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세 그루 나무의 걱정
노래하는 항아리라니
노래가 어디 갔느냐
항아리의 저주
네가 노래 임자라니?
노래가 왜 절로 나오지요
구곡산으로 가자
가벼움과 무거움!
대나무 꽃 항아리
너의 노래로구나!
교방 식구들
심 전율의 회초리
노래는 길에 있다?
‘사람의 노래’여야 한다
추쇄꾼을 풀어라
길은 끊어지고
저것이 그 노래인가
‘사람의 노래’를 찾는다?
김가의 분기탱천
고생이 제 알아 할 테지
이야기 팝니다
세상에 행복은 없다!
전기수 대우
며느리로 삼아도 좋다
미친 환쟁이
고강의 초막
능내 정진사
이 그림을 받아주시오
소리 무늬를 지은 산
고강을 만나다!
은행나무의 장담
남행길에 나서다
남사당패와 만남
돌아온 항아리
어름사니 도일
줄에서 떨어진 도일
아쉬운 작별
강진 유배지에서
노래란 무엇인가?
너는 죽지도 못한다!
온섬 무당 선이네
네가 무당을 타고났다!
최가네 굿청
사또의 오판
길베에 반야용선을 띄우고
저주굿의 재앙
이노옴, 천벌 받을 노옴!
길에서 만난 노래들
다시 고강의 처소에서
네가 노래를 이루었다!
고강 묘소 참배객들
낭자의 마지막 모습
작가의 말
나무 세 그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그루는 미끈한 회갈색 몸통에 가지가 촘촘한 멋쟁이 느티나무다. 잎이 무성한 느티나무는 언제 봐도 무슨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있는 품이다. 그의 그늘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까닭은 구수한 이야기 매력도 한몫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한 그루는 키가 훌쩍 큰 은행나무다. 그는 가을이면 유난히 빛난다. 햇살 속에서 우아하게 바람 무늬를 짓고 흔들리며 반짝이는 황금빛 잎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절로 풍요롭게 한다. 작은 돌 하나에서 산의 웅대한 속내를 읽어내는 혜안을 지닌 사람이라면 은행나무의 몸짓에서 지구의 내력을 다 헤아려 안다고 한다. 이슬 한 방울에서 만물의 내밀한 인연을 두루 읽어내는 예지를 지닌 사람이라면 은행 알 하나에서 지구의 영원한 미래를 환히 꿰뚫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그루는 몸집이 통통한 오동나무다. 마치 세마치장단에 맞춰 늘 맵시 있게 너울거리고 있는 모습의 널따란 심장형 잎 때문인가, 몸통 속에 여러 틀의 거문고라도 품고 있는 듯하다. 잠시만 쳐다보고 있어도 곧 유현하고 고아한 가락으로 세상의 모든 귀를 황홀하게 매료시킬 것 같다.
뿌리를 내리고 늘 한곳에 서 있지만 나무들은 잠시도 심심하지 않다.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옆을 오가는 것들을 보기 때문이다. 오가는 것들을 관찰하는 것으로써 나무들은, 움직여서 다른 것들과 만나는 동물들에 못지않은 지혜를 얻는다.
가서 만나 아는 것과 서서 만나 아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으랴, 나무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리고 늘 같은 자리에서 사철의 들고 남을 겪는 것이 움직이며 절기의 변화를 맞이하는 동물보다 한결 그 느낌이 적실하리라 자부한다.
동물은 움직임으로써 변화를 깜빡 놓칠 수도 있지만 항상 제자리를 지켜야 하는 나무들은 사철의 들고 남을 서서 고스란히 다 겪는다. 시시로 형상을 달리하는 구름이야 말할 나위 없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각기 모습을 달리하는 이웃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상념이 깊어진다.
상념은 변화에 민감하다. 변화를 만나면 상념은 마음속 제자리를 떠나 새로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 마련이다. 그 때문인가, 나무들은 가끔 우주의 철리를 꿰뚫어 알고 있다는 자부심에 키를 높이고는 한다. 그리고 꼭 그러려고 한 적은 없으나 가끔 몸이 사색적 자태를 짓고 흔들릴 때도 있다. 그리고 나무들은 명상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없지 않은 것이다.
‘장에서 노래를 팔다 관가에 불려 간 솔이 어미는 어찌 될까?’
느티나무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어찌 되기는 항아리 하기 나름이겠지.’
은행나무가 어두운 얼굴로 대꾸한다.
‘그럼 항아리가 노래를 그쳐서는 안 되겠군.’
오동나무가 한숨을 내쉰다.
나무들이 말을 할 까닭이 없다. 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나무들처럼 말없이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어떤 나무들은 사람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눈다.
‘하지만, 항아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어. 큰일이군!’
은행나무가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흔든다. 잠시 앙증한 부채꼴 황금빛 잎이 우아하게 흔들린다.
‘어쨌든, 솔이와 노래항아리가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오동나무가 느티나무를 쳐다본다.
‘운명이잖아.’
핀잔이라도 하듯 느티나무의 대답이 퉁명스럽다.
‘어허, 항아리가 노래를 부르다니?’
세상에 존재하는 물산(物産) 가운데 모르는 것이 없으리라고 이조정랑 박두익은 자부하여왔다. 인심, 천심은 물론 우주의 운행 법칙까지 두루 터득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다. 산림 초목, 강해 산물 가운데 자신이 모르는 게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이치와 통하는 책을 평생의 벗으로 삼아왔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설화나 민담에도 밝은 편이었다. 고을 서원(書院)을 거쳐 한양 성균관(成均館)에서 수학하고 대과에 급제할 때까지 그가 읽은 책을 쌓아놓으면 키 여남은 길은 훌쩍 넘을 것이었다.
어렸을 적 할머니나 어머니로부터 들은 옛날이야기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서책이 그에게 세상 이치를 밝혀주고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도록 하였다면,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들어온 구수한 옛날이야기는 그에게 미지의 신비한 세계를 향한 동경과 모험심을 길러주었다. 그리고 인정의 중요성과 정신의 광활함을 깨닫게 하였다. 거기에다 스스로 겪어 터득한 사물의 성질이며 사람의 성품과 행동에 관한 이치를 깨달아 아는 것 또한 남에게 뒤지지 않으리라 자부하여왔다. 그런 박 정랑이었지만 세상에 노래하는 항아리가 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여섯 곡 노래를 듣고 난 박 정랑은, 믿어지지 않는 사실을 앞에 두고 계속 속으로 도리질을 하면서도 마음을 고스란히 거기에 빼앗기고 있었다.
사람의 수명은 백 년도 안 되는데
항상 천 년의 근심이 떠나지 않는구나
다툼은 잦고 고통은 길기만 하니
학이 길을 내는 하늘이 마냥 아득하구나
노래 내용 또한 범상치 않았다. 박 정랑은 속으로 무릎을 쳤다. 그렇다. 수명은 백 년도 안 되는데, 천 년의 근심을 떠안고 전전긍긍하는 것이 우리네 삶 아니던가. 조정은 정쟁으로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다. 윗자리로 벼슬이 오른 이의 환한 모습은 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벼슬 잃고 비통해하거나 죄 짓고 귀양 가는 이의 참담한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탐욕은 왜 끝이 없고 시기와 미움은 왜 그리 기승을 부리는지. 그리고 시비곡직의 다툼은 왜 그리 빈번히 이어지는지. 번뇌 망상이 가실 날 없는 인간살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고고한 학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찌 심란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치 자신의 심정을 적실히 그려 노래하는 것 같아 마음이 여간 스산하지 않았다.
“사또, 그대야말로 천복을 누리고 있구려. 고을 어디를 가나 격양가 소리 드높고, 인심 후하고 수려한 경관에 귀한 산물이 넘치도록 풍부한 데다, 이런 신비한 노래까지 즐길 수 있다니 이게 하늘이 베푼 홍복 아니면 무엇이겠소.”
“박 정랑 말씀이 과한 것 같소. 이런 한미한 고을 원이라는 것이 왜적의 발호를 막아내고 백성들 편하게 지내도록 보살피면 소임을 다한 것이 되지만, 정랑이야말로 막중한 나라의 전랑권(詮郞權: 인사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고귀한 신분 아니시오. 한미한 고을 원이 복을 누린다 한들 어찌 정랑의 것에 견줄 수 있겠소.”
“모르는 말씀 마시오. 아름다운 달을 쳐다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고운 노래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지, 어찌 적은 높임에 비해 잦은 원망과 미움 속에 하루도 영일이 없는 나 같은 벼슬아치 삶에서 행복을 논할 수 있겠소. 마음은 외직(外職)으로 떠돌며 풍류로 소일하고 싶으나 지근에서 금상을 보필하는 임무를 맡아 있으니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오. 장차 때가 이르러 나도 사또처럼 큰 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오.”
사또 이겸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 아무렴 세상에 노래 부르는 항아리가 다 있다니, 놀랍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저런 신묘한 물건을 박 정랑 앞에 내놓고 노래를 들려주다니,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무엇이 도왔다 하겠는가.
이조(吏曹) 정랑이 어떤 벼슬인가. 비록 위로 판서, 참판, 참의를 모시고 있다 할지라도 중앙은 물론 지방관의 인사권을 한 손아귀에 쥐고 있는 막강한 직위 아닌가. 모든 문관 벼슬아치가 그의 손을 거쳐 선발되고 조동(調動: 행정적인 인사 조치)되며 나아가 능력까지 평가하여 윗자리에 품의하는 직책으로서, 곧 사또 이겸의 명운도 그의 손아귀에 쥐여 있다 할 수 있었다.
박 정랑이 문중의 기제사를 마치고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고 둘러댔지만, 기실 무슨 중책을 띠고 암행을 나선지도 모를 일이었다. 말로는, 성균관에서 동문수학한 동접이 이 대현 고을에 사또로 부임해 있는데 그냥 지나쳐 올라갈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가볍게 인사치레를 했지만, 같은 품계라도 당자는 중앙 핵심의 노른자위에 앉아 있고 이쪽은 보잘것없는 지방관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잘 보여 손해는 없겠지만, 만약 못 보여 눈 밖에 나는 날에는 동문수학한 동무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어찌 됐든 그의 눈에 들어놓는다는 것은 장래를 위해 봄밭에 씨앗을 뿌려놓는 셈은 되리라.
“그런데, 사또.”
박 정랑은 얼굴색을 고쳐 가다듬고 사또를 불렀다. 지금까지 저렇듯 친근한 목소리로 그를 부른 적이 없었다. 눈을 읽으면 마음을 다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박 정랑의 눈은 물론 얼굴 가득 친밀감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저런 귀물을 사또 혼자 차지하고 즐길 생각이시오?”
거리감이 느껴지던 예사 어투가 아니었다. 얼굴에 친근한 미소를 띠고, 무엇인가 간청이라도 할 것처럼 은근한 말투였다.
“무슨 말씀인지요?”
사또 이겸은 눈에 힘을 모아 정색을 하고 박 정랑을 쳐다보았다.
“저런 귀물을 상감께 바치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외다.”
박 정랑이 미처 말을 다 마치기도 전이었다. 상감이라는 소리에 그만 사또 이겸은 혼비백산, 들고 있던 술잔을 탁, 소리 나게 술상에 내려놓았다. 밤볼이 더욱 발그레 상기되고 그렇지 않아도 큰 사또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동그랗게 키워졌다.
사또는 별안간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박 정랑에게 가볍게 읍을 하고, 서둘러 전패(殿牌)가 마련되어 있는 정청(正廳)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정청은 객사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객사에 묵는 벼슬아치가 조석으로 임금님이 계시는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리도록 마련해둔 시설이었다. 전패 앞에 다다른 사또는 향궐망배(向闕望拜), 즉 대궐의 상감을 향하여 공손히 읍례를 올렸다.
“저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시어 고맙소. 본관이 박 정랑과 동행하여 저 귀물을 상감께 바치리다.”
향궐망배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앉은 사또는 맞은편의 박 정랑에게 정중히 목례를 올렸다. 사또의 살집 좋은 얼굴이 아직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술기운 탓만이 아니었다. 상감이라는 말만 들어도 피가 급류하고 풍랑이 지나가듯 가슴속에 격정이 일어나는 건 지방관으로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사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생각 잘하셨소. 아마, 상감께서 크게 기뻐하실 거외다.”
“고맙소. 고맙소. 본관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는데, 적시에 환성시켜주시어 고맙소. 헌데, 상감께서 흔쾌해하실지 걱정이구려?”
“흔쾌해하시다 뿐이겠습니까. 상감께서 문장이며 음률이며 무예며 다 일가를 이루신 분 아니십니까. 뿐만 아니라, 이런 신이(神異)에도 관심이 매우 돈독하십니다.”
“어찌 보면 이런 귀물은 태평성대를 예시하는 징험이랄 수도 있겠지요. 예전 태평성대에는 이런 신이가 자주 나타났던 것으로 압니다만.”
입귀가 찢어질 지경으로 사또의 만면에 득의의 웃음이 번져나갔다.
“그렇다마다요. 태평성대에 이런 신이가 출현하는 것이지요. 두고 보세요. 사또는 상감으로부터 큰 포상을 받게 될 것이외다.”
“그렇게 되면 본관이 내직(內職)으로 올라갈 수도 있을지 모르겠구려?”
“떼어놓은 당상이겠지요.”
“행여 본관이 내직으로 올라가게 되면 박 정랑께서 중앙에서의 본관의 어두운 눈과 귀를 밝혀주시구려.”
사또 이겸은 상체를 뒤로 젖히고 의젓한 자세를 취했다. 한껏 감정이 고양된 사또는 이미 사헌부 등 삼사(三司)의 요직에라도 오른 것처럼 온몸에 거만스러운 기운이 넘쳐났다.
“그러지요. 사또의 길잡이나 지팡이 노릇을 어찌 마다하리오.”
두 사람은 술잔을 나누며 허, 허, 허 흔쾌히 웃음소리를 높였다.
시는 꽃술처럼 오묘하기 어렵고,
문장은 경치처럼 자세할 수 없어서,
괴로이 천지의 문리를 궁구하여 헤맨다.
빼어난 시는 떠돌이 가난뱅이에게 있다던,
옛사람의 가르침은 불변의 진리인가.
흔히 목소리를 두고 곱다거나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항아리 노래는 말로 표현할 방도가 없었다. 그것이 귀를 즐겁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으로 흘러 들어와 묘한 시냇물 소리로 되살아나며 메아리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박 정랑은 소리꾼들 사이에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이 천구성이라고 들었다. 아마 항아리의 노래가 하늘이 낸 바로 그 천구성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왜 노래가 그쳤느냐? 어서 계속하여라.”
기녀가 따라주는 술잔을 비운 사또가 유쾌한 음성으로 노래를 재촉하였다. 한미한 시골 원 앞에 상감에게로 가 닿을 수 있는 눈부신 비단길을 펼쳐놓은 신비한 항아리의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가 않았다. 자신이 맞이할 눈부신 미래를 거듭 확인해보고 싶은 충동이 사또를 사로잡고 있었다.
넋을 놓고 있던 솔의 어미는 사또의 재촉에 화들짝 놀랐다.
항아리 뚜껑은 열려 있었다. 그런데 노래가 그쳐 있었다. 언제 노래가 그친 것일까. 두 벼슬아치가 나누고 있는 대화에 넋이 팔려 있는 사이 항아리가 노래를 그친 것도 몰랐던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가. 어미는 황급히 항아리 뚜껑을 닫았다. 한 호흡 쉰 다음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항아리 안에 손을 넣어 휘저어 올렸다. 으레 손을 따라 올라오고는 했던 노래가 응대가 없었다. 항아리가 벙어리라도 된 것인가. 다시 손을 넣고 휘저어 올렸다. 갇혔던 새가 튀어나오듯 노래가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날아오르고는 했는데 웬일인지 노래가 날아오르지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조화인가? 다시 황급히 뚜껑을 닫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무녀가 신령님께 비난수하듯 노래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뜸을 들인 후 어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뚜껑을 열었다. 조심스레 손을 넣어 휘저어 올렸다. 어미의 절박한 심정과 조바심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날아오르지 않았다.
“뭘 꾸물거리고 있는 게냐?”
몇 번 재촉에도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자 사또는 벌컥 역정을 냈다.
“예, 항아리가, 항아리가…….”
당황한 나머지 어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들었다.
“항아리가 어찌 되었단 것이냐?”
퉁방울눈을 부릅뜨고 사박스레 쏘아보는 사또의 추궁이 서릿발 같았다.
어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항아리 뚜껑 여닫기를 되풀이하며 노래를 불러내려고 애를 태우지만 소용없었다. 이제 죽었구나! 넋이 나간 어미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어미는 말할 것도 없고 어미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는 이방도 어미에 못지않게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항아리가, 항아리가 벙어리가 된 모양입니다.”
이방이 떨리는 목소리로 아뢰었다. 저승사자에게 덜미라도 잡힌 듯 죽을상을 짓고 있는 이방을 쏘아보는 사또의 야멸친 시선에 불길이 확 솟구쳤다. 다리에 힘이 쪽 빠진 이방은 그만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조아렸다.
“벙어리가 되다니?”
사또는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뚜벅뚜벅 항아리를 향해 걸어왔다. 항아리를 들여다보던 사또의 살집 좋은 밤볼이 부르르 떨렸다. 곧 안색이 하얗게 바랬다.
“항아리가, 비어 있지 않느냐?”
사또는 항아리 안에 무슨 기이한 것이라도 들어 있어 그것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줄 알았다는 투였다. 쏘아보는 눈이 마치 매 발톱으로 할퀴는 것 같았다. 어미는 그 매서운 눈빛에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이런 빈 항아리로 본관을 농락하다니, 죽기로 작정한 게로구나!”
사또 이겸은 외직으로 돈 것이 벌써 십여 년이 넘었다. 연로한 부모를 모시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고을 수령 자리를 걸군(乞郡)하여 외직에 취임하였다면 왜 자신의 직임에 불만을 품고 내직으로 올라가지 못해 애면글면 속을 태워왔겠는가. 노론(老論)의 끄나풀이나마 꼭 붙잡고 있으니 고을 원이라도 하고 있는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내직으로 올라가기 위해 요로에 사람을 넣고 상납을 하며 은밀히 운동해오기를 벌써 몇 해째였던가. 두고 보자는 대답은 수없이 들어왔으나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도 해가 쉬이 뜰 것 같지 않았다. 그렇듯 나날이 어두운 하늘을 이고 지내는 사또 이겸에게 박 정랑의 왕림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면 그의 발이라도 가슴에 품을 각오를 하고 있던 터에 노래하는 항아리가 등장하여, 사또의 수고를 덜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박 정랑의 입에서 상감 알현의 말까지 듣게 되었으니, 실로 황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앞길을 환히 열어주리라 믿었던 항아리가 노래를 그치다니 이런 낭패가 어디 있단 말인가.
박 정랑은 사또와는 달리 담담한 표정이었다. 함께 술을 마시며 항아리의 노래를 즐겼던 것이 아니라 마치 다른 감정의 영역에서 방금 돌아온 사람 같았다.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담담한 박 정랑의 얼굴에 사또는 잠시 당황하였다. 이런 낭패라니! 상감을 알현하고 삼사의 내직으로 올라갈 꿈이 수포로 돌아간 것도 분하고 허망한 일이지만, 박 정랑 앞에서 이게 무슨 창피란 말인가. 그렇지만 박 정랑 눈앞에서야 어찌 있는 대로 성질을 다 드러내며 화풀이를 할 수 있겠는가.
“이 일은 이방이 자초한 것이니, 이방이 알아서 처분하고 보고하시게.”
사또는 쥐어박듯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이방이 아무리 혹독하게 을러대며 다그친들 무슨 소용이랴. 무슨 재주로 어미가 항아리로 하여금 다시 노래 부를 수 있게 하겠는가.
노래를 살려내지 못해 속을 태우며 애면글면하던 어미는 경황 중에 형방으로 끌려갔다. 형리들이 어미를 형틀에 묶고 주리를 틀었고 이방은 노래를 살려내라고 그악스럽게 닦달하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이방의 닦달을 받으며 어미는 항아리를 앞에 두고 노래를 저어 올렸지만 마냥 헛손질에 그쳤다.
항아리와 만난 것이 우환이었다. 우선 항아리의 소종래나 노래 부르는 신비한 능력을 지니게 된 내력이라도 알면 무슨 변통이라도 내볼 수 있으련만, 그걸 어디 가서 알아낸단 말인가.
다만 장독대에서 된장을 푸다 우연히 발견한 것 외에 달리 아는 것이 없었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그날 아침 이상하다거나 유별난 것은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살피니, 씨아손을 돌리다 가락에 이마를 박고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아직도 오른손은 꼭지마리를 잡고 있고, 왼손에는 목화송이가 들려 있었다. 씨아 가운데 장가락 단가락 사이에는 씨를 뱉어내다 만 목화가 물려 있었다. 새벽 무렵, 등잔불이 사윈 후에도 어림짐작으로 꼭지마리를 돌리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등잔에 기름을 붓고 심지를 돋아 불을 밝힌 후 씨아를 돌려야 하리라는 마음 재촉을,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 미적거리며 어둠을 무릅쓰고 씨아손을 계속 돌리다 그만 잠의 나락으로 꼴깍 떨어진 모양이라 스스로 짐작하였다. 오래전부터 손에 익어서 그런 불상사는 일어날 리 없겠지만, 어둠 속에서 씨아를 돌린다는 것은 절대 삼가야 할 일이었다. 자칫 손가락이 씨아귀 사이로 물려 들어갈 위험이 따랐던 것이다.
왼손이 멀쩡한 것에 안도한 어미는 윗목에 길게 뻗어 있는 솔을 밉살스러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그러나 이내 쯧쯧 혀를 찼다. 저년도 등잔불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씨아 앞에 붙어 앉아 조는지 마는지 씨아손을 쉬지 않고 돌리고 있었다. 아마 잠이 들었다 해도 내가 깜박 정신의 끈을 놓쳤던 그 어느 어림이었을 것이다. 자기 씨아 앞이나 마찬가지로 솔의 씨아 앞에도 씨를 바른 하얀 솜 뭉텅이가 뭉게구름처럼 소복이 쌓여 있는 걸 보고 어미는 생각을 바꾸었다.
무릎 아래 깔려 있는 면화를 밀어내고 어미는 기직자리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무릎 관절이 팍팍했다. 눈앞에 불똥이 어지럽게 민들레 씨앗처럼 뿌려졌다. 어찔한 순간, 자칫 모로 쓰러지려는 몸을 가까스로 중심을 잡아 바로 세웠다. 구렁이라도 감겨 있는 듯 허리가 묵직했다.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는 다리를 끌듯이 움직여 솔이 쪽으로 두어 걸음 떼어놓던 어미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해가 산 위에 불쑥 솟아오른 지가 언젠데 아직도 자빠져 자고 있다니. 어서 아침 차리지 못해. 한술 뜨고 무명 따러 가야지. 고함을 냅다 지르며 발로 걷어차 깨우려던 어미는 생청스러운 성질을 눌러 껐다. 정녕 저년도 피곤하고 잠도 모자랄 테지. 잠시 솔을 흘겨보던 어미는 몸을 돌려 지게문을 밀고 신방돌로 내려섰다.
장승산 허리까지 동살이 내려와 있었다. 손바닥만 한 마당이 이슬에 젖어 있고, 이슬을 머금은 마당 끝 채마밭의 배추와 무도 초록빛이 싱그러웠다. 지난 며칠 사이 해가 짧아지고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가슬가슬하다 싶더니, 달라진 절후의 손길이 유독 감나무에 오래 머물다 갔는지 어제 아침보다 감의 주황빛이 한결 더 선명해진 느낌이었다. 멀지 않은 숲 속 어딘가에서 산비둘기가 구굴구굴 청승스럽게 울고 있었다.
응당 아침은 밝고 신선해야 할 것임에도 신역이 고달픈 요즘은 그렇지가 못했다. 목화밭의 무명도 어서 따야 하고 서리 내리기 전에 들깨도 거두어야 했다. 고구마도 마냥 밭에 저대로 둘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목화가 문제였다. 들깨나 고구마는 거둬들이는 데 품이 그다지 들지 않는 데다 간섭할 이도 없지만 목화를 따서 말려 씨를 발라내고 솜을 털어 고치를 짓고 실을 뽑아 베를 짜 피륙을 만들려면 품이 여간 많이 들지 않고 기간도 오래 걸렸다. 기일에 맞추어 피륙을 갖다 바치지 않으면 도지를 내준 김 진사 댁 재촉이 불같을 것이 뻔했다.
부엌 바닥에는 아직도 어둠이 깔려 있었다. 거적문을 들치자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빛이 부엌으로 한꺼번에 와락 뛰어 들어왔다. 바가지를 들고 작은 두멍에서 물을 떠 목을 축이고 나자 정신이 한결 개운해졌다. 어미는 천장에 걸린 대소쿠리 가장자리를 잡고 눈앞으로 기울여 안을 들여다보았다. 조와 수수로 지은 밥이 대소쿠리 바닥에 깔려 있었다. 두 입 몫은 됨 직하였다. 밥 짓는 수고는 덜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약간 눅어진 어미는 흙벽에 걸린 시렁 위의 접시와 종지를 열어보았다. 접시에는 무채김치가 조금 남아 있고 종지에는 간장이 밑자리에 깔려 있었다. 눈을 두리번거리며 찾았으나 구미를 당길 만한 다른 반찬은 더 보이지 않았다.
이즈음처럼 반찬거리가 흔할 때도 없었다. 채마밭에는 남새가 지천이고 아욱이나 머위 철은 아니지만, 돌미나리나 씀바귀는 개울가나 들판에 나가면 손쉽게 캘 수 있는 철이었다. 콩잎도 쪄서 양념간장에 절여놓으면 밥술깨나 뜰 수 있고, 감자나 무를 쫑쫑 썰어 간장에 볶거나 국을 끓여도 고소하고 시원하였다. 방 쪽을 흘낏 쏘아보며 어미는 혀를 끌끌 찼다. 저년이 조금만 바지런했더라면 부엌이 이렇게 썰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밤낮없이 목화 따고 씨아 돌리느라 정신없이 지낸 지난 며칠을 돌이켜보며, 성질을 다독였다. 마침 두멍 옆 대소쿠리에 담겨 있는 무청 말린 것이 눈에 띄었다. 된장을 풀고 저것을 넣어 푹 삶으면 구수한 맛이 우러나리라. 입맛을 쩝 다신 어미는 오지그릇과 숟가락을 찾아 들고 된장 항아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부엌에는 작은 감항아리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장독대라고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간장과 된장은 작은 단지에 담아 부뚜막에 간수해왔는데 다 어디로 치운 것일까. 그러고 보니 솔에게 살림을 맡기고 난 후 처음 부엌에 들어온 사실을 어미는 비로소 깨달았다. 지지난해 여름, 열넷이면 살림을 알아야 할 나이가 되고도 남았으리라는 생각에 부엌과 뒤주서껀 살림살이 일습을 다 솔에게 맡겼던 일이 뒤늦게 떠올랐던 것이다.
뒷문으로 나가자 뒤란 감나무 아래에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항아리를 몇 개 사주기는 했지만, 저렇듯 장독대 모양을 갖출 만큼 여럿을 사준 것 같지는 않은데, 독이 두 개에 소래기 덮은 중두리 두 개, 아담한 오지항아리 두 개, 감항아리 하나, 그렇게 조촐하나마 장독대 구색을 갖추고 있는 것이 대견하였다. 어미의 입귀에 웃음이 배시시 피어올랐다.
그래, 저년이 시집가면 살림 하나는 손때 맵게 잘 살겠군!
장독대로 다가간 어미는 맨 앞에 있는 중두리를 열었다. 간장에 풋고추를 절여 둔 항아리였다. 옆의 항아리를 열었다. 간장이 담겨 있었다. 그 옆의 오지항아리를 연 어미는 응당 된장 항아리려니 짐작하고 숟가락을 넣고 휘둘렀다. 그런데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빈 숟가락을 들어 올리고 안을 들여다보려던 순간 어미는 소스라치게 놀라 부리나케 뒷걸음질 쳤다.
가냘프게 미소 짓는 옥련화
청정한 마하지에 피어 있다
오히려 봄의 뜻을 알리기에
한 송이 꺾어 그대에게 바치노라
항아리에서 노래가 솟아올랐던 것이다. 마하지에 피어 있는 성스러운 연꽃은 신앙적 숭배의 대상이지만 꺾어 연인에게 바칠 때는 춘정 넘치는 요염한 전언이 되는 것이다. 임을 향한 정이 짙게 묻어 있는 시에 가락을 입힌 고운 노래가 그 항아리에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눈앞에서 재롱을 부리던 강아지가 문득 예쁜 아이로 변해 말을 걸어온다면 어떤기분이 될까. 뜰의 감나무에 앉아 있던 까치가 갑자기 두루마기에 갓을 쓴 선비로 변해 앞으로 걸어오는 것을 본다면 그 기분이 또한 어떨까. 울타리 옆에 서 있던 오동나무가 땅에 박혀 있던 발을 빼내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본다면 또 얼마나 놀랄까. 어미는 경황없이 들고 있던 항아리 뚜껑을 놓치고 말았다. 뚜껑이 닫히자 노래가 뚝 그쳤다.
미처 잠이 덜 깬 것인가. 고개를 저으며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이미 돋을볕이 건너편 장승산 중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건넛집 감나무에 앉아 있던 까치가 어미 눈치를 알아차렸던지 까츠츠 까츠츠 한 소식 알렸다.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다시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기다려도 노래가 나오지 않았다. 노래가 나오기는커녕 아무 기척도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안을 들여다보니 먼지 하나 없는 빈 항아리였다. 그래, 내가 잘못 들은 것이었어. 나이가 들면 헛것이 보인다더니, 헛것을 듣기도 하는 것인가. 그렇듯 망령이 들어 잘못 들은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뚜껑을 닫으려다 문득 손을 멈추었다. 아무러하든 조금 전 그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감돌고 있는 느낌이 생생했다. 노랫말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헛것을 들었다고 흘려버리기에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아까처럼 항아리에 숟가락을 넣고 된장 퍼 올리는 시늉을 해보았다.
하늘의 견우직녀 아침저녁 만나건만
사람이 제멋대로 지어 일 년에 한 번만이라네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인연이니 무슨 근심이랴
인간 세상 기약 없는 봉별에 어찌 견줄까
이번에도 손끝에 노래가 딸려 나왔다. 견우직녀는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도 헤어지지 않을 인연이니 무슨 근심인가. 게다가 견우직녀가 긴 이별 끝에 일 년에 한 번씩 만난다는 것도 사람이 지어서 그렇게 된 것이지 짐짓 그들은 아침저녁으로 만난다는 것 아닌가. 만남이란 길고 영원할수록 좋은 것이고, 이별이란 없거나 짧을수록 좋은 것 아니던가. 인간 세상의 이별은 다시 만날 기약도 막연한데, 이런 부침이 심한 인간 세상의 기약을 하늘의 견우직녀와 견주어 부른 애절한 내용의 노래였다. 아무리 놀라운 것이라도 다시 보면 놀라움의 정도가 처음보다는 덜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놀라움이 덜어지기는커녕 더 키워졌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 살을 꼬집어보았다. 꼬집힌 살에 아픔이 생생히 피어났다. 아무렴 어찌 항아리에서 노래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인가. 놀라움을 감당할 수가 없어 얼른 항아리 뚜껑을 닫았다.
어미는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건성으로 씨아를 돌리고, 시늉으로 시위를 당겨 솜을 타던 어미는 마침내 고을 장날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새벽 동틀 무렵에 집을 나서서 허위허위 길을 서둘렀으나 사십 리가 넘는 거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멜빵을 하여 등에다 진 항아리가 무겁지는 않았으나 등짐이 서투른 탓인지 걸음이 재바르지 못했다. 시내를 건너고 재를 두어 개 넘어야 고을에 당도할 수 있었다.
고을 장은 닷새에 한 번씩 길청거리에 섰다. 삼십 년도 더 전에 새로 성을 쌓고 동헌과 함께 길청도 성안으로 들어가고 없었으나 옛 길청이 있던 자리에서 고을 남쪽으로 길게 난 길을 두고 길청거리라 일렀다. 그곳에 장이 섰으므로 장터거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어미는 그 장터거리에서 두 파수 동안 노래 파는 재미를 누리다가 세 파수째에 이방에게 끌려 동헌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사람의 재주로는 부릴 수 없는 이 항아리가 어찌 장독대에 놓여 있었는지 그 소종래라도 알면 무슨 궁리가 서련만, 그것을 어찌 알아내겠는가. 아무리 궁리해도 무슨 뾰족한 방법이 나서지 않았다. 노래라면 사족을 못 쓰고, 아무리 혹독하게 매질을 해대며 부르지 못하게 윽박질러도 노래를 입에 달고 살던 솔이 년의 모습이 잠시 스쳐가기는 했다. 그러나 솔인들 어찌 노래항아리의 소종래를 알고 있겠는가. 장에 나가 노래를 팔아보라며 부추기던 여주댁이 이르기를 이 물건은 검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검 것의 내력이나 부리는 방법을 어떤 사람이 알고 있겠는가. 이방의 추궁도 추궁이려니와 어미 스스로 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항아리가 노래 부르는 것을 눈으로 보았고 귀로 직접 노래를 들었으므로 사또나 이방이 어미에게 자신들을 농락했다고 죄를 추궁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터였다. 그러나 항아리가 노래를 그쳐 사또를 난처하게 만들었고, 이방 또한 곤경에 빠뜨린 것이 문제였다. 항아리가 다시 노래를 회복한다면 모르려니와 그렇지 못한다면 사또의 격분은 영영 가라앉지 않을 것이고, 이방의 구실 또한 붙어나지 못할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이방 또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낙은 항아리의 내력은 물론 기능을 되살릴 방법 또한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 집 장독대에서 된장을 푸려다 발견했다는 한결같은 대답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초조하고 답답한 이방의 기대와 바람을 채워주지 못하니, 추궁 끝에 이어지는 것은 매질과 주리뿐이었다.
어미는 혹독한 매질에 피투성이가 되어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네가 항아리 임자란 말이냐?”
지난 며칠 원근 고을 장터를 돌며 어미 소식을 더듬어 수소문하고 다니느라 솔은 지칠 대로 지치고 행색이 게저분했다. 흙먼지가 짙게 앉은 얼굴은 핼쑥하고 때 절고 구겨진 치마저고리는 구지레하기 짝이 없었다. 다만 작은 눈만 살아 있는 듯 쉴 새 없이 깜박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행방을 알 수 없는 어미와 항아리의 안위가 걱정되어 한동안 눈 한번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불안감에서 놓여난 적이 없던 솔은 입술도 가뭄의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어미가 항아리를 지고 나간 후 소식이 없어 찾아 나선 것입니다.”
솔의 대답에 이방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항아리로 인해 어지러이 번차례로 극락과 지옥을 오르내렸던 쓰라린 기억이 생생한 터, 이제 그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비록 계집아이의 얼굴이 초췌하고 행색이 구저분했으나 이방은 솔을 데리고 온 진문(鎭門)지기로부터 들은 말 몇 마디에 벌써 마음이 들떠 있었다.
“네가 항아리 임자라는 걸 어찌 알 수 있다는 것이냐?”
이방은 아낙의 행색과 항아리의 생김새에 대해 꼼꼼히 따져 물었다. 아낙의 용자며 차림새와 항아리 형상에 관한 아이의 대답이 시원시원했다. 미네골 뒤 장승산 긴미[長山]의 생김새며 마을 세도가인 김 진사 댁에 대해서도 대답이 막힘없고 자세하였다. 긴미의 생김새야 그 부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답이 활달하겠지만, 김 진사 댁에 대한 대답에도 막힘이 없자 일단 미더웠다. 모녀가 오랫동안 진사 댁 전답을 배메기하며 연명해온 터, 그 댁 안팎 사정을 웬만큼은 꿰고 지냈다. 솔의 대답에 이방은 가까스로 안도감을 느꼈다. 아낙이 입에 노래를 달고 사는 딸이 있다는 말을 얼핏 비치기도 했었다. 그 아낙의 딸이 틀림없어 보였다. 이방은 운(運)이 웃으며 자기에게로 한 걸음 성큼 다가온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돌다리라도 칸칸을 짚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사또 앞에서 또 허물을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방은 아이더러 항아리의 내력을 먼저 아뢰도록 하였다.
아이의 대답이 기이했다. 노래 부르는 귀신이라도 붙은 듯 아이는 늘 노래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는데, 어미는 노래하는 것만 보면 팔자 사나워진다고 못 부르게 윽박지르고, 윽박질러 되지 않으니 매질이 그치지 않아 하루도 종아리 성할 날 없이 지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까마귀 깃을 꽂은 통영갓에 녹색 두루마기 차림의 손님이 나타나 마음 놓고 노래 부를 수 있게 해주겠다고 꾀어 그 꼬임을 좇아 항아리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항아리를 얻게 된 내력을 다 듣고 난 이방은 눈을 슴벅이며 생각에 잠겼다. 세상에 곧이들을 것이 따로 있지 저 말을 사또가 곧이듣겠는가. 기대에 부풀었던 이방은 다시 풀이 죽고 말았다.
이방은 잠시 뜸을 들이며, 계집아이가 한 말의 진위를 깊이 궁리하고 따지기를 거듭하였다. 항아리는, 비록 눈앞에 있을지라도 현실적인 존재라 할 수 없었다. 현실적인 존재는 사람의 손씀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조응하기 마련이었다. 세우면 서고 눕히면 누웠다. 깎으면 깎이고 담으면 담겼다. 물건이 가진 성질대로 가볍기도 하고 또는 무겁기도 했다. 타고난 성질이나 기능 외에 사람이 작용하여 다른 성질이나 기능을 새로 갖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람의 조작에 의한 물리적 변화를 겪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그러나 항아리는 사람의 작용을 허락하지 않고, 인식의 영역도 벗어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스스로 발휘하는 존재였다. 아무리 따져 살펴도 현실적인 이해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검 것이었다. 꿈속이나 귀신들이 횡행한다는 형체 없는 물외(物外)의 영역에나 있을 법한 존재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계집아이의 입에서 나온 항아리에 관한 내력이 반드시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현실적인 것일 리가 없지 않겠는가. 계집아이의 대답이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화를 내고 서운해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방은 뒤늦게 깨닫고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계집아이는 이방이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이 거침없다. 항아리의 생김새를 다시 확인하고, 아낙의 행색이며, 노래의 내용 등에 관한 대답이 일일이 아퀴가 맞고 빈틈이 없자 이방은 가까스로 다시 미간을 폈다. 항아리를 얻은 내력은 미덥지 않았으나 항아리의 생김새와 아낙의 행색은 틀림없이 사실에 부합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그 항아리를 마땅히 보관할 데가 없어 주저하던 끝에 장독대에 보관해왔다는 것과 아낙이 된장을 뜨러 장독대에 나갔다가 항아리를 발견했다는 대답이 일치한 것에 이방은 겨우 안도하였다.
항아리가 네 것이라고 왜 돌려달라 하지 않았느냐는 이방의 추궁에 공연히 매를 벌지 않고서도 언젠가 그것을 빼내 감출 수 있으려니 여기고 그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고 솔은 대답했다. 그러나 어미가 항아리를 어찌나 애지중지하는지 그 겨를이 쉽게 오지 않았다. 어미가 장에 나가 노래를 파는 눈치더니 그때부터는 아예 항아리를 품에 껴안고 살다시피 했다. 심지어 뒷간에 갈 때도 항아리를 안고 갈 정도였다. 밤낮 항아리를 빼돌리지 못해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을 끓였다는 말도 틀리지 않아 보였다.
이방은 사저로 가 사또에게 항아리의 임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아뢰었다.
항아리가 다시 노래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이방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사또는 한달음에 동헌으로 달려 나왔다. 사또는 눈을 부라리고 솔을 뜯어보며 항아리가 노래 부르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냐고 덤벼들듯이 따져 물었다. 소녀가 노래를 불러 항아리에 담아놓았다가 불러내면 항아리가 노래를 부른다고 대답하자, 사또는 미덥지 않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는 눈치였다.
그동안 사또는 항아리의 노래를 다시 듣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해 알아보았다. 비록 외양은 흔해빠진 오지항아리에 불과했지만 노래 부르는 신비한 재주를 지닌 항아리였다. 그 노래를 직접 듣고 감흥을 느끼지 않았던가.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항아리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길이 없었다.
고을 대유(大儒)를 초청, 항아리를 보여주며 원래 노래 부르는 항아리였는데 갑자기 노래를 그쳐 그 기능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데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고 정중하게 자문을 구했다. 사또의 말에 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귀를 후비고 털던 대유는 큼, 큼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일언반구도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가버렸다. 고을의 이름난 무녀를 불러 사흘 밤낮 노래 회복을 위한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육방관속을 다 동원, 원근의 재주 있는 현사를 일일이 찾아 모셔 오게 하여 항아리의 노래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각각 의견은 구구했으나 노래를 회복시킬 재주를 지닌 현사는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평생 산속에서 풀뿌리로 연명하며 도를 닦았다는 도사도 모셔 왔으나 허사였다. 오로지 덕을 좇는 고결한 방외인(方外人)의 재주도 항아리의 노래를 다시 회복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구저분하고 조그만 계집아이가 나타나 항아리 노래를 되살려놓을 수 있다고 태연히 주장하다니,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았다. 그러나 항아리의 노래를 듣고 싶은 미련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내키지 않았으나 사또는 항아리의 내력을 이르라고 분부하였다.
겁에 질린 얼굴로 눈을 깜박이며 사또를 쳐다보고 있던 솔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다음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소곳이 아뢰어나갔다.
‘또 노래 부르다 들켰군, 쯧쯧!’
아침마다 동쪽 하늘에 다시 얼굴을 내미는 것에 싫증도 나지 않는 것일까. 해는 왜 아침마다 세상을 찾아오는 것일까. 밤이 되기를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별들도 그렇지, 왜 밤마다 같은 노래만 영원히 불러댈까. 왜 세상의 모든 산은 같은 자리만 지키고 있어야 할까. 바다의 숭어는 왜 육지로 올라와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면 안 되는 것일까. 어떤 그릇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채워져야 존재의 반전이 이루어져 지루한 반복에 종지부를 찍게 될까.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는 영원히 바꿔놓을 수 없는 반복에 쉼표를 찍듯 소리 없이 손님이 찾아왔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지만, 녹색 두루마기에 몸을 감싸고, 까마귀 깃을 꽂은 테 넓은 통영갓을 쓴 그 손님이 마치 바다를 걸어 나와 지팡이를 짚고 육지를 걸어 다니는 민어나 대구의 화신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왜 그런 신이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소리도 형체의 움직임도 없이 그림자가 현현하듯 나타났기 때문일까. 그는 방문을 여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발에 결 고운 미투리를 신고 있었으나 그 미투리에 흙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아 먼 길을 걸어온 것 같지도 않았다. 어딘가 벽이나 방 안의 어떤 사물, 고리짝 같은 데 은밀히 내재해 있다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생각되었다. 녹색 두루마기 때문인가, 몸에서 대나무 숲 향기가 솔솔 풍겨나는 것 같았다. 몸에서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몸 어딘가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순간, 그는 몸을 낮추어 솔의 종아리를 살펴보았다.
종아리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데도 그것이 매우 몽환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말에는 감정이 씻겨 있고, 시선에는 광채가 없고, 얼굴에는 색깔이 없었다. 기쁨과 슬픔, 환락과 고통, 풍요와 결핍, 삶과 죽음,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번갈아 느끼는 감정, 그런 현실적인 감정이 씻겨 있어서 그럴까, 인생의 궤도를 이탈해 있는 존재 같았다. 인간 세사, 인과의 순환이나 시간의 지배를 벗어나 있는 존재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듯 무감각한 얼굴이 있을 수 있겠는가. 솔은 불쑥 찾아온 그 손님을 경계하는 빛이 없었다. 몸에 물기가 한 방울도 없는 건조하고 무감각한 존재를 향해 솔은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무엇이 괘씸한지 곱지 않은 눈으로 쏘아보는 솔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그가 입을 열려는 찰나, 솔이 가로채 먼저 말했다.
“마음 놓고 노래 부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요?”
솔의 음성에는 비난과 원망이 까맣게 절어 있었다.
“방법이야 있지. 하지만 거기에는…… 혹독한 대가가 따르거든.”
사람이 상대방에게 사정을 정확히 알리기 위해서는 표정도 동원하고 목소리에 감정도 싣는 법인데, 그의 얼굴은 화폭의 그림처럼 하나로 고정되어 있고, 음성은 음성이라기보다 무기물의 울림처럼 빛이나 색깔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잖아요.”
사람의 몸은 감정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수단을 가지고 있다. 솔은 그 수단 가운데서 가장 정교한 얼굴에 결의와 원망을 그려 보였다.
“사람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은 것이란다.”
능력의 한계를 말하는 것인지, 제도나 윤리적 제한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일의 인유적 표현인지 종잡을 수 없어 솔은 잠시 혼란을 느꼈다.
“목숨을 내놓아도 좋아요!”
짧은 기간이나마 마음 놓고 노래 부를 기회를 허용해준다면, 그 짧은 기간을 누리는 대가로 목숨을 내놓겠다는 절박한 결의를 솔은 다부지게 내보였다.
“목숨 하나로는 모자라.”
한 나무토막이 다른 나무토막을 때렸을 때 나는 둔탁한 소리를 방불케 하는 녹색 손님의 음성이 울림도 없이 무감각하게 사라졌다.
“목숨이면 다지.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어요?”
자신의 결의에 찬 하냥다짐이 무참하게 짓밟히자 솔은 잠시 당황하였다.
“소중하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냐. 응분의 고생을 치러야 해.”
“고생!”
목숨과 고생의 무게를 잠시 저울질해보았다. 아무리 달아봐도 목숨 쪽이 금방 아래로 쑥 내려갔다. 목숨 쪽은 바닥에 닿고 고생은 반대로 허공으로 치켜져 올라갔다. 솔은 의아한 눈으로 녹색 손님을 쳐다보았다. 고생의 본질을 꿰뚫어 알지 못한 솔은 목숨보다 훨씬 가벼운 고생을 대가로 치르고 노래 부를 수 있는 방법을 구할 수 있다니, 미덥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목숨이란 단번에 끝낼 수 있지만, 고생이란 어디 그래. 오래오래, 두고두고 치러야 하는 것이거든.”
아니나 다르랴, 녹색 손님은 솔의 빗나간 인식에 일침을 놓았다.
“다시 말해, 목숨을 끊는 데도 용기는 필요하지. 하지만 고생을 견디는 데는 용기만으로는 안 되거든. 반드시 불굴의 의지가 따라야 돼!”
용기와 의지? 그 차이가 얼른 분별되지 않았다. 듣고 싶은 것만을 들으려 하기 때문인가, 손님의 말은 시간에 더 값을 먹이는 것으로 들릴 뿐 그것이 지닌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사상된 채 가볍게 들렸다.
어찌 ‘고생’을 안겨줄 수 있겠느냐며, 고개를 젓고 미처 옷깃을 부여잡을 겨를도 없이 훌쩍 사라져버린 녹색 손님. 은하수라도 타고 내려온 것처럼 온몸에 별들의 냄새를 은은히 풍기던 그 손님. 솔은 그 녹색 손님을 애타게 기다렸다.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애타게 기다렸으나 통영갓에 녹색 두루마기 차림의 그 녹색 손님은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미친년, 또 노래를 부른 모양이구나.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또 맞았어?”
영원의 한순간을 붙들어놓기라도 한 듯 정적 속에 잠긴 산 아래 고즈넉한 마을,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하늘을 향해 키를 세운 산이 보이고, 그 산에서 양팔을 벌리듯 두 갈래로 내려온 능선이 오종종 앉아 있는 다섯 채의 초가를 감싸고 있어 매우 아늑해 보였다. 마을 가운데 펼쳐져 있는 밭에는 기장이며 콩 등 가을의 축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숫대는 가을볕에 나날이 영글기를 더해가는 이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볕의 흰 부분만 가려서 쬔 듯 하얀 목화가 눈부시게 펼쳐져 있는 목화밭도 탐스러웠다. 이제 사람들의 손이 그 축복을 거둬들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밭은 풍성하게 넘실거리며 결실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목화를 따다 잠시 밭둑에 앉아 종아리의 상처를 살피고 있는 솔에게 가까이 다가온 이웃 여주댁이 혀를 끌끌 차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 어미가 모진지, 네가 모진지 모르겠다. 성한 데 하나 없는 종아리에 매질을 해대는 네 어미도 모질지만, 그만큼 못 부르게 하는 노래를 불러대는 너도 참 못 말릴 아이다. 왜 부르지 말란 노래를 불러, 매를 번단 말이냐.”
“모르는 말씀 마세요. 제가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부르는 줄 아세요. 가만히 있어도 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걸 어떻게 해요.”
여주댁의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솔은 곱지 않은 눈으로 쏘아보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그리고 속으로 울먹이며 외쳤다.
“왜 저 산 너머 보이지 않는 곳이 미치도록 그립고 달려가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왜 저 산 너머 어딘가에 파란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드는지, 저는 아무래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네 어미 아픈 데를 왜 건드려.”
솔의 그 속절없는 아련한 그리움을 여주댁이 알 까닭이 없었다.
순간 솔의 입안에 노래가 감돌았다. 노래가 나오자 여주댁이 깜짝 놀랐다. 황급히 안성댁을 돌아보았다. 저쪽 밭머리에서 노래를 듣지 못한 듯 안성댁은 허리를 굽히고 목화 따는 일에 골몰해 있었다.
“이것아 네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노래 때문에 네 어미가 팔자 망치고 이 고생하고 있다는 거 몰라?”
어미가 이곳 미네골로 흘러 들어온 내력을 솔도 모르지는 않았다. 매질을 할 때마다 한숨 섞어 늘어놓던 푸념과 넋두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었다.
양가집 셋째 딸이었던 어미는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는 버릇이 입에 붙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배우지도 않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으나, 앉으나 서나 노래가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오고는 했다. 노랫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른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청승맞은 노래는 집안에 우환을 불러들인다고 엄중히 금했다. 말로 소용이 없자 벌을 세우기도 매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엄하게 금하고 매질을 해대도 노래 부르는 버릇을 남 주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집안에 우환이 하나둘 겹쳐 일어났다. 그것이 꼭 어미 노래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어른들은 큰 오라버니가 진사시에 낙방한 것도, 조카가 호열자에 걸려 죽어 나간 것도 다 청승맞은 어미 노랫소리 때문이라 여겼다. 궂은일을 몇 번 겪고 난 후 집안 어른들은 노랫소리만 들리면 쫓아와 전에 없이 무섭게 살기를 띠고 다그치며 죽지 않을 만큼 매질을 해댔다. 그래도 노래 부르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둘째 오라비가 또 과거에 낙방하고 작은 조카가 시내서 물놀이하다 죽어 나가자 집안 분위기가 더욱 흉흉해졌다. 이 우환이 다 어미 노래 때문이리라 여긴 집안 어른들은 의논 끝에 결국 논밭을 얹어 보잘것없는 한미한 집에다 쫓아버리듯 시집을 보내고 말았다.
안성댁의 노래 부르는 버릇은 시집을 가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정말 노래가 집안에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일까? 딸 하나를 낳고 나서, 학수고대하던 아들을 낳았으나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두 번째 세 번째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그 재앙이 모두 안성댁의 청승맞은 노래 때문이라며 시댁 식구들의 핀잔과 원망과 학대가 나날이 더해갔다. 남편은 물론 온 시댁 식구들의 원망과 학대를 견디지 못한 안성댁은 어느 날 밤 어쩔 수 없이 솔 하나를 달랑 업고 야반도주, 이곳 미네골로 숨어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했다.
여주댁의 다급한 경고에 솔은 흥얼거리던 노래를 뚝 그쳤다. 그제야 자신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몸서리를 쳤다.
“노래 때문에 네가 명대로 못 살 게다!”
“아주머니, 왜 자꾸만 어딘가 먼 곳이 그립고 가고 싶은 걸까요? 왜 그럴까요?”
슬픈 빛을 띤 목소리와는 달리 표정은 밝았다. 무엇인가 손에 잡히지 않고 막연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향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는 아련한 표정이었다.
“탈이 나도 큰 탈이 났구나!”
여주댁은 수건으로 이마를 훔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다 저런 병이 든 것일까. 솔의 아련한 표정이 불안하기만 했다.
글쎄, 솔이 바라는 것은 밥도 아니고 옷도 아니었다. 밭에서 나는 것도, 논에서 나는 것도 아니었다. 산에서 구할 수 있는 것도, 강에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역시 아니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종잡을 수 없고 막연한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솔의 나이 무렵에는 누구나 어디 낯선 곳으로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고는 하는 것이다. 작은 나뭇잎 하나 흔들리는 것에도 눈물 흘리고 가슴앓이를 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면 절로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겠지, 쯧쯧!
그래, 노래란 무엇인가. 즐거운 일이 있을 때 무심코 흥얼거려지는 것이 노래 아니겠는가. 슬픔이 마음을 파랗게 적실 때 탄식과 함께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이 노래인 것이다. 그래, 마음과 육신이 고달픔을 겪을 때, 어딘가 멀리 떠나고 싶을 때,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저도 모르게 일어나 차고 오르는 충동이 노래를 낳는 것이다. 그리운 사람이 보고 싶을 때도, 오래 헤어져 있어야 할 이별 앞에서도, 마음속에 노래가 가득 고인다. 뿐만 아니라, 노래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에 다리를 놓아주는 은밀한 구실도 한다. 노래란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는 최상급의 표현 수단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당시 사대부 집안에서는 노래를 멀리하였다. 낭랑한 글 읽는 소리라면 반기고 칭송받지만 노래라면 청승맞다고 입에 담지 못하게 금했다. 유교적 덕목과 이념을 삶의 방편으로 삼는 사대부들은 연회를 벌여 따로 즐기기는 하되 직접 노래를 입에 담는 일은 기휘하였다. 연회에 선가(善歌)1를 불러들여 노래를 듣고 명인(名人)을 불러 거문고, 젓대 등 사죽(絲竹)2을 감상하기는 하였다. 시조를 읊는 것을 선비의 흥취로, 거문고를 뜯는 것을 선비의 고상한 여기로 삼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애이불비(哀而不悲) 낙이불류(樂而不流) 즉, 슬퍼도 그렇지 않은 척 기뻐도 그렇지 않은 척, 사사로이 감정을 겉에 드러내는 걸 소인배의 짓으로 배척하며, 여항의 노래는 천하다고 입에 담기를 경계하였다. 그래, 노래는 설 자리가 별로 없었다.
1 가곡을 잘 부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
2 실로 줄을 한 가야금, 거문고 등 현악기와 대로 짓는 피리, 퉁소, 대금 등 관악기.
녹색 두루마기의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통영갓에 꽂은 까마귀 깃의 검은빛이 지난번보다 한결 영롱했다. 그날도 솔은 노래에 빠져 있다 어미에게 들켜 종아리가 터지도록 매를 맞았다. 홀로 방바닥에 쓰러져 있는 솔을 찾아온 녹색 손님은 늘 그렇듯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는 방문도 열지 않고 소리 없이 나타났다. 벽에 스며 있다 나온 것인지, 천장에 붙어 있다 나비처럼 날아 내린 것인지, 그의 출현은 은밀하고 감쪽같았다. 솔은 녹색 손님을 원망하듯 쏘아보았다. 입술을 질끈 깨문 것이 이번에야말로 결판을 내고 말겠다는 듯 결의를 굳힌 야무진 표정이었다.
“고생이든, 목숨이든, 뭐든 좋아요. 마음 놓고 노래 부를 수만 있게 해주세요.”
대나무 냄새를 은은히 풍기며 몸 어딘가에서 노래가 솔솔 흘러나오는 녹색 손님은 대답 없이 솔의 상처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상처를 쓰다듬는 손길이 한없이 자애롭지만 얼굴에는 역시 아무 표정도 없었다.
“아무래도 구곡산을 다녀와야 하겠구나. 하지만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많아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드문데, 이를 어쩐담. 요행히 항아리를 얻어 돌아온다 해도 그 대가로 소중한 것을 차례로 잃어가야 하는데, 그리고 또 죽는 날까지 두고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