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루
李录, Li Lu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신임을 받은 투자자로, 히말라야 캐피털 매니지먼트Himalaya Capital Management의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1966년 중국 허베이성 탕산시에서 태어나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경영대학원에서 MBA, 법과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히말라야 캐피털을 설립한 이후 회사의 주요 자금을 관리해왔다.
리루는 2015년 베이징대학교에서 ‘중국의 가치투자 전망’이라는 주제로 권위 있는 연설을 했으며, 2020년 4월에는 존 애덤스John Adams, 존 핸콕John Hancock 등 미국의 건국자들이 창설한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에서 공익과 비즈니스 경력을 인정받아 ‘비즈니스, 기업 및 자선 리더십’ 부문의 회원이 되었다.
그는 2021년 5월, 아시안 아메리칸 파운데이션The Asian American Foundation, TAAF을 공동 창립해 현재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중국·한국·일본 등 아시아에서 이주한 2,300만 명의 미국 내 아시아계인들이 차별·비방·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소속감을 느끼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Copyright © 2020 by Li 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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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현대화 그리고 가치투자와 중국』의 한국어판이 출간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한국 주식 시장에 줄곧 관심이 있었으며 시장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과거 이익의 2~3배에 불과한, 매우 낮은 밸류에이션에 거래되는 종목이 많았다. 하지만 매수 결정은 쉽지 않았다. 한국의 기업이 과거의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재벌 위주의 한국 자본 시장이 존속할 수 있을까?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평가해야 할까? 말하자면, ‘미국 동종 기업과 비슷한 방식으로 평가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방식이 필요할까?’ 하는 문제였다. 이 질문들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실수에는 큰 대가가 따를 수 있다. 나는 투자자로서 30년 동안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우리가 연구하는 모든 시장에서 이런 질문에 반복적으로 직면해왔다.
나는 투자자들이 시장을 ‘우리 사고의 취약성과 사각지대를 드러내도록 설계된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수영하는 방법을 책으로만 배워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은 자신이 아직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위급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깨달음에 이끌려 나는 투자의 본질, 그리고 투자와 현대 경제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이 책에서 그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내가 설명하는 현상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된 자유시장 기업 시스템과 현대 과학기술이 결합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독특한 현상인 복리식 경제 성장compoundeconomicgrowth이 탄생했다. 과거 농업 문명 시대에는 경작할 수 있는 토지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경제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사회의 경제 문제가 새로운 방식으로 체계화되면서 지난 200~300년 동안 경제는 복리식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의 경제 규모는 실질적으로 수백 배에서 수천 배까지 성장했다.
인류 사회는 일찍이 복리식 경제 성장을 경험한 적이 없었으며, 이 시스템은 다른 모든 대안을 능가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전통 사회가 복리식 경제 성장이 가능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대화modernization’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런 과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의 시기에 더욱 가속화됐다.
하지만 현대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과학은 학습할 수 있고, 기술 역시 시간을 들여 노력을 쏟아부으면 습득할 수 있다. 현대화 과정에서 정말로 어려운 것은 현대 경제에서 정부의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경제적 한계를 가진 전통 사회는 한정된 자원의 분배라는 중요한 문제와 씨름해야 했는데, 이 문제에서 정부가 대단히 중요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전통적인 국가에서 정부의 역할을 제한하고 성공적인 사회를 이룬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애덤 스미스AdamSmith는 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인물이다. 그는 대표작 『국부론』에서 개인이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시장 경쟁을 통해 사적인 이익을 추구할 때,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듯 공공의 이익이 더욱 효율적으로 창출된다고 주장했다. 자유시장 경쟁을 통해 수요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고, 공급은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이 담당한다. 스미스는 이런 방식이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가장 유용하고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도 가장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당시로선 직관에 반하는 개념이었다. 나아가 스미스는 경제를 이끌거나 인도하는 것이 정부의 적절한 역할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개인, 귀족, 정부 등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한 법치주의를 통해 경제 시스템을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주요 기능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정부는 그 자체로 사회 전체의 목적과 구별되는 고유한 목적을 가진 실체가 아니라고 봤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25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생각은 여전히 급진적이고 혁명적이다.
1776년은 인류 문명에서 운명적인 해였다. 제임스 와트JamesWatt가 산업혁명의 시발점이 된 증기기관을 발명했고,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해 현대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미국은 그 청사진에 따라 독립을 선언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했으며, 마침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서 현대 문명의 가장 중요한 수호자이자 설계자가 됐다.
영국과 미국이 최초로 현대화를 이룬 국가가 된 것은 어느 정도는 우연이었고, 어느 정도는 의도된 일이었다. 하지만 영미식 자유시장경제가 전 세계에서 지배적인 모델로 부상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수 세기에 걸쳐 복리식 경제 성장을 이룬 결과, 영미식 자유시장경제는 다른 모든 대안을 압도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게 됐다(연간 2~4% 수준의 복리식 성장률만 가정해도 경제 규모는 200~300년 만에 수백 배, 수천 배 커진다).
유럽 대륙과 일본은 두 차례의 파괴적인 세계대전을 비롯해 고통스러운 전환기를 겪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결국 영미권과 유사한 시스템을 채택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천 년 동안 유능한 관료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정부를 구축해왔다.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 사회의 지식 엘리트들은 경제 문제를 포함한 광범위한 부문에서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또한 현대에 들어서도 경제에서 진화된 개념의 정부 역할에 대해 고심해왔다.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중국은 계획경제를 수립함으로써 전통적인 사회에서 한 걸음 나아갔다. 이후 중국은 시장에서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더해, 정부가 주요 자원을 배분하는 ‘보이는 손’이 되어 경제 발전을 유도하는 모델로 전환했다. 그 외 동아시아 국가 역시 산업이 도약하는 초기 단계에 유사한 정책을 채택했다. 갈 길이 분명하고 뒤에서 추격하는 상황일 때는 이런 정부 주도의 경제 모델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국가의 소득 수준이 중간 정도에 도달하고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산업이 나오면서 정부 주도 모델은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정부의 경제적 의사 결정은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만큼 경쟁 환경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
결국 유일하게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의 원천은 소비자의 수요다.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자유시장에서 경쟁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을 통하는 것이다. 이런 자유경제 시스템이 끊임없이 발전하는 기술과 결합할 때 수 세기에 걸쳐 지속 가능한 복리식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시장 규모가 클수록 분업과 자유무역을 통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경제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범세계적이다. 규모의 경제 법칙에 따르면, 자유무역으로 형성된 가장 큰 세계 시장이 결국 유일한 시장이 된다. 즉, 현대 자유시장 시스템에는 세계화globalization가 내재해 있다. 이 세계 시장에서 낙오되는 국가는 결국 경제적인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으며(북한이 그 예다), 이것이 바로 ‘현대화의 철의 법칙’이다.
이런 법칙과 전 세계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경쟁에 따라, ‘안내하는 정부guidinggovernment’ 모델은 자유시장 기업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게 하는 것을 정부의 주요 기능으로 정의하는 ‘서비스 정부servicegovernment’ 모델로 점차 전환될 것이다. 서비스 정부는 경제적 측면에서 그 자체로 고유한 목표를 갖지 않으며, 기본적인 사회 안전망·교육·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인식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가 현재 이런 전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인류 사회가 복리식 경제 성장이라는 현상을 경험한 것은 불과 200~300년에 지나지 않는다. 전례가 없던 복리식 자본소득compoundcapitalreturns의 등장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복리식 경제 성장은 민간 기업의 이익 증가로 이어지고, 그 결과 해당 기업에 투자한 사람들의 수익도 복리로 불어난다. 미국과 같은 주요 선진국은 1800년 이후 실질 국내총생산GrossDomesticProduct, GDP이 2,000배 이상 증가했고, 주가지수는 실질 기준으로 200만 배 이상 상승했다.
가치투자, 즉 펀더멘털에 기반을 둔 장기 투자가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치투자자는 주식을 기업의 일부에 대한 소유권으로 여긴다. 기업의 내재가치는 미래 소유주의 현금 수입을 현재 시점으로 할인한 금액의 합계이며, 주로 시장경제에서의 경쟁적 지위가 해당 기업의 내재가치를 결정한다. 투자 기회를 평가할 때, 투자자는 항상 자신의 능력 범위circleofcompetence 내에 머물러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잘 알고, 미래 결과를 높은 신뢰 수준으로 예측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기업의 주주 문화에 따라 배당, 자사주 매입, 인수합병 등을 통해 주주에게 얼마의 현금을 돌려줄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가치투자자는 이런 모든 요소를 충실히 평가해 기업의 대략적인 가치를 산출하고, 내재가치보다 할인된 가격에 거래될 때만 주식을 매수해서 안전마진marginofsafety을 확보한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현명한 투자는 곧 가치투자다.
현대화의 단계는 나라마다 다르다. 따라서 어떤 나라의 기업인지에 따라 투자 자산이 보호되는 정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충실한 평가, 안전마진 확보를 비롯한 가치투자의 핵심 개념은 신흥 시장에 투자할 때 더욱 중요하다. 신흥 시장에서는 잘못된 투자로 인한 결과가 훨씬 더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주 친화적 관행이 없는 기업에는 밸류에이션에 일정한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며, 예측 가능성이 부족한 국가에는 이른바 컨트리 디스카운트countrydiscount를 적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경영진의 주주 관행과 국가별 자산 보호 정도에 따라 유사한 기업의 가치도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그렇기에 자본의 흐름은 가장 큰 위험조정수익RiskAdjustedReturn, RAR(투자 과정에 포함된 위험을 고려한 수익-옮긴이)을 창출할 수 있는 곳을 향하기 마련이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은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며, 경제의 무한한 복리식 성장을 촉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전 세계적인 경쟁의 본격화는 기업과 국가가 이처럼 효과가 입증된 자유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가치투자, 즉 펀더멘털에 기반을 둔 투자는 투자자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기업과 사회를 지속 가능하고 장기적인 방식으로 지원하는 상호 ‘윈-윈win-win’의 결과를 통해 복리식 경제 성장을 보장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의미 있는 개혁을 통해 주주 문화를 개선해왔다. 몇몇 재벌 그룹은 좀 더 투명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으며, 주주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한 사례도 늘었다. 많은 측면에서 한국은 더욱 현대화됐다. 나는 이런 개혁이 계속되면 한국 주식 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점차 완화되고, 끝내는 해소되리라고 믿는다. 그 과정에서 규모가 크든 작든 모든 국내외 투자자는 풍성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기원한다!
리루
편집자 주
상 · 하편으로 구성돼 있던 원고를 성격에 따라 세 개의 파트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언급되는 부분은 별도의 주석 없이 수정하였음을 밝힙니다.
_ 찰리 멍거
• 찰리 멍거Charlie Munger의 2019년 「데일리 저널」 연례 주주총회 연설에서 발췌했다.
리루는 왜 그렇게 성공했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중국의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낚시를 하는 곳이 남획이 심하고 어부가 너무 많아 경쟁이 치열한 미국 시장이 아니라 중국 시장이라는 점이다. 중국 시장에는 여전히 무지와 무분별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에게 특별한 기회가 생겼다. 낚시의 첫 번째 규칙은 ‘물고기가 있는 곳으로 가라’이며, 두 번째 규칙은 ‘첫 번째 규칙을 잊지 말라’다. 리루는 마침맞게도 물고기가 많은 곳으로 낚시를 갔다. 그와 달리 우리는 명태를 잡기 위해 이미 남획이 심한 바다로 가려고 노력하는 명태 어부들인 셈이다. 경쟁이 너무 심하면 열심히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Q
약력을 보면 리루는 아웃사이더에 가까운데, 중국 투자자 중에서 그가 돋보이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투자책임자인 토드 콤스Todd Combs나 테드 웨슬러Tedd Weschler와 그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인가? 작년에 당신과 리루가 중국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수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멍거
나는 리루가 요청해서 인터뷰에 응했다. 때때로 나는 그런 일을 하며, 그 점에서 약간 ‘바보’라고 할 수 있다(서양 세계의 저명인사들은 이 시기에 중국 관영 매체와의 접촉을 꺼렸고, 중국 미디어의 인터뷰에 응해준 서양의 명성 있는 자본가는 드물었다. 멍거는 리루가 부탁해서 인터뷰에 응한 것이며, 가끔 이렇게 신중하지 못한 일을 저지른다고 덧붙였다). 인터뷰에서 나는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하고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내 대답은 리루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중국의 워런 버핏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다. 물론 나는 그를 비판하기를 좋아하지만, 이건 우리 사이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나는 현재 아흔다섯 살인데, 외부인에게 멍거 가문의 재산을 맡긴 것은 평생 처음이다. 그가 누구냐고? 두말할 것도 없이 리루다. 그는 이미 타점을 올렸다. 이는 극히 드물고 대단한 일이다. 리루가 세운 기록을 보고도 선수를 교체할 생각이 들까?
우리에게 큰 변화를 일으킬 한 가지를 발견하면, 그 밖의 소소한 것들은 더 이상 살펴볼 필요가 없다. 이것이 결정을 내리는 좋은 방법이고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리루보다 더 나은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상황이 매우 단순해진다. 나는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조용히 앉아 기다리는 시간을 갖는 것, 이 비활동적으로 보이는 접근 방식에는 지혜가 가득하다. 반면, 대부분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활동을 한다.
Q
투자나 거래를 결정하는 것이 비교적 단순한 과정이라고 답했는데, 그렇다면 펀드매니저나 회사 경영진이 남다른 인격과 성실성을 갖추고 있는지 어떻게 판단하는가? 그런 판단을 하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며, 그들에게서 어떤 특성을 찾고자 하는가?
멍거
이제 리루를 찾았으니 다른 사람을 찾을 일은 없다. 그러니 이 질문은 나에게 할 것이 아닌 것 같다. 리루보다 나은 사람을 찾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서 나에게는 아주 쉬운 결정이었다.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는 건 어떤가? 당신에겐 자신의 리루가 필요할 텐데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_ 창진常劲
나는 30년 전 베이징에서 리루를 만났다. 나는 베이징대학교 3학년이었고 리루는 난징대학교 4학년이었다. 약 1년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는 컬럼비아대학교 학부 과정에 합격해 주목받고 있었고 미국과 중국 언론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스타였다. 나는 미국에 막 도착해 UC 버클리 근처의 가난한 동네에 살면서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이었고 미래가 불확실했다. 그러던 중 한 지역 행사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연사로 참석한 그를 다시 만났고, 그날 이후 우리는 친구가 됐다.
나는 1994년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의 MBA 프로그램에 합격했고, 우연하게도 리루와 동급생이 되어 컬럼비아에서 2년을 함께 보내고 함께 졸업했다. 그는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 경영대학원에서 MBA, 법학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 등을 받았으며 컬럼비아대학교 역사상 최초로 세 개의 학위를 동시에 취득한 학생이 됐다.
졸업 후 그는 투자자가 됐으며, 1년 후 히말라야 캐피털 매니지먼트Himalaya Capital Management LLC를 설립하여 자신의 투자 펀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보스턴의 경영 컨설팅 회사에 입사했다가 1999년에 인터넷 벤처를 창업했고, 사업에 실패한 후 신생 온라인 미디어 회사에 취직했다. 그즈음 그가 나를 파트너로 초빙하여 지난 13년간 함께 일해왔다. 그때부터 우리의 직업 경로는 많은 접점을 갖게 됐다. 그는 나의 첫 번째 에인절 투자자 중 한 명이자 나중에 내가 합류한 스타트업의 주요 주주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든 이후 내 길은 그와 밀접하게 연결됐으며, 그는 항상 나를 도와줬다.
나는 종종 그가 내 인생의 ‘삼로三老(노우老友·노반老板·노사老师를 삼로라고 하며 오랜 친구·상사·스승이라는 뜻이다-옮긴이)’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농담으로 여긴다. 물론 ‘늙을 로’는 내가 농을 섞어서 한 말이다. 사실 그는 젊은데도 성숙한 사람으로, 내가 ‘삼로’라고 한 건 진지한 마음에서 우러난 표현이다. 리루가 내 스승이라고 말하는 건 과장이 아니다. 그는 독서를 좋아하고 지식이 풍부하다. 그래서 생각이 매우 깊고 핀셋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말에 허점이 있으면 대번에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그는 또한 매우 직선적이고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친한 친구든 권위 있는 전문가든 상관없이 항상 핵심을 바로 때리기 때문에 종종 사람들의 반감을 사기도 한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이런 점이 나를 불편하게 했고 그가 너무 ‘잘난 척하며’, 지나치게 날카롭고 가차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가 원래 그런 성격의 사람이고, 편견이 없으며, 잘못된 것을 봤을 때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점차 이해하게 됐다. 그와 함께 있을 때 내가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설령 말다툼이 있더라도 논쟁은 끝났고, 그는 결코 그 일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항상 더 넓게 보며, 그의 관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한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특히 그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고 초반에는 내가 그쪽 비즈니스에 서툴렀기 때문에 아이디어나 업무 수행 방식에서 수시로 지적을 받았다. 처음에는 저항했지만 이내 반성하고 받아들이게 됐고, 점점 더 열린 마음으로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의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이 배움에 대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투자를 개선하고 사고의 진실을 추구하게 하는 가치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는 가치투자의 진정한 의미, 배움과 연구의 진정한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의미도 가르쳐줬다.
수년 동안 나를 인내해주고 배운 것을 아낌없이 전해준 리루에게 감사드린다. 내 경력이나 생각 중 평균 수준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의 가르침 덕분이므로 그를 스승님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리루가 나에게 그의 책에 추천사를 써달라고 부탁했을 때 나는 내심 걱정이 됐다(추천사는 저자보다 식견이 높거나 명망 있는 사람이 쓰는 게 보통이므로 리루를 스승으로 생각하는 자신으로서는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의미-옮긴이).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나에게 큰 영광이다. 직업적 측면에서든 지적 측면에서든 그는 우리 세대에서 보기 드문 인물이며, 특히 사업과 사상 모두에서 그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내가 아는 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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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공통된 경험 덕에 리루와 나는 많은 관심사와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중국과 관련된 문제다. 특히 중국이 과거에 왜 낙후됐고 어떻게 현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대표적이다. 나는 이 질문에 수십 년 동안 매달렸지만, 완전한 이론적 체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럴듯한 답도 찾지 못했다.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이, 나 역시 생각을 하다가 막히면 거기서 멈췄을 뿐 더 깊이 파고들거나 고민을 계속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 분야에 대한 리루의 생각은 나보다 훨씬 깊고, 기꺼이 나와 공유해줘서 큰 도움이 됐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그와 나눈 대화와 토론을 돌이켜보면, 2008년과 2009년에 이 문제에 대한 이해가 질적으로 도약한 것 같다. 이 두 해는 그가 경력과 인생에서 큰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했던 시기와 맞물려 있는데, 우리는 LA에 있는 도시 패서디나 시청의 정원을 산책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당연히 그가 주로 말하고 나는 듣는 쪽이었는데 인류사 이야기부터 현대화, 문화, 경제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대한 화제가 가장 많았다. 그는 엄청난 독서광으로 다방면에 걸쳐 지식이 풍부했으며, 내가 들어본 적 없는 대량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2009년 4월, 리루는 『가난한 찰리의 연감Poor Charlie’s Almanack』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책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각국에서 가치투자의 바이블로 꼽히는 고전으로, 찰리 멍거의 사상과 인생의 핵심 연설이 담겨 있으며 투자·학습·사고·인생을 두루 다룬다. 리루의 아주 가까운 친구이자 유명 작가인 리우리우六六가 이 아이디어에 반색하면서 출판인 스홍쥔施宏俊을 소개해줬다.
스홍쥔은 중국 출판 업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며 훌륭한 작품을 찾아내는 안목이 뛰어나다. 우리는 7월에 홍콩에서 만나 책의 번역과 출판에 대해 논의했다. 멍거는 백과사전 같은 인물이라 책에서 다루지 않은 분야가 없는 데다 학구적인 리우리우가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기 때문에 리루는 금융·비즈니스·경제·과학·기술·인문학·역사·철학·동서양 등 『가난한 찰리의 연감』과 관련한 많은 얘기를 했다. 고전을 자유로이 인용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에 모두 답했다. 특히 중국 역사에 대한 그의 지식은 그 자체로 일가를 이룰 만큼 심오했다!
2009년 7월 중순부터 2010년 3월 말까지 중국어판 『가난한 찰리의 연감』 번역과 교정 및 수정 작업에 집중했다. 스홍쥔이 리지홍李继宏을 찾아 번역을 맡겼고, 그의 번역 원고가 나오면 내가 1차 교정을 하고, 리우리우가 2차 교정과 텍스트 수정을 했다. 그런 다음 리루가 최종 점검을 한 후 출판사에 보내 편집하게 함으로써 번역된 텍스트가 원작과 일치하고 원작자의 스타일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게 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멍거의 관심사는 투자·금융·비즈니스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등 광범위한 전문 영역을 포괄한다. 이 책은 대량의 전문 용어, 역사적 인물의 고사와 어록, 재미있는 은유와 멍거의 독특한 언어 스타일, 특히 역발상과 위트로 가득 차 있다. 동서양의 사유 방식에는 소소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멍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번역에 많은 착오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리지홍과 리우리우, 내가 사전 작업을 했음에도 리루는 문장과 표현을 고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사실 리루의 손길이 더해지지 않았다면 『가난한 찰리의 연감』 중국어 번역본은 지금처럼 좋지 않았을 것이다. 리루는 『가난한 찰리의 연감』 중국어판에 ‘책 속에 황금의 집이 있다’라는 제목의 추천사를 썼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는데, 나는 그의 아이디어가 빅뱅을 시작한 계기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 5월 5일, 리루는 『가난한 찰리의 연감』 중국어판 출판을 축하하고자 서던 캘리포니아 전역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파티가 끝난 후 몇몇 친구가 남았을 때 리루가 인류 진화와 중국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문화의 형성을 진화의 원리로 설명하는 그의 관점을 처음 접했다. 특히 당시 서던 캘리포니아대학교 건축학부 학장이었던 마칭윈马清运과 리루가 건축 디자인에 관해 토론한 내용이 인상 깊었는데, 리루는 건축 디자인에서 나무와 잔디를 사용하는 것을 지리가 인류 진화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이후 그와 나는 거의 2년 동안 패서디나 시청의 정원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투자를 비롯해 중국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진화론적 관점을 접목했다. 그는 네 권의 책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즉 UCLA 교수인 재레드 M. 다이아몬드Jared M. Diamond의 『총 균 쇠: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꾼 힘』, 스탠퍼드대학교 교수인 이언 모리스Ian Morris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지난 200년 동안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 영국 과학 작가 매트 리들리Matt Ridley의 『이성적 낙관주의자: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그리고 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O. 윌슨Edward O. Wilson의 『지구의 정복자: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등이다. 그는 중국 문제를 연구하면서 몇 가지 중대한 발견을 했다고 말했는데, 특히 왜 중국에서는 일찍이 현대화가 일어나지 않았는가와 이런 문제에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이미 독특하고 완벽한 이론 체계를 수립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심쩍었지만 나도 점점 동의하게 됐고, 마침내 확신을 갖게 됐다. 나는 리루에게 그 아이디어를 책으로 써서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2012년 8월 어느 날, 녹음기를 들고 그를 찾아가 인류 문명과 근대화의 역사에 대한 이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 거의 8개월 동안 리루의 구술을 나와 히말라야의 동료들이 텍스트로 옮겼고, 그다음 리루가 직접 수정과 교정을 했다. 2013년 4월 초에 「리루가 현대화를 말하다」의 초판을 완성했는데, 때마침 리루의 47세 생일이었다.
5만 단어 분량의 긴 글을 친구들에게 돌렸는데, 모두의 반응이 뜨거웠다. 중국에 있는 친구들 중 일부는 이 에세이를 책자로 제본하여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글을 읽은 후슈닷컴(중국의 인터넷 매체-옮긴이)의 설립자 리민李岷이 리루에게 연락해 후슈닷컴에 게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기사는 리루가 다시 수정하고 편집하여 2014년 5월에 「리루가 현대화를 말하다」라는 시리즈로 후슈닷컴에 공식적으로 게재됐다. 매주 1편씩 총 16편으로 나뉘어 연재됐으며, 리루의 웨이보 계정에도 올렸다. 이 시리즈의 기사들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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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번째 파트인 ‘문명, 현대화와 중국’에는 「리루가 현대화를 말하다」 시리즈의 에세이 16편이 수록돼 있다. 이 책은 역사학의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과 연구 결과에 30년 동안 축적된 리루의 개인적 성찰과 해석, 논증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 특히 현대화의 탄생과 발전에 대해 독창적인 관점과 이론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미래, 중국 현대화가 서양에 미치는 영향, 인류의 공동 운명에 대한 그의 탐구 결과와 예측을 풀어놓는다.
사유와 글쓰기 과정에서 그는 여러 가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이론을 제시했는데, 나는 그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그와 깊이 있게 소통하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특권을 누렸고 그의 사고 체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나는 또한 웨이보와 위챗을 통해 「리루가 현대화를 말하다」 시리즈의 글에 대한 느낌과 경험을 공유했다. 리루는 농축되고 간결한 문장과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사상 프레임워크를 도입했다. 그 기초 위에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이후 수만 년에 걸쳐 진행된 인류 문명사와 중국 사회 발전의 수많은 이슈를 논의했기에 일부 독자는 따라가기 어려워했다. 글에 인용되는 방대한 사료와 지식이 나의 지식 범위를 한참 벗어났기에 나 역시 힘겹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관련 지식을 얻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독자들이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에 대한 리루의 설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그가 과거 인터넷에 게재한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리루와 직접 대화하면서 얻은 새로운 통찰과 경험을 추가했다. 나는 인류 문명과 중국 역사에 대한 그의 새로운 이해는 세계와 중국의 과거 및 미래에 대해 1960년대 이후에 출생한 세대의 가장 심오한 지적 탐구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대화의 본질과 철칙에 대한 리루의 지식과 이해는 사상의 획기적인 도약이다! 현대화의 본질과 철칙을 이해함으로써 세계화의 추세가 멈출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중국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진정한 세계 강국으로 발전해나가리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역사 현상을 연구할 때 리루의 접근 방식은 ‘거대사’ 학자들의 거시 분석적 접근 방식이 아니다. 리루는 이언 모리스 교수가 만든 정량적 접근 방식인 사회발전지수•를 채택하여 역사·고고학·지리·기후·천문학·생물학·유전학·경제학·사회학 등 다양한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의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역사 현상의 본질과 발전 규칙을 검토했다. 그럼으로써 인류 문명 발전 과정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합리적이고 믿을 만한 해석을 바탕으로 미래에 출현 가능한 사건들에 대한 합리적이고 신뢰할 만한 예측을 끌어냈다. 모리스의 사회발전지수는 인류의 에너지 섭취량, 사회 조직, 정보기술, 전쟁 동원 등 네 가지 영역의 능력을 구체적인 파라미터를 종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파라미터는 과학적 방법으로 인류 역사의 다양한 단계에서 추출하여 도표로 만들 수 있으며 인류 문명의 궤적, 특히 동서 양대 문명의 발전 궤적을 눈으로 보고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 사회발전지수의 정의와 계산 방법, 추출된 데이터에 관심이 있다면 이언 모리스의 저서 『문명화의 척도The Measure of Civilization』를 참조하라.
리루는 인간의 진화에는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라는 이중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은 생물학적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인간의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이중 결과라는 점에서 리루와 견해 차이가 있다. 문화적 진화는 한 세대의 지식이 글, 신앙, 예술 등의 형식으로 축적되며 진행된다. 그 승계와 발전의 속도가 생물학적 유전과는 비할 수 없이 빠르게 인간과 다른 종 간의 거리를 벌렸기에 이 책에서는 인간과 동물 간의 거리를 ‘문명’이라고 정의한다.
리루는 모리스의 사회발전지수를 바탕으로 인류 문명을 ‘1.0 수렵·채집 문명’, ‘2.0 농업·목축업 문명’, ‘3.0 과학기술 문명’의 세 단계로 나눌 것을 제안한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회 발전 패턴이나 제도의 진화에 따른 전통적인 구분과는 다르다. 문화 및 사회 제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오로지 모리스의 지수 곡선 증가 단계로 구분하여 성장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모리스의 사회발전지수에 따르면 인류 문명은 약 6만 년 전 크게 도약하여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수만 년 동안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인류의 조상들은 다른 동물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지혜, 상상력, 창조력, 진취적 마인드를 보였다. 생활 방식 자체는 아프리카에서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여전히 채집과 수렵에 의존하는 원시 상태였지만,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여 전 세계를 덮었고 멸종 가능성을 대폭 줄였으며 다음 문명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리루에 따르면 기원전 9600년경에 농업 문명이 탄생한 것은 지구 온난화가 인류에게 준 선물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리루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연구를 받아들여 농업 문명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서양에서는 서남아시아의 초승달 구릉지대Hilly Flanks(메소포타미아와 요르단 사이의 반월형 구릉지대-옮긴이)이고, 중국에서는 2,000년 후 황허와 양쯔강 유역에서 나타나는 등 이른바 행운의 위도 지역이었다고 생각한다. 리루에 따르면 동서양의 농업 문명은 세 번의 돌파 사건을 겪으며 크게 도약했다. 즉 1776년 영국에서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하고, 그 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제임스 와트가 버밍엄에서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3.0 단계로 도약했다. 리루는 3.0 문명을 일반적인 용어인 산업 문명이라고 부르지 않고 과학기술 문명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남다른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대화의 개념에 대한 리루의 깊은 이해를 반영하는 심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리루는 1.0에서 3.0으로 이어지는 인류 문명의 진화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파트 1의 제3강부터 제10강까지 총 8강을 할애하여 인류 문명의 기원부터 19세기 현대화의 확산, 20세기 현대화에 이르는 투쟁까지의 역사를 회고한다. 그리고 인류의 조상인 지능을 지닌 유인원의 출현, 인간과 동물 간 생리와 지능상의 근본적 차이, 농업 문명의 한계, 과학혁명이 어째서 지금의 유럽에서 나타났는지, 현대화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왜 중국에서는 일찍이 현대화가 일어나지 않았는지 등을 망라한다.
제11강 ‘현대화의 본질과 철칙’은 현대화에 관한 리루의 16강 시리즈 중 매우 심오하고 독창적인 에세이 중 하나다. ‘현대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진 개념이었으며 수많은 학자와 철학자가 정의를 내리기 위해 생각하고 연구하고 토론해왔다. 이제 현대화는 전통적인 농업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개념과 관련하여 여러 질문이 제기됐다. 현대화의 핵심 동력은 무엇인가? 단방향인가, 아니면 쌍방향인가? 유일한 과정인가, 아니면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가? 능동적인가, 아니면 수동적인가? 건설적인가, 아니면 파괴적인가? 이처럼 지금까지도 논란이 이어지는 여러 가지 질문이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서구 사회에서 친환경 사상이 확산되면서 반현대화 경향, 전통으로의 회귀, 원시로의 회귀, 현대 과학기술이 없는 농업 시대로의 회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현대화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산업화 수준에 머물러 있고 현대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2강 ‘문명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해왔을까?’에서 리루는 이언 모리스의 사회발전지수 연구를 통해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을 살펴본다. 모리스의 동서양 사회발전지수 도표를 보면 1800년 이후 서양은 급속한 발전기로 접어들었고, 20세기 이후부터는 동양이 도약하기 시작하면서 동서양의 사회가 모두 로켓이 날아오르듯 급성장하며 복리식 성장이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시기의 인류 문명을 3.0 과학기술 문명이라고 부른다.
리루가 1800년 이후의 인류 문명 3.0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업 문명이 아닌 과학기술 문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제8강 ‘현대화의 탄생’에서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출판, 미국 「독립선언문」 발표,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 등 같은 해에 일어난 세 가지 개별적 사건이 인류 문명사의 분수령이 됐다는 예리한 통찰을 제시한다. 이후 인류 사회의 현대화 과정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섰고,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 세 가지 사건은 자유시장경제, 입헌민주주의의 권한 제한을 받는 정부, 현대 과학기술을 대표한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선진화된 국가들은 모두 이 세 가지 관건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는 현대 기술과 자유시장의 결합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도적 혁신이라고 했다. 인간은 본질상 감정적으로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고, 이성적으로는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에 인류 문명의 진보가 결국 지구촌 곳곳으로 확산될 수 있었고,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사회는 오랫동안 번영을 누려왔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자유시장경제는 모든 사람에게 진정으로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여,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재능을 실현하고 그에 합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한다. 그는 이 시스템을 ‘경제적 능력주의’라고 불렀다. 이런 시스템에서 현대 과학기술과 자유시장경제의 결합은 과학과 기술을 새로운 생산력으로 빠르게 전환하여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가능한 한 가장 낮은 비용으로 신속하게 생산과 연결해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소비자가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빠르게 전환하여 자유시장의 메커니즘을 통해 부를 창출할 수 있게 한다. 한편 입헌민주주의하에 제한된 권력을 갖춘 정부는 개별 시민의 권리·자유·사유 재산을 보호하고, 과학과 기술 혁신에 필요한 자유를 제공하며, 자유시장경제가 규칙에 따라 작동하도록 기본 보장을 제공하여 기회균등의 원칙에 따라 공정한 경쟁의 자유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사회적 부를 분배할 수 있게 한다. 리루가 보기에 현대 과학기술과 자유시장경제의 완전한 결합이야말로 3.0 문명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본질적이며 가장 성공적인 사회 형태다.
이런 기초 위에 리루는 창의적인 견해를 제시했는데 바로 현대화의 본질은 ‘현대 과학기술과 자유시장경제의 결합으로 인류 경제를 지속 가능한 복리식 성장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에 진입한 사회와 국가가 바로 현대화 사회와 국가다.
현대 과학기술과 자유시장경제의 결합이 인류 경제에 지속 가능한 복리식 성장을 가져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리루는 고전경제학의 대가인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의 비교우위 이론을 적용해 이를 설명한다. 서로 다른 능력을 보유한 두 사람이 각자의 장점 분야에 집중하여 창출한 가치를 교환하면, 두 사람이 두 가지 일을 함께해서 창출한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는 ‘1+1 > 2’라는 수학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더 많은 사람의 능력이 교환될수록 시장이 커지고 더 많은 가치가 창출된다는 뜻이다. 리루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자유시장 자체가 규모의 경제임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현대 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가 이미 『국부론』에서 분업과 자유로운 교환의 비밀을 체계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자유시장경제가 더 많은 사회적 부를 창출한다’라는 결론은 오늘날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데이비드 리카도는 자신의 저서 『정치경제학 및 조세의 원리On the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and Taxation』에서 애덤 스미스의 비교우위 이론을 바탕으로 국가 간 자유무역이 왜 더 많은 사회적 부를 창출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1+1 > 2’는 현대 경제의 장기적인 복리식 성장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교환 시장에 참여하고 분업이 극대화되면 사회적 부의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리루는 인간 지식의 축적이 사회적 분업과 교환의 점진적 성장에 미치는 증폭 효과에 주목하여 이 문제를 돌파한다. 그는 ‘1+1 > 4’라는 수학 공식을 사용하여 같은 점을 설명한다.
아이디어가 교환될 때 양 당사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유지하고 상대방의 아이디어를 얻을 뿐만 아니라 교환 과정에서 충돌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기도 한다. 인간이 지식을 축적하는 바로 이런 특성이 현대 과학기술의 끊임없는 발전과 혁신으로 이어졌으며, 이것이 자유시장과 결합하여 효율성과 부를 증가시키고 규모의 효과를 높여 인간의 무한한 욕구와 함께 지속적인 복리식 성장의 현대 경제를 형성한다.
영국의 과학 작가 매트 리들리는 『이성적 낙관주의자』에서 아이디어가 서로 섹스를 한다는 유명한 비유를 통해 아이디어의 교환이 혁신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리루는 리들리의 아이디어를 이론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1+1 > 4’ 방정식을 이용해 인간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이유를 간단한 용어로 표현하고, 현대 과학기술과 자유시장경제가 결합한 상황에서 현대 경제가 지속적인 기하급수적 성장의 특성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리루의 가장 창의적인 면은 자유시장경제 자체의 규모의 효과와 이 효과를 증폭시키는 현대 과학기술의 효과에 대한 인식과 3.0 문명의 철칙을 추론한 것이다. 그는 자유로운 경쟁은 시장이 스스로 진화하고 발전하고 개선하기 위한 메커니즘이며, 이 과정은 현대 과학기술의 개입으로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가장 큰 시장이 아닌 모든 개인·사회·기업·국가는 이런 방식으로 경쟁하는 시장들 사이에서 뒤처지게 되고, 결국은 가장 큰 시장이 합류해야만 하는 유일한 시장이 된다. 그는 세계화는 3.0 문명의 철칙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한다. 세계화로 상품, 서비스, 기술, 금융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더욱 통합되고 확장되며 심화됐다. 이 시장을 떠나는 데 드는 비용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저명한 저널리스트 토머스 L.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은 『세계는 평평하다: 21세기 간략사The World Is Flat: A Brief History of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세계화의 급속한 확대를 설명하고 세계화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다만, 해답을 내놓기보다는 문제 제기가 더 많았다. 물론 저자의 의도가 세계화의 발생 원인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리루의 ‘3.0 문명의 철칙’은 내가 이 책을 읽은 후 오랫동안 품어온 지적 문제를 해결해줬고, 세계화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했다.
제12강부터 제16강까지 마지막 다섯 개 강에서 리루는 인류 문명과 현대화에 대한 이론적 체계와 중국 문화와 동서양의 차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앞으로 수십 년간 중국의 경제·문화·정치의 발전을 예측한다. 나아가 중국 현대화의 과정과 전망, 3.0 문명 시대의 중국과 서양의 관계, 인류의 미래 공동 운명에 대해 논한다.
중국 문화에 대한 논의에서 그는 중국 전통문화의 오륜五倫에 하나를 더 추가하여 낯선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정직과 성실’을 여섯 번째 도덕규범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중·미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지리적 위치가 동서양 문명의 발전에서 문화적 차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지리적 위치의 특수성 덕분에 중국에서 대제국이 출현하고 ‘정치적 능력주의’가 최초로 나타날 수 있었다. 서양은 또한 지리적 위치 덕분에 ‘경제적 능력주의’를 최초로 도입하고 현대 과학기술 문명을 가장 먼저 구현했다. 서양과 중국의 지리적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문화적·문명적 전통이 생겨났을 뿐만 아니라 서로를 해석할 때의 편견도 자연스레 형성됐다. 이런 점을 이해하는 것은 중국과 서양의 현대화 과정 간 유사점과 차이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나도 오랫동안 중국이 어떻게 현대화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지만, 리루가 요약한 ‘정치적 능력’과 ‘경제적 능력’을 통해 중국과 서양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유사점과 차이점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리루는 중국이 지난 100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시장경제와 과학기술의 결합을 진정으로 달성하고 국내외에서 더 평화로운 환경이 조성된 후에야 중국에서 현대화가 대규모로 시작됐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이론적 틀에 따르면, 동일한 조건일 때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중국에서 현대화가 더욱 가속화되리라고 예측했다. 2.0 문명과 달리 3.0 문명에서는 세계 지배 질서의 주요 도구가 토지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 지배이며, 3.0 문명의 철칙 때문에 결국 가장 큰 시장이 유일한 시장이 될 것이다. 이 시대의 특성을 인식하는 것은 현재 세계 질서에서 중국의 선택에 특히 중요하다. 나는 현대화의 본질에 대한 리루의 이해와 문명 3.0의 철학적 법칙에 대한 논의가 나와 같은 일반 독자들에게 현대화에 대한 신화를 이론적으로 불식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문제를 포함하여 인류 문명의 발전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게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되리라고 믿는다. 리루의 3.0 문명 철칙이 일단 광범위한 논증을 거쳐 받아들여지면 현대 문명에 대한 사람들의 새로운 이해와 인류 문명의 미래 진로에 대한 비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파트 2 ‘가치투자와 중국’에는 가치투자에 관한 리루의 강연과 인터뷰를 실었다. 특히 처음 세 편은 가치투자가 내포하는 의미와 중국에서 가치투자를 실천하는 데 대한 그의 사고와 논증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가치투자의 기본 사상, 가치투자와 현대 경제의 관계뿐 아니라 중국 내 가치투자의 실행 가능성 등에 대한 리루의 사고, 이해, 인식, 그리고 그의 투자 인생을 바탕으로 한 경험과 깨달음이 담겨 있다.
가치투자라는 사상의 건물에 리루는 가치투자에 대한 이해와 인지, 실천 경험으로 기여했다. 가치투자의 합리성에 대한 그의 주장은 가치투자 이론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했으며, 인류 문명과 현대화 과정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이론을 중국의 문화적·역사적 특성과 결합하여 가치투자 실천에 적용함으로써 이 장엄한 사상의 건축물에 유일무이한 풍경을 만들었다.
파트 3 ‘읽고, 생각하고, 깨닫다’에는 그동안 리루가 쓴 서평과 깨달음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인간의 본성과 금융위기, 금융감독, 능력 범위, 지적 정직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멍거의 사상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미래의 과학기술, 시대, 그리고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나눈다.
멍거와 마찬가지로 리루도 인간의 본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는 여러 번 죽음의 위기에 맞닥뜨렸으며, 이런 경험을 통해 인간 본성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젊을 때부터 홀로 유난한 행동을 보이고 오만한 유전자를 가졌던 그는 일체의 현실 상황, 편견,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아 종종 비난을 받았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본성과 행동에 큰 호기심을 갖게 됐으며,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파고들었다. 그는 가장 평범한 것에도 질문을 던지고 더 깊은 이유를 찾아내곤 했는데, 나는 늘 그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예를 들어 그는 시장의 존재가 인간 본성에 대한 시험이자 처벌이라고 주장했는데, 나로선 결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치투자는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는 틈새 영역이다. 리루는 가치투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갖추고 있으며, 실전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몇 안 되는 투자자 중 한 명이다.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이어서 대중 매체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사업상 업적에 사람들은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20년이 넘는 투자 성과와 개인 펀드 운용 규모를 고려할 때 그는 세계 최고의 투자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투자 성공은 찰리 멍거, 워런 버핏,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많은 독서, 학습, 사유 그리고 그 자신의 수양과 인품으로 빚어졌다.
나는 운이 좋게도 리루에게 다양한 가치투자 이론과 아이디어를 배웠고, 분석 과정에서 그의 지도와 연마를 받았으며, 일을 할 때 그의 신뢰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덕에 가치투자 문외한에서 전문가로 성장했고, 심지어 최고의 대학 연단에 서서 학생들로부터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만족감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내가 리루에게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지식과 기술이 아니라 그의 가치관과 인생에 대한 태도, 그리고 사유 방식이다. 나는 수탁자의 신의성실 의무fiduciary duty에 대해 리루보다 더 진지하고 엄격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수탁자의 의무는 우리 투자 사업의 생명선이자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 마지노선이며 어떤 구실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사명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출발점이 바로 이것이며, 히말라야 캐피털의 핵심 가치관과 문화의 초석이다.
리루는 또한 지적 정직함이라는 가치를 중시했는데, 자주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치열하게 실천했다. 되는대로 배우고 사유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일부여서 우리는 자신이 무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길 좋아하고,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는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아는 척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잘못된 것은 없는지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분석 작업에서 한 걸음 더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이다. 리루의 지적 정직함에 대한 요구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매우 가혹해서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고, 심지어 이에 대해 본능적으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전 직업상의 경험과 사유 습관상의 결함으로 아는 척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매번 그에게 통렬한 지적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가 일부러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의 단점과 맹점을 더 객관적이고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됐다. 지적 정직함을 염두에 두면서 그의 도움하에 점차 좋은 사유 습관을 쌓아갔고, 학습·업무·생활에서 이 개념의 중요성을 더 깊이 인식하게 됐다.
투자 업계에 리루만 한 사고력과 통찰력을 갖춘 사람은 많지 않다지만,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왜 그가 독보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으며, 인간성에 대한 시장의 잔인한 시험에서 몇 번이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나는 궁금해하곤 했다. 후에 나는 점차 그것이 ‘기술’과 ‘도道’의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 사람은 기술을 배운다. 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봉황의 깃털이나 기린의 뿔처럼 희귀하다. 리루는 도를 배운 사람에 해당하고, 그래서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격동하는 자본 시장에서는 고도로 숙련된 기술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당신을 신뢰하고 지지하는 자산 보유자, 즉 위탁자 그룹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장기간 당신을 믿는 것은 단지 당신의 실적이 좋고 접근 방식에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전문 분야의 신용에 문제가 없고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자신의 이익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리루의 경력 초창기에 그에게 자금을 위탁했던 이들 대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그에게 투자를 일임하고 있으며, 지난 21년 동안 투자금을 한 푼도 회수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아주 드물며 버핏과 멍거가 극소수 예에 속한다. 이 정도의 무한한 신뢰를 멍거는 ‘응당한 신뢰의 그물망a seamless web of deserved trust’이라고 불렀다.
무언가를 단기간 고수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20년 이상 고수한다는 건 일반인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 리루는 버핏과 멍거가 그랬던 것처럼 가치투자를 직업상 요구와 자신의 가치관 및 세계관, 그리고 추구하는 이상과 완전히 일치하도록 결합하여 ‘도’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를 달성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히말라야 캐피털에 입사했을 때 리루가 여러 권의 책을 추천해줬는데, 그중 하나가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의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이었고 그다음은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의 『벤저민 프랭클린 인생의 발견』이었다. 나는 『가난한 찰리의 연감』을 읽고 나서야 찰리 멍거가 벤저민 프랭클린의 삶을 모델로 삼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랭클린은 참된 지식을 추구하며 지혜와 창의적인 사상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던 백과사전 같은 인물로, 미래 세대를 위해 등불을 밝혔다. 프랭클린과 멍거처럼 리루도 참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평생의 취미이자 직업으로 삼았다. 그의 글, 연설, 통찰은 나를 흥분시키고 영감을 주는 사상으로 가득하다. 당신도 이 책을 읽으면 『가난한 찰리의 연감』 못지않은 인생의 지혜를 얻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2019년 4월
미국 시애틀에서
_ 리우리우
리루는 내 인생의 문을 열어준 스승이다. 리루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나에게 공부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고 중요한 시험마다 낙방했다. 하늘이 리루를 나의 스승으로 보내주기 전까지는 ‘지식’을 얻는 것에 무슨 즐거움이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우선 그는 나를 칭찬하고 내 자존심이 장미꽃처럼 활짝 피어나게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내가 금세기 최고의 여류 작가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즈음 나는 「왕귀와 안나王贵与安娜」라는 온라인 소설 한 편만 썼을 뿐이었다. 나는 그가 인터넷에서 흔히 접하는 빈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그가 가볍게 말한 것이 아니었고 그가 말한 모든 것이 사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루는 최고의 스승이다. 그는 세상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우주가 얼마나 광활한지, 좋은 지식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를 내게 알려줬다. 그리고 배움은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식 자체를 위한 것이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임을 보여줬다. 그의 지도와 격려 덕분에 스물다섯 살 이후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많은 고전을 읽었고, 자격증이나 승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좋아하고 호기심을 느껴서 두 개의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스승으로서 리루의 좋은 점은 하늘부터 땅까지, 과거부터 현재까지, 중국부터 외국까지 언제든 질문할 수 있어서 바이두(중국의 검색 엔진-옮긴이)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간에 광고창이 뜨지도 않는다. 그는 화려한 눈속임 따위는 한눈에 꿰뚫어 봤고, 순수 이과 이론도 흘깃 보고는 명쾌하게 이해했다. 심지어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계약서도 흘깃 보고는 “사기야!”라고 알려줬다. 나는 그가 가진 이성의 예리함에 매료됐고, 나아가 그라는 사람에게 매료됐다.
그는 만나자마자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천 리 밖에서부터 사람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서 있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실력이 있는 사람은 많은 인연을 맺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그는 기본적으로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지만, 그가 일단 입을 열어 말을 하기로 마음먹으면 기세 좋게 떠들어대던 사이비들은 꼬리를 내리고 물러나야 했다. 그에게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체면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실이기 때문이다. 진짜 금은 불 구덩이에서 단련되는 것을 겁내지 않는 법이다.
그가 20년 전에 나에게 들려준 예언은 대부분 성취됐다. 그가 지금 펴내는 대부분의 책은 앞으로 20년은 지나야 대다수 사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해할 필요도 없다. 맹종하니까. 나의 또 다른 스승인 뤼스하오吕世浩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학력? 직업? 미래 예측? 모두 아니다. 바로 맞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리루와 사귀는 것은 쉽지 않다. 리루의 스승인 찰리 멍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좋은 아내를 만나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이 훌륭해져야 합니다. 좋은 아가씨는 바보가 아니니니까요. 그 아가씨가 무엇 때문에 당신을 선택하겠습니까?” 그래서 리루의 제자이자 친구가 되기 위해 나는 때때로 자신을 돌아보고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내면서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그가 내 앞길에 큰 떡을 그려놓게 하고 나는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자본의 광풍에 휩쓸려 표류하지도 않았고, 거품이 꺼졌을 때 황망해하며 도망가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도 ‘금세기 가장 위대한 여류 작가’라는 떡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스승의 인도로 마음속에 품게 된 염원인데, 최고의 재목이 되지 못하더라도 중간 정도는 되지 않을까?
리루는 최고의 스승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가족이기도 하다. 철학과 진리의 세계에서 위엄 있게 거닐다가도 처자식과 친구가 부르면 갑자기 풍진 세상으로 돌아온다. 한번은 암의 메커니즘에 대해 나와 토론 중이었는데, 딸이 부르자 아버지의 역할로 돌아가 아이들의 신발 끈을 묶어주고 아이들의 이상하고 어려운 질문에 자상하게 대답해줬다. 그 대조적인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의 가족 사랑은 뼛속 깊이 배어 있다. 어느 해 그는 워런 버핏이 매년 주재하는 콘퍼런스에 가족과 함께 참가했는데, 이 콘퍼런스에는 많은 유명인과 고위 인사들을 비롯해 중요한 고객과 사업상의 동료들도 참석했다. 나는 그가 사교 활동을 할 줄 알았는데 그냥 인사만 하고는 가족이 자리 잡은 테이블로 돌아와서 조금 의아했다. 그는 집안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으며 내내 큰 관심을 보여줬다. 나는 기실 그와 같이 깊은 사유를 하는 사람이 이처럼 인문, 철학, 과학과는 상관없는 화제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스승인 찰리 멍거와 마찬가지로, 이런 한가롭고 사소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나누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좋아했다.
리루의 어린 시절은 일반인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역사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 환경 면에서도 특수한 시기에 태어난 그는 갓난아기 때 부모와 이별하고 여러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자랐다.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보육원에서 외로움,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나는 그가 바퀴벌레와 고기 껍질을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웃은 적이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작은 나무에 새겨진 글씨처럼 해가 지날수록 점점 더 커졌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이제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을 정도로 성장했고, 뒤집힌 몽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됐으며, 세상의 실상을 분명히 볼 수 있게 됐다. 그러자 가슴에 사랑이 충만해졌다.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됐을 때 그는 마치 날카롭게 벼린 한 자루 강철 검과 같았고,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일을 겪어 예리한 검기가 사람을 압박했다. 하지만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는 끊임없이 발전해 이제는 너그럽고 온유한 사람이 됐다.
홍콩에 갔던 때의 일이다. 리루와 아침을 같이하기로 했는데, 호텔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쪽 구석에 놓인 소파에 눈이 갔다. 야구 모자를 쓴 한 청년이 주변 소음과 섞이지 않고 따로 떨어져 조용하고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무척 감탄하여 그 청년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소란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 은은한 빛을 발하며 홀로 돋보이는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리루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가서 말이라도 걸어볼까 망설였다.
그 순간 그가 고개를 들었는데, 바로 리루였다. 그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눈을 가늘게 뜬 그 모습이 마치 호기심에 찬 소년처럼 보였다. 『논어』에 자공이 스승을 칭찬한 말이 있다.
공자님의 담장은 몇 길이나 되어서 문을 찾아 들어가지 못하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신하들의 많음을 보지 못합니다.
내 눈에는 리루가 이러하다.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
2019년 11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불행히도 나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에는 언론 통제가 심했고, 책도 많지 않았으며, 읽을거리라곤 지도자의 인용문이나 선전 자료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해 물리와 기하학을 처음 접했을 때 신세계를 발견한 것 같았다. 물리학과 수학(기하학)은 복잡한 자연 물질세계를 간단한 공식과 수학적 언어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고, 증명과 반증을 모두 할 수 있으며, 지극한 예측 능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과 수학이 내게 안겨준 그때의 충격과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후에 대학에 지원할 때 나는 물리 계열 외의 분야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열역학 제2 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을 접하면서 불현듯 물질세계와 우주에 대한 절망과 고독을 느꼈다. 세상은 복잡하고 거대하여 끝이 없어 보이지만, 항상 큰 것이 작은 것을 억누르고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르며 결국 모든 것이 무질서와 죽음의 정적으로 돌아간다. 우주가 존재하는 의미가 있을까? 우주라는 바다의 물방울 하나에 불과한 우리의 삶에도 의미가 있을까?
이때 카를 포퍼Karl Popper의 과학철학을 접하고 큰 영향을 받았다. 과학 자체는 의의를 설명할 수 없지만 과학적 방법의 영향을 받은 과학철학은 가능했다.
과학적 방법을 통해 세상과 사람, 사회를 이해하면서 나의 사고에 또 다른 문이 열렸다. 이때는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되던 시기였고, 1980년대의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관용적인 문화 속에 새로운 사상이 속속 유입되면서 중국 사회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나의 관심은 인문학, 역사, 종교, 문학, 사회과학, 경제학, 그리고 기타 분야로 옮겨 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기본적인 과학적 방법만이 지식을 습득하는 데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고대의 현자든 오늘날 정치·종교의 권위든, 과학적 방법의 관점에서 볼 때 이론이 끊임없이 시험되고 비판되고 수정되지 않으면 근원을 알 수 없는 강물이요, 뿌리 없는 나무다.
과학적 방법의 특성은 1980년대 중국의 사회 분위기와 매우 일치한다. 나라의 문이 열리면서 우리는 진정한 외부 세계를 봤고, 중국과 세계 사이의 격차를 더욱 인식하게 됐다. 당시 우리가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진 질문은 100년 넘게 현대 중국 지식인들을 괴롭혔던 바로 그것이었다. 서양은 어떻게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나? 중국은 또 왜 이렇게 뒤처졌을까? 중국은 서양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따라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990년대가 시작되던 즈음, 나는 중국을 떠나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학부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컬럼비아대학교는 모든 학부생에게 전공과 관계없이 호메로스의 찬가, 그리스 철학과 연극, 중세철학부터 르네상스, 계몽주의, 현대 과학혁명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서양 문명의 토대가 된 고전 100권 이상을 읽어야 하는 ‘핵심 과정’을 이수하도록 요구했다. 당시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설렘과 갈망을 동시에 느끼게 한 지식의 여정이었다. 마치 서양 문명의 전 과정을 내 머릿속에서 한번 돌려보는 것 같았으며, 가장 기본적인 개념과 이론 그리고 믿을 만하고 전승할 만한 지식을 한 차례 완벽하게 인식하는 기회가 됐다. 컬럼비아는 또한 같은 방식으로 유교와 이슬람 문명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핵심 과정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중국 문화사의 중요한 작품들을 (비록 영어 번역본이긴 하지만) 정독할 기회를 얻었다. 컬럼비아에서의 이런 경험은 내 사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식 탐구는 항상 나의 지대한 관심사였지만, 사람의 운명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참된 지식이 어떤 것인지 판단하는 방법을 접해본 적은 아직 없었다. 이때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워런 버핏의 연설을 듣게 된 것이다. 그는 개인이 기업을 오랜 시간 연구하면 통찰력과 예측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그동안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지식 추구가 투자 분야에서도 유용하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 일을 계기로 일정 기간 연구 끝에 내 인생 첫 주식을 샀고, 지금까지 투자자의 인생을 살아왔다.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책 속에 금으로 된 집이 있고 지식에는 정말 무궁무진한 현실적 힘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투자 경력 초기, 주식에 간접적으로 투자할 것이 아니라 직접 회사를 설립하고 싶었다. 그래서 초기 단계의 벤처 캐피털 업무를 수행하며 10여 개 회사의 성장을 도왔다. 이것은 나에게 또 다른 단계의 흥미로운 경험을 가져다줬다. 내가 벤처 캐피털에 몸담고 있을 때 인터넷 혁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1997년에 TED 콘퍼런스에 연사로 초대받았는데, 곧 다른 사람들의 강연에 매료됐다. 당시 인터넷 혁명을 이끈 주요 인물이 대부분 모인 자리였다. 나는 1997년부터 거의 매년 TED의 연례 미팅에 참석하여 인터넷 기술 혁명을 가장 앞자리에서 지켜봤고, 그 위대한 혁명에 직접 참여했다. 그러는 동안 초창기 이메일과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는 인터넷으로, 이어서 모바일 인터넷으로 진화했으며 결국 모든 사람의 삶에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같은 시간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중국도 변하고 있었다. 나는 미국에 있지만 여전히 중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모니터링하고 있었으며, 지난 40년 동안 진행된 개혁개방의 전체 과정을 내 눈으로 목격했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나는 지식이 개인과 사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예를 들어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은 불과 20년 만에 인류 사회의 모든 면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중국은 새로운 사회 조직 방식인 시장경제와 과학기술의 결합을 통해 14억 인구의 대국에 40년간 경천동지할 변화를 불러왔고, 역사상 전례 없는 기적을 만들었다. 개인적 측면에서 나는 가치투자를 접한 후 학습을 통해 약간의 통찰을 쌓고 무일푼으로 표류하던 타향에서 나의 투자 기업을 설립했다. 이 펀드는 몇백만 달러에서 출발해 현재는 10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했으며, 같은 기간 시장 평균 수익률의 약 3배에 달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과정에서 운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지식의 힘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저 지식을 얻을 기회만 주어진다면 만족하는 개인적 취미 수준이었으나 우연히 투자 업계까지 들어오게 됐으니, 운명이 나에게 행운을 안겨준 셈이다. 가치투자의 철학과 방법론을 따르고 오랜 시간 열심히 노력해 비즈니스 통찰력을 개발한 결과 엄청난 사업 수익으로 이어졌고, 이런 비즈니스 활동을 통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어난 전 세계적인 지식의 폭발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으며, 이런 폭발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사고와 지식에 더욱 강렬한 관심을 갖게 했다.
중국과 세계, 특히 중국은 항상 내 생각의 중심에 있었다. 무척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현대화에 관한 것인데, 중국은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나라였으면서도 근대에 와서는 왜 그토록 처절하게 실패했을까? 그리고 지난 몇십 년 동안 중국이 이토록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중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런 문제들이 줄곧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도 나는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지식은 과학적 방법으로 얻은 지식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과학적 방법으로 이들 문제에서 명확하게 설득력 있고 예측력이 있는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순 없을까?
지난 10년 동안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초보적이고 개괄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나 자신의 생각을 점차 형성해왔다. 이 과정에서 여러 학자의 연구가 나에게 큰 영향을 줬다. 예를 들어 1997년에 출간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저서 『총 균 쇠』는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현상, 즉 유럽인들이 왜 그렇게 짧은 시간에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이 사건은 인류사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총 균 쇠』는 현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기나긴 역사 궤적을 해석한 최초의 책으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에는 이언 모리스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출간했다. 1만 년이 넘는 인류사의 문명 발전 과정에서 중국과 서양을 추적하고 비교했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발생 가능한 궤적을 설명하고자 한 책이다. 2011년에는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이비드 도이치David Duetsch가 『진리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옥스퍼드대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가 바라보는 세상』에서 과학적 지식과 과학혁명이 인류 사회와 우주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제시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인류 문명 전체의 진화를 생물학적·문화적 진화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인 『지구의 정복자』를 출간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명제에 대해 보편적인 우주론적 관점을 취했지만, 여전히 서양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중국은 아직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크든 작든 나에게 영감을 줬고, 나는 점차 중국에 관한 사상의 틀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와 찰리 멍거 회장의 잦은 토론과 교감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2004년경부터 15년 동안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멍거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우리는 학문 간 지식, 특히 과학 분야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기간에 나는 수많은 사고의 불꽃이 튀는 혜택을 누렸고, 우리의 끊임없는 토론에서도 은연중에 큰 영향을 받았다. 또한 나는 투자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기에 경제활동과 기술 발전에 대한 이해를 쌓아갈 수 있었다.
2010년 무렵,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 체계 몇 가지가 내 머릿속에서 처음으로 구체화됐다. 원래 나는 복잡한 문제를 오랫동안 반복하여 사고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런 사상을 널리 전파하는 데는 관심도 재능도 없었다. 창진·리우리우·스홍쥔 등 친구들의 격려로 소규모 살롱 토론을 통해 이런 아이디어를 소그룹 내에 공유한 후, 체계적인 글로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2014년부터 후슈닷컴에 현대화 사고에 관한 에세이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개인 웨이보 계정도 개설했다.
많은 친구, 특히 젊은 친구들의 압도적인 반응에 매우 기뻤고 용기를 얻었다. 마침내 스홍쥔의 격려로 책의 첫 번째 파트가 완성됐다.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겠지만, 나는 인류 문명 진화사의 관점에서 현대화를 인류 문명사상 세 번째 위대한 도약으로 해석한다.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인류가 농업 문명에서 과학기술 문명으로 진화해나가는 과정의 일부로 이해하고, 이런 배경에서 출발하여 지난 200년과 최근 40년 동안의 중국 역사를 풀어간다.
이 글들이 학술적 논문은 아니지만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학계에도 유용한 자료로 쓰이고 그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직업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인류 문명과 역사에 대한 이런 성찰은 투자에도 매우 중요하다. 투자의 핵심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며, 특정 국가에 투자하려면 그 나라의 역사와 미래 트렌드에 대한 통찰력을 포함해 그 나라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한다. 이는 특히 경제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예컨대 만일 2008~2009년에 미국의 미래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면 가장 험난했던 경제위기의 제일 어두운 시기에 미국 증시에 투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설령 투자를 한다고 하더라도 몇 개 기업에 불과했을 것이다. 중국에서의 투자도 마찬가지다. 여러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앞으로 수십 년간 어떻게 발전해나갈지에 대한 기본적 판단 없이는 투자 결정을 하기 어렵다.
이에 이 책의 두 번째와 세 번째 파트에서는 구체적인 현실 문제를 탐구한다. 앞서의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지난 40년간 진행된 중국의 개혁개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향후 수십 년간 중국의 발전 잠재력을 어떻게 예측할 것인가, 가치투자를 중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적용할 수 있다면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동서양의 서로 다른 역사적 궤적과 문화의 차이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등이 주요 주제다. 지난 20년 동안 국제 투자자로서 나의 투자 범위는 주로 북미와 중국이었고 따라서 이 지역에 관심을 집중했으며, 당연한 얘기지만 가치투자에 대한 나의 이해와 실천이 포함돼 있다.
개인적인 철학이든 직업상의 요구든, 나는 과학적 사고방식을 따르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사실과 논리에 근거한 주장을 하고 싶다. 과거와 현재를 논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든, 중국이나 미국 또는 세계를 논하든, 인문·과학·역사·경제·정치를 논하든, 나는 정확하고 포괄적이며 중립적이고 사실에 기반하며 감정, 이념, 종교, 문화 등이 사고의 객관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편견을 완전히 피하려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나는 단지 과학적 방법과 이성,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유용한 아이디어를 점진적으로 구축하고자 한다. 이 아이디어들이 현장에서 끊임없이 시험되고 반증되며, 그럼으로써 갈수록 충실해지고 개선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나는 몸으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추구하는 사고의 여정을 통해 점점 더 낙관적으로 변했다. 나의 낙관주의에 대한 정의는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이비드 도이치의 정의와 매우 유사하다. 그는 “모든 악은 무지의 소산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우리에게 충분한 지식이 있었다면 인류 사회는 악을 극복하고 발전했을 것이다. 인류는 진화의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창조 능력을 갖춘 종이다. 우리는 DNA를 통한 생물학적 진화와 병행하여 문화적으로도 진화해왔으며, 그 결과 인간의 진화 속도는 다른 생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문화는 우리가 비범한 창조력을 갖춘 데 기인하며, 창조력의 원천은 인류가 서로 모방하는 데 있다. 예컨대 고릴라 같은 여타 영장류와 달리, 우리는 서로를 모방할 때 단순히 행동을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의미를 해독하며 남겨진 공간을 재창조한다.
인간의 대뇌는 우리가 복잡하고 추상적인 물리 법칙을 이해하고 과학적 방법을 통해 참된 지식을 끊임없이 쌓아가며 발전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덕에 우리는 크게는 우주부터 작게는 미생물과 원자까지, 그리고 인간 사회의 각종 문제 같은 복잡한 것들을 통찰하여 설명 가능한 이론과 매우 강력한 예측성을 주는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참된 지식을 응용하여 인류는 작은 것을 크게 만들뿐더러 자연을 이용하면서 자연을 초월하는 창조의 여행을 시작했다. 물질세계와 인간세계는 모두 참된 지식을 기반으로 발전의 궤도를 바꿔왔다. 지구의 역사가 특히 그러하다. 생명이 시작된 이래 지구는 생명체에 의해 변해왔다. 인류가 출현한 이후 수십만 년 동안, 특히 지난 1만 년 동안 인간은 마치 지구를 재창조하다시피 했다.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시피, 앞으로 인간은 우주를 바꿀 것이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참된 지식과 의미라는 두 가지를 추구해왔다. 그러던 중 이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참된 지식은 곧 의미다! 인생의 의미는 참된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와 세상을 더 풍요롭고 공정하며 진보적이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참된 지식은 100% 진리를 뜻하는 게 아니다. 세상에 100%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 참된 지식은 유용하면서도 끊임없이 증명되고, 반증되고, 수정되고, 보완되며 진보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공적인 사회는 오류에 대한 관용과 비판, 실수를 포용하는 문화가 있는 곳이다. 그래야만 참된 지식이 존재하고 또 진보할 수 있다. 이런 해석적 지식이 기술로 변환되고 특정 형태의 사회 조직, 즉 능력주의(정치적 능력이든 경제적 능력이든)와 결합할 때 인류의 개인 창조력과 집단 창조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인류 문명의 역사를 통해 목격해왔다.
인류의 문명은 엔트로피를 줄일 수 있게 됐고, 그로 인해 우주는 더 이상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무질서와 침묵의 단방향 길이 아니게 됐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이 말했듯, 인류 역시 더 이상 우주 외딴 구석에 사는 화학적 부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자연을 초월하는 문명을 창조했고, 참된 지식의 무한한 축적을 통해 문명의 무한한 진보를 가능케 했다. 문명 세력은 반문명 세력보다 더 빠르게 지식을 축적하므로 항상 앞서나갈 수 있다. 문명의 횃불이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광활한 성간 우주를 탐험하고 미시적인 원자 세계를 들여다보며 텅 빈 죽음의 우주에 불멸의 빛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음 깊이 행복감과 즐거움을 느낀다. 이런 기쁨을 이 책을 통해 같은 길을 가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2019년 10월
1840년 아편전쟁으로 황폐해진 중국에서는 대다수 국민이 고통에 빠졌고, 그 과정에서 세 가지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 어째서 중국과 서양의 격차는 그리도 큰가?
• 중국은 어떻게 서양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 중국이 서양을 따라잡은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중국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세 가지 질문은 오늘날까지도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맴돌고 있고, 각계의 엘리트들은 계속해서 깊이 있는 토론을 벌인다.
마찬가지로 약 250년 전부터 당대 가장 앞섰던 서양의 엘리트들도 당시 신세계라는 양상의 원인에 대해 깊은 사고를 했다. 서양은 이미 다른 지역보다 훨씬 앞서 있었으며, 이런 우위를 바탕으로 이후 200년 동안 신속히 전 세계를 지배했다.
• 서양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 이런 지배는 지속될 수 있을까?
동양과 서양의 문제는 얼핏 ‘어떤 집은 즐겁고 어떤 집은 슬프다’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문제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200여 년 동안 동양의 쇠퇴와 서양의 발전은 중국과 서양을 막론하고 엘리트들의 핵심 관심사였고, 이에 대해 다양한 이론과 학설이 등장했다. 그렇지만 아직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온 학설들은 역사 해석과 미래 예측에 한계가 있어 보이는데,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의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 일부는 몇백 년 또는 길어야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준이어서 역사적 시야의 폭이 좁다. 1840년에 이홍장李鸿章이 중국은 ‘3,000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변화’에 직면했다고 한 것은 심오한 통찰이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는 주로 문자 기록에 근거하는데, 문자 기록은 서양은 5,500년, 중국은 3,3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인류의 진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1%의 역사로는 인류의 전체 진화를 추적하고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전통 사학 자체도 편견과 국지성을 지니기에 기록된 역사만으로는 이런 질문에 완벽하게 답할 수 없다.
다행히도 전통 사학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는데, 여러 과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뤄 더 장기적인 역사를 이해하는 데 완전히 새로운 도구를 제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1949년 탄소 동위 원소 연대 측정이라는 고고학적 기법이 발명되어 14C(탄소-14) 동위 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해 물질의 역사적 연대를 비교적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이 새로운 검출 기법은 유전자 기술과 함께 고고학자들이 문자 등장 이전 역사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해줬고, 이후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발굴된 유물은 문자보다 더 중요한 고고학적 근거가 됐다.
1950년대 이후 DNA 구조가 발견되면서 생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분자생물학, 유전자생물학, 진화생물학 등의 학문이 꽃을 피웠다. 이런 학문이 다른 학문과 결합함으로써 과학자들은 인류의 진화 역사를 처음으로 비교적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2012년 찰스 다윈 이후 인류 진화사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진보인 『지구의 정복자』라는 저서를 출간하면서 인간 기원에 대한 완전한 이론을 정식으로 제시했다.
그보다 앞선 1919년에는 세르비아의 지구물리학자 밀루틴 밀란코비치Milutin Milanković가 밀란코비치 주기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을 통해 그는 지구의 원심력·자전 각도·궤도 진동이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에 영향을 미쳐 지구 기후의 장기적 대순환을 일으키며, 그 주기는 약 10만 년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과학자들이 수학적으로 입증함으로써 1970년대에 최종 증명됐다. 밀란코비치 주기 이론은 빙하기의 형성, 지속 기간, 대순환 기간 내에 앞으로 닥쳐올 빙하기를 인류가 처음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2004년 과학자들은 남극에 약 3킬로미터 깊이의 구멍을 뚫어 오랫동안 눈이 퇴적되어 형성된 얼음층을 추출해 지난 74만 년 동안의 기후 데이터와 이 기간에 인류 활동이 대기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인류의 활동이 지난 수만 년 동안 대기 중에 남긴 궤적의 일부를 복원할 수 있었다.
1987년에는 미국의 유전학자 레베카 칸Rebecca Cann의 주도하에 과학계가 놀라운 결론을 제시했다. 인류 중 모든 여성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았던 ‘아프리카 이브African Eve’라고 알려진 공통의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현생 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에 의한 가장 최근의 모계 공통 조상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l Eve’를 말하며,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초기 인류 당시 동일한 미토콘드리아 DNA를 공유하던 여성 집단을 의미한다-옮긴이). 이 주장은 그 후 끊임없이 각종 검증을 받았는데, 이브의 출현 시기가 약 15만 년 전으로 수정됐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자들은 모든 남성의 조상인 ‘아프리카 아담African Adam’도 발견했다(현생 인류의 Y염색체에 의한 가장 최근의 부계 공통 조상 ‘Y염색체 아담Y-chromosomal Adam’을 말하며,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초기 인류 당시 동일한 Y염색체를 공유하던 남성 집단을 의미한다-옮긴이). 이런 주요 발견은 오늘날 모든 인류가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유래했음을 확인해준다. 지능, 근면성, 창의성, 이타적 성향과 같은 인간의 특성도 하나의 대집단 내에서 비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