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군자, 글로벌
경영의 심장에 이 세 가지를 새겨라!
지은이|권영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영 칼럼니스트이자 혁신 전문가. 2002년부터 한국경제신문에 기명칼럼 ‘경영 업그레이드’를 연재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미국 워튼스쿨 MBA과정을 마친 뒤 2004~2005년 ‘블루오션 전략’을 국내에 처음 소개, 전파하여 ‘블루오션’ 열풍을 일으키는 등 경영의 화두를 선도하고 있다.
수많은 강연장에서 경영 혁신에 관해 탁월한 입담을 발휘해 왔으며,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공공조직과 민간기업에서 경영자문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겨하며, 경영자와 리더십, 일과 직업의 세계, 혁신 조직의 비결, 미래의 시장 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한국경제신문에서 한경아카데미 원장, 글로벌포럼 사무국장, 한경가치혁신연구소장 등 여러 직책을 맡고 있다.
《직장인을 위한 변명》, 《심플의 시대》를 비롯하여 4권의 저서와《경영의 미래》, 《피터 드러커 리더스 윈도우》 등 8권의 역서를 냈다.
한경아카데미│ac.hankyung.com
경영자를 위한 변명
지은이 | 권영설
펴낸이 | 김경태
편집인 | 박윤조
펴낸곳 | 프런티어
제1판 1쇄 인쇄 | 2011년 1월 5일
제1판 1쇄 발행 | 2011년 1월 15일
등록 | 1967년 5월 15일(제2-315호)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중림동 441
전화 | (02)3604-580(기획출판팀), (02)3604-561~2(영업마케팅팀)
팩스 | (02)3604-599
전자우편 | hkfrontier@naver.com
ISBN 978-89-475-2785-9 0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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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자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4 우수콘텐츠 전자책 제작 지원” 선정작입니다.
글로벌 CEO를 기다리며
인생을 사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행복의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전에는 정말 그랬다. 태어난 그곳에서 각자 방식대로 행복을 느끼며 지냈다. 지금 조금 부족하면 나중에 행복해질 거란 희망으로 살면 됐다.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이 어쩌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유목민으로 동토의 땅 툰드라에 살면서 저 멀리 도시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면, 순록을 몰고 이끼를 찾아다니며 순록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텐트에서 잠을 자는 것이 고단한 삶이란 것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정보가 넘쳐나면서 비교를 하게 되고, 남들과 최소한 비슷하게는 살고 싶은 신세대들이 늘어나면서 이전까지 아무 문제 없이 살던 사람들이 행복과 불행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어쩌면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현대인의 삶은 대부분 직장인생이다. 크건 작건 어느 조직에 소속돼 하루하루를 보낸다. 대기업이건 공공부문이건 개인사업이건 혼자 하는 일보다 모여서 하는 일이 늘어난 것이 바로 현대의 특징이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들과 부대끼고 그 과정에서 자연히 비교하는 삶을 산다. 그래서 현대인의 삶은 어쩌면 불행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보자. 어떤 사람은 능력을 인정받아 일을 쌓아두고 산다. 매일 힘들어 죽겠단다. 그런데 그 사람만 힘들까. 그 사람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보자. 이 사람도 죽을 지경이다. 인정을 못 받아서 죽겠고, 잘나가는 사람 뒤치다꺼리 하느라 자존심 상해 죽겠고, 이 조직을 나가면 어떻게 살까 걱정돼서 죽겠단다. 회사나 조직 사회에서 매일 행복한 얼굴을 하고 지내는 사람이 왜 이리 적을까. 모든 것이 비교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정보가 온전히 노출되는 이 비교의 시대를 살아가자면 별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예전보다 수양修養이 더 필요하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점점 중요해진다. 특히 직장사회 혹은 조직의 리더인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 이런 노력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사람들 모두 우거지상을 하고 있어도 리더야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누가 뭐라 해도 한 조직의 장은 그 조직원 모두의 역할 모델이다. 밝은 얼굴, 맑은 눈빛, 여유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현실적인 고통이 있을 때도 그래야 한다. 겉과 속이 달라야 할 때도 많다. 이런 짐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 경영자다. 리더란 자리는 그렇게 고독한 것이다.
경제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나는 여러 가지 계기로 직장생활에 관한 글을 많이 써왔다. 신입사원을 위한 조언부터 중간관리자 그리고 간부들에 관한 얘기를 했고, 특히 경영자를 위한 칼럼을 적지 않게 썼다. 그렇다고 내가 다양한 경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실제로 보면 직장경험은 오로지 한국경제신문 한 회사다. 중간에 계열사로 적을 옮긴 적은 있지만 신문사에서만 20년 일했고 그것 말고는 전부 간접경험이다. 그런데 그 경력이 오히려 이런 글을 쓰는 데는 도움이 됐다. 이 업종 저 업종, 이 회사 저 회사, 이 부처 저 부처를 취재하다 보니 공통점이 보이고 차이점이 눈에 띄었다. 각 회사나 조직의 편차가 심해 한 업종의 시행착오가 다른 업종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한 회사의 작은 성공경험이 다른 회사에선 미래를 걸 만한 핵심 비즈니스모델이 되는 것도 목격했다.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업종과 조직을 넘나드는 성공과 실패의 방정식을 찾아내는 데는 아주 유리했던 셈이다.
분명한 것은 이 업종 저 업종, 이 회사 저 회사 둘러봤더니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의 패턴이 별다른 것이 없더라는 사실이다. 이 업종에서 보면 다른 업종은 성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고, 이 회사에서 보면 다른 회사가 훨씬 창의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아주 유별난 몇 회사를 빼고는 수준이 비슷하다. 모두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어떤 계기에 지금의 그 조직과 인연이 닿아 근무하고 있을 뿐이다.
제3자의 눈에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그 속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왜 교차하는 것일까. 그 답은 결국 그 사람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스스로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 것이냐, 아니면 자기의 길을 걸을 것이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왕이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고, 더 성공하고 싶다. 그렇다면 그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남과 비교하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것이 복잡한 현대생활에서 나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결정적인 변수다.
혼자 살라는 얘기가 아니다. 현대인에게 조직생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모여서 살되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이왕이면 회사라는 큰 조직을 통해 자신의 꿈과 비전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멋진 인생을 살 수 있고 그렇게 사는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의 경영자요, 사람들의 리더요, 한 조직의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생은 짧아서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첫출근할 때가 엊그제같은데 갑자기 정년을 맞는다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20~30년 정도면 이것저것 다 하기에 충분한 세월인 것 같지만 사실은 너무나 짧아서 처음에 하려고 했던 몇 가지도 제대로 못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그것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회사인생은 행복해질 수 있다.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또는 창업을 하면서 당신이 처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찾아 다시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누구나 가져야 할 것은 그 조직의 장長이 되겠다는 비전이다. 군대에 가면 장군이 될 생각을 해야 하고, 공직에 가면 장관이 될 생각을 해야 하며, 회사에 오면 사장을 하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조직에 들어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조직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든다면 정말 그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장이 돼야 한다. 그 조직이 하는 일에 부족한 점이 느껴진다면 자기 뜻대로 그 조직을 바꾸기 위해서 장이 돼야 한다. 그것이 회사인생을 사는 회사원들의 자아실현이다.
회사에 처음 들어오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이 조직에서 중간쯤만 할 거야. 너무 빨리 올라가면 빨리 쫓겨날 거고, 너무 늦게 올라가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겠지. 중간쯤에 앉아서 위험스러운 일은 피하고, 정년퇴직할 때까지 그냥 즐겁게 살 거야. 잘난 놈들이 앞장설 거고, 못난 놈들이 뒤처지겠지. 나는 그 가운데서 나만의 행복을 찾을 거야.”
이런 사람은 거의 없다. 열심히 하다가 안 돼서 포기하는 경우는 많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산다. 그리고 이왕이면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가장 높은 사람, 또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회사를 만들고 싶어하게 돼 있다. 그것이 조직의 구성원이 되기로 한 사람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인 것이다. 그렇게 ‘기본’이 돼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그 조직이 건강하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경영자, 혹은 경영자가 될 사람, 그리고 경영자가 되고 싶은 사람. 당신과 얘기를 나누게 돼 기쁘다.
많은 경영자를 만나면서 나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경영자에 대해 묘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영이라는 것이 아주 특별한 기술이요, 그래서 경영자 혹은 사장들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실제 이미 사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그냥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밀려서’ 그 자리에 있게 됐지만 ‘실제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까지 있다. 그러나 이건 너무 지나친 자기비하다. 지금 그 자리에 있다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 이미 당신이 경영하는 위치에 있다면 자신감을 갖고 일하는 게 중요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자세를 갖추려 노력하는 건 어떨까. 이왕 경영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내가 처음 이 회사에 들어올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정말 좋은 회사를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하는 식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넘쳐날 때 우리 사회는 스스로 책임지고 스스로 결정하고 먼 미래까지 생각하는 진정한 경영자들의 나라가 될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도 그렇게 되는 것, 또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하는 것을 스스로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대는 경제 중심 사회다. 점점 더 그렇게 되겠지만 이미 기업의 리더들이 역할 모델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반反기업 정서 때문에 대기업 회장을 부럽기는 하되 존경하거나 배워야 할 대상으로 생각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스티브 잡스, 잭 웰치,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세계적인 기업인의 이름은 연일 신문에 오른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 한국의 경영자라면 자기 자신이 이런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계인들의 입에 오르겠다는 각오 정도는 해줘야 옳다. 현실적으로 당대에 그것이 어렵다면 먼 나중에라도 우리 후배 경영자들이 세계적인 CEO로 자랄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주겠다고 다짐해야 맞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반세기도 안 돼 선진국 근처까지 성장한 우리의 과거 발전사를 보면 이런 나의 말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안 되더라도 다음 세대에서는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경영자는 일개 회사나 조직의 수장을 넘어 글로벌 리더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경영자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고 스스로를 수양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에게서는 고수다운 멋이 번져나오고 군자君子다운 풍모가 풍겨나온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고수의 실력과 군자의 윤리관, 그리고 글로벌 감각 등 세 가지를 갖춘 새로운 경영자 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러 조직과 회사의 경영자들을 만나면서 나는 이 세 가지 덕목이야말로 대한민국 경영자들이 갖춰야 할 필수요건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됐다. 한 가지만으로도 경영자는 될 수 있지만 이왕이면 뛰어난 실력을 갖춰야 하고, 뜻이 올바라야 하며, 세상을 상대로 한 포부를 길러야 경제 중심 사회의 리더로 우뚝 설 수 있다.
그런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 몇 가지만 나열해 본다.
우선, 목표가 원대해야 한다. 리더가 보통사람하고 다른 점은 역사의식에 있다.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미래와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지금 자신이 한 일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뒤를 잇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그 품격이 다르게 돼 있다. 당연히 비윤리적인 일,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아니라 의미있는 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회사를 통해, 이 조직을 통해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이냐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갖춰야 할 버릇이 있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아이디어, 이왕이면 미래를 걱정하는 시각을 항상 견지해야 한다. ‘나의 과거’가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얘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는 안 돼도 우리 부서가 지금 부딪히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사가 3년 뒤에 겪게 될 일을 미리 걱정할 정도는 돼야 한다. 그래야 목표가 점점 커지고 미래 지향적이 된다. 과거를 얘기하는 사람은 부서장은 될지 몰라도 저 먼 길을 제시하는 리더는 될 수 없다.
두 번째로는, 문제해결 능력을 많이 길러야 한다. 현대인은 일로 만나기 때문에 일에 있어서 고수가 되지 않으면 부하나 파트너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어렵다. 특히 비즈니스 계통이라면 더욱 그렇다. ‘큰 결정만 내리는 사장’이 최고라고 하지만 그 사장 역시 이미 모든 디테일을 꿰뚫고 실무를 잘 알아야 큰 결정을 제대로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CEO를 지향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단련법은 이곳저곳 뒹굴며 다양한 문제를 접하는 것이다. 해외 오지에도 나갈 수 있어야 하고, 탈락이 뻔한 공개입찰에도 뛰어들어야 하며, ‘폼’ 안 나고 힘든 을乙의 일도 나서서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케이스를 만나게 되고 그것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문제해결 능력이 길러진다. 새로운 일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한 분야만 파는 전문가의 길을 걷는 게 차라리 낫다. 한 조직의 리더가 되고 세계적인 CEO가 되려면 그런 자세는 버려야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어떤 문제든 내게 맡겨라’ 하는 열린 자세를 갖자. 그렇게 되면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이왕이면 좁은 시장이 아니라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기업에 몸담고 있는 경영자라면 이미 포화된 내수시장뿐만 아니라 계속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비즈니스를 고려해야 한다. 아직 작은 회사라면 직원들이 우리 지역, 우리 도시, 우리 나라를 상대로 열심히 뛸 때 경영자는 아시아의 신흥시장을 연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FTA(자유무역협정) 논의를 벌이고 있는 나라를 살피며 과연 우리 회사에는 어떤 기회가 올까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해외 전시회, 해외 세미나 등 동향에도 관심을 갖고 진정한 글로벌 경영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이것이 지난 50년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성장한 뒤 선진국으로 새롭게 도약해야 하는 대한민국에 사는 경영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정신자세다. 너무 당연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의 CEO들은 자신의 영어실력을 반드시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직접 협상도 해야 하고, 프레젠테이션도 해야 하고, 외국 경영자들도 사귀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설은 기본이고 말이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다듬는 데 영어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경영자인 당신이 영어에 자신감을 가져야 회사에도 그런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일과 직원들, 그리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과 정서적인 끈을 맺는 매력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혼자 일하지 않고 회사에 다니는 것은 혼자 일할 때보다 더 크고 원대한 일을 벌이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직원들로 시작해서 고객, 파트너 등과 날마다 접한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그것이 중요하다. 믿을 만한 사람, 매력적인 사람, 다시 보고 싶은 사람, 대단한 사람, 똑똑한 사람……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다. 경영자인 당신이 있어 회사가 더 유명해지고,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고, 신뢰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것이 당신이 경영자로서 사람들을 만날 때 더욱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위축된 채 예의를 차리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왕이면 좀 더 정서적으로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제 기술이나 재능 못지않게 인간미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첩경은 사실은 스스로의 인격수양에 있다. 경영자들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면 갈수록 스스로를 경계하는 옛 선비들로부터 배워야 할 덕목이 여기에 있다.
한국의 리더는 정치인, 군인, 학자 등을 넘어 이제 기업부문에서 배출될 시대가 왔다. 실제 기업 출신의 정치 리더들이 나오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보단 기업부문이 사회를 선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 후배들이 역할 모델로 삼을 만한 한국의 경영자들이 쏟아져나오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나라는 선진강국이 될 수 있고 세계적으로도 우리가 공헌하는 것이 늘어갈 것이다. 《경영자를 위한 변명》은 이런 경영자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은 마음에 적어본 한국의 CEO론이다. 사람들이 몰라줘도 화내지 않고, 평가는 뒷날 먼 뒷날 후세들이 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현재에 충실하며 큰 꿈을 꾸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우리가 만나고 싶은 경영자들이 아닐까.
《경영자를 위한 변명》은 벌써 10년 전에 쓴 나의 책 《직장인을 위한 변명》의 후속편이다. 우리 시대의 경영자는 과연 누구이며 그들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세상에 필요한 위대한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봤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밝혀본다는 의미에서 변명辨明이라고 했는데 우리말의 다른 뜻이 있으니 해석은 독자들의 자유에 맡긴다.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은퇴를 준비하기 쉬운 우리 시대의 경영자들에게 한 단계 더 나아가자고 제안하는 주장을 담았다. 실제 CEO들의 애환도 적어봤다. 당신과 빗대 생각해 보라. 나는 어떤 사람이 돼야 할 것인가.
세계를 놀라게 할 거대한 비즈니스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쏟아져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영자라는 험난하지만 위대한 길에 이미 들어선 당신과 함께 떠나는 짧지만 의미 있는 생각여행이 될 것이다. 이제 그 얘기를 시작하자.
차례
그는 30대가 지겨웠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에겐 30대가 악몽이었다. 무엇인가의 부속품이 된다는 건, 아무리 그 조직이 크고 괜찮아도 싫었다. 자기 혼자로는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자기 힘만으로는 해낼 수도 없는 큰일을 해보고 싶었다. 조직의 힘으로, 시스템을 활용해 놀라운 결과를 낳고 싶었다. 그가 이른바 경영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 하는 솔로 플레이어, 또는 단기필마單騎匹馬로도 나름의 멋은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양새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작은 꿈을 이루는 데 그칠 것만 같았다.
40대에 들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작지만 조직의 장長이 됐고 이후엔 다른 일이 벌어졌다. 아무리 작아도 조직은 자신이 세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단기, 중기, 장기 목표를 가진 팀이요, 부대다. 매일 쓰는 용어부터 달라진다. ‘나’라는 단어는 점점 사라지고, ‘우리’가 중요해진다. 부원들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팀워크가 더 신경 쓰인다. 한 사람 한 사람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가 더욱 중요해진다. 왜? 그만큼 꿈이 커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조직도 개인이 혼자 일할 때보다는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 작은 조직의 장이 되면서 그의 꿈은 커졌다. 경영의 힘을 믿기 시작했다. 마음으로는 이미 회사의 주인이 됐다. 그는 믿는다. “이 회사는 남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 내가 원하는 만큼 커질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만큼 자랄 것이다.”
전형적인 한국의 경영자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조용히 소박하게 혼자 일하는 것보다는 이왕이면 회사 시스템을 통해 큰 경쟁에 나서고 큰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자리에 앉고 싶어해야 주인의식을 가진 경영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솔로 플레이어가 되기를 원했으면 다른 커리어 경로를 택했을 것이다. 문과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경쟁을 현대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인간성 말살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귀농歸農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단기필마가 아니라 부하들을 이끄는 조직의 장이 되고 싶다고 해서 모두가 그 목표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자기 뜻대로 조직을 움직여보는 행운을 갖지 못한 채 회사의 형편에 따라, 경제상황 때문에 옷을 벗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지금 경영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당신은 기업의 목적에 잘 맞는 인재요, 행운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30대가 불만이었던 당신은 그러나 그 ‘졸병 시절’의 불만을 계속 간직해야 한다. 리더가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면 그 조직이 더욱 성장할 수 있고, 하루하루 일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며, 회사에 미래를 걸겠다 각오하는 직원들이 늘어날 것이라 믿어온 당신의 생각을 소중히 간직하고 또 더욱 키워가야 옳다. 그것이 경영자로서 당신에게 주어진 책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영 그 자체를 연구하고 고민하고 당신 나름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이제 당신은 일개 직장인이 아니다.
좋은 경영자가 되는 것, 그리고 착실하게 경영성과를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영 그 자체를 잘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지혜가 있어야 하며, 어려울 때 스스로 포기하지 않은 신념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거기다 당신이 지원군이라고 믿고 있는 부하직원들로부터 존경과 사랑, 그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한 인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행운까지 따라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발전하고 해마다 새롭게 성장할 수 있으며 그를 바탕으로 더 큰 꿈과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런 고민은 우리 시대의 경영자 또는 간부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사정이 좋지 않은 경영자라면 이런 고민조차도 사치스럽게 느낄 정도로 눈앞에 펼쳐진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경영 이슈일 수도 있고, 반대로 큰 성장을 이룬 경영자는 이보다 좀 더 고차원적인 과제들, 즉 미래와 글로벌 비전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자신만의 명상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생존이든 미래 비전이든 결국 그 방향성을 자신의 결단으로 잡아야 하는 경영자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경영자의 모든 판단은 투기적이다. 모험적인 투자는 당연히 투기에 속하겠지만, 위험을 회피하고자 결정을 보수적으로 내렸고, 결국 지나치게 몸을 사린 탓에 다른 회사들이 기회를 잡았다면 그 역시 실패한 투기다. 그만큼 경영자는 늘 모험 앞에 노출돼 있고, 그래서 항상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최종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경영자는 본질적으로 외롭게 돼 있다.
기업을 포함한 각종 기관의 중요 간부들을 리더라고 부른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 이전에는 주로 매니저manager, 즉 관리자라고 불렀다. 리더와 관리자는 같은 사람을 지칭할 경우가 많지만 그 의미는 큰 차이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관리자들이 직원들을 규정과 교육으로 이끌어간다고 하면 리더는 모범으로 선두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 관리자들을 따르지 않으면 징계나 해고 같은 불이익이 오지만, 리더를 따르지 않으면 눈에 띄는 불이익은 별로 없다. 다만 그 리더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뿐이다. 관리자들을 열심히 좇는 직원들은 회사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수준을 성취할 뿐이지만, 리더를 잘 따른다면 혼자 배웠다면 절대 오르지 못할 수준까지 실력이나 경영마인드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경영자인 당신은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리더가 돼야 옳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덕목이 꽤 많다. 특히 리더를 따르는 추종자follower 신분이었다가 인사이동으로 어느 순간 ‘갑자기’ 리더로 바뀌는 우리의 회사 현실에서는 리더는 보통사람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 시기적으로 회사의 간부가 되는 순간부터 공적인 것, 역사적인 것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하고, 작은 성공에 만족하거나 도취되지 않도록 스스로 수양에 힘써야 하며, 새로운 미래를 선도할 수 있도록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이미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리더십 역량에 고민이 많은 경영자들이 많은 이유, 또 정답이 없을 것 같은 리더십 분야에 책도 많고 교육과정도 많은 데는 이런 사연이 있는 것이다.
과연 리더십이란 것이 정답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봤다. 20여 년 동안 경제기자 생활을 하면서 국내외 리더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그들 모두에게 통하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선 대부분 머리 좋은 사람들이 리더였고, 또 다른 분야에서는 부하들을 잘 이끄는 사람들이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공공부문의 경우에는 핵심분야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실력으로 부하들을 감화시키고 있었고, 정치부문에서는 줄서기의 명수들이 나중에 ‘큰 인물’이 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어떤 특질이 리더가 되는 데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덕목이라고 얘기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렇다고 리더십 논의가 허망한 일일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알지 못하는 리더십의 본질적 요소는 무엇일까. 나 스스로에게도 몇 년 동안의 생각거리였다.
그런데 몇 년 전 내가 만난 리더 누구에게나 통하는 리더십의 특질을 찾을 수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가 ‘세레노sereno’라는 단어를 찾아냈다. 세레노는 ‘평온하다’ ‘청명하다’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 말이다. 세레노한 사람이란 긍정적이며 밝은 사람을 말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한니발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장군을 그런 매력적인 리더의 전형으로 들고 있다.
나는 전에 어떤 작품에서 이탈리아어로 ‘세레노’한 분위기, 굳이 번역하자면 담백하고 소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지도자로 성공하는 남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야말로 젊었을 때부터 이런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연단에 올라선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흉중에는 그를 지지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그리고 대머리가 되기 전의 스키피오는 미남이기도 했다.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난 유능하고 잘생긴 이 젊은이는 자기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타고난 붙임성 때문에 불쾌감이나 반감을 느끼지 않고 그의 이런 확고한 자신감을 받아들였다.
—《로마인 이야기 2》 중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사람들마다 병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지만 나름의 고뇌와 상처가 하나씩은 있게 마련인데, 그런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밝은 사람에게 끌리게 마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듯이 말이다. 실제로 실력도 뛰어나지 않고 또 그렇게 사람을 끌 만한 요인이 많지 않은데도 주위에 사람들이 꼬이는 사람은 대부분 ‘세레노’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만난 회장, 사장, 장관, 차관, 시장, 군수, 교장, 협회장 등 이름이 붙은 리더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바로 낙관주의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이를 드러내며 큰 소리로 호언장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잘될 겁니다” 하며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은 바로 긍정적이며 밝은 리더십, 바로 세레노 리더십이었다.
세레노 리더는 그 자신이 에너지원이다. 스스로 밝기 때문에 남들에게 관심이 많고 배려도 많이 하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부하들이 스스로 알아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조직 전체를 성장시키는 ‘서번트servant 리더’와도 맞닿아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세레노 리더’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바라보고만 있어도 흐뭇하고 가까이 가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말이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상사가 있어야 회사도 정겨운 일터가 된다.
왜 긍정적인 에너지가 중요한가.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듯 긍정적 에너지보다는 부정적 에너지가 전파력이 크기 때문이다. 만족한 손님이 3명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반면, 불만을 느낀 고객은 9명에게 험담을 늘어놓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부정적 에너지는 상대방의 감정에도 충격파를 준다. 똑같은 인물을 보고도 “얼굴 참 좋아졌네”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얼굴 부었네”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아침에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달라진다. 세레노한 사람은 늘 밝은 얘기를 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부하를 질책하기보다는 ‘잘될 것이다’는 신념을 갖고 또 그런 요지로 부하들을 독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