 삶을 더욱 깊이 공부하는 데 매달렸습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력에 대해 처음으로 설법을 베푼 사르나트 등 인도의 성지聖地를 순래했고, 이후 몇 달 동안 네팔, 태국, 홍콩, 대만을 거쳐 한국에 다다랐죠. 그리고 남쪽 지방 산자락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절,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일기에 적은 표현에 따르면 스님은 ‘매우 직설적이고 눈빛이 매서우며 작지만 활기가 넘쳤고’, 규모가 큰 승려 단체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스님보다는 농부에 가까워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영국에서 명상 센터 운영을 돕고 있는 프랑스 여승 송일 스님이 통역을 맡았죠.
구산 스님은 제게 여행을 중단하고 송광사에서 승려가 되어 깨달음을 얻는 데 평생을 바치라고 권했습니다. “가장 쓸모 있는 삶이란 인생에 대해 온전히 깨우치고 이를 모두와 똑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만이 이끌 수 있는 것”이기에 본인의 제안을 신중히 고려해 보라고 하셨죠. “깨우치지 못한 채 남을 도우려는 사람은 깨우친 사람만큼 그 일을 잘할 수 없다네.”
송광사에 한동안 머물면서 스님의 제안을 깊이 고민했습니다. 인생의 갈림길을 만난 셈이었죠. 그중 하나의 길은 가장 깊은 내면의 진리를 탐구하는 데 평생을 바치는 일이었고, 제가 그간 바라마지 않던 길이기도 했죠. 또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과연 그간 깨달은 인식, 감정, 내면에 대한 이해가 과연 오디세이 여정을 시작하면서 남겨뒀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지 테스트해 보는 것이었죠.
고심 끝에 제가 택한 길은, 저를 선당禪堂이 아닌 지금의 제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런 결정을 내린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쉬운 이유부터 시작하지요. 첫째, 명상 수련을 하면서 저 자신에 대해 너무나 명확한 사실을 배웠기 때문입니다(물론 저는 맨 마지막에야 알게 됐습니다만). 바로 제가 기본적으로 실천가 타입이라는 것이었죠. 도전거리를 찾아다니고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 가만히 앉아 있는 쪽보다 제게 더 잘 어울렸던 것이죠.
둘째 이유는 카불에서의 크리스마스 이브 이후로 제가 끊임없이 물어왔던 질문에 대한 답을 준, 비가시적非可視的인 무언가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강렬하고 직접적으로 경험한 일은 저의 자아정체성을 굳혀주었죠. 정신적 실체를 구성하는 충동, 불안, 기억, 계획, 공상, 두려움의 행렬을 지켜보며 관찰하는 법을 깨닫게 된 겁니다. 그런 관찰을 수행하는 제 안의 ‘자아’는 생각, 불안, 두려움 그 자체와는 다른, 보다 더 강력한 존재였습니다. 자아라는 건 없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오히려 저의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을 준 셈이었죠. 이제 저는 세상과 그 안에서의 제 자리에 대해 나름의 관점을 갖게 된 겁니다. 카불에서 한밤중에 저를 찾아왔던 두 젊은이가 가졌던 신념 체계와 같은 것이었지만, 그들과는 달리 저는 어떤 단일한 진리나 이념에 매달리지 않고도 인생의 불확실성, 신비, 의심과 더불어 살 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셋째 이유는, 직면하기 힘든 인생의 근본적인 사실과 타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통과 죽음이 불행한 이들에게만 발생하는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모든 가치 있는 삶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도전과제라는 점을 깨닫게 된 거죠. 제 이야기도 언젠가 끝맺을 거란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할 일은 단지, 제 앞에 남은 삶을 이용해 목적의식을 가진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것이었죠.
제가 집에 돌아온 이유는, 결국 카불에서 시작했던 탐색이 끝났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학교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T. S. 엘리엇은 “우리의 모든 탐험의 끝은, 우리가 출발한 곳에 도착해 그 장소를 처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저 역시 그랬지요.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20대 후반이었지만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 주었죠.
돌아온 탕아인 저는 부모님과 화해하고 버지니아주 렉싱턴의 친가 빈방으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그곳은 아버지가 해병대를 전역한 후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작은 동네였죠. 그리고 가정용 단열재 방문판매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소들을 방문할 때마다 예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점에 깜짝 놀랐죠. 부모님, 옛 친구와 선생님 들과는 달리 저에게만 그 풍경이 새삼스러울 뿐이었죠.
그렇게 한 해를 보내면서 다시금 ‘내가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저는 글쓰기 능력이 중요한 직업을 찾게 됐습니다. 결국 법조계가 그런 분야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샬러츠빌에 있는 버지니아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지원했죠. 또한 대학 시절 만났던 여성과 다시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법학대학원 수업을 받던 어느 날, 마음이 요동치는 일이 생겼습니다. 법적 주제에 관한 토론을 앞둔 150명의 다른 학생들과 함께 강의실에 앉아 있던 중이었죠. 실력이 매우 뛰어난 교수님이었기에, 저는 다음에는 그가 어떤 질문을 던질지 궁금했고 저를 지목해주길 내심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솟아난 에너지와 지적인 흥분에 온몸이 사로잡혔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 강의실의 교단에 서는 일을 제가 원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흥분과 통찰을 선물해주고 싶었습니다. 교수가 되어서 말이죠.
이후로 수업을 받으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고 구체적인 직업적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후로 6년 동안, 저는 롤 모델을 찾았고, 법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연방항소법원에서 서기로 일했고, 변호사로 활동한 끝에, 37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오디세이 시기를 끝내고 와튼스쿨의 강단에 설 수 있었습니다.
1986년에 임용된 이후 정교수까지 승진하는 동안 저는 학계의 비밀 하나를 깨우쳤습니다. 교수라는 직업은 자신의 열정을 단지 좇기만 하는 게 아니라 창조해낼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이죠. 그처럼 저는 처음에 법학만을 가르쳤지만, 나중에는 와튼스쿨 최초로 협상과 갈등 해결에 관한 강의를 개설했던 겁니다. 그 덕분에 저는 사회심리학을 더욱 깊이 공부할 수 있었고, 학생들에게 과거 여행으로부터 얻은 정서적 자각自覺에 대해 조언해줄 수 있었죠. 커리어와 열망에 대해 수많은 학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성공’의 개념을 탐구하는 일이 결국 자신의 목표와 정체성을 숙고하도록 돕는 매우 의미 있는 방법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대학이라는 환경은 제가 배우고 싶은 주제를 저보다 훨씬 더 잘 아는 동료들과 만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공학을 연구하면서 만난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1990년대 후반에 긍정심리학 분야를 확립한 세계적 석학이었죠. 또한 셀리그먼 교수의 수제자였던 앤절라 더크워스는 제가 벤저민 프랭클린 탄생 300주년 기념 성공학 세미나를 기획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미국 최초의 성공학 서적이었기에, 우리는 심리학, 철학, 종교학 분야의 선도적인 학자들을 초청해 오늘날 성공의 의미에 대해 강연하는 자리를 마련했던 겁니다. 물론 그 강연들로부터 저 역시 많은 것을 배웠고요.
2005년, 저는 마침내 와튼스쿨에 ‘윤리적,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성공학 강좌’를 개설하여(앞으로 이 책에서는 그냥 ‘성공학 강좌’라고 부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강좌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성공에 대해 다루는 실용서, 철학서, 전기, 심리학 연구 논문에 대한 제 연구가 집약돼 있죠. 이 성공학 강좌의 독서 목록에는 벤저민 프랭클린을 비롯해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데일 카네기, 찰스 린드버그, 스티븐 코비의 저작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월든>의 저자이자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신의 친구이자 멘토인 랠프 왈도 애머슨에게 “하버드대학은 대부분의 지식 분과branch를 가르치지만 뿌리가 아닌 가지branch만 가르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죠. 따라서 성공학 강좌에서 저의 목표는, 학생과 교수가 강의실에서 인생의 목표와 성공의 개념에 대해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대화함으로써 그 ‘뿌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제 강의가 널리 알려지면서 학생은 물론 기업 임원과 리더를 대상으로 성공의 의미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요청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지요.
이 흥미로운 주제를 가르치면서 저는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요? 그것은, 아이비리그 대학생들과 기업의 리더들 또한 성공의 안내자를 원하는 수백만의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해야 남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더 좋은 커리어를 쌓고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누구나 도움을 구하지요. 이들에게는 아주 약간의 도움이 필요할 뿐입니다. 마치 여러 해 전 워싱턴 D.C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며 마술을 찾아 자기계발 세미나를 전전했던 시절의 저처럼 말이죠. 성공학 강좌에서 그랬듯이, 이 책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성공의 추구’라는 미로를 헤쳐나갈 몇 가지 지름길을 개방적인 대화체로 제공할 예정입니다.
성공에 비결은 따로 없다
성공을 다룬 여타의 책들과 이 책이 다른 점은 뭘까요?
첫째, 저는 열혈 기업가나 유명인사도 아니고, 여러분에게 성공담을 들려주어 제가 고안한 ‘시스템’을 적용해 보라고 권하는 동기부여 강사도 아닙니다. 이 책에서 제 인생에 대해 다룬 이야기는 이미 앞에서 읽은 게 전부일 겁니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죠. 성공을 반드시 보장해주는 ‘절대적 시스템’ 따위는 다루지 않을 겁니다. 다만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공이라는 주제를 열심히 공부하면서 얻은 지혜를 나누고자 할 뿐이죠.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여러분이 직접 자신만의 독특한 능력과 개성을 바탕으로 목표를 세우고 성공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둘째, 성공에서 어떤 미스터리나 불안감을 배제하고자 했습니다. 즉 여기에는 여러분이 찾아내야 할 ‘비결’ 같은 건 없다는 말입니다. 또한 인생에서 반드시 찾아내야 할, 혹은 죽도록 노력해야 할 ‘단 하나의 진정한 목적’ 따위도 존재하지 않죠. 아마도 여러분은 이미 성공의 기본 요소를 갖고 있으며 다음에 이뤄낼 목표가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 있을 겁니다. 단, 그걸 알아볼 만큼 명료한 정신을 갖추고 있어야 할 뿐이죠.
셋째, 저는 이 책을 통해 희망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는 어떤 분야에서든 세계적인 수준의 성과를 내려면 행운과 함께 타고난 재능, 뛰어난 유전자, 사회적 이점, 적절한 타이밍, 집요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 바 있지요. 그는 ‘성공 스토리’라는 것이 대개는 행운과 환경 대신 개인을 주역으로 잘못 내세운 영웅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도 글래드웰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극도로 성공한 인물’이라고 칭하는 (글래드웰 본인 같은) 소수의 사람들은 대부분, 말 그대로 대단히 재능이 뛰어나고, 매우 운이 좋으며, 뛰어난 유전자와 지칠 줄 모르는 추진력을 가졌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들 나머지에게도, 여전히 희망은 있습니다.
이 책은 여러분이 분명히 실천할 수 있는 다음 두 가지 일을 도와줄 겁니다.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기,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이해하기. 《아웃라이어》는 빌 게이츠, 비틀즈, 그리고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어떻게 그토록 뛰어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는지 설명하지요. 이 책은 다른 목표를 가졌습니다. 저는 현재 당신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졌든지 상관없이,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출발하도록 돕고자 합니다. 즉 이 책을 진정한 성공의 비전을 찾아 나서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바랍니다. 저의 학생들이 말해주듯이, 그 과정이 곧 당신의 인생을 바꿔줄 테니까요.
오직 자신만이 답할 수 있는 두 가지 질문
학생들과 기업 임원들은 제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주요 관심 분야가 설득과 협상인데, 어떻게 성공을 연구하게 되었나요?” 그러면 저는, 사실 성공에 대한 연구를 먼저 시작했다고 답하지요. 성공의 의미를 곰곰이 따져봐야만, 실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평생의 작업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 세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설득하고, 협상하는 기술이 도움을 주는 것이지요.
이 책에서 저는 성공학 강좌의 수강생들에게 던지는 것과 똑같은 질문 두 가지를 여러분에게도 던질 겁니다.
• 첫 번째 질문 “성공이란 무엇인가?”
• 두 번째 질문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이 책은 위 두 질문을 공부하는 부분과, 질문에 답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과제를 제시하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때로는 성공에 관한 제 나름의 의견을 내놓기도 하겠지만, 자신을 위한 성공에 관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 자신뿐이지요. 더구나 살아가면서 분명 예상했던, 혹은 예기치 못했던 난관을 만나면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내놓았던 대답을 수정해야 할 겁니다. 삶의 어떤 국면에서는 올바른 대답이었다고 해도, 나중에는 말이 안 될 수도 있는 거죠. 영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에서 해리 포터가 헤르미온느에게 소리쳤듯이 말입니다. “언제 계획대로 된 적이 있어? 막상 해보면 늘 엉망진창이 돼 버리잖아!” 직장을 얻었다가도 실직할 수도 있고, 사고가 터지기도 하고, 경력이 바뀌기도 하고, 어느새 퇴직이 다가와 있기도 하죠. 이 책에서 제기하는 질문은 지금 고민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나중에 다시 되새길 만한 가치 또한 있는 겁니다.
이 책에서 저는 학생 및 기업 임원 들과 교류하면서 고안한 과제와 평가 방법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 바탕에는 종교, 문학, 철학에서 얻은 통찰력과 탄탄한 심리학적 원칙들이 깔려 있지요. 곧 알게 되겠지만, 성공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숨겨진 가정과 모순이 늘 존재하지요. 또한 가족의 기대로 증폭된 문화적 신념은 마치 자동조종장치처럼 우리의 직관, 감정, 행동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그 영향력을 거의 인식하지 못할 때조차도 말이지요.
앞으로 다룰 내용에 대하여
이제부터 이 책이 어떻게 구성될지 살펴보겠습니다. 1부에서는 첫 번째 질문 “성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4개의 장에 걸쳐 탐색할 겁니다. 제가 트레이닝을 할 때 사용하는, 성공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됩니다. 그런 다음 성공에 대한 질문에 사람들이 흔히 내놓는 대답들, 행복, 가족, 직업적 명성, 부富,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을 뜻하는 소명calling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1장은 어떤 삶을 살지 선택하면서 출발합니다. ‘여섯 가지 인생 실험’이라는 자기평가 방법을 통해 여러분이 현재 성공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자유로운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행복을 얻는 데 전념하겠습니까, 아니면 중대한 성취를 목표로 삼겠습니까? 아마 “둘 다 추구하겠다”고 대답하고 싶겠지만, 이 두 가지는 사실상 양자택일의 관계에 있죠. 이 양자택일의 관계에 대해 현재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겁니다.
2장은 “성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아마도 가장 뻔해 보이는 대답을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 아무에게나 ‘성공’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면, 대개는 곧장 ‘행복’이라고 답할 겁니다. 하지만 정작 ‘행복’의 정확한 의미를 물어보면 이번에는 그리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지요. 누군가는 ‘가족’을 떠올릴 테고, ‘쾌락’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신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마틴 셀리그먼의 긍정심리학 덕택에 최근 수십 년 사이에 행복에 관하여 많은 연구가 이뤄졌지요. 우리는 그 연구결과들을 살펴보면서 매우 중요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행복’이라는 단어의 의미 파악을 시도해 볼 예정입니다.
3장은 성공에 대한 개념을 정의할 때 가족과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탐색합니다. 설령 부모로부터 의사나 변호사가 되라는 요구를 받지는 않았더라도, 뭔가 ‘대단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받았던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무엇일까요? 또한 유명인의 영향력이 큰 현대사회는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성’과 ‘부’를 강조하지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성공의 척도에 목을 매는지 그 이유를 면밀히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 본인이 이 두 특정한 목표에 별 관심이 없다고 해도, 3장을 통해 주변 사회가 성공 목표에 끼치는 영향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4장은 여러분의 직업적 열망과 관계된 성공에 중점을 둡니다.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직업’과 ‘커리어’일 수도 있고, 그 외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 어떤 개념일 수도 있죠. 연구결과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일의 의미는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보다는 사람들 내면에서 비롯된다고 하지요. 예를 들자면, 제가 한국의 송광사에 머물렀을 때는 설거지나 화장실 청소 같은 하찮은 일도 의미 있게 여겼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마음챙김과 공동체에 봉사하는 태도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반대로 간호사, 사회복지사, 교사처럼 남들이 보기에는 의미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실제로 물어보면 자신의 일을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성공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는, 이 책이 던지는 두 번째 질문,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에 답할 차례입니다. 2부에서는 당신의 성공 여정을 안내하기 위한 5단계 프로세스를 제공합니다.
우선 저를 첫 번째 직업과 현재의 커리어로 이끌었던 질문, 즉 “남들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5장은 자신의 독특한 적성, 열정, 능력을 살펴볼 겁니다. 또한 사회적 유형, 성취 추진력, 지적/창의적 충동, 정서적 기질을 알아보기 위해 개인 평가표도 작성할 예정이지요. 성공을 연구하면서 느낀 가장 거대한 아이러니는, 성공의 비밀이란 찾기 힘든 저 멀리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훨씬 간단하지요. 이미 당신 안에 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타고난 능력을 찾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의 강점을 알았다면 이제 자신감의 동력을 발견해야 할 차례입니다. 노먼 빈센트 필이 1952년에 출간한 《긍정적 사고방식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 첫머리에서 “당신 자신을 믿으라!”고 촉구했듯이 말이죠. 6장은 자신의 인생에 이러한 신념을 불어넣도록 도와줄 겁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3개의 장은 장기 목표를 향한 성취 프로세스에 관한 내용입니다. 7장은 성공학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 정신 집중의 힘에 대해 고찰할 겁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여러 마법과 말장난들이 난무하죠. 우리는 찰스 린드버그가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이라는 소형 비행기를 몰고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이야기를 발판 삼아, 마음의 진정한 네 가지 힘, 열정, 상상력, 직관, 이성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장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8장은 성공 엔진에 동력을 제공하는 에너지를 다룹니다. 각자 자신이 선호하는 연료가 따로 있죠. 하지만 저는 내적 만족과 외적 보상 모두를 추구하는 사람이 어느 하나에만 의존하는 사람보다 단일 작업을 더 오래 수행할 수 있고, 더 강력한 성취감을 얻기 쉽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혹시 자신이 중요한 에너지의 근원을 그간 무시해 온 건 아닌지 점검하는 기회가 될 겁니다.
9장은 책의 후반부를 정리하면서 사교술이 성공에 끼치는 영향을 탐색합니다. 성공을 다룬 대부분의 책은 사교술의 피상적인 면, “친구를 얻는 법”과 네트워킹 측면만을 강조하지요. 하지만 성공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힘은 신용과 진정한 인간관계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능력입니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과제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자신을 조정하는 동시에 자의식自意識을 유지하는 법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장에서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타인의 신뢰를 얻는 실용적 방법뿐 아니라 이미지 관리의 과학에 대해서도 다루겠습니다.
이 책의 결론부인 에필로그에서는 우리가 함께 살펴봤던 중심 주제들과 교훈들을 되짚어 봅니다. 성공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직업 생활과 개인적 삶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목록을 작성해 볼 겁니다.
앞으로 이 책에서 여러분은 수많은 이들에 대한 다양한 사연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대개는 그들이 어떻게 역경을 이겨내고, 실수를 만회하고, 자신의 믿음을 지켜내고, 자신만의 성공을 달성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죠.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책은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은, 바로 ‘당신 자신’에 대해 다루고 있죠.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교 졸업 연설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러니 남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 남의 의견을 듣느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게 하십시오. 정말 중요한 것은 가슴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갖추는 일입니다. 가슴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정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독자 여러분이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좀 더 분명하게 듣고 앞으로의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발견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이제부터 즐거운 일이 시작될 겁니다. 몸을 맡기세요.
1부의 네 개 장에서는 성공에 대해 당신이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믿고 있는지를 점검할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자신의 고유한 생각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사실은 대부분 가족, 친구, 사회나 대중매체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깨닫고 놀랄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믿음의 원인들을 이해하고 나면, 그 믿음을 수용, 거부, 통합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보다 창의적으로 다가서는 방법을 결정할 수 있지요.
멀리서는 성공이 명확한 것처럼 보입니다. 즉, 성공한 사람은 부, 명성, 행복, 성취감, 직업적 지위, 삶의 여유 등 원하는 것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듯하지요. 하지만 이런 조건들에 실제로 직접 가까이 다가갈수록, 성공은 점점 더 복잡하고 모호해집니다. 이 때문에 성공을 성취해야 할 목표가 아닌 삶의 방식으로서 규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죠.
이제부터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흔한 대답들, 행복, 명성, 부, 직업적 지위, 의미 있는 일을 각각 살펴볼 겁니다. 이 조건들을 모두 갖출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인생에서는 보통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죠. 그렇다면, 당신의 최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자신을 지배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미셸 드 몽테뉴
처음 에릭 애들러Eric Adler를 만난 건 와튼스쿨 MBA 1학년이던 그가 제가 가르치는 와튼스쿨 법학 필수과목을 수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연갈색 머리에 동급생보다 약간 나이가 많았던 에릭은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현명해서 어느 교수든지 아끼는 학생이었죠. 하루는 제 연구실로 찾아오더니 수업을 들으며 생긴 의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길 청하더군요. 전에 법학을 공부해 본 적이 없었기에 유독 관심이 많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의 대화는 좀 더 깊고 개인적인 문제로 이어졌죠. “솔직히 아직도 제가 원하는 게 뭔지 확신이 안 서요.” 에릭이 입을 열었습니다. “경영대학원 공부가 좋긴 한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진 모르겠습니다.”
경영대학원에는 크게 두 부류의 학생이 있습니다. 대다수인 ‘퀀트Quants’는 학부에서 경제학, 수학 또는 공학을 전공했고, 첫 직장이 영리기업체였으며, 암산으로 복잡한 ‘순현재가치’ 계산을 해낼 줄 아는 사람들이죠.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압니다. 큰 거래를 성사시키거나, 거액을 투자하거나, 대기업에 자문하는 전략 컨설턴트가 되는 겁니다. 이런 학생들이 글로벌 비즈니스에 품는 열정은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쏟아부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한편에는 ‘시인Poets’이라 부르는 부류도 있습니다. 과거에 프로 운동선수, 직업군인, 자선단체 봉사자, 언론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이죠. 경영대학원은 이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커리어를 제공하는 기회입니다. 통계학과 금융 수업은 시인들에게 좀 불리한데, 퀀트들은 책을 펴지 않고도 이미 마스터한 과목을 두고 그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죠. 교수들 중에서는 ‘시인’ 부류라고 할 수 있는 저이기에, 가급적 시인들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학부에서 경제학과 공학을 전공한 에릭은, 수학에는 능숙했지만 그래도 시인에 가까웠습니다. 최고의 인문대 중 한 곳인 스와스모어대학을 졸업한 후 볼티모어의 유명 사립 고등학교에서 8년간 교사로 일했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즐겁긴 했지만, 틀에 박힌 일을 떠나 좀 더 강렬한 일을 원하게 됐습니다. 경쟁적이고, 시간을 다투는 에너지가 가득한 그런 일을 말이죠. 그래서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면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던 겁니다. 그로부터 반년이 흐른 지금, 이제 에릭은 진정한 탐색을 막 시작한 셈이었죠.
“교육에 대한 과거의 지식과 지금 경영에 대해 배우고 있는 지식이 나중에 결합되면 큰 도움이 될 거야.” 제 말에 에릭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예전 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제가 추구하는 건 변화거든요.” 그가 다른 수업 때문에 자리를 뜰 때까지 우리는 몇 분 더 대화를 나눴고, 저는 에릭에게 언제든지 원할 때 또 찾아오라고 권했습니다. 와튼스쿨에서 보낸 2년간 실제로 에릭은 그렇게 했지요. 제가 가르치는 협상 수업까지 수강하면서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에릭이 MBA 과정을 밟는 동안 저는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경영대학원에는 커리어 중심주의 문화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었죠. 어떤 일이 좋은 직업인지에 대해 모두가 생각이 같았고, 그래서 오래지 않아 기술, 금융, 컨설팅이라는 유망한 산업군으로 모든 학생들이, 심지어 마음에 의심을 품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휩쓸려 들어가 버리기 일쑤였던 겁니다. 에릭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분위기에 저항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었고요.
아니나 다를까, 2학년이 시작되자마자 에릭은 저를 찾아와 선언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어요!” 목소리가 잔뜩 들떠 있었죠. “컨설턴트가 되고 싶어요!” 내심 우려스러웠지만 겉으로는 그를 축하해주고 행운을 빌어주었습니다.
몇 달 후, 에릭은 목표했던 대로 워싱턴 D.C의 한 컨설팅 기업체에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졸업 직전에 만나본 그는, 심사가 복잡해 보이더군요. 알고 보니 처음 선택했던 회사로부터는 입사를 거절당했던 겁니다. 앞으로 맡게 될 일은 자신이 꿈꿨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습니다. “이 회사에서 오래 경력을 쌓을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당장은 이곳에서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대개는 이렇게 이야기가 마무리될 겁니다. 그리고 10년, 혹은 20년이 흐른 뒤 에릭을 우연히 만나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노라고 말을 건넸겠죠.
하지만 에릭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저는 와튼스쿨이 개최한 컨퍼런스에서 에릭이 입사했던 회사 사람을 만나 그의 안부를 물었죠. 그녀는 다소 불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릭은 컨설턴트에 어울리지 않았어요. 이제는 저희와 함께 일하지 않는답니다.” 지금은 뭘 하는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뒤, 에릭의 스토리는 제 예상보다 훨씬 더 흥미롭게 전개되어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컨설턴트라는 직업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그는 회사보다도 더 일찍 깨달았습니다.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오랜 공을 들여 대기업에게 비용 절감 방법을 분석해 주는 일이었는데, 그 결과물은 고작 소비자에게 청구서를 발송할 때 단면이 아닌 양면 인쇄를 권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나 하려고 경영대학원에 갔나 하는 실망감에, 결국 에릭은 다시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와 열정을 찾아 나서게 됐죠. 다만 이번에는 한층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이 장의 첫머리에서 인용한 프랑스 철학자 미셸 몽테뉴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자신을 지배하는 패턴을 찾아낼 거라 말했죠. 바로 에릭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선 그는 자신만의 재능과 지식을 독특하게 결합해 중요한 일을 하려면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에릭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사실 그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창업 경험이 있었고, 사업체를 키워 매각한 뒤 또 다른 회사를 차리기도 했었죠. 에릭은 기업가정신과 위험 감수가 가정생활의 일부이자 저녁 식사의 자연스러운 대화 주제인 분위기에서 자랐던 겁니다. 경영대학원이라는 문화는 그의 경력을 ‘어디에서 일해야 하지?’라는 구직의 문제로 한정시켰었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묻자마자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교육’이었죠.
고교 교사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에릭은 오래 품어두었던 질문을 꺼냈습니다. “가정 환경이 좋지 않지만 장학금을 받고 엘리트 사립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왜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할까?” 그 아이들이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유복한 학생들에 비해 어렸을 때부터 쌓아야 하는 사회적 기반과 공부 습관이 부족하기 때문임을 그는 알고 있었지요.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불우한 학생들을 위한 ‘공교육 기숙학교’를 세워야겠다는 얼핏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학교를 만든다면 공부하기에 안전한 환경, 함께 성적 향상에 전념할 수 있는 또래 집단, 롤 모델과 책임감 있는 문화를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에릭이 그려낸 학교의 모습은, 엄격한 교과 과정과 탁월한 교사들이 갖춰진 기숙형 고등학교였죠. 적절한 환경만 제공된다면 불우한 학생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는 것이 설립 목표인 학교였습니다.
한동안 에릭은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꿈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컨설팅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 새로 입사한 임원이 프린스턴대학 졸업생인 라지브 비나코타Rijiv Vinnakota를 만나보라고 추천해 주었죠. 자신이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라지브가 에릭과 거의 비슷한 얘기를 하고 다녔다면서 말입니다. 워싱턴 D.C의 어느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만나 세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에릭과 라지브는, 곧바로 힘을 합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만에 두 사람은 시범학교 설립 제안서를 완성했습니다. 또 18개월 만에 200만 달러 모금에 성공했고, 워싱턴의 낡은 건물을 개조한 후 학교를 열었지요. 처음 모인 학생들은 워싱턴에서 환경이 가장 열악한 지역에 거주하는 아이들 중 추첨을 통해 선발된 6학년생 40명이었습니다.
이렇게 ‘교육적 진화와 발달을 위한 학교School of Educational Evolution and Development’, 즉 SEED가 탄생했습니다. 최대한 많은 학생들을 대학에 보낸다는 목표 아래 나중에는 6학년부터 12학년까지, 한 학년당 약 50명씩의 학생을 받았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졌죠. 에릭과 라지브는 2002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여 ‘인생 우수 활용상Use Your Life Award’를 받았고, ABC ‘나이트라인’과 CBS ‘60분’에도 출연했으며, 다른 도시에도 SEED 학교들이 추가로 세워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이들이 고안한 학교 모델이 빈민지역 학생들에게 성공에 필요한 학습 환경을 조성하여 교육 결과를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것이었지요.
2010년에는 SEED 졸업생들 전원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모두가 고등학교 졸업률이 33퍼센트 수준인 빈민지역 출신이었죠. 게다가 이들이 진학한 대학 중에는 듀크, 브라운, 메릴랜드 등 명문대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후의 결과도 훌륭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SEED 출신 중 약 70퍼센트가 졸업에 성공했는데, 이 수치는 SEED가 학생들을 선발한 빈민지역 공립 고등학교의 졸업률보다 무려 여섯 배나 높았지요.
SEED라는 아이디어를 발견하기 위해 에릭은 과연 경영대학원에서 2년을 보낼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마 그러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이미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강력한 능력들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경영대학원에서 배운 비즈니스 지식과 교육 분야에서 쌓은 자신의 독특한 경험이 결합되어 SEED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죠. 워싱턴에 학교를 설립하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