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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말이 달라지면 교실도 달라진다
교직 경력 4년 차, 6학년을 처음 담임했습니다. 학교엔 제법 익숙해졌지만, 아이들에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반에는 왕따도 있고 전교생이 학교 짱으로 꼽는 일진도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은 교사가 보지 않는 곳에서 교묘하게 왕따 아이를 괴롭혔습니다. 몰래 뒤통수에 침을 뱉거나 신발을 숨기거나 모둠 활동에서 배제했죠. 대놓고 나서는 일은 없었지만, 일진이 아이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거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보다 못해 하루는 왕따당하는 아이를 편드는 말을 작정하고 했습니다.
“너희들은 도대체 왜 그러니. 친구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면 안 된다는 거 몰라?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거야. 선생님이 볼 때 그 아이(왕따)는 문제가 없어. 모든 건 다 따돌리고 괴롭히는 너희들 잘못이야. 얘들아, 선생님이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기나 하니? 선생님 마음을 안다면 제발 그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
독자들께서는 제가 했던 말에서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3가지 이상 찾으실 수 있나요? 저는 이때 적어도 3가지 이상 잘못 말했습니다. 교직 경력 25년 차에 들어선 지금은 그때 했던 말이 왜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잘 압니다. 저는 이때 교육적인 지도를 하기보다는 아이들과 타협을 하려 했고, 잘못하지 않은 아이도 잘못한 것처럼 뭉뚱그려 말했으며, 아이들에게 나쁜 아이라는 낙인을 찍는 말을 했습니다.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저는 이런 객관적인 자기관찰은커녕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잘 몰랐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말끝에 설움에 복받쳐서 조금 울먹였던 것도 같습니다. 딴에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일은 뜻밖에도 반 아이들 대다수가 제게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말할 때마다 어린애처럼 징징댄다. 선생님은 어른이지만 신뢰하기 어렵다.”
편을 들어주었던 왕따 아이가 그날 일기에 썼던 말입니다.
“선생님은 혼자만 착한 척한다. 재수 없다.”
이건 사태를 지켜보기만 하던 방관자 아이가 일기에 썼던 말이고요.
여러분은 제가 아이들의 이런 반응에 얼마나 화가 나고 어이없었을지 상상하실 수 있을까요. 저는 아이들을 눈곱만큼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거야, 아이들을 볼 때마다 화가 가슴 밑바닥부터 치밀어 올랐습니다. 급기야 학생들에게 제대로 화내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매일같이 화를 내고 강압적으로 야단했습니다.
원인을 잘못 짚었으니, 결과도 나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를 내면 낼수록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왜 화를 내도 교실이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수선한 교실, 온갖 사고를 치며 엇나가는 아이들, 자존감을 잃고 헤매는 교사까지, 교실의 3박자는 불협화음을 내며 엉망으로 엉켜버렸습니다.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
이 일은 충격이 꽤 컸습니다. 잘하고 있다고 자만했던 저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됐고, 무엇이 문제인지 뿌리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학급경영, 수업, 교육과정, 교과서, 교사의 태도, 학생과의 관계, 저의 모든 것을 다 되짚어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하고 있어서 교실이 이렇게도 엉망인지 정말로 궁금했습니다.
답은 쉽게 나오질 않았습니다. 아침엔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서 수업을 준비하고, 교사용 지도서를 외울 때까지 읽고 또 읽어가며 교육과정을 연구하고, 서투르게나마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프로젝트 학습을 하고, 저녁엔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7시까지 가르치는 데다가 주말엔 아이들과 두레 데이트까지 했습니다. 그 이상 뭘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확실한 건 ‘이보다 열심히’는 답이 아니었습니다. 그 너머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나마 제 편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 몇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너희들 많이 좋아하는 건 알지?”
“네. 알아요.”
“근데 아이들이 왜 말을 안 들을까?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이 하라고 하면 다 반대로 해. 청개구리처럼.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어.”
“…으음, 그게….”
아이들이 제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습니다. 문득 아이들이 답을 알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매일 나를 지켜보고, 나와 함께 수업해온 이 아이들이라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뭔데, 말해봐. 선생님은 너희들 생각이 궁금해. 솔직하게 말해줘. 선생님이 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게.”
한참 만에 돌아온 답은 한 번도 머리에 떠오른 적 없던 단어였습니다.
“말이요.”
“말? 무슨 말?”
너무나 의아해서 아이들에게 되물었습니다.
“선생님이 하는 말이요.”
• 선생님은 칭찬할 때 그냥 잘했다고만 해요. (더 자세하게 말해주세요.)
• 선생님 기준으로 좋고 나쁘고를 정해요. (우리도 기준이 있어요. 우리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 선생님은 한번 나쁘게 보면 그 애는 항상 나쁘게 봐요. (우리가 항상 나쁘거나 항상 착할 수는 없잖아요.)
• 선생님은 설명이 길어요. 듣다 보면 오히려 앞에서 배운 걸 잊어버리게 돼요. (짧게 설명해주세요.)
그날 아이들이 해준 이야기는 교사로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날카로운 비판이었습니다. 공개수업 때도 동료 교사들은 잘한다고만 했는데 말이지요. 정작 나는 왜 이런 나 자신을 몰랐을까,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멍해졌던 것 같습니다. 고백하자면 그때까지 학생들에게 잘못 말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까요.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이 해준 말들을 한 문장, 한 문장 공책에 정리했습니다. 몇 날 며칠을 말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평소에 제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이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설문부터 해보았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손, 머리!” “조용히 해!” “집중!” “야!” 같은 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아이들이 교사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아이들이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그런 저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을 겁니다.
다음 날 선생님이 말을 어떻게 바꾸길 기대하는지 다시 설문했습니다. 아이들은 “잠깐만 멈춰보자” “선생님이 먼저 말할게. 조금 기다려볼래?” “여기 보세요”처럼 말해달라고 답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해준 말을 컴퓨터 모니터에 써서 붙인 다음 매일 연습했고, 교단 일지에 연습 과정을 따로 기록해두었습니다.
아이들이 해준 피드백은 정확했습니다. 말을 바꾸자 교실은 달라졌습니다. 교실은 안정적이면서도 평화로워졌고, 아이들 사이에선 싸움이 줄어들고 수업에 더 잘 집중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교사를 잘 따르게 되었고요. 내내 속 썩이던 일진 아이가 먼저 다가와서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말했을 때 제가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하시려나요.
소름 돋을 만큼 놀라운 변화가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교사의 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교실이 평화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아마도 교사가 아이를 대등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을 말로 보여주고, 아이의 변화무쌍한 감정에 공감한다는 것을 말로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변화일 것입니다.
교사의 말 연습이 필요한 이유
교사는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는 것이 제가 그 시절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교사에게는 하루의 시작도 말이고, 끝도 말입니다. 교사는 수업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심지어 점심시간에도 말을 합니다. 학부모에게도 교육적인 말을 해야 하고, 동료 교사와도 교육적인 활동과 관련한 말을 합니다. 교사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친절하고 부드럽게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참담할 겁니다. 제가 앞서 겪었듯이 말이지요.
저는 이걸 이미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학급을 경영하라’라는 주제로 출연했을 때도 교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언급했습니다. 지금도 교사들에게 강의할 때마다 교사의 말하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곤 합니다.
말하기를 연습하라고? 굳이? 정도로 생각하는 교사들도 더러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책에서도 수없이 강조하겠지만, 교사의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힘이 셉니다. 교사의 말은 아이들의 삶을 바꾸기도 하고, 자존감을 떨어뜨리는가 하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수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가 하면 무엇을 배웠는지 전혀 모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말은 습관입니다. 처음은 낯설고 어색할지 몰라도 원리를 알고 적극적으로 반복해서 연습하면 반드시 나아집니다. 경력이 짧은 교사는 물론이고, 경력이 많아도 학생 지도가 힘든 교사가 있다면 말부터 바꾸는 게 좋습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과 지도는 어떤 학생이든 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굳게 믿고 실천해보세요. 어떤 교사든지 행복하고 따뜻한 교실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교사의 말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교실 속 다양한 문제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학생들에게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지를 실제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동안 강연과 책으로 만났던 수많은 교사가 던진 질문을 Q and A형식으로 풀었습니다. 저도 교실에서 경험했고 다른 많은 교사가 똑같이 경험하는 문제인 만큼 책을 읽는 분들께도 깊이 와닿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말을 바꾸면 정말로 교실이 바뀌니까요.
이 책에서는 교사가 교실에서 부딪치는 문제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말의 키워드로 6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존중의 기술, 공감의기술, 권유의 기술, 수업의 기술, 소통의 기술, 성장의 기술입니다. 결국 대화란 마음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교사가 어떤 마음 그릇을 쓸 것인지에 따라 범주를 나누었습니다.
좋은 대화는 언제나 상대를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기에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학생뿐 아니라 교사 자신이 다른 동료나 학부모에게 상처받는 일도 줄어듭니다.
공감은 아이들의 다양한 감정 표현을 쿠션처럼 받아들이는 대화의 방식입니다. 세게 날아오는 감정의 말이 공감이라는 쿠션을 한 번 거치면 마음은 덜 아프고 상황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공감은 교사가 상처받지 않고 아이는 올바른 감정 표현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대화법이라는 걸 꼭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교실에서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과 이야기 나눌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권유의 기술입니다. 권유하는 대화는 더 나은 해결책을 아이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아이의 뾰족하게 날 선 마음을 먼저 인정하고 성큼 다가서는 권유의 대화법을 함께 익혀보셨으면 합니다.
교사는 교실에서 온갖 다양한 사건과 상황에 부딪힙니다.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업도 매끄럽게 잘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일어나는 다양한 일에 부드럽게 대처하는 교사의 말하기도 함께 다루었습니다. 특히 교사가 가장 껄끄럽고 어렵게 생각하는 학부모나 교장, 교감을 비롯한 동료 교원과의 관계를 유연하게 맺기 위해 필요한 말하기도 책에서 비중 있게 이야기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싶은 교사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내가 자신과 나누는 내면의 대화입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늘 속삭입니다. 너는 못났어, 너는 좋은 선생이 아니야, 오늘도 화냈네, 나는 왜 이럴까, 같은 말을 수없이 해왔을 겁니다. 자신과 나누는 대화조차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삶도 긍정적으로 달라집니다.
이 책이 선생님의 마음을 친절하고 따뜻한 말 그릇에 담아내는 데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고로 이 책에서는 ‘학생’이란 말 대신 제가 교실에서 즐겨 쓰던 ‘아이’라는 말을 주로 썼습니다.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3년 김성효 씀
“야!”라고 부를 때마다 왠지 아이들을 무시하는 것 같아요.
“야, 어디 가!”
“야! 빨리 와!”
많이 들어보셨지요? 학교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소리라면 “야!”일 겁니다. 교실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말도 “야!”이고요. 친구들끼리 서로를 부르거나 교사가 학생을 부를 때도 편하게 “야!”라고 하지요. 심지어 학교에서 “야!”라고 부르면 학생들은 당연히 불특정 다수인 자신들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돌아볼 정도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야 : 어른이 아이를 부르거나 같은 또래끼리 서로 부르는 말
쉽게 말해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어린 사람을 편하게 부르는 소리라는 뜻입니다. 어른이 아이를 부르거나 같은 또래끼리 서로를 부르는 소리라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편하게 여기고, 낮추어서 부른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야!”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요? 학생을 존중하기보다는 아무래도 낮춰서 대한다는 뜻을 담은 표현이겠지요.
여러분은 반에서 아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설문해본 적이 있나요. 저는 해마다 아이들에게 듣기 싫어하는 말을 설문해서 그 결과를 학급경영에 꼭 반영했습니다. 아이들이 해주는 말은 교사가 가장 귀담아들어야 하는 말입니다. 적어도 한 해에 한 번씩은 설문해보았으면 합니다.
아이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등하게 존중하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저는 아이들과 교실에서 쓰지 말아야 할 금칙어를 몇 가지 정해서 꾸준히 지켰습니다. 그 첫째가 “야!”였습니다. 반에서 듣기 싫은 말을 설문했을 때 “야!”라는 말을 아이들이 가장 먼저 꼽았기 때문입니다. “안 돼” “빨리 좀 해” 같은 말이 이어서 꼽혔고요. 설문 결과를 보니, 아이들에게 함부로 “야!” 소리를 못 하겠더군요.
아이들과 학급회의에서 “야!” 대신 쓸 말을 찾았습니다. 아이들은 “얘들아!” “○○야”처럼 불러주는 게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저도 아이들도 쭉 그렇게 불렀습니다.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르는 게 처음에는 어색할지 몰라도 학기 초부터 꾸준히 지도하면 자연스레 입에 뱁니다. 나중엔 다른 반 아이들이 서로 “야, 김○○” 하고 부르면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요.
아이들이 “야!” 대신 할 말로 찾아낸 “얘들아”는 여러 면에서 효과가 좋았습니다. 싸움이 줄었고,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 사이도 편안해졌습니다. 모둠 활동이나 발표 수업도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할 수 있었고요.
이 간단한 말 바꾸기만으로도 교실이 달라졌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말은 마음을 담습니다. 우리는 이름을 단순한 호칭으로만 부르지 않습니다. 상대에 대한 마음과 감정을 담지요. 내 이름을 다정하고 따뜻하게 불러주는 상대에겐 화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학기 말에 다시 설문해보면 아이들이 서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습니다. “친구들이 ‘야! 김지우!’라고 부를 때보다 ‘지우야!’라고 불러주니까 기분이 좋았다” “이름을 부르면서 사이가 나빴던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다” “여자(남자) 아이와 싸우는 일이 줄어들었다” 같은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지요.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말이 쌓이면 눈에 보이는 변화가 됩니다.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아이들이 마음을 담아 친구를 다정하게 부르면 교실은 정말로 달라집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부를 때도 무심결에 “야!”나 “야, 김○○” 같은 소리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습니다.
대화할 때는 상대의 눈을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면 눈을 쳐다보면서 주의 깊게 듣거나 말하는 것에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표현에 서툰 아이들은 더욱 그렇고요. 상대의 눈을 보면서 대화하는 태도는 시간을 내서 따로 지도하는 게 좋습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함께 지도하면 아이의 대인 관계가 눈에 띄게 좋아집니다. 본래 사람은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상대를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아이들도 똑같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공식이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잘 들어주는 아이를 좋아합니다.
학생들에게 상대의 눈을 쳐다보면서 말하고, 듣는 이는 적당한 반응이나 질문을 하면서 듣도록 하는 대화의 기본 원리를 가르쳐주세요. 평소 선생님이 하는 자잘한 말도 주의 깊게 듣고, 적절히 반응하면서 질문하고, 특히 눈을 쳐다보도록 강조하는 게 좋습니다.
• 말하는 사람은 상대의 눈을 보면서 말하도록 합니다.
• 다수에게 말할 때는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안한 특정인을 바라보면서 말하게 합니다.
•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게 합니다.
• 상대의 말이 길어지더라도 몸을 비비 꼬거나 지루해하는 표정을 짓지 않도록 합니다.
• 상대의 말에 적절하게 반응하게 합니다.
• 고개 끄덕이기, “아, 그렇구나” 하면서 맞장구치기, 궁금한 것은 메모했다가 질문하기 등은 꾸준히 반복해서 지도하는 게 좋습니다.
평소 행동이 유난히 굼뜨고, 무슨 과제를 줘도 느리게 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빨리 좀 하라고 야단하게 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뜬금없는 말 같지만, 저는 시골에 산 지 오래입니다.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지날 정도로 외진 곳입니다. 생활은 살짝 불편하지만, 하늘과 달과 바람과 더불어 살기에 매일같이 꽃이 피고 낙엽이 지고, 논에 벼가 심어지고 어느새 추수의 때가 오는 것을 봅니다.
시골에 살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참으로 흥미롭게도 너무나 정확하게 봄이 되었다 싶으면 개나리가 피고, 또 가을이 오는구나 싶으면 국화가 핀다는 겁니다. 제아무리 예쁘고 우아해도 어떤 국화도 개나리의 때에 피지 않고, 어떤 진달래도 코스모스의 때에 피어나지 않습니다. 꽃들은 정말로 딱 자기 때에 맞게 피어납니다.
아이들도 똑같습니다. 각자의 때가 있고, 각자의 속도가 있답니다. 교실에는 아이들 수만큼 다른 속도가 존재합니다. 모든 아이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배우고 이해하고 놀고 생각하지요. 어디서나 톡톡 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좀처럼 눈에 안 띄는 아이가 있고, 배우는 속도가 유난히 빠른 아이가 있는가 하면 답답할 정도로 한없이 느린 아이가 있습니다.
모든 아이가 하나를 듣고 열을 이해한다면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쉽고 편할까요.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직업이 선생이겠죠.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교실에는 배움이 빠른 아이보다 그렇지 않은 아이가 훨씬 많습니다. 심지어 조금 느린 게 아니라 어떤 과제를 주더라도 다른 아이보다 몇 배는 시간이 걸려야 간신히 끝마치는 아이도 있습니다.
배우는 속도가 느린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교사가 끝없이 인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교사가 몇 번이고 아이를 들여다보아야 하고, 여러 차례 똑같은 말을 하면서도 짜증 내지 않고 또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에 대한 인내가 필요한 직업은 세상에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한 사람이 성장하기까지 끝없이 기다리고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유일한 직업이 선생일 겁니다. 그래서 선생하기가 힘들고 고된 것이고요.
행동이 느리고 굼뜬 아이를 지도할 때는 느린 원인을 찾아서 지도해주면 좋습니다. 이해를 잘 못하고 말귀를 못 알아듣기 때문에 행동이 느리다면 아이 곁에 가서 한 번 더 천천히 설명해주세요. 아이가 충분히 이해한 다음 활동을 시작하게 하면 혼자 뒤처지거나 머뭇거리느라 제대로 활동을 못 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저학년이라든가 아직 다른 아이보다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과제가 다 끝날 즈음]
수아 : 저 아직 다 못했어요.
교사 : 선생님이 아까 20분까지는 마쳐야 한다고 했잖아. 넌 왜 이렇게 행동이 느리니?
[과제를 시작하기 전에]
교사 : 수아야, 선생님이 방금 무슨 이야기했는지 이해했니? (곁에 가서 묻기)
수아 :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교사 : 선생님이 방금 한 이야기는 ○○○이야. 무슨 뜻이라고 했니, 수아가 선생님한테 한번 설명해볼래? (한 번 더 확인하기)
수아 : ○○○ 하라고 했어요.
교사 : 그래. 그럼 시작해볼까?
원인이 딱히 없고, 그저 느리게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밴 경우라면 조금 다르게 접근하는 게 좋습니다. 이 경우 과제 수행에 필요한 시간을 아이 스스로 가늠해보게 하세요. 언제까지 무엇을 하고, 그다음 언제까지는 무엇을 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게 하는 겁니다.
이렇게 지도해주면 아이 스스로 시간을 안배해서 활동하는 것이 점점 몸에 배게 됩니다. 아이 스스로 끝낼 시각을 가늠하면서 활동하도록 지도하면 시간 내에 끝마치려고 서서히 노력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주어진 시간에 과제를 모두 마칠 수 있지요.
교사 : 얘들아, 다 했니?
아이들 : 네. 다 했어요.
교사 : 아직 다 못 한 사람, 손!
수아 :(혼자 손을 든다.) 저요. 아직 다 못했어요.
교사 : 왜 이렇게 행동이 느려. 빨리 좀 하라니까. 앞으로 5분 안에 끝내!
교사 : 수아야, 아직 다 못했니? 그거 다 마치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수아 : 5분이요. (스스로 시간 짐작해보기)
교사 : 그럼 5분 안에 정리까지 하는 거야. 5분 안에 마치자. (끝마칠 시각 알려주기)
마지막으로는 성격이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고 완벽한 걸 좋아해서 다른 아이보다 행동이 느린 경우입니다. 이럴 때는 본인이 해오던 것보다 속도를 조금 더 내게 하되, 과정에 초점을 두어 격려해주는 게 좋습니다. 설사 아이 스스로 결과물이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시간적인 한계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잘 해내려고 노력한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고 말해주는 겁니다.
교사 : 아직 다 못 한 사람, 손!
수아 :(혼자 손을 든다.) 저요. 아직 다 못했어요.
교사 : 왜 이렇게 행동이 느려. 앞으로 5분 안에 끝내!
교사 : 수아야, 아직 다 못했니?
수아 : 네. 아직이요.
교사 : 수아야, 아쉽지만 이제 수업 시간이 10분밖에 안 남았어.
수아 : 아, 벌써요? 다 못했는데….
교사 : 괜찮아. 이렇게 꼼꼼하게 한 것도 충분히 훌륭해. 못한 것은 집에서 마무리하고, 친구들한텐 한 만큼만 보여주자. (한계 그어주기)
배움이 느린 아이는 누가 옆에서 빨리 마치라고 다그치면 오히려 더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아이 옆에 과제 수행 속도가 빠르면서 이기적인 성향이 강한 아이를 붙여놓으면 타박을 듣는 일이 많습니다. “너는 왜 이렇게 못 하니?” “너는 언제 다 할래?” 같은 잔소리를 하기 일쑤죠. 여기에 교사까지 “빨리 좀 하라니까” 하고 야단하게 되면 아이는 잘하고 싶어도 잘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는 느린 아이를 배려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아이를 붙여주는 편이 낫습니다. 천천히 과제를 수행하되, 끝까지 마무리하도록 격려해줄 수 있는 성숙하고 배려심이 많은 아이를 옆에 앉혀주세요. 특히 교사의 눈에 잘 닿는 곳에 앉혀서 자주 학습 속도와 과정을 확인해주는 게 좋습니다.
최근 연구들은 인지 능력보다 비인지 능력이 아이가 성공적인 삶을 사는 측도를 말해주는 지표라는 걸 밝혀냈습니다.1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감사, 인내, 자아존중감, 공감 능력 같은 비인지 능력이 아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는 데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비인지 능력은 끝까지 버텨내는 힘, 상상하는 힘, 대화하는 힘, 참는 힘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을 말합니다. 비인지 능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통적인 IQ테스트로 측정이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앞으로 미래 사회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뤄질 부분이 바로 종합적인 인간력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꼭 키워주려 애써야 하는 마음의 힘입니다.
비인지 능력은 정서의 발달과 안정부터 시작해서 자립심의 발달, 사회성의 발달, 지식의 습득 순으로 발달해간다고 합니다. 비인지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이의 정서적인 발달과 안정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 정서적 발달을 바탕으로 아이 스스로 해보고 싶어 하는 자립심을 북돋워주고, 서로 어울려 놀고 공부하는 힘을 일깨워주고, 그다음에야 공부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교실에서 평소 아이가 하는 말도 있는 그대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니?” “너는 왜 그런 게 궁금하니?” 같은 말은 아이가 마음의 힘을 키우지 못하게 만듭니다. 교사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요. “지금은 설명해줘도 몰라” “나중에 저절로 알게 돼 있어” 같은 말도 비인지 능력을 키우지 못하게 막는 말입니다. 아이를 한 사람의 개성 있는 인간으로 존중한다면 누구도 아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말을 하진 않을 겁니다.
전에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주말마다 곤충을 관찰하러 야외에 나간다는 학부모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곤충이라면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되지 않을까’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비인지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공부한 다음에는 이 부모가 아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위해 함께하고 시간을 내서 애써준 것은 아이의 비인지 능력을 키우는 최적의 방법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아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하찮게 생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