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어만 좀 잘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한 번쯤 안 해 본 한국인이 있을까?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대학을 다닐 때, 심지어 그 이후에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영어 공부에 쏟았지만, 우리는 영어를 잘 못한다.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라도, 영어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영어를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은 이 책을 펼치지 않았을 것이다. 실수로 펼쳤다면, 덮으시라.)
한국어와 영어가 워낙 다른 언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티브이에 나오는 외국인들의 한국어 실력을 보면 꼭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 1~2년 살았다는 그들(모국어가 영어든 아니든)의 한국어 실력이 우리의 영어 실력보다 나아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물론 그러니까 티브이에 나왔겠지만.)
언어는 어릴 때 배워야 한다기에, 언젠가부터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에도 원어민 교사를 배치했지만, 지금 20~30대의 영어 실력이 50~60대의 그것보다 엄청나게 뛰어난 것 같지도 않다.(어느 정도는 나은 것 같다.) 영어 교육 방법이 잘못된 탓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륀지’ 발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오렌지든 아륀지든, 발음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내 영어 실력도 그리 뛰어나진 않다. 학창 시절 영어 점수는 꽤 높았지만, 그건 주로 문법, 어휘력, 독해력이 상대적으로 좋았다는 의미일 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외국인과 대화해 본 적이 없었고, 듣기평가가 없던 시절에 학교를 다닌 옛날 사람이라 영어 회화 ‘테이프’도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다. 영어로 글을 써 본 경험도 당연히 없다.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네 가지 중에서 ‘읽기’의 경우 (사전의 도움을 받으면) 웬만한 문장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나머지 세 가지는 한마디로 별 볼 일 없다. 미국에서 2년간 체류한 경험이 있고, 그로 인해 영어 실력이 ‘초큼’ 늘기는 했지만, 그게 마흔 넘어서의 경험이라 “미국에서 2년이나 사셨으면 영어는 좀 하시겠네요?”라는 말이 제일 무섭다.
그럼 나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 책을 썼는가. 혹시 인공지능 전문가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컴맹’을 겨우 면한 수준에 불과하다. 이 책은 영어에 관한 책인 동시에 인공지능에 관한 책인데, 영어도 잘 못하고 테크놀로지도 잘 모르는 내가 썼다.(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은 당신의 눈높이에 아주 잘 맞을 가능성이 크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시작은 ‘K 열풍’이었다. K팝을 필두로 영화, 드라마, 음식, 뷰티 등 여러 분야에서 ‘K’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K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은 수십억 명에 달하는 듯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수는 연간 1000만 명이 넘는다. ‘여행 준비’라는 독특한 취미를 즐기다가 『여행 준비의 기술』이라는 책까지 쓴 사람으로서, 어떤 나라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일단 그 나라에 관한 책부터 한두 권 구매하는 사람으로서, 문득 궁금했다. 한국을 궁금해하는 외국인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아마존에서 검색해 봤다. 한국어 공부와 관련이 있는 책들을 빼면, 한국 혹은 한국 여행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영어로 된’ 책은 열 권이 채 안 됐다. 그중에서 진짜 한국인이 쓴 책은 몇 권이었을까?
정답은 ‘제로’다. 그 유명한 『론리 플래닛 한국 편』을 비롯하여, 외국인들에게 팔리고 있는 한국 관련 책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외국인 작가가 쓴 것들이다. 아마 몇 주에서 몇 달 정도의 기간 동안 한국을 다녀 보고, 기존 문헌들을 짜깁기하고, 가끔은 한국인 지인들의 도움을 살짝 받아서 썼을 테다. 전문 용어로 ‘수박 겉핥기’다.(실제로 좀 살펴보니 정보는 많아도 ‘이야기’가 없었고, 현상은 있지만 ‘맥락’은 없었다.)
처음엔 어이없었지만,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책을 누가 쓸 수 있었겠나. 영어로 책을 쓸 수 있는 한국인은 극소수일 테니 일단 한국어로 쓴 다음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원고를 완성한다고 해도, 이런 책은 영미권 출판사와의 계약을 통해 현지에서 출간되어야 하는데 이것도 지난한 일이다. 해야 하는 투자는 많은데 기대되는 수익은 매우 불확실한 프로젝트. 문화체육관광부나 대기업 같은 곳에서 훌륭한 국내 작가와 훌륭한 한영 번역가를 섭외하고, 외국의 유명 출판사를 설득하여(설득이 안 되면 제작비를 지원하여) 강력히 추진하지 않는 이상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우리 정부는 뉴욕에 광고판을 설치하거나 워싱턴에서 거창한 행사를 개최하는 걸 좋아하지, 이런 깜찍한 곳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 대기업도 각자의 상품을 더 팔기 위한 판촉 활동에는 큰돈을 쓰지만, 직접적인 마케팅 효과가 불분명한 일에는 투자가 인색하다.
그래서 그냥 내가 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반세기 넘게 살아온 ‘찐’ 한국인으로서, 원래 온갖 잡다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거의 모든 한국 음식을 다 먹어 보고 거의 모든 국내의 유명 관광지를 가 본 사람으로서, 한 권밖에 안 되지만 어쨌든 ‘여행 책’도 써 본 사람으로서, 스무 개쯤 되는 외국을 여행해 보고 한동안 외국에서도 살아 보면서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한국의 독특한 점들이 무엇인지 제법 파악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냥 내가 쓰기로 했다. 절반쯤은 재미와 보람을 위해서, 절반쯤은 약간의 금전적 이익에 대한 기대로.(그 책이 해외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기분 좋은 상상도 했다. 세계는 넓고 해외 출판 시장은 크다.)
그러나 나는 영어로 책을 쓸 능력이 없으니, 일단 한글로 썼다. 초고를 완성한 시점은 2022년 말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한영 번역가 중 한 분을 만나서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설명하고 샘플 원고도 보여 주었다. 그분은 큰 관심을 보이며 기꺼이 번역할 뜻을 밝혔지만, 문제는 기존 계약 때문에 7개월 후에나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7개월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다른 번역가를 찾아볼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는 촉이 뛰어난 후배 K가 한마디 툭 던졌다. “요즘 인공지능 프로그램 좋은 거 많이 나왔는데, 선배가 직접 영어로 바꿔 보면 어때요?”
그때는 당시 번역기 중에서 최고로 손꼽혔던 딥엘(DeepL)과 지금은 누구나 그 이름을 아는 챗GPT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두 프로그램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잘 작동했고, 다행히 내 영문 독해력이 인공지능이 번역한 영어 문장이 내가 원래 하고자 했던 말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파악할 정도는 되었기에(땡큐, 성문종합영어!) 긴 시간이 걸렸지만 원고지 900매 분량의 한글 원고를 8만 6000단어의 영문 원고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한글 원고를 쓰는 데 걸린 시간은 5개월 남짓이었는데, 그걸 영어로 바꾸는 데 걸린 시간은 꼬박 1년이었다. (전문 번역가가 작업했으면 이보다 덜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업 작가가 아닌 회사원이므로, 업무 시간 후 야간이나 주말에만 작업했음을 고려해야 한다.)
이 책은 그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정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온갖 우여곡절이 있었다. 인공지능의 능력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인공지능의 한계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울 정도로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 처음부터 이 과정을 책으로 쓸 생각을 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두 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씨름하며 보낸 1년의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슬라이드를 수십 장 만들어서 두어 차례 강연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유료로 진행된 그 워크숍에 내가 유일하게 무료 초대한 사람이 민음사의 박혜진 편집자다. 내가 진행하는 책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의 고정 패널로 수년간 친분을 쌓아 온 그를 초청한 까닭이 있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꼭 ‘성사’시키고 나아가 ‘성공’시키고 싶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한국 작가가 쓴 책을 더 많이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물론이고 논픽션과 에세이까지, 한국 작가가 쓴 좋은 책은 정말 많다. 하지만 1인치보다 훨씬 높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K 콘텐츠’가 각광받는 이 시점에도 ‘K책’ 바람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면 한국어로 쓰인 책을 외국 독자에게 소개하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용이해질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출판사에서 한국문학팀장으로 일하는 그에게 작은 ‘자극’을 주고 싶었다.
다섯 시간 동안 진행된 워크숍이 끝난 직후, 박혜진 편집자는 나에게 놀라운 제안을 했다. 그날 내가 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책을 써 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그는 아무에게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제법 유명한 작가의 원고도 가차 없이 퇴짜를 놓는 ‘매의 눈’을 가진 편집자이자 문학평론가다. 그런데 샘플 원고는커녕 시놉시스도 없는 상태에서 책을 써 보라니. 이런 제안은 거절하면 큰 후회가 남는다. 생각해 보니 다섯 시간의 워크숍은 나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하기엔 너무 짧았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이 책이다.
참, 내가 1년 반 동안 매달린 그 프로젝트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외국인을 상대로 쓴 책이니 해외 출판사나 에이전트와 접촉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나는 애초에 한국에서는 한글과 영문 원고가 모두 포함된 형태로 책을 낼 계획이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200만 명 넘는 외국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외국인과 만나 대화를 나눌 일이 많은 한국인들이 좀 더 풍부한 내용을 좀 더 자연스러운 영어로 ‘K’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한국판은 지난 6월 『K를 팝니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인공지능과의 협업을 거쳐 한글 원고가 그럴듯한 영어 원고로 바뀌는 모습이 궁금하신 분들은 그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물론 이 책에도 다양한 사례를 소개해 놓았다.)
아쉽게도 해외판은 아직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 반년여의 시간 동안 100곳이 넘는 영미권 출판 에이전트 및 출판사에 제안서와 샘플 원고를 보냈지만 계약하자는 곳은 아직 없다. 물론 실망은 이르다. 조앤 롤링이 쓴 『해리포터』 원고가 200번 거절당한 것으로 유명하지 않나. 내가 영문 제목을 ‘All The Korea You May Not See’라고 붙여 놓은 그 원고가 『해리포터』 시리즈보다 재미있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국내에서 먼저 출간이 되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 또 여러 분야에서 K 열풍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릴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실용서’다. 가끔씩이라도 영어로 글을 쓸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큰 스트레스 받지 않고 꽤 괜찮은 문장을 얻는 데 필요한 인공지능 활용법을 설명했다. 이메일이든 연설문이든 논문이든 보고서든 보도자료든 기본 원리는 똑같다. 에세이나 소설은 훨씬 더 까다롭지만, 조금만 경험이 쌓이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이 책은 한글 원고가 이미 존재할 때 그것을 영어로 바꾸는 과정만을 다룬다. 몇 가지 지시만으로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원고를 ‘생성’하는 방법은 다루지 않는다.(그런 노하우를 알려 주는 책은 따로 많이 있다.) 즉, 한글 원고는 ‘인간 지능’으로 써야 한다. 둘째, 이 책은 비교적 높은 수준의 영문 독해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유용하다. 본문에서 충분히 다루겠지만,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영어 문장이 원래 자신이 표현하려 했던 내용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많은 한국인들이 네 가지 영어 능력 중에서 ‘읽기’, 즉 독해 능력이 가장 낫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실용서라고 해서 딱딱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 게다가 이 책은 정교한 이론을 알려 주거나 논리적으로 딱 떨어지는 원리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온전히 개인적인 체험을 소개하는 책이다. 때문에 최대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가볍게 서술했으며, 독자들이 강의를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심지어 그리 두껍지도 않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내가 범했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를, 내가 인공지능에 ‘적응’하느라 허비한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한글 원고를 ‘직접’ 영어로 바꿔 보라고 이야기해 준 후배 K와, 그 과정을 책으로 써 보자고 제안하고 격려해 준 박혜진 편집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또 한글 원고를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설명하려면 당연히 한글 원고가 먼저 존재해야 하는데, 자신의 원고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기꺼이 허락해 준 강양구, 장강명, 김혼비 작가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끝으로, 내가 연이어 작업한 두 권의 책, 『K를 팝니다』와 『나의 영어 해방 일지』가 한국의 많은 작가들과 출판 관계자들에게 자그마한 자극이 되기를 희망한다. ‘저 인간도 하는데, 나도?’ 이렇게 생각하며 용기를 낸 한국인들의 훌륭한 작품들이 영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곳곳의 독자들과 더 많이 만나게 된다면 참 기쁘겠다.
1 본문 중 파란색으로 표현된 것은 인공지능 번역 서비스 딥엘(DeepL)이 만든 문장입니다.
2 본문 중 빨간색으로 표현된 것은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가 생성한 문장입니다.
3 본문 중 음영으로 표시된 것은 각종 프롬프트(prompt)입니다. 저자가 챗GPT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문장에 도달하기 위해 입력한 다양한 프롬프트는 독자들의 실전 번역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 Hello. If you’ve opened this book, it means you’re planning to visit South Korea. Maybe you’ve got a specific trip planned, or maybe you’re just thinking about it as a place you’d like to visit someday. Whether it’s a short-term visit, such as a business trip or vacation, or a long-term stay, such as studying or working, you’re welcome to the wonderful idea of visiting Korea. Of course, you may have picked up this book because you love K-Pop or Korean dramas and movies and want to learn more about Korea. Either way, I’m confident that reading this book will help you learn more about Korea, increase your desire to visit, and make your time in Korea more enjoyable.
본문이 영어로 시작해서 당황하셨나요? 책의 특성상 앞으로도 영어가 많이 나올 겁니다.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위의 문단을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특별히 어려운 단어는 없으니 다 이해하셨죠? 영어도 멀쩡해 보이죠? 문법적인 오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미국인에게 보여 주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요? 실제로 제가 해 봤습니다. 이렇게 답하더군요. “외국인이 쓴 글 같아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매우 자연스러운데, 정작 네이티브 스피커가 볼 때는 뭔지 모르게 어색한 거죠. 만약 여러분이 만들고 싶은 영어 문장의 수준이 저 정도로 충분하다면, 즉 ‘대충 뜻만 통하면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책을 더 이상 안 읽으셔도 됩니다. 위의 글은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번역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딥엘(DeepL)이 제가 쓴 한글 원고를 영어로 바꿔 준 겁니다. 저는 무료 버전을 사용했고요, 어떠한 수정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노하우도 필요 없습니다. 딥엘 사이트에 접속해서 한글 원고를 ‘복붙’한 다음 엔터만 치면 됩니다. 1초도 안 걸립니다. 영어가 아니라 다른 수십 개 언어로도 ‘비슷한 수준으로’ 바꿔 줍니다.
하지만 ‘네이티브가 볼 때도 자연스러운’ 문장을 원한다면, 원래 내가 쓴 문장의 ‘느낌’까지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나아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소위 ‘임팩트 있는’ 문장을 원한다면 또 다른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유명한 챗GPT 말입니다.
먼저 한글 원문을 살펴볼까요? 원문은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된 바로 그 책, 『K를 팝니다』의 서문 도입부입니다.
— 안녕. 당신이 이 책을 펼쳤다는 건,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뜻이겠지. 구체적인 여행 계획이 잡혔을 수도 있고, 언젠가 한번쯤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출장이나 휴가와 같은 단기 방문이든, 유학이나 취업과 같은 장기 체류든, 한국을 방문한다는 멋진 생각을 갖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해. 물론 당신이 K팝이나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다가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서 이 책을 골랐을 수도 있을 거야. 어느 쪽이든, 이 책을 읽으면 한국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될 것이고,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질 것이고, 당신이 한국에서 보내는 기간이 더 즐거워질 것이라고 확신해.1)
어때요? 앞에서 봤던 영어 문장과 똑같다고 느껴지시나요?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딥엘은 ‘의역’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제가 쓴 한글 문장을 ‘그대로’ 영어로 바꿔 주는 프로그램이니까요. 제법 괜찮은 번역이라 느껴지지만, 이 글에 대한 미국인의 반응은 이미 말한 바 있습니다. 이제 딥엘 버전의 영문을 챗GPT의 도움을 받아 업그레이드해 볼까요? 챗GPT는 사용해 보셨죠? 아직 한 번도 써 보지 않으셨다면, 음…… 혹시 마차 타고 출근하시나요?
챗GPT는 대단한 프로그램이 맞습니다만, ‘프롬프트’라고 하는 명령어를 잘 입력해야 그 대단한 능력이 제대로 발휘됩니다. 한영 번역 과정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프롬프트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니, 여기서는 위의 영문을 챗GPT에게 줄 때 제가 사용한 프롬프트만 먼저 소개합니다.
—Please rewrite the following sentence in a style that makes it sound like it was written by an American author.
이 문장은 제가 직접 썼을까요? 그럴 리가요. “다음 문장을 미국인 작가가 쓴 것처럼 다시 써 줘.”라고 한글로 쓴 다음 딥엘을 시켜 영어로 만들었죠. 이에 반응한 챗GPT는 아래와 같은 문장을 내놓았습니다.
— Hey there! If you are reading this, chances are you’re planning a trip to South Korea. That’s awesome! Whether you’ve got a specific itinerary or you’re just dreaming of visiting someday, I’m here to tell you that you’re in for a real treat. Whether it’s a short-term visit, like a business trip or vacation, or a long-term stay, such as studying or working, you’re invited to explore the wonderful idea of visiting Korea. Maybe you’re a K-Pop or Korean drama enthusiast, seeking to learn more about the country. Regardless, I’m confident that reading this book will enrich your knowledge about Korea, ignite your passion to visit, and enhance your overall experience.
그렇습니다. 이미 눈치채셨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표기할 예정입니다. 제가 쓴 인용문은 고딕체로, 딥엘을 거친 영어 문장은 파란색으로, 챗GPT를 거친 영어 문장은 빨간색으로 표시하겠습니다.
첫 단어부터 달라졌습니다. ‘안녕’이라는 한 단어로만 작업했으면 “Hey, there!”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략 100단어 정도 되는 문장을 한꺼번에 입력하니 챗GPT가 문단 전체의 분위기까지 고려하여 저렇게 바꾼 겁니다.
어때요? 명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