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위험을 피하고자
더 큰 위험을 맞닥뜨려서는 안 된다.
위기는 곧 기회다!”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수출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지금은 직장인 재테크 교육기업 ‘코칭컴퍼니’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재테크 관련 지식을 장착하기 위해 종합자산관리사(IFP), 생명보험, 손해보험, 변액보험 판매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부동산공인중개사 자격까지 보유하고 있다. 죽기 전에 책 한 권 쓰자는 소박한 목표로 집필한 《신입사원 상식사전》이 출간된 이후 《월급쟁이 재테크 상식사전》,《돈이 돈을 벌게 하는 23가지 방법》,《윤석열 시대 부동산 투자 사용설명서》 등 10권이 넘는 책을 썼으며, 여전히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이 책은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이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서다. 이 책을 읽고 지금 불황의 시대를 무사히 건넌 뒤, ‘그때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저자에게는 큰 보람이 될 것이다.
이메일 wooyongpyo@naver.com
프롤로그
‘회색 코뿔소’ 같은 인플레이션
생각해 보자. 눈앞에서 코뿔소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면 기분이 어떨까?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깨닫고 엄청난 공포심을 느낄 것이다. 그나마 잘 보이기라도 하면 괜찮지, 저게 코뿔소인지 아닌지 애매하다면 어떨까?
경제, 재테크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는 ‘회색 코뿔소grey rhino’라는 말이 있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을 때 쓰는 ‘검은 백조black swan’라는 말과는 달리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요인을 뜻하는 단어다. 코뿔소가 회색이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흰색이나 검은색 또는 빨간색이라면 잘 보이니 저 멀리 보이면 바로 도망갈 수 있을 텐데 회색은 그렇지 않다. 저게 코뿔소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하는 동안 어느새 코뿔소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 앞에 와 있다.
인플레이션이 바로 이렇다. 2022년 봄, 미국에서 물가상승률이 심상찮다는 소식이 처음 들려오기 시작할 때 “설마, 뭐 위험하겠어? 미국이 알아서 잘 하겠지”, “금리 살짝 올려서 물가 잡겠지”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서 바로 코앞에 코뿔소가 보였다. 이때부터 모두들 허둥지둥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경제 상황이 기존의 저금리에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바뀌는 과도기다.
인플레이션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어느 나라에서 1년에 몇만 %씩 물가가 올라서 손수레에 지폐를 싣고 다니는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 인플레이션은 먼 나라의 일이었고,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였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조차 매우 낯설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심하게 물가 상승이 지속되던 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투자의 옷깃을 여미지 말라
우리나라는 20년, 미국은 40년 만에 맞이하는 인플레이션의 시대. 물가도 금리도 계속 상승 중이고,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해 보려 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니, 재테크를 하는 것 자체가 맞는지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은 계속 하락하고, 부동산은 폭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투자 상품으로 각광받던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 역시 어떤 거래소가 폐쇄되어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어느 심리학책을 보니 사람은 힘든 상황을 경험할 때 기존에 겪었던 가장 힘든 상황과 비교한다고 한다. 기존에 500의 고통을 겪었다면 지금의 고통이 100인 경우 ‘그래도 그때보다는 덜 고통스럽다’고 위안을 삼는다는 뜻이다.
지금의 인플레이션 상황이 바로 재테크에 있어 ‘가장 힘든 순간’이다. 주식, 부동산, 코인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재테크라 부르는 모든 것에서 손해가 발생하고 있다. 직장인의 비상자금 통로인 마이너스 통장 이자율이 8%인 세상이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았다면 기존에 비해 두 배의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나가야 할 돈이 많아진다. 가만히 있어도 지갑이 알아서(?) 얇아지고 있는 시대, 재테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섣불리 잘못 뛰어들면 갖고 있는 것조차 모두 다 잃어버릴 것 같은 시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투자의 옷깃을 여며서는 안 된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비단 그렇지 않다고 해도 실질 소득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득이 줄어드니 투자도 줄이자 혹은 투자는 잠시 멈추자 해서는 더 큰 마이너스만 떠안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투자를 이어가야 줄어든 만큼의 소득을 상쇄할 수 있다. 눈앞의 위험을 피하고자 더 큰 위험을 맞닥뜨려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투자는 계속되어야 한다
인플레이션 시대, 지갑 얇은 직장인들은 어떻게 투자하면 좋을까?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기본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사람도, 일정 정도 저축이 있는 사람도 모두 고민일 것이다. 이 책이 그 고민 해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은 투자 초보자들을 위해 기본적인 내용을 짚는 동시에 투자 경험이 있는 독자들까지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무조건 오르니까 투자하세요’라고 강요하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오늘 안 하면 내일 후회한다는 식의 선동이 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투자는 항상 손실의 가능성이 있기에 장점과 단점까지 함께 짚어야 한다. 확실한 것은 ‘대박’은 없다는 것이다. 마치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말이다.
이 책은 크게 인플레이션이 무엇인지 설명하고(1장), 인플레이션 시대를 버텨내기 위한 체질 개선을 위한 점검 포인트를 설명한 후(2장), 어떤 식으로 투자하면 좋을지(3~7장)로 구성했다. 1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어떤 배경에서 발생하는지, 앞으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본적인 개념을 잡았고, 2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시대를 버텨내기 위한 체질 개선이 가능하도록 점검해 볼 포인트를 정리했다. 마른 수건도 쥐어짜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1장과 2장에서 거시적인 틀에서 현 상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준비를 할 것인지 살펴본다면, 3장부터는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실질적인 활용 방법을 알려준다. 3장에서는 소득을 어떻게 다변화해 추가 소득을 올릴 수 있을지 몇 개의 방안을 준비했다. 이 장을 읽으면서 직장에서 주는 소득만 받기에는 내가 가진 잠재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한다. 4장에서는 주식과 ETF를 정리했다. 인플레이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주식과 ETF를 선별했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5장에서는 부동산을 다루었다. 주택의 가격 결정 원리를 바탕으로 앞으로 주택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6장에서는 보험을 다룬다. 가지고 있는 내 보험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7장에서는 원자재 투자에 대해 설명한다. 금, 달러, 국제유가에 투자해 보고 싶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투자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무술영화를 보면 어느 날 스승님이 제자에게 말한다.
“이제 더 가르칠 것이 없다. 하산하도록 해라.”
그 길로 제자는 하산, 뛰어난 무술 실력을 발휘해 부모님의 원수를 갚고, 사랑도 쟁취한다.
나도 제자에게 하산을 명하는 스승님의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읽은 독자 모두가 인플레이션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여 넓은 세상으로 나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봤으면 좋겠다. 인플레이션이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잘 통과한 뒤 해피엔딩의 결말을 맞는다면 저자로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2023년에 우용표
차례
인플레이션이라는 기회에
올라타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플레이션은 ‘경제학 교과서’에서나 보는 단어였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오히려 물가가 낮아져서 문제라는 기사는 간간이 접하기도 했다. 2020년 6월 2일자 <연합뉴스> 기사의 헤드라인과 소비자물가 증감률 추이를 다룬 그래프를 보자.
5월 소비자물가 0.3% 하락…
8개월 만에 마이너스 물가(종합)
소비자물가 증감률 추이
자료: 통계청
소비자물가 하락이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고민이 담겨 있는 기사다. 이렇게 ‘물가는 당연히 안 오르는 것이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200원’에 익숙했던 우리였다. 2020년 5월에는 소비자물가가 하락한다고 걱정했는데, 불과 2년이 지난 2022년부터 물가,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고, 이제는 물가가 너무 오른다고 걱정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인플레이션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자고 일어나면 물가가 올랐다는 소식이 계속되고, 은행에서 대출금리를 올린 탓에 이자 부담이 더 커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 와중에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 역시 하락해서 대출받아 투자한 사람들은 더 큰 부담과 고통을 안게 되었다. 앞이 막막한 상황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지금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일까?’에 대한 답을 얻고 싶을 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함께 답을 찾아보도록 하자.
‘판도라의 상자’ 같은 인플레이션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면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가 나온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호기심 많은 판도라가 절대 열지 말아야 할 상자를 열어 그 안의 온갖 나쁜 것들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고, 결국 상자 안엔 희망만이 남았다는 이야기다.
2022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온갖 나쁜 것들이 뛰쳐나온다. 물가 상승으로 나의 실질적인 월급은 줄어든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인플레이션 잡겠다고 기준금리를 올리면 이에 따른 불안감으로 주식과 부동산은 가격이 하락한다. 특히 대출을 받았다면 대출 부담이 늘어난다. 대출을 많이 받은 일명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를 줄인 신조어)의 경우, 집값은 하락하고 대출 부담은 늘어나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판도라 신화에서는 상자 안에 ‘희망’이 남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리 ‘희망’을 가지기 힘들다. 유일한 희망이라면 인플레이션은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긴 터널을 지나면 다시 금리는 떨어지고, 주식과 부동산은 오른다.
그럼 이쯤에서 인플레이션의 발생 원인과 앞으로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자. 인플레이션은 왜 발생하고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꼼꼼하게 점검해 둔다면 지금뿐 아니라 이다음에 또다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때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해 둘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음 인플레이션 시기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기회다
주식과 부동산시장의 흐름을 보면, 당시엔 공포심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되돌아봤을 때 ‘그때 투자했어야 한다’는 시기가 있다. 누구는 그 시기를 잘 이용했고, 누구는 그 시기를 잘 이용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대박’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좋은 투자 기회가 가끔씩 찾아왔던 것이다. 단지 그때 우리가 몰랐을 따름이다. 주식시장이 완전히 폭락하고 투자자들의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던 그때가 지금 돌아보니 최고의 투자 기회였다. 그럼 여기서 이미 잘 알려진 그 세 번의 기회를 잠시 되돌아보자.
첫 번째 기회는 1997년 말 IMF 때였다. 우리나라의 시스템 자체를 바꿔놓았던 경제위기이자 기존의 ‘상식’이 무너진 위기이기도 했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대기업도 망한다는 것, 한번 취직하면 정년까지 보장해 주는 종신고용이라는 아름다운 고용 형태는 이제 없다는 것, 취직하면 당연히 4대보험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비정규직이라는 취업 형태가 있다는 것 등의 새로운 인식이 확산된 시기이기도 하다.
재테크 측면에서 보면, 종합주가지수가 1998년 6월 16일에 280포인트를 기록했다. 참고로 1994년 11월 8일에는 1138포인트였으니 국가경제가 반의반으로 토막 난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만일 이때 주식시장에 들어갔다면 2022년 11월 14일 코스피지수가 2483이니 280이었던 최악의 시기 때 지수와 비교해 보면 단순 계산으로도 대략 8배, 9배의 수익을 기록했을 것이다. 물론 그때 주식시장에 들어간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대기업들도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투자가 문제가 아니라 생존 자체가 문제였던 시기였다. 주식도 그랬고 부동산도 그랬다. 되돌아보자. 그때 투자를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두 번째 기회는 2007년 말 금융위기 때다. IMF로부터 10년 후, 이번에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친다. 전 세계 경제의 대장격인 미국이 흔들리자 이 여파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2007년 10월 말 2064포인트였던 우리나라 코스피지수가 금융위기 여파가 본격화된 2008년 10월 24일에는 938포인트를 기록함으로써 주가 수준이 말 그대로 반 토막이 났다. “미국이 힘든 상황이니 전 세계 경제가 다 망할 것이다.” “IMF 때는 강대국들이 건재했는데, 이번 위기는 강대국들까지 어려우니 경제 회복은 불가능하다.” 이런 부정적 전망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 시기에도 투자는 자살행위였다. 이 시기 역시 투자가 아닌 생존이 문제였다. 다시 되돌아보자. 그때 투자를 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을까?
세 번째 기회는 2020년 초에 일어난 코로나 팬데믹 때다. 경제요인이 아닌 전염병이 전 세계 경제를 강타했다. 여전히 진행형인 코로나19는 2020년 3월 20일 코스피지수를 1566포인트로 끌어내리기도 했다. 2020년의 시작인 1월 3일 코스피 종가 2176포인트를 감안하면 코로나19라는 충격으로 연초 대비 3개월 만에 주가지수가 30%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과감하게 투자를 시작한 투자자들이 많다. 이전에 두 번의 경험, 즉 IMF와 미국발 금융위기 등 국가경제의 큰 위기가 오히려 기회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10년쯤 지난 2030년에 재테크 관련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2022년에 시작됐던 인플레이션이 네 번째 기회였다’라는 분석이 많이 나올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금리가 상승하고 이에 따라 주식과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는 패턴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도착했다. 이 기회를 잡을 것인가의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기회’라는 열차가 그리 오래 기다려줄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따르면 기회의 여신인 오카시오Occasio는 특이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앞머리는 풍성한데 뒷머리는 없고,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그런 외모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다. 풍성한 앞머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았을 때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없는 이유는 한 번 지나갔을 때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미 지나간 세 번의 기회와 현재 진행 중인 지금의 기회가 어쩌면 오카시오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제위기의 골이 깊을수록 이후 얻게 되는 수익은 더 높다. 다시 말하면, 지금이 기회다. 남들에게는 위기일 수 있고 나에게도 그렇다. 그럼에도 지금은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네 번째 기회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뭔데?
인플레이션, 의미는 간단하다. 물가의 급격한 상승.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플레이션은 생소한 용어다. 지난 10년간 물가는 안정적이었고 은행 금리는 낮았기 때문이다. 추석이나 설날 때마다 장바구니 물가가 올랐다며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반인의 인터뷰 뉴스만 제외하면, 물가가 올랐다는 걸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미국의 경우, 41년 만에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40년이면 한 세대를 지나는 긴 시간이다. 2022년 7월 13일자 <한국경제>에 실린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美 소비자물가, 41년 만에 최대폭 상승…
“인플레 아직 정점 아니다”
예전에 ‘인플레이션이 심했다’는 말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 정도로만 치부되었다. 그 옛날이야기가 다시 시작된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1975년~2021년 소비자물가지수 추이
출처: 통계청
1975년에서 2021년 말까지의 전년동월비 소비자물가지수의 흐름을 보면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5%의 상승률을 보였던 시기를 제외하면 1999년 이후 소비자 물가 상승은 5%를 넘지 않는 선에서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대략 20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물가’의 측면에서는 안정적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비자물가 추이
출처: 통계청
최근의 흐름을 보면 2022년 5월 소비자 물가는 전년동월대비 5.4%의 상승률을 보임으로써 기존의 상한선이라 인식되었던 5%를 넘었다. 이후에도 물가는 6% 넘는 수치를 보임으로써 인플레이션이 한두 달 안에 끝나는 것이 아닌 추세로 굳어지게 되었음을 보였다.
되돌아보면 상황이 너무나도 급격하게 변했다. 불과 1년 전인 2021년 말, 코스피지수는 3000포인트였고 부동산 가격은 너무 올라, 정부는 집값을 잡지 못해 죄송하다고 연일 고개를 숙여야 했다. 적어도 2022년 봄까지 그랬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계속해서 상승을 이어갈 것으로 보였고, 재테크는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었다. 투자에 있어 모든 것은 당연히 ‘우상향’하는 것이라 여겨졌고, ‘부동산은 오늘이 제일 싸게 사는 것이다.’ ‘집 없으면 죄인이다.’ 같은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모든 것이 혼돈스러워졌다. 2023년 1월 17일 현재 코스피지수는 2383포인트로 직전 년도 마지막의 3000포인트 비해 617포인트(비율로는 20%) 정도 하락했고, 부동산은 매매가격 하락과 ‘깡통전세’로 인해 불안한 가정이 많아졌다.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관심을 모았던 암호화폐 역시 비트코인 가격은 1개당 2,200만 원으로 2021년 11월에 7,200만 원을 넘던 때와 가격 대비 3분의 1 넘게 하락했다. 2022년 11월에는 암호화폐 거래소인 FTX가 파산하면서 암호화폐에 대한 거래의 안정성과 신뢰도가 더욱 낮아질 것으로 관측되기도 했다. 2022년 11월 13일자 <한겨레> 신문 기사의 일부를 보자.
FTX 파산 “코인판 리먼 사태”…
개인 투자자 한 푼도 못 건질 수도
암호화폐(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파산 신청이 다른 코인업체들의 연쇄적인 유동성 위기로 번질 경우 ‘코인판 리먼 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FTX에 돈을 맡긴 개인 투자자들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제기된다. (중략) 코인 거래를 위해 FTX에 예치금을 넣어둔 개인 투자자들은 돈을 몽땅 날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암호화폐는 파산법에 따라 보호되지 않아 구제금융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오펜하이머는 FTX 소매 고객이 무담보 채권자로 분류될 경우 우선순위에서 밀려 돈을 잃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AP통신은 “FTX 사태는 최근 수년간 발생한 가장 복잡한 파산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채권자 범위를 가려내는 데만 몇 달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후략)
인플레이션은 왜 일어날까?
그럼 대체 인플레이션은 왜 일어나는 걸까? 경제학적으로 풀어보자면, 인플레이션은 수요와 공급 이렇게 두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나누어보자면, ‘수요 원인 인플레이션’과 ‘공급 원인 인플레이션’으로 구분된다.
우선 ‘수요 원인 인플레이션’은 일종의 ‘착한 인플레이션’이다.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돈이 많아지면서 물가 역시 그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착한 것이 있으면 당연히 나쁜 것이 있을 텐데, 바로 ‘공급 원인 인플레이션’이 그러하다.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서 균형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의 재료비가 올라 물건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값을 예로 들어보자. 점심 한 끼에 1만 원은 우습게 넘어가는 세상이다. 우리의 주머니가 두둑해져서 점심값으로 1만 원쯤은 우습게 볼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 아니다. 인건비가 오르고 재료비도 올랐기 때문에 식당들도 어쩔 수 없이 점심 한 그릇을 만1 원 넘게 받고 있는 것이다.
2022년에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그 성질이 고약할 수밖에 없다. 공급 원인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이다. 특히 원자재 가격과 식품 가격의 상승, 국제 무역 분쟁의 증가에 따른 가격 상승은 단기간에 어느 한 나라가 깃발 높이 들고 ‘제가 해결하겠습니다’라고 하기 힘든 상황이다. 몇 달 후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KDI경제정보센터(eiec.kdi.re.kr)의 설명을 보자.
총수요는 변함이 없는 상태에서 원자재 가격 등의 비용 상승이 발생하면 기업들의 생산이 위축되면서 총공급이 감소한다. 총공급이 감소하고 물가가 올라가는 것이다. 예컨대 국제 원유가격이 상승했다고 가정해 보자. 원유는 각종 석유 에너지 및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서 많은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유가가 상승하면 대다수 기업들은 생산비용이 상승된 만큼 제품 가격을 인상시켜 이를 보전하고자 한다. 가격의 인상은 수요를 줄이고 다시 생산의 감소를 유발한다. 이처럼 생산비의 상승으로부터 촉발된 인플레이션을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라 한다.
설명을 조금 쉽게 풀어보면 이렇다. ‘공급 원인 인플레이션’은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cost push inflation’이라고도 하는데, 원재료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판매가격을 올리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에 넉넉해져서 더 비싼 값에도 물건을 살 수 있는 인플레이션이 착한 인플레이션이라면, 이렇게 주머니 사정과 관계없이 재료값이 올라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공급 원인 인플레이션은 나쁜 인플레이션이라 할 수 있다. 식당의 라면 한 그릇을 예로 들어보자. 면을 만들려면 밀이 필요하고, 물을 끓이려면 석유에서 나온 가스가 필요하다. 밀과 석유값이 오르면 어쩔 수 없이 라면값도 올려야 한다. 라면을 사 먹는 고객들의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면 라면값을 올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상황이겠지만 말이다. 고객들 입장에선 비싸진 라면값이 부담스러워지면 소비를 줄이게 되고 식당은 손님이 적어져서 폐업하게 된다.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 정부 입장에서도 이러한 점을 알기에 최대한 비용 원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애쓰지만, 밀이나 석유 가격이 한두 국가가 노력한다고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자세히 설명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세계 원유 가격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전 세계 농업 국가들의 현실까지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길게 이어지는 설명은 생략하겠다. 다만 핵심 결론은 이렇다. 재료 가격의 상승이 인플레이션, 즉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부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때 착하냐 나쁘냐를 구분하지 않는다. “물가가 상승했어? 그럼 기준금리 올리자.” 이런 패턴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는 물가 상승세가 급격하다고 판단되면 기준금리를 올리려 한다. 은행이자가 올라서 돈이 적게 돌면 그만큼 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측하기 때문이다. “몸에 열 나? 그럼 해열제 먹어.” 이런 식이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
자료: 미국연방준비제도(Fed), 한국은행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자료: 미국노동통계청
미국의 상황을 보자. 위 그래프는 한국와 미국의 기준금리 추이를, 아래 그래프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추이를 나타내고 있다. 물가 상승을 보면 2021년 7월 이후 계속 5% 이상 상승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은 이러한 상승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2022년부터 물가 상승이 8%까지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자 칼을 빼들었다. 2022년 2월까지는 기준금리를 0.25%로 거의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다가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 참고로 2022년 9월 말 기준 미국의 기준금리는 3.25%인데, 미국은 앞으로 매번 미국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 때마다 금리를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물가 안정을 이룰 때까지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물가 안정은 연간 2%를 의미한다. 즉 앞서 보았던 소비자물가지수가 8%, 9%가 아닌 2%가 될 때까지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계속 상승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금리 인상으로 불황을 겪으리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우선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는 입장이다.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달라져야 한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재테크를 하는 데 좋은 기회라 설명한다. 물가 상승은 곧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니 주식, 특히 부동산은 떨어진 화폐가치만큼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1달러에 1,100원인 상황이라면 1,000달러짜리 아이폰을 살 때 우리나라 돈으로는 110만 원이다. 우리나라 돈의 화폐가치가 30%쯤 떨어져서 1달러에 1,400원이 된다면 우리나라 돈으로는 140만 원을 내야 한다. 달러로 표시되는 휴대전화의 가격은 같지만 환율의 움직임이 원화 가격의 변화 요인이 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서울의 A아파트가 10억 원이라고 했을 때, 인플레이션으로 1년간 화폐가치가 20% 하락한다면, 그 아파트는 1년 후 12억 원이 된다. 아파트의 가치가 올라가서가 아니라 화폐가치가 떨어져서 그렇다.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같은 물건에 대해 내야 할 돈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과서대로라면 물가 상승의 상황에서 주식과 부동산은 가치의 증감과 관련 없이 표시되는 가격 자체는 올라야 정상이다. 돈의 가치, 즉 화폐가치가 떨어져서 같은 물건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실 세계의 물가 상승은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킨다. ‘금리 인상’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자체는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 되지만, 이 인플레이션의 대책인 ‘금리 인상’은 반대로 가격을 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엄밀히 따지면 인플레이션 때문에 주식이나 부동산의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플레이션의 대책인 금리 인상 때문에 자산 가격이 하락한다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접근이다.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돈을 빌리기 힘들어지고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니 사고 싶은 물건, 좋은 투자처가 있어도 매입을 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주식이나 부동산도 금리 인상으로 가격이 내려가게 된다.
앞으로 물가는 계속 상승하고 금리 역시 이에 따라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주식/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폭은 미미하고, 금리 인상으로 주식/부동산 가격의 하락폭은 거대할 것이다. 듣기 좋은 말은 하지 않겠다. 앞으로 재테크에 있어 매우 힘든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기존의 재테크 방법, 즉 낮은 금리를 활용했던 재테크 방법과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마인드 세팅을
다시 하라
우주공학 분야에 ‘탈출속도’라는 개념이 있다. 로켓이나 인공위성이 지구를 탈출하기 위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야 하는지를 계산하는 방법이다(문과 전공생인 나에게 이 속도를 어떻게 구하는지, 계산식은 어떻게 구하는지 물어보는 일은 없으리라 믿는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대략 초속 11Km 정도가 되면 지구를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지구가 우리를 ‘중력’으로 잡아당기는 에너지가 있는데, 탈출속도는 이러한 중력에너지를 극복하는 속도인 것이다.
뜬금없이 무슨 로켓 이야기냐 싶을 것이다. 그럼 단어를 살짝 바꿔보자. 우리를 잡아당기는 중력을 ‘소비’라 하고 로켓을 ‘투자’라 해보자. 복권 1등에 당첨되고 싶다면 복권을 사야 하듯, 투자를 통해 성과를 보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즉 현재보다 더욱 업그레이드되고 싶다면 로켓이 일정한 속도로 날아가야 하듯, 내 월급도 일정한 부분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세미나나 상담을 통해 투자 계획을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쑥스러워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번 달은 마이너스라서….” “아직 할부 갚을 게 많아서….” 지금 당장 투자를 시작할 수 없는 이유를 많이 댄다. 물론 이에 대해 나는 좋다거나 나쁘다는 식의 가치판단은 하지 않는다.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인드 세팅과 재테크 계획의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소득에 비해 소비가 많아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달 카드값과 생활비를 다 낸 다음에도 돈이 남아야 투자를 할 수 있다. 소비 규모가 월급 수준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투자의 첫걸음이다. 남는 월급의 크기가 바로 당신을 ‘가난’으로부터 탈출시켜 주는 연료가 되고 속도가 된다.
초식 마인드 vs. 육식 마인드
예전에는 월급 받아 꼬박꼬박 저축하면 집도 사고 차도살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사글세(월세)를 살아도 조금씩 재산 불리는 재미와 희망이 있었기에 어려운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월급 받아 꼬박꼬박 은행에 저축하면 전셋값도 제대로 준비하기 어렵다.
월급을 받아서, 혹은 장사해서 번 돈을 성실하게 은행에 잘 넣어둔 채 희망을 키우는 것을 ‘초식 재테크’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방법이다. 초원의 초식동물들이 풀밭에 옹기종기 모여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듯,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은행에 모여 원금 손실 걱정 없는 예금과 적금에 자신의 소중한 돈을 맡긴다. 은행 입구엔 항상 큼지막한 글씨로 연 몇 %의 예금이자와 적금이자를 제공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은행에 모여서 착하게, 초식하며 지내는 생활이다. 남들이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하면 시기와 질투를, 남들이 돈을 잃었다고 하면 안도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평화롭게 풀 뜯어가며 언제 맹수에게 잡아먹힐지 모르는 불안한 초식 재테크를 하느냐, 아니면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사냥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전력으로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