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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파리 미술관에서의 하루

따뜻하고 유쾌한 한낮의 무도회 |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9세기 말, 파리 북쪽에 자리한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위대한 예술가를 꿈꾸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술을 마시거나 토론하며 자신들의 예술 세계를 단단하게 다져 나갔다.

아직도 몽마르트르에서는 많은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작업실부터 단골 카페, 술집 등 명화 속 배경이 된 장소를 거닐 수 있다. 오늘날 ‘몽마르트르 미술관’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곳은 1876년,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작업실로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르누아르가 몽마르트르로 거처를 옮긴 그해, 그는 화가 인생에서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탄생시킨다. 반짝이는 자연광 아래를 노닐며 춤추고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한 그림 속에는 즐거움과 여유로움이 넘쳐난다. 당대 파리 사람들의 즐겁고 평화로운 주말 풍경을 주제 삼은 이 그림은 1877년에 있었던 제3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기도 했다.

초기 인상주의의 가장 큰 특징인 ‘빛 표현’에 매료된 르누아르는 군중들 위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빛과 그 안의 움직임을 그림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비평가들의 눈에 이 그림은 빛의 움직임 표현이 아닌 형태가 해체되는 것으로 보였기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장소를 유쾌하고 친근한 분위기로 그려낸 르누아르라는 화가에 대한 평은 긍정적이었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주말마다 무도회가 열리던 유명한 선술집이었다. 르누아르는 친구들과 함께 커다란 캔버스를 자신의 작업실에서 물랭 드 라 갈레트까지 옮겨놓고, 주말 풍경을 담고는 했다. 그리고 친구들을 그림의 모델로도 출연시켰다.

멀리서 본 후, 가까이서 다시 한번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에서 전경과 배경을 나누는 대각선 구도는, 오른쪽에 크게 그려진 사람들과 왼쪽 뒤로 춤추는 무리를 나눈다. 사람의 눈은 본능적으로 왼쪽을 먼저 향하지만, 화가는 가운데 배치한 두 여성의 얼굴이 오른쪽을 향하게 함으로써 관람자의 시선을 빼앗는다. 또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은 인물들의 엇갈리는 시선과 달리, 춤추는 사람들은 정면을 바라보게 하여 관람자가 그림 전체를 훑어볼 수 있도록 구성에 공을 들였다. 동시에 서 있는 인물, 여성의 세로 줄무늬 드레스, 나무 기둥, 의자와 테이블 다리가 수직을, 나뭇잎, 가로등 전구, 모자는 수평을 나타내며 안정감을 더한다.

춤추는 커플 곁 바닥은 빛이 반사되어 분홍색을, 그 옆 밝은 장소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는 푸른색을 띤다.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조각조각 흩어진 흰색은 반짝이는 효과를 주어, 인물로 가득한 그림이지만 복잡하거나 무겁지 않고 되려 가벼운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돕는다.

빛이 부서지며 외곽선이 또렷하지 않게 그려진 부분도 존재하는데, 이러한 붓 터치는 다분히 ‘순간의 빛을 포착’하고자 했던 인상주의적 표현법이었다. 하지만 몇 걸음 물러나 그림을 보면 비평가들이 이야기한 “형태가 해체되는 것 같은” 그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려 활기찬 야외 풍경이 하나의 장면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상파 화가들이 야외에서 그린 그림을 감상할 때는 멀리서 ‘내 눈이 이 그림을 어떻게 보는지’를 먼저 감상하고, 그다음 가까이서 ‘실제로 화가는 어떤 붓 터치를 사용했는지’를 찾아보면 훨씬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초상화의 나비 효과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속 인물들은 모두 평온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르누아르는 삶의 기쁨과 충만함의 순간을 관람자에게 전하며 ‘행복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그림은 즐겁고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추악하기에 그런 것을 더할 필요가 없다”라며 자신의 신념을 밝히기도 했다.

인상파 화가로서 인상주의적 표현을 시도한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이후, 르누아르는 사진 기술이 발달하며 내리막길을 걷던 초상화 장르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낸다.

그림 속 인물들의 행복한 표정이 불러온 나비 효과였을까? 인상파 화가 중 유일하게 부르주아 출신이 아니었던 르누아르는 이후 경제적인 여유를 얻고, 1881년에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고전 미술에 큰 감동을 받은 동시에 인상주의에 한계를 느끼고, 이후로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행복한 얼굴들이 화가 르누아르의 삶에 큰 변곡점이 되어준 셈이다.

“낮보다 아름다운 밤을 그리고 싶어” | 빈센트 반 고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오르세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을 꼽자면 단연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전시된 후기 인상주의 방이다.

고흐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대부분의 활동을 프랑스에서 했던 만큼, 그의 그림 속 풍경을 직접 보기 위해 파리와 남프랑스 아를 일대, 그가 숨을 거둔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아를과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의 주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고흐는 27세부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해 37세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16세에 친척이 운영하던 구필 화랑에 화상으로 취직한 그는 헤이그, 런던, 파리 지점에서 경력을 쌓았다. 신앙심이 깊어지면서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기를 꿈꾸며 신학교 입학을 준비하지만 실패한다. 결국 가난한 탄광촌에서 전도사로 일하던 그는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때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동생 테오 반 고흐 역시 구필 화랑 파리 지점의 화상으로 일했는데, 형의 뒤늦은 결심에 응원을 보내며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흐는 당대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 가기로 결심하고, 1886년 테오의 아파트로 이사한다. 그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중심으로 모여들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당시 유행하던 점묘법과 일본 채색 판화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는다.

더 넓은 밤하늘을 그리고 싶은 마음

1880년대의 파리는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고, 너무나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대도시였다. 고흐는 따뜻한 남프랑스로 내려가 온화한 햇살 아래에서 동료 화가들과 함께 화가 공동체를 이루며 그림을 그리는 꿈을 꾸게 된다. 이에 테오와의 대화 끝에 프로방스 지역의 아를로 떠난다.

아를에 자리를 잡은 지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고흐는 테오에게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고 싶어”라고 전한다. 여름을 지나며 고흐는 〈밤의 카페테라스〉를 그렸는데, 별이 있는 밤하늘 부분을 그리며 큰 즐거움을 느꼈다. 그리고 곧 더 큰 면적의 밤하늘이 그리고 싶어졌고, 그해 가을에 탄생한 그림이 바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밤과 별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남긴 작품들

깜깜한 밤, 하늘에 별들이 빛나고 있다. 아를의 9월은 청명했고, 하늘 가운데 자리한 북두칠성의 모양으로 보아 그가 그림을 그린 시간은 자정 무렵일 것이다. 고흐는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종종 밤이 낮보다 훨씬 더 풍부하게 물들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이 그림에서 표현된 밤 풍경 역시 파란색과 노란색이 주를 이루지만 단조롭지 않고 풍부하도록 부분 부분 변화를 주고 있다. 그리고 칠하는 방법도 하늘은 격자무늬, 강은 가로 선, 땅은 사선으로 붓을 움직여 다른 느낌을 연출했다.

고흐는 붓, 나이프, 손을 이용해 물감의 질감이 느껴지도록 두껍게 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고흐의 원작을 감상할 때는 정면에서 먼저 본 후, 옆으로 자리를 옮겨 물감의 두께를 가늠하며 화가의 터치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 좋다.

그러나 아직 밤과 별에 대한 갈망이 채워지지 않았던 것일까? 큰 싸움 끝에 동료 화가 폴 고갱과 결별한 후 아를을 떠난 그는, 아를에서 멀지 않은 생 레미 드 프로방스의 모졸 정신요양원에 입원하여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다. 그리고 약 9개월 후인 1889년 6월, 현재 뉴욕 현대 미술관에 소장 중인 〈별이 빛나는 밤〉까지 완성한다.

서른여섯, 고흐는 드디어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며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그리는 데 성공한다. 요양원에서는 자유롭게 산책하러 나갈 수 없어 마을 풍경은 상상하며 그려 넣었지만, 병실 창문 너머로 반짝이는 밤하늘은 고흐를 꿈꾸게 했다. 일렁이는 색채와 반짝이는 별빛에 담긴 고흐의 충만한 감정은 외롭고 고독했던 화가의 삶에 몇 번 찾아오지 않았던 행복이었다.

19세기 오페라 극장의 발레 클래스 풍경 | 에드가르 드가, 〈발레 수업〉

에드가르 드가,
〈발레 수업〉

머리가 희끗한 선생님이 무용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드는 빛이 교실 전체에 스며들어 오후의 나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에드가르 드가는 주인공이 가운데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회화의 구도와 달리,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스틸 컷처럼 관람자가 장면을 바라보는 듯한 대각선 구도의 그림을 자주 그렸다. 〈발레 수업〉도 마찬가지다.

수업 중인 선생님은 발레리노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은 발레 마스터 쥘 페로다. 그의 주변으로는 다른 인물을 배치하지 않고 마루의 나뭇결을 따라 후퇴하는 원근감을 강조했는데, 이는 바닥을 딛고 발끝으로 춤추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더욱 강조한다.

그림 왼편에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한숨 돌리는 소녀와 등을 긁는 소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오른편에는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몸을 단장하는 이들이 보이는데, 이렇듯 휴식을 취하는 정적인 인물들 사이에 선생님과 움직이는 발레리나를 3단 구도로 배치하여 정지한 이미지 속에서 움직이는 대상을 더욱 대조시킨다.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찾기 위한 여정

드가는 부유한 은행가 가문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다가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고전주의 대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와 그의 제자 루이 라모트에게 그림을 배웠고, 이 영향으로 고전주의에 대한 존경심을 품게 됐다. 이어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고 이탈리아에 머물며 르네상스 회화에 심취하는 등 전통적인 그림 교육을 받았고, 선을 이용해 명확한 형태를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드가는 고전을 답습하기보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기 시작한다. 그는 1865년, 에두아르 마네가 살롱전에 출품한 〈올랭피아〉를 본 후 그림에 시대를 담아내는 방식에 강하게 끌린다. 그리고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에 10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본격적인 인상파 화가로서의 걸음을 내디딘다.

인상파 화가들이 선택한 주된 소재는 19세기 당대 파리의 생활상이었다. 그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야외 자연광을 받는 풍경이 아닌 실내 간접 조명을 이용한 인물의 자연스러운 동작을 주로 표현했다.

드가가 발레리나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870년대 초반이었다. 이전에는 주말에 경마장에 가서 말을 탄 기수들이나 구경하러 온 사람들을 그리고는 했다. 그러나 작업을 거듭하면서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가’보다 ‘빛이 어떤 작용을 하는가’에 몰두하며 야외가 아닌 실내에 스미는 빛을 표현하는 내광파 화가로 활동했다.

1875년 오페라 가르니에(음악 국립 아카데미 오페라 극장)가 파리 시내 중심에 들어서며 부르주아들의 문화 거점으로 활용되었는데, 드가는 이곳에서 리허설을 하거나 휴식하는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자주 그렸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근육이 이완되는 순간에 자연스럽고 다양한 몸짓의 변화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 숨겨진 프랑스 사회의 이면

드가는 〈발레 수업〉에서 발레용 치마인 튀튀를 뿌연 흰색으로 표현해, 가벼운 천이 겹겹이 쌓여 움직이는 느낌을 강조했다. 그리고 허리에 묶은 리본은 밝고 강렬한 노란색, 초록색, 하늘색으로 칠해 그림에 생기를 더했다.

구도와 색깔로 〈발레 수업〉의 차분하면서 운동감 있는 분위기를 재현했다면, 발레복을 입지 않고 수업을 지켜보는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당대 사회의 모습도 담았다. 당시 발레리나들은 부르주아 남성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발레와 생활 전반에 대한 후원을 받고는 했다. 그림 오른쪽 상단의 여성들은 부르주아들과 아직 데뷔하지 않은 소녀 발레리나들을 연결하는 중매쟁이 혹은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한 어머니들이다. 드가는 부르주아 출신의 남성 화가로, 예술에 대한 열정과는 별개로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인간 혐오자로 소문 난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는데, 특히 남자를 잘 만나서 신분 상승을 꿈꾸던 19세기 풍조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러던 드가는 1880년부터 급격한 시력 장애를 경험한다. 그는 1870년 보불 전쟁에 포병으로 참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미 총기 조준을 잘하지 못해 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건강상의 이유로 드가의 그림에는 전경이 강조되고 후경은 단순하게 그려진 것들이 많다. 말년에는 한쪽 눈을 완전히 실명하며 유화 물감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고, 그 구도대로 파스텔화를 그리거나 손의 감각을 이용해 조각 작품을 만들어갔다.

이렇듯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현한 드가의 예술 여정을 만나볼 수 있다. 또 그의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화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19세기 프랑스 사회도 함께 읽어낼 수 있다.

해 질 녘 들판의 평온을 산책하며 | 장 프랑수아 밀레, 〈이삭줍기〉

장 프랑수아 밀레,
〈이삭줍기〉

19세기, 사진 기술이 발달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옮기고 기록하는 일은 더 이상 화가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특히 초상화의 인기가 눈에 띄게 줄었고, 그 자리를 풍경화가 메우기 시작했다.

도시화가 진행된 파리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떠나온 고향 풍경을 그리워했고, 공장이 들어서는 것에 이질감을 느끼며 자연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풍경화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던 때, 바르비종 화파가 등장한다.

1820년대 후반부터 1870년대까지 파리 남동쪽으로 약 65km 떨어진 바르비종에 모여 살며, 인근 풍경과 평범한 사람들을 그렸던 화가들을 일컬어 ‘바르비종파’라고 한다. 당시 파리에서는 오스만 남작을 필두로 한 나폴레옹 3세의 도시 대개조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낡고 지저분한 파리를 계획도시로 재탄생시키는 게 목표였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파리에는 콜레라가 유행하고 있었다. 이 전염병을 피해 바르비종에 모여든 장 프랑수아 밀레를 비롯한 테오 루소,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등의 화가들은 자연의 위대함을 주제로 삼아 프랑스 사회의 새로운 정신을 화폭에 담았다.

배경이던 풍경이 주인공으로

이전까지 그림에서는 풍경이 배경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를 추앙하던 주류 화파의 신고전주의에서 탈피해 ‘프랑스적’ 풍경을 내세운 이들의 그림은 우아하고 고상한 교양의 범주에서 벗어나 당대 농민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런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줍기〉다.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밭에서 세 여인이 허리를 숙여 이삭을 줍고 있다. 건초더미가 높게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추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그림의 오른쪽 뒤, 말을 탄 인물이 여인들에게 이삭줍기를 허락한 밭의 주인일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오래전부터 이삭줍기를 허락하는 문화가 있었고, 여인들은 그 자비로움 덕분에 낱알을 주울 수 있었다.

이삭을 줍는 여인들의 굽은 허리에서 삶의 고단함이 느껴지지만, 말없이 땅을 향해 뻗은 거친 손에서는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밀레가 이 그림을 통해 ‘노동의 숭고함’을 전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종교적 소재로 가난한 이들을 그리다

장 프랑수아 밀레는 프랑스 서북쪽 노르망디 지역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자랐기 때문인지, 그가 그린 농촌의 풍경에는 하늘보다 땅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다. 프랑스 시인이자 평론가인 테오필 고티에는 밀레를 두고 ‘대지의 화가’라는 별명을 붙이고는 “그의 그림은 단순해서 사람의 시선을 끌지는 못하지만, 한 번 시선이 머물면 오랫동안 빠져들게 된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밀레는 성경 속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그리는 대신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신성하게 느껴지도록 그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기에 관람자는 낯설지 않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쉽게 몰입하고 공감한다.

이 그림의 모티브는 구약 성경의 「룻기」다. 룻은 남편이 죽은 후, 친정에 돌아가지 않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보살피기 위해 곁에 남는다. 살림이 녹록지 않았기에 그들은 이삭을 줍기 위해 나오미의 먼 친척이자 대지주 보아스의 농장을 찾는다. 이때 성실하고 심성이 고운 룻은 보아스의 눈에 들고, 두 사람은 결혼한다.

〈이삭줍기〉를 그리기 4년 전, 밀레는 이미 룻과 보아스를 주인공으로 한 〈농부들의 휴식(룻과 보아스)〉을 살롱전에 출품한 적이 있다. 성경에서 대지주인 보아스가 그림 속에서는 19세기 프랑스 농민의 옷을 입고 소작농으로 등장한다.

룻은 막 이삭을 줍다가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다른 농부들 근처에 온 듯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짚단은 산더미처럼 쌓인 배경의 짚더미와 비교되어 더욱 초라해 보인다.

룻과 보아스는 그림의 왼쪽에서 등장하고, 그림의 삼분의 이를 차지하는 오른쪽 장면에는 고된 노동의 한가운데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농부 무리가 자리하고 있다. 제목도 〈농부들의 휴식〉으로, 동시대 농부들의 모습을 통해 시대상을 반영하는 데 집중했다.

성경 이야기에 프랑스적 감각을 더한 이 작품은 1853년 살롱전에서 2등을 수상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후인 1857년, 밀레는 다시 한번 〈이삭줍기〉를 살롱전에 출품하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다. 대지주와 소작농의 빈부 격차가 컸던 1850년대였기에 “프랑스의 실제 농촌 사회를 표현한 걸작”이라는 평과 “누더기를 걸친 허수아비가 등장하는 그림”이라는 평이 극명하게 대립한 것이다.

밀레의 그림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당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함께였고, 종교적 소재를 활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러한 이유로 후배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밀레를 가장 존경하는 화가로 꼽기도 했다.

평범함을 그려낸 특별한 명작 | 귀스타브 쿠르베, 〈화가의 아틀리에〉

귀스타브 쿠르베,
〈화가의 아틀리에〉

아틀리에는 예술가가 작업하는 공간을 일컫는다. 그러나 아틀리에를 단순히 그림 그리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넘어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연구하는 장소라고 이야기하는 그림이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1848년, 프랑스는 2월 혁명으로 시민 왕 루이 필리프를 폐위하고 공화정으로의 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1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쿠데타를 일으켜 제2제정을 선포하고, 나폴레옹 3세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의 바람은 60여 년간 이어지며 프랑스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고, 미술 또한 그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다.

과거에는 왕립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주제와 기법, 양식 등의 요소를 갖춘 역사화가 이른바 잘 그린 그림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