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폴라 해리슨
영국의 베스트셀러 동화 작가입니다. 오랜 시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꾸준히 글을 쓰다가 비로소 동화 작가가 되었습니다.
〈고양이 소녀 키티〉 시리즈를 비롯해 여자아이와 동물 주인공이 등장하는 가슴 뛰는 모험 시리즈를 여러 편 썼습니다.
paulaharrison.jimdofree.com
그림 강한
너와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다양한 책들에 그림 작가로 참여하였고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 광고 일러스트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a letter from’ 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며 직접 만든 귀여운 물건들로 자급자족하는 라이프를 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_kang_han_
옮김 최현경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어린이책을 만들어 왔습니다. 지금은 좋은 어린이책을
기획하고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합니다. 그동안 옮긴 책으로 폴라 해리슨이 쓴 〈고양이 소녀 키티〉 시리즈와 《바나나 껍질만 쓰면 괜찮아》, 《쿠키 한 입의 행복 수업》, 《진실만 말하는 요정, 진실 픽시》가 있습니다.
제시가 헐레벌떡 페버릴 궁전 뒷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흰 앞치마는 손때가 묻어 얼룩덜룩하고, 모자는 귀까지 축 처져 있었다. 제시는 릴리 공주의 방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릴리! 왕비 마마가 부르셔. 마차가 곧 플럼체스터 시내로 출발하려고 기다리고 있대.”
릴리 공주가 한 손으로 목덜미를 가린 채 뒤돌아보았다. 릴리와 제시 두 여자아이는 나이도 같고 생김새도 쌍둥이처럼 닮았다. 둘 다 윤기 나는 갈색 머리가 어깨 아래로 찰랑거리고, 작은 코에 눈동자는 녹갈색이었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제시의 눈동자가 살짝 진한 편이었다.
둘은 제시가 페버릴 궁전에 하녀로 일하러 온 뒤로 내내 가장 친한 친구 사이였다. 서로 닮았다는 걸 아주 좋아했고, 자기들끼리 ‘프린세스 탐정’이라는 비밀 신호도 만들었다.
“도저히 못 가겠어! 어머니가 보드킨 거리에 새로 온 화가한테 가서 내 초상화를 그리자고 하셨는데.”
릴리 말에 제시가 물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게 싫어서 그래?”
“그게 아니라, 여기 좀 봐!”
릴리가 목을 가렸던 손을 치우자 목덜미에 샛노란 얼룩이 드러났다.
“어젯밤에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놀았거든. 밀림에 사는 사자처럼 꾸며 봤어. 자기 전에 다 지운 줄 알았는데 자국이 좀 남았나 봐. 이젠 아무리 닦아도 안 지워져. 어머니가 보시면 호되게 혼낼 거야! 쓸데없는 장난 좀 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제시가 씩 웃었다.
“진짜 무시무시한 사자처럼 보였겠는데. 비단 스카프를 두르면 되지 않을까?”
“틀림없이 안 된다고 하실걸. 어머니는 내가 뭘 어떻게 입을지 다 정해 두셨거든. 초상화를 그려서 글렌바르의 할머니께 선물로 보내 드릴 거라, 완벽하게 그려야 하거든.”
릴리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제시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서로 옷을 바꿔 입을까? 내가 초상화 모델이 되고, 넌 나 대신 청소랑 심부름을 하고 말이지. 아무도 못 알아차릴걸!”
릴리와 제시는 서로 옷을 바꿔 입으며 각자 좋아하는 일을 즐기곤 했다. 제시는 릴리 대신 승마 수업을 받고, 릴리는 월시 주방장과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 식이었다. 하루 만에 공주가 되었다 하녀가 되었다 하는 일은 정말 짜릿했다!
릴리는 신이 나서 손뼉을 쳤다.
“나야 좋지!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그러자 제시가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서둘러야겠어. 무슨 옷을 입으면 돼?”
릴리는 큼직한 나무 옷장에서 기다란 보랏빛 드레스를 꺼냈다. 윗부분에는 반짝이는 구슬이 알알이 박혀 있고, 허리에는 은빛 리본이 둘러져 있었다. 제시는 하녀 옷을 벗어 릴리에게 건네고는 흰색 속치마 위로 드레스를 입었다.
릴리는 하녀 옷을 입고 허리에 앞치마를 둘렀다. 그런 다음 제시의 긴 머리가 어깨 위에서 아름답게 찰랑거리도록 잘 빗질해 주고, 목에는 에메랄드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제시는 커다란 금테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릴리의 옷을 입어 본 적은 많지만, 이 옷은 그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날에만 입는 가장 좋은 드레스였다.
릴리가 활짝 웃었다.
“멋지다! 어때, 괜찮아? 너무 까슬까슬하진 않고?”
“괜찮아! 너도 이거 써야지.”
제시는 하녀 모자를 집어 들어 릴리의 머리 위에 씌워 주었다.
“스틴 집사님이 심부름을 너무 많이 시키지 않아야 할 텐데.”
“내 걱정은 하지 마.”
릴리는 발소리를 듣고 말을 뚝 멈추었다.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릴리와 제시가 함께 대답했다.
왕실 집사인 스틴 집사가 문을 열었다.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제시 양,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