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을 공부하고 교육 시민단체에서 일했다. 2018년 임신 29주 만에 아이를 낳으며 엄마라는 이상한 세계에 발을 디뎠다. 시대적 징후에 대해 떠들어대는 걸 좋아하지만 아이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와 블록을 줍느라 더 바쁘다. 교육 계간지 《민들레》 편집위원, 교육 관련 비영리재단 프리랜서 연구원으로 활동한다. 육아문화와 모성, 교육열 등의 주제에 관심이 많으며 내가 느끼는 까끌거림이 정확한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을 사랑한다. 《부모 되기, 사람 되기》, 《아이를 학대하는 사회, 존중하는 사회》를 함께 썼다.
표지 그림 조은이 어린이
엄마라는 이상한 세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야기는 끝없이 샘솟는 우물 같다. 두레박으로 퍼내고 퍼내도 다른 이야기가 고이고, 또 다른 이야기가 고인다. 나는 누군가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에 시간을 속절없이 써버린 사람, 그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잃고 또 얻은 사람이다. 플러스 마이너스로 계산할 수 없는 이 이상한 세계에서 나는 돌아갈 방법이 없다. 나의 글은 이 이상한 세계에 첫발을 내디딜 무렵의 이야기다.
나는 조기 진통으로 임신 29주 만에 아이를 낳았다. 대학병원에서의 응급 출산, 이른둥이(미숙아)의 예후에 대한 의사의 경고, 아이를 재운 후 발달 정보를 뒤지던 밤…… 육아 초기의 기억은 혼란으로 가득하다. 나는 이 혼란이 조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탓했다. 하지만 나의 혼란을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이 혼란은 조산으로 극대화되었을 뿐 엄마가 된 다른 여성들 역시 마주하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조건과 상황(1982년생, 교육학 전공, 비영리단체 근무, 부동산 광풍이 불기 전 아파트를 사며 중산층에 진입, 결혼 6년 만에 시험관 1차로 임신……) 속에서 펼쳐진 이야기를 보편의 이야기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 귓가에서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던 목소리들이 나만을 향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확신한다. 이 책은 그 목소리―‘아이의 발달을 자극하라’, ‘공감하는 엄마가 되어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라’, ‘다 엄마 탓이다’, ‘그러다 몬스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렸던 나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서 남편은 비중이 적은 조연 배우다. 그에게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상당 부분 바꾸는 일이었겠지만, 나만큼의 전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그는 아이를 키우는 이에게 쏟아지는 명령들에서 살짝 비켜나 있었다. 나에게는 들리는 목소리가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숙고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그는 나와 같은 혼란 속에서 분열하지 않았다. 이 현실을 ‘고난을 함께 헤쳐나가는 부부’라는 필터로 미화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의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남성들이 생명을 기르는 일의 격렬함을 온몸으로 이해할 때, 아이를 낳기 전과 후를 연결하는 안온한 끈이 끊어지는 경험을 할 때, 아이를 키우며 깊은 혼란, 죄책감, 불안, 두려움에 허덕일 때, 이 책의 결말은 바뀔 것이다.
뜻밖의 ‘신스틸러’, 비중이 큰 조연 배우가 있다. ‘국민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다. 내가 아이를 낳고 육아에 허우적댈 때, 텔레비전·라디오·잡지·도서 등 모든 매체에서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가 국민 육아 멘토로 맹렬히 떠오르고 있었다. 나의 엄마, 동네 엄마, 온라인 커뮤니티의 엄마들까지 사방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그러는데……”라는 말을 건네왔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러는데 아이한테 절대 화를 내지 말라고……”
“아직도 손을 빠는 건 뭐가 모자라서 그런 거 아니니? 〈금쪽같은 내 새끼〉에 손 빠는 아이가 나오던데……”
그는 지금 여기의 육아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었기에 나의 육아 역시 그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가 출연한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각종 인터뷰 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가 오늘날의 육아문화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지금 여기의 육아가 왜 어렵고 힘든지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오은영 박사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큰 변화가 생겼다.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이하 〈결혼 지옥〉)에서 아동 성추행을 방임했다는 혐의, 거듭된 방송 노출에 대한 피로감 등으로 오은영 박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그 와중에 서울시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자살한 교사가 학부모의 지속적인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았다는 증언이 나오자 사람들은 악성 민원의 배후로 오은영 박사의 육아법을 지목하기까지 했다. 공감하고 감정을 읽어주는 방식의 육아 대신, ‘쉬운 육아’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부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어려운 육아’는 오은영 박사와 같은 전문가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다. 여기에는 ‘아이는 만들어질 수 있다’는 믿음과 점점 더 어린 연령대까지 압박해오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내면아이와 자존감 등을 중시하는 치유문화의 유행, 자녀의 문제는 대체로 엄마의 책임이라는 모성 이데올로기 등이 겹겹이 연결되어 있다. 새로운 전문가들이 나타나 “쉬운 육아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더라도, 육아를 어렵게 만든 요인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한 육아문화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 젊은 교사의 죽음으로 시작된 사회적 논의가 이 시대의 육아를 어렵고 복잡하게 꼬아버린 것들에 대한 비판과 성찰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은 한 여성이 어떻게 이 시대의 엄마를 향한 명령들에 지독하게 얽혀들었는지,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하고 의문을 품고 밀쳐내고 협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에세이와 비평, 르포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읽힐 수 있는 이야기를 이제부터 시작해보겠다.
지금 태어나면
아이는 살 수 있나요?
“저, 배가 너무 뭉쳐서 왔는데요.”
늦은 밤, 다니던 산부인과의 분만실 문을 쭈뼛쭈뼛 열었다. 임신 26주 차, 분만실을 찾기엔 너무 이른 주 수였다. 몇 주 전부터 배가 딱딱해지면서 전기가 통하는 듯 찌르르한 느낌이 반복적으로 들었고, 퇴근 후 쉬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분만실을 찾은 당일에는 배가 딱딱해 걷기 힘들 정도로 배 뭉침이 심했다. 배 뭉침이라면, 자궁이 수축하면서 생기는 증상으로 출산이 임박했다는 징후라는데? 응급실에 갔더니 임신 20주가 넘었다며 분만실로 안내했다.
분만실 침대에 누워 자궁수축 정도를 확인하는 기계를 배에 부착했다. 알 수 없는 숫자가 화면에 깜빡이며 급격한 곡선을 그렸다. 내가 이해할 수도 없고 어찌할 수도 없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물결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출산 전까지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종합병원 산부인과에 입원해 ‘라보파’라는 자궁수축 억제제를 맞았지만 자궁수축은 잡히지 않았다. 입원 3주 차, 최대치의 라보파를 투여했음에도 자궁수축 검사의 그래프 곡선은 더 급격해졌다. 인큐베이터가 있는 대학병원으로 전원하는 게 좋겠다는 의료진의 판단으로, 사설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의료법 제3조의4는 내가 입원한 대학병원과 같은 상급종합병원(중증종합병원)을 “중증질환에 대하여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종합병원”이라 지칭한다. 대학병원으로 전원한 순간부터 나는 산모도, 의료서비스의 소비자도 아닌,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요하는 환자였다. 그 말인즉슨, 대학병원의 의료시스템과 의료진에게 ‘군말 없이’ 나를 맡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대학병원 분만실에 도착하자마자 핏기 없는 젊은 얼굴의 전공의가 다가와 질문을 퍼부었다.
“엄마, 저번 병원에서 임신성 당뇨 검사했어요? 수치는?”
그의 말 속에서 나는 반말을 섞어도 되는, 익명의 (예비) 엄마로만 존재했지만 의문을 가질 여유는 없었다. 사전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이 건물 저 건물로 옮겨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질 초음파를 위해 하의 탈의를 하고 다리를 벌린 채로, 몇십 분간 전공의를 기다렸다. 전공의와 간호사는 처치 과정에 대한 설명 없이 들이닥쳤고, 교수는 하루 한 번 간신히 만났다. 그는 전공의와 간호사 예닐곱 명을 대동한 채 빠른 걸음으로 회진을 돌며, “수축이 심해지면 내일이라도 출산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태어나면 아이는 살 수 있나요?”
교수에게 묻자, 그는 답했다.
“나는 산부인과 교수지, 소아과 교수가 아니잖아요?”
산부인과는 산모의 몸만을 관장하지 않는다. 산부인과 교수로서 그는 조산아의 생존율과 생존 후 장애 가능성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소아과 교수가 아니라는 말로 환자가 태아의 예후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차단해버렸다. 환자가 현 상황을 이해할 가능성도 함께. 당시 나는 28주가 넘으면 조산아의 90% 이상이 생존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내가 의료진에게 원했던 것은 “괜찮을 거예요”라는 희망의 말이나 “두려우시죠?”라는 공감의 말이 아니었다. 의료진에게 그런 걸 바라기엔 이들의 노동환경이 지나치게 비인간적이었다. 밥 먹고 잠자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데 ‘인간미’를 잃지 않는 의료진이란 ‘슬의생’(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나 가능한 것 아닌가. 다만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다. ‘감히’ 질문조차 할 수 없는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짧은 시간이나마 동등하게 대화하길 바랐다. 라보파조차 듣지 않는 상황이라면 다른 약을 쓰거나 다른 약과 동시에 쓸 수는 없는지, 왜 자연출산이 아니라 제왕절개여야 하는지, 지금 주 수에 태어난 아이의 예후는 어떠한지, 나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을 당사자로서 충분히 이해하고 준비한 후 맞이하고 싶었다. 그러나 질문은 금기시되었다. 질문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용기를 내어 한 질문은 차단당했다.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는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에서 출산이 의료화로 인해 “여성의 통제권이 상실되는 경험”1이 되었다고 쓴다. 여성들은 병원의 계급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력한 상태로 의료진의 처치를 기다린다. 진통의 두려움과 긴장에 대해 의료진과 상의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벗어나 편안한 자세로 진통하지 못한다. 의료진의 편의와 빠른 출산을 위한 장치들은 산모를 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침대에 누워서 진통하는 자세는 중력의 힘으로 아이를 밀어내기 힘들게 하고, 외음부 파열의 가능성을 높여 회음부 절개를 필요로 한다. 흔히 ‘내진’이라 일컬어지는, 인공적인 진통 촉진과 자극은 수축과 수축 사이의 완화 기간을 단축시켜 수축 기간을 더 연장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2
내가 출산 과정에서 느낀 무력감은 마음과 달리 몸이 자꾸 아이를 내보내려고 신호를 보낸다는 것, 그런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데서 온 것만은 아니었다. 태아의 예후에 대해 “소아과 교수가 아니잖아요?”라고 대꾸하는 교수, 의학적 처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전공의와 간호사, ‘바쁜’ 의료진의 입장에 따라 설계된 검사 절차와 과정……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나는 알 권리가 없었고, 조산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은 증폭되었다. 위급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환자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을까?
대학병원에 입원한 지 4일째, 수축 검사 결과를 보던 전공의가 다급하게 교수와 연락을 했다. 수축 강도가 이전보다 심해졌다는 것이다. 전공의는 수축 결과 추이를 지켜보자고 하더니 2시간 후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요? 수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진통이 있을 때 아기 심박수가 떨어졌기 때문에 위험해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안 되나요?”
“휴…… 인큐베이터 자리가 없을 수도 있어요. 교수님도 수술하라고 지시하셨잖아요.”
예닐곱 명의 전공의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고, 수술확인서를 내미는 전공의의 말투는 짜증으로 고조되고 있었다. 더 이상 수술을 미뤄달라고 버티기 어려웠다.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순식간에 간호사들이 모여들었다. 주삿바늘을 바꾸고 수술복으로 갈아입히고 회음부 제모를 했다. 쓱쓱 거친 면도기로 음모를 미는 소리가 들렸지만 수치스럽다고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수술실을 향해 요란하게 굴러가는 침대 바퀴 소리를 들으며, ‘오늘이 며칠이지’ 생각했다.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 될까, 아니면……’
임신 29주 6일째였다.
“앞으로 발달이
잘 이루어지는지
지켜봐야 해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진 아이가 퇴원하기까지는 65일이 걸렸다. 그 65일은 빨갛고 쭈글쭈글한 1.63킬로그램의 아기새가 3.9킬로그램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 자가 호흡을 못하던 아이가 스스로 숨을 쉬고 젖병을 빨기까지 걸린 시간, 매일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마주치는 엄마들과 쭈뼛쭈뼛 인사를 나누고 그들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차 한잔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 “아기는 강하다”는 말과 최악의 가능성 사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던 시간, 아이의 생명력에 감탄하고 의료진의 애씀에 감사한 시간, 한국의 의료보험제도에 만세를 외치던 시간(65일의 신생아중환자실 비용은 50만 원이 넘지 않았고, 보건소 지원사업을 받아 실제 지불한 금액은 27만 원이었다), 그리고 지독히도 느리게 가는 시간이었다.
아이가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면회 외에 가장 많이 한 일은 인터넷 검색이었다.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조산’, ‘29주 미숙아’, ‘29주 이른둥이’ 같은 검색어를 입력하곤 했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임신 기간 37주 미만 또는 최종 월경일로부터 37주 미만에 태어난 아기를 미숙아 또는 조산아라고 한다. ‘미숙아’라는 이름을 “뭔가 미숙하고 정상적인 상태에 못 미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처럼 오해”하지 않도록 ‘이른둥이’라는 한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3 의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28주 이후에 태어난 미숙아 열 명 중 아홉 명은 생존한다. 다만, 건강은 장담할 수 없다. 태아의 몸에서 폐는 가장 늦게 완성되는 기관으로, 신생아호흡곤란증후군, 기관지폐이형성증 등 폐 관련 질환이 있을 수 있다. 뇌가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채 출생하는 과정에서 뇌출혈, 백질연화증, 뇌성마비 등이 일어날 수 있다. 미숙한 장이 모유나 분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 괴사성장염, 산소치료로 인해 망막에 손상이 생기는 경우 미숙아망막증, 대동맥과 폐동맥을 연결하는 동맥관이 늦게 닫히는 경우 동맥관 개존증이 발병할 수 있다…….
맘카페의 ‘이른둥이맘’ 게시판에 들어가, 비슷한 주 수에 출산한 이들의 글을 읽었다. 아이들은 대체로 출산 예정일 전후로 신생아중환자실을 퇴원했지만, 예후는 제각각이었다. 글쓴이의 닉네임을 클릭해 그동안의 작성 글 목록까지 확인했다. 어떤 이의 글 목록은 “돌잔치 장소 좀 골라주세요”, “어린이집 어디가 좋을까요?”, “둘째 초음파 사진 좀 봐주세요” 등으로, 어떤 이의 글 목록은 “아이가 아직 네발 기기를 못하는데 많이 느린가요?”. “재활치료 시작했어요”, “재활 스케줄 괜찮을까요?”, “오늘 장애 등록하고 왔어요” 등으로 흘러갔다. 확실한 건 후자의 비율이 만삭아와 비교해 월등히 높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입원 기간 동안 큰 이벤트를 겪지 않았다. 신생아호흡곤란증후군, 기관지폐이형성증, 뇌실주위 음영증가, 심방중격결손 등의 진단명이 붙었지만 이른둥이에게는 흔한 진단명이었다. 그러나 퇴원하며 받은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른둥이들은 조산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여러 의학적인 문제 외에도 성장과 발달상의 문제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기에 소아과 전문의와 정기적인 검진 외에도 발달평가, 재활치료 및 영양상담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통합적인 외래 추적관찰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아이에게는 여러 분야의 추적관찰이 필요했다. 미숙아망막증 가능성이 있으므로 안과 미숙아망막증 검사, 청력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비인후과 청력 검사, 심장에 구멍이 있으므로 심장내과 심장초음파 검사, 발달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한 재활의학과 발달검사…… 이 중에서 쉽게 ‘졸업’을 할 수 없는 과가 있었다. 재활의학과와 신생아과다. 대근육 발달이 잘 이루어지는지(재활의학과), 전반적인 발달이 잘 이루어지는지(신생아과) 정기적으로 발달검사나 외래 진료를 통해 확인해야 했다. 걸음마는 돌, 인지나 언어 발달은 두세 돌, 집중력과 학업능력 발달은 네 돌 이후에야 확인할 수 있으므로 발달을 확인하는 과정은 장기전이 될 터였다.
재활의학과 첫 외래가 있는 날이었다. 교수는 차트에 눈을 고정한 채 지나가듯 말했다.
“엄마는 왜 조산을 했을까?”
교수의 말이 혼잣말인지 혼잣말을 가장한 반말인지, 나의 대답을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나의 대답을 원하는 거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왜 조산을 했는지에 대한 답은 내가 가장 절실하게 알고 싶었던, 하지만 찾을 수 없었던 답이 아닌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면서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지금 재활의학과에 와 있는 이유는 나의 조산 때문이라는 걸. 교수는 차트에서 눈을 떼고 나를 보며 말했다.
“이른 주 수의 조산이라 뇌 손상 가능성이 있어서, 앞으로 발달이 잘 이루어지는지 지켜봐야 해요.”
그때부터였다. 아이의 발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육아가 시작된 것은.
발달 자극을 위해
뭔가 더 해야 하는데……
“영유아기의 뇌는 가소성이 높은 시기이므로, 발달장애나 발달장애 위험이 있는 아동에게 이 시기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발달 전문가들이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말이다. 장애나 장애 위험 아동에게 생애 초기 조기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영유아 조기 중재 서비스EarlyIntervention를 제공하는 나라가 늘어났다. 진단을 통해 대상자로 선정되면 영유아와 그 가족에게 물리치료, 언어치료, 가족지원과 상담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와 같은 일관적인 지원체계는 없지만, 영유아 건강검진 사업의 일환으로 생후 4개월에서 71개월까지의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6차에 걸친 발달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이 한국 영유아 발달선별검사의 검사지 문항, 그리고 퇴원하면서 대학병원에서 잡아준 네 번의 발달검사 결과가 아이의 발달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판단하는 지표가 될 터였다.
첫 발달검사가 있던 날, 어린이병원 지하의 한 작은 방에서 임상심리사를 만났다. 임상심리사는 내게 발달검사 질문지를 건넸다. 엎드린 자세에서 뒤집을 수 있는지, 누워 있을 때 자기 발을 잡고 노는지, 손을 뻗어 앞에 있는 장난감을 잡는지, 그림책의 그림을 관심 있게 보는지, “안 돼!”라고 하면 반응하는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웃거나 웅얼거리는지 등 대근육·소근육·인지·언어의 영역별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확인하는 질문이 가득했다. 그는 짐짓 명랑한 목소리로 아이에게도 물었다.
“여기 블록이 있네? 우리 이 블록 한번 쌓아볼까?”
아이는 진료실의 낯선 분위기에 경직되었는지 딴청만 피웠다.
“자자, 여기 블록이 있잖아. 어떻게 가지고 놀까?”
아이는 블록에는 관심 없다는 듯 다른 장난감만 바라봤다. 선생님은 종이 위에 무언가 바쁘게 쓰고 있었다. × 자를 쓰고 있는 걸까? 애가 탔다. 수능 볼 때도 이렇게 입이 말랐었나?
일주일 후 확인한 발달검사 결과지는 A4 열 장이 넘는 분량이었다. 수능 성적표에서나 보던 점수와 원점수, 퍼센트 등의 숫자들을 어지러이 지나자, 이런 문장이 나왔다. “환아의 인지발달은 또래와 유사한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운동발달은 또래보다 다소 더딘 수준인 상태입니다.” 나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다. 아이는 ‘뒤집기를 할 때가 됐는데……’ 할 때쯤 한 박자 늦게 몸을 뒤집고, ‘배밀이를 왜 안 하지?’ 할 때쯤 천천히 배를 밀고 다니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기질이라서? 머리가 크고 무거워서? 아니면 재활의학과 교수의 말대로 뇌 손상이 있어서? 물음표를 띄워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하니까, 혹여 뇌 손상이 있더라도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면 잘 자랄 수도 있다고 하니까…… 먹이고 재우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퇴원하면서 산 유명한 발달 전문가의 책에는 시각 발달을 위해 “엄마의 얼굴 표정과 옷이 아기에게 즐거운 시각 자극이 되도록 입술에는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에 예쁜 핀을 하나 꽂고, 작은 크기의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을 것을 권한다”4고 쓰여 있었다. 립스틱을 바르고, 예쁜 핀을 꽂고 캐릭터 옷을 입으라니 ‘인간 모빌’이 되라는 뜻입니까? ‘에이 뭘 그렇게까지’ 하며 흘려버렸을 조언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이 다가왔다. 결국 아이의 신생아 시기, 나는 장롱 깊은 곳에서 잠자던 캐릭터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미적 취향 따위 포기하고 캐릭터 티셔츠도 꺼내 입은 마당에, 다른 거라고 못 할까.
아이에게 해당되는 개월 수의 발달검사지 문항을 확인해 아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연습시켰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작은 장난감을 컵으로 덮고 감추면, 컵을 열어 장난감을 찾는다.” 아이는 이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개월 수가 되었지만 아직 컵을 여는 동작을 하지 못했다. 그래, 오늘은 꼭 이 과제를 연습시켜봐야지. 아이가 유아 식탁에 앉아 있을 때 좋아하는 쌀과자를 보여주곤 재빨리 컵으로 덮었다.
“어? 쌀과자가 어디 갔지? 쌀과자가 어디로 갔을까?”
아이는 쌀과자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컵을 흔들어 딸각딸각 소리를 냈다.
“무슨 소리가 나는데…… 쌀과자가 이 안에 있나?”
아이는 계속 울다 쌀과자가 컵 사이로 삐져나온 틈을 놓치지 않고 낚아챘다. 다음 날, 또다시 쌀과자를 컵으로 덮자 아이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컵을 보여주든, 흔들든 말든 관심 없었다.
발달 과제를 연습해보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아이는 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나의 의도를 알아채고 흥미를 잃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까만 눈동자 앞에서 막막함을 느꼈다. 나의 열의가 가닿지도, 말이 통하지도 않는 이 작은 생명체에게 무얼 가르친단 말인가. 버럭 소리를 지르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나 나의 좌충우돌과 달리, 1783년 교육학자 요한 베른하르트 바제도Johann Bernhard Basedow는 준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