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호
김서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원을 마친후 경남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다 KBS 극본 공모에 당선되어 100여 편의 단막극을 썼다. 늘 방송에 부적합한 내용을 쓴다는 평가에 의기소침해하다 아예 방송으로 만들 수 없는 이야기를 해보자고 작정하고 쓴 첫 소설『선량한 시민』으로 제9회 세계문학상우수상을 수상했다.
에드거 앨런 포와 아서 코난 도일의 팬이며, 공포영화광답게 살인, 죽음, 공포라는 소재에 매료되어 있다. 그 결과 비극적인 현대사를 배경으로 대를 이어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다룬『2월 30일생』을 완성했고, 현재 세 번째 소설을 준비 중이다.
∷ 차 례
눈〔雪〕의 감촉
내가 범인일까?
오래된 신문, 흘러간 사건
다시 살아나는 사람
불놀이
이화에 월백하고
한 남자와 네 명의 여자
기억은 다르게 적힌다
검은 너울
2월 30일생
그녀의 사진 한 장
이것은 꿈일까
어리석은 선택의 연쇄
마지막 한 점 불빛
그냥 지나가지는 않는다
작가의 말
혜린의 시체가 발견된 것은 토요일 오후였다. 그 며칠 전에는 엄청난 폭설이 쏟아졌다. 한겨울에도 따뜻한 남부의 소도시 J시에 눈이 내린 것은, 그것도 2월에 눈이 내린 것은 30여 년 만의 일이었다. 눈은 솜털처럼 가볍게 살랑거리며 J시의 모든 지붕과 거리, 그리고 J시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항구와 바다 위에 내려앉았다. 어린아이들은 죄다 밖으로 뛰쳐나와 생애 첫 눈사람을 만드느라 강아지처럼 돌아다녔고, 거리 곳곳에서는 여고생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으며, J시의 모든 연인들은 서둘러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도시 전체가 눈을 즐기는 동안 혜린은 호흡을 멈춘 채 눈을 덮고 누워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눈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것을 전혀 몰랐다.
하긴, 그때 내가 몰랐던 것이 그것만은 아니었다. 남해안의 따뜻한 햇볕에 쌓였던 눈이 금세 녹아내리고, 강가에 버려진 혜린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냈듯 모든 진실이 드러났을 때, 나는 그동안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눈 내리던 그날 밤에 나는 모든 기억과 시간이 끊어진 완벽한 암흑 속에 있었을 뿐이다. 내가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 어쩌면 그것만이 그 후로 펼쳐진 모든 사건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눈은 늦은 밤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저녁에 우리 가족은 최근 새로 들어선 동강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호텔은 동강과 지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전망이 아주 좋았다. 내가 어렸을 때 이 부근은 그저 갈대밭과 낚시꾼들만 모여드는 습지였지만 최근 개발 붐으로 인해 대형 마트와 함께 새로운 상가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어항(漁港) 주변의 전통적 상권을 밀어내고 새로운 중심가로 변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미리 예약해둔 1층의 한정식 레스토랑에 모여 앉았다. 창문 너머로 겨울 갈대가 마른 잎을 서로 비비며 바람에 휩쓸리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가족은 제일 상석에 앉은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부모님과 작은아버지 내외가 자리를 잡고, 미래와 내가 마주 보며 그 옆에 앉았다. 아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도 아내에 대해 묻지 않았다.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특별한 기념일을 챙기기 위해 모인 자리는 아니었다. 지역 방송사에서 곧 다가올 삼일절 기념으로 할아버지의 생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독립투사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풍상을 겪으며 치과 의사가 되어 지역 유지로 자리 잡은 분이었다. 그전부터 할아버지의 생애를 방송에서 소개하고 싶다는 요청이 여러 번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거절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버지가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한 탓에 할아버지가 수락한 것이었다.
“역시 할아버지는 누구를 언제 움직여야 할지 정확하게 아는 분이셔.”
촬영 때문에 고향 집으로 간 나에게, 2층 거실에 여전히 걸려 있는 나와 아내의 결혼 사진을 보며 여동생 미래가 말했다. 미래는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쓸어 올리며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손주들의 이름을 지을 때 집안의 항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는 현재에 충실히 살라는 의미로 ‘현재’, 여동생에게는 항상 앞을 생각하라는 의미로 ‘미래’라는 상당히 현대적인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가끔 나는 어디에선가 ‘과거’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형제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이름처럼 나는 대체로 나에게 주어진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것 같다. 1979년생인 나에게는 학생운동도, 민주화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초등학교 시절에 지나갔다. 그 덕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는 그저 도서관과 강의실만을 왔다 갔다 했으니, 혁명도, 사랑도 모두 흘러간 옛 노래처럼 나와는 무관하게 비켜 갔던 셈이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범생이’라는 지루한 이미지의 딱지였다. 하지만 미래는 좀 달랐다.
미래는 나와는 열 살 터울의 늦둥이여서 내가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할 때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렇다 보니 미래와 나는 유전자적으로 남매이긴 하나 거의 남처럼 지냈다. 간간이 미래가 어릴 적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오직 게임과 만화에 빠져 살 뿐만 아니라, 얼마나 고집이 센지 누구의 말에도, 심지어 할아버지의 협박과 회유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를 통해 풍문처럼 들을 때도 나는 재미있다고만 생각했을 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컨대 나는 미래에게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미래는 일주일을 단식한 끝에 자신의 고집대로 대안학교로 진학했고, 대안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유학이다 어학연수다 하며 외국으로 나돌았기 때문에 철이 들고 난 후 미래와 나는 얼굴을 본 것조차 몇 번 되지 않았다. 심지어 미래는 나의 결혼식 때도 “결혼이라니, 오빠의 용기에 진정으로 찬사를 보내. 행복은 장님과 같으니까 오빠한테 찾아갈 수도 있겠지”라는 축하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글이 적힌 카드 한 장을 달랑 보냈을 뿐이다.
미래와 진지하달 수 있는 얘기를 나눠본 것도 사실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가족 모임의 모습을 넣고 싶다는 피디의 요청에 따라 고향 집으로 내려왔다. 피디는 ‘할아버지의 생애를 되짚어보는 손자’라는 콘셉트를 세워두었는데, 나는 그 콘셉트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이 아버지의 공천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니 모른 척할 수 없는 데다, 나 역시 방송국 밥을 먹는 처지라 피디에게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는 게 동종 업계의 윤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내가 하던 프로그램이 봄 개편에 폐지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나는 마지막 촬영분의 편집을 모두 끝내둔 상태여서 쉽게 휴가를 낼 수 있었다. 피디는 이미 할아버지의 고향에도 다녀왔고, 여러 차례에 걸쳐 할아버지와의 인터뷰를 따두었다. 남은 것은 잘 길러낸 후손들과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할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었다.
할아버지가 아내를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도 촬영 당일 아침에는 집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내가 할아버지를 상대로 위자료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협상 상대로는 대단히 깐깐한 분이기 때문에 아내도 방송의 소품 노릇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품’이라는 단어를 처음 꺼낸 건 미래였다.
“오빠와 새언니는 방송에 적합한 소품이지.”
“무슨 말이야?”
“유복한 집안에서 범생이로 자라,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신혼부부. 사람들은 그런 예쁘장한 걸 보고 싶어 하잖아. 백화점에서 파는 수입 그릇 같아, 오빠와 새언니는.”
나는 아내와 나를 그릇에 비교하는 것이 썩 듣기 좋지는 않았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늘 아내를 도자기에 비유하곤 했던 것이다. 미래의 말을 듣고 나니 도자기보다는 수입 그릇이 더 적절한 비유처럼 느껴졌다. 방송에서는 그 값비싸 보이는 수입 그릇 세트에 금이 가 있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을 터였다.
고향 집에 도착한 날 밤이었다. 외지에서 의사로 일하는 작은아버지 내외까지 와서 집 안은 모처럼 왁자했다. 나는 여러 가지로 피곤함을 느꼈고, 좀 조용한 곳에 혼자 있고 싶어 2층으로 올라간 참이었다. 2층 거실에서 미래가 혼자 담배를 피우다 계단을 올라오는 나를 힐끔 돌아보았다. 나는 흠칫 놀랐다. 담배 때문이 아니라 고개 돌려 나를 쳐다보는 그 모습이 너무나 혜린을 닮았기 때문이다.
혜린아…….
나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그 이름을 겨우 삼켰다. 잠시 잊었던 파문이 다시 내 가슴속에서 퍼져나갔다.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 나는 잠자코 미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미래는 나에게 담배를 건넸다. 나는 불을 붙여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온 미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혜린을 연상하게 만드는 부분이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닮은 데가 있었다. 그러자 혜린에 대한 생각이 홍수처럼 나를 덮쳤다. 나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 담배 연기만 들이마셨다.
미래는 이번 방송에 어떤 식으로든 할아버지의 의지가 개입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사실은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판사와 변호사 경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국회의원 공천을 받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낮은 인지도였고, 반대로 할아버지는 이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바로 할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왜 할아버지는 직접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할아버지 성격으로 직접 하시는 게 맞는데 말이야.”
“예전에 할아버지한테 공천 얘기가 꾸준히 있었다고 들었어. 할아버지가 다 거절하셨지만.”
“신기하네. 그걸 거절하실 분이 아닌데 말이지.”
“그땐 할아버지가 학교 이사장으로 가신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경황이 없으셨겠지. 또 그땐 할아버지한테 안 좋은 일도 많았어.”
“화력발전소 사건 말이지? 그건 나도 알아.”
할아버지는 J시가 고향은 아니지만 6·25 전쟁 후부터 여기서 자리를 잡아 오랫동안 지역 유지로 활약해왔다. 당시 J시는 국내 최대의 멸치 어장으로 돈이 들끓는 도시였다. 들어오는 배마다 만선이었고, 문을 연 술집마다 만석이었다. 선원들은 흥청망청 돈을 뿌렸고, 그 덕에 모든 관련 업종들, 술 도매상에서부터 옷 가게, 포목 가게, 미장원, 그릇 가게까지 덩달아 흥청망청했다.
그랬는데 이곳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두환이 집권하던 80년대 초반이었다. 대부분의 J시 사람들은 화력발전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지만 할아버지는 달랐다. 바닷가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 그 폐수로 인해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고 그것은 멸치 어장의 끝을 의미했다. 멸치 어장의 끝은 J시의 끝이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 정부의 결정에 반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어차피 되지 않을 일이라면서 체념했지만 그때도 할아버지는 달랐다. 할아버지는 화력발전소유치반대위원회를 조직했다. 위원회를 결성했다고 해도 사실 정부가 두려워 모두가 이름 올리기를 거부했고, 서명을 해준 사람은 J시의 중심을 차지하는 중앙시장의 이름 없는 상인들, 할아버지가 돈을 뿌리고 다녔던 술집의 마담들과 아가씨들이 고작이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그 명단을 들고 야당 정치인을 찾아다니며 그 불가함을 호소했다. 당시 야당의 거물 정치인 중에 멸치에 대해 좀 아는 인물이 있어 화력발전소는 결국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할아버지는 안기부에까지 끌려갔고, 꽤나 혹독한 고생을 치렀다. 당시 야당에서 할아버지에게 공천 말을 꺼낸 것은 그 일이 계기가 되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정치인이라면 끔찍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국회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할아버지는 백방으로 노력하셨어.”
“마음이 변하셨겠지. 또 자식 문제가 되면 부모는 달라지니까.”
“아버지가 먼저 원했다고 생각해? 아냐. 할아버지가 늘 아버지에게 출마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아버지는 할아버지 말씀에 절대 복종이잖아. 나는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가 정치로 나가는 게 더 어울렸을 거라고 생각해. 에너지도 더 강하고, 더 치밀하고, 게다가 더 꼴통이고.”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서슴지 않고 꼴통이라고 말하는 미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얼마 전에는 진보 정당에 가입했노라고 집안에 선언해서 아버지와 대판 다퉜다는 얘기도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다. 미래는 이런 식으로 집에서 가족들을 도발하며 혼자 노는 모양이었다. 나는 미래와는 달리 소속 정당도 없었고, 정치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나에게는 공들여 빚은 도자기처럼 단정하고 예쁜 아내와 그 아내의 배 속에서 자라는 7개월 된 아이가 있고, 남들 몰래 만났던 연인이 있었다. 혜린은 미래 또래였고, 나는 혜린과 비겁하게 헤어졌다. 불과 3개월 전이다.
할아버지는 손수 우리에게 향기 좋은 술을 부어주었다. 창밖으로 보이던 갈대숲은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식사는 마지막 코스까지 다 끝났고 종업원들은 디저트로 수정과와 색색의 경단을 가져다 놓고 나갔다. 나는 식사하면서 받아 마신 술 때문에 취기를 느꼈다.
“저쪽에서는 말이야…….”
저쪽이란 아버지와 같은 정당 출신으로 이 지역에서 이미 3선의 경력을 쌓은 현역 국회의원을 말했다. 아버지로서는 버거운 상대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전부터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한 데다, 당권을 쥔 세력과 껄끄러운 관계여서 낙천할 거라고 다들 떠들어댔다. 이 지역은 여당의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되는 곳이라 공천이 선거의 모든 것이었다.
“저쪽에서는 우리가 인지도가 낮다는 것을 주로 물고 늘어지겠지. 하지만 이번 방송이 나가면 인지도는 꽤 올라갈 거야.”
“이게 전국 방송이면 더 좋은데 말이죠.”
작은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얼마 전에도 작은아버지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전국 방송으로 내보낼 수 없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런 결정을 하려면 방송국 사장이나 이사급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지난해에 겨우 조연출 딱지를 뗀 신참 피디에 불과했다.
“그래, 방송국은 재밌냐?”
작은아버지가 물었다.
“직장 생활이란 게 다 그렇죠, 뭐. 그래도 할 만해요.”
내가 학위를 포기한 채 갑자기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 가장 실망한 사람은 할아버지였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재경부 관리나 대학 교수가 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했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설득해서 다시 미국으로 돌려보내려 할 때도 그냥 놔두라며 오히려 내 편을 들어주었다.
“요즘은 방송인들이 국회로 많이 가더구먼.”
그것이 할아버지의 진심이었던 것이다. 나는 국회의원이 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반드시 아버지가 국회의원이 되어서 부디 할아버지의 뜻을 실현해주기만을 바랐다. 할아버지가 마음먹은 이상 그것은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 같은 것이 나에게 있었는데, 그것은 할아버지만의 고유한 능력이었다.
내가 알기로 할아버지는 검찰에서부터 조폭까지, 모두와 친하고 호형호제했다. 동시에 할아버지는 늘 누군가와 소송 중이었으며, 또 누군가와는 연애 중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간통으로 피소되어 법정에 선 적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문이 날까 봐 전전긍긍했지만 J시에서 그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할아버지를 비난하지 않았다.
“아무나 그렇게 못 하지, 대단한 양반이야.”
“힘도 좋아, 암튼.”
“그게 힘만 가지고 될 일이냐? 돈 있지, 인물 좋지, 말발은 좀 세? 다 갖췄지, 다 갖췄어.”
“고소한 그놈이 미친놈이지. 칠순 노인네한테 마누라 뺏긴 게 무슨 자랑이라고 고소야, 고소가! 조용히 합의를 볼 것이지!”
할아버지는 결국 합의를 보고 나왔다. 고소한 남자는 할아버지에게 당시 돈으로 5천만 원을 요구했는데, 할아버지가 “니 마누라 값이 그것밖에 안 되냐”며 천만 원을 더 얹어줬다는 이야기가, 믿거나 말거나 온 거리에 좍 퍼졌다. 그리하여 할아버지에게는 ‘6천만 원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부모님은,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엄청난 충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 듯했지만 나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당신의 이기적 목적과 만족을 위해 다소 구린 일도 태연하게 해낼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나는 할아버지를 항상 좋아했다. 아마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사람에게 끌리는 것과 유사한 원리일 것이다. 할아버지도 어릴 적부터 나를 무척 귀여워했고, 항상 나를 믿어주었다. 혜린의 문제가 집안에 알려졌을 때도 결국은 할아버지가 수습해주었다.
도대체 아내가 혜린의 일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혜린은 나와 같이 일하는 작가였던 데다, 내가 아내의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여자들은 동물 같은 본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나의 외도에는 할아버지의 간통과는 달리 공감이나 선망의 대상이 될 만한 점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결혼 3년 만에, 더욱이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까지 생긴 처지에 바람이나 피우고 다닌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백화점의 수입 그릇처럼 예쁜 아내는 친정으로 가버렸다, 라고만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내에게 너무 심한 말이 될 것이다. 나는 아내가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나쁜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나쁜 생각은 하지 않아. 내 배 속에는 아이가 있으니까, 좋은 생각만 할 거야, 좋은 생각만…….”
나의 부정을 알았을 때, 아내는 바들바들 떨며 그렇게 말했다. 며칠 동안 아내는 심한 몸살을 앓았지만, 약 한 봉지 삼키지 않고 버텼다. 40도를 넘는 고열에 시달리면서 그녀는 배 속의 아이만 걱정했다. 나는 아내가 아픈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배신감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몸살에서 깨어난 후 아내는 침묵했다. 어떤 앙탈이나 분노도 드러내지 않았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녀가 배 속에 아이를 가진 채 얼마나 갈등하고 힘들어했을지, 그걸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곧장 J시로 불려 와 아버지의 호통과 어머니의 눈물 섞인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어머니는 기도서와 성경을 머리맡에 놓고 아예 드러누웠다.
“너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정말 너까지 그럴 줄은…….”
나는 어머니께 정말 죄송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무래도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언성도 높이지 않았다.
“평생 한 여자, 한 남자만 쳐다보며 살라는 건, 사실 우스운 얘기지. 힘든 얘기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걸 알아야 해. 아무리 좋은 여자도, 아니 여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야. 모든 것은 지나간다. 어떤 것도 지나가지 않는 것은 없어. 잘 생각해, 모든 것은 지나가는 거야.”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말은 이상하게 내 가슴에 뭉클한 것을 만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할아버지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한테는 아무리 허황한 이야기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것은 산전수전 다 겪은 할아버지의 인생 역정에서 나오는 연륜 때문일 수도 있고, 할아버지 당신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확신 때문일 수도 있었다.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믿게 만들 수는 없다. 나는 할아버지가 당신이 믿는 진심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내가 믿는 만큼 그 말이 나에게도 진실이 되기를 바랐다.
혜린과 나는 지나가는 관계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되뇌었다. 나와 혜린이 꿈꾸었던 것은 들키지 않고 오래오래 만나는 것이었고, 아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들킨 이상 우리가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혜린과 내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있던 것이었다. 아니, 합의되어 있다고 나는 믿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믿었나? 나는 내 마음을 알 수 없다. 혜린은 헤어지자는 합의 이후에도 계속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역시 때로는 남은 할 말이 있는 척, 때로는 화를 내는 척하며 혜린을 계속 만났다. 때로는 혜린의 전화를 기다린 것 같기도 하다. 그때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나를 다잡았지만, 그 얘기를 하기 위해 나는 혜린을 또 만났다.
아내는 혜린이 나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칼같이 알아냈다. 아무리 통화 목록과 문자 메시지 저장함을 지우고 관리해도 아내의 날카로운 촉수를 피할 수는 없었다. 혹 아내가 통화 목록을 복원하는 프로그램이라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건 단지 헤어지는 과정일 뿐이야.”
나는 그걸 변명이라고 했다. 그러니 별거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내는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더 간단한 방법을 가르쳐줄게. 둘이 결혼해서 같이 살아. 그럼 쉽게 끝낼 수 있을 거야.”
나는 아내가 친정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내와 이혼할 의사는 없었다. 나는 아내를 만나거나 전화를 걸어, 배 속의 아이와 집안 식구들의 상심 등등 이혼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거의 매일 말했지만 아내는 진부하고 허울뿐인 핑계로 받아들였다.
“당신은 그저 이혼이 골치 아프고 번거로운 거야. 그래서 피하려는 거야.”
아내의 말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인생에 이렇게 부담스러운 일이 닥친 것에 대해 당황하고 있었다. 살면서 힘겨운 일을 그다지 겪어보지 못한 나는 쉽게 지쳐버렸다. 정말이지 나는 그 모든 것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가까스로 나는 혜린의 전화를 받고도 아무 말 없이 끊는 경지까지 발전했다.
나는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한 내 가족들이 이 모습, 이대로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설령 그 모습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그저 아름다운 배경일 뿐일지라도 나는 나라는 존재가 여전히 그 배경 속의 한 부분으로 남기를 바란다. 내 마음 어딘가에는 여전히 피 흘리고 있는 어떤 지점이 있지만, 그것을 열어보고 싶지 않다. 혜린과 관련해서 그 어떤 것도 돌아보고 싶지 않다.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화장실은 중앙 로비 옆에 있었다. 나는 가능한 한 천천히 걸었다. 서늘한 공기가 취기로 달아오른 내 얼굴에 부딪혔다. 맞은편 엘리베이터가 열리면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사람들 속에서 혜린의 얼굴을 본 것이다. 나는 이내 스스로의 어리석음이 민망해서 피식 웃고 고개를 돌렸다. 혜린과 헤어진 후 종종 그런 착시를 경험하곤 했다. 깜짝 놀라 다시 보면 전혀 엉뚱한 여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화장실로 들어가던 나는 다시 튀어나왔다.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옷이 혜린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여자는 막 호텔 입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호텔 입구에 도착한 택시에 올라타는 얼굴, 그 작고 흰 얼굴은 환영이 아니었다. 혜린이 틀림없었다.
“혜린아!”
혜린이 나를 돌아보았다. 놀라는 눈빛이 나와 마주치는 순간, 택시가 출발했다. 나는 멍하니 택시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도대체 혜린이 왜 J시에 나타났을까. 내가 알기로 혜린은 J시에 전혀 연고가 없었다. 어떤 남자가 멍하니 서 있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힐끔 쳐다보고 지나갔다. 나는 프런트로 가서 투숙객 중에 이혜린이라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프런트에서는 투숙객이 아니라고 확인해주었다. 아마 12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화장실로 돌아가 볼일을 보고 손을 씻으며 혜린이 J시에 온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와 관련한 일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분명 나를 겨냥한 것이 틀림없었다.
맙소사, 겨냥이라니! 도대체 혜린이 나의 무엇을 겨냥한다는 말인가. 겨냥해서 무엇을 하려고? 지난 1년간 혜린이 나에게 보여준 감정을 나는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혜린이 나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연락을 해 오는 것도 그 감정의 연장선이라고 나는 당연하게 믿었다. 그러나 혜린과 호텔 입구에서 마주친 순간, 그런 믿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어떤 면이 혜린에게 있어 그녀가 갑자기 스토커로 돌변했거나, 아니면 국회의원 출마를 앞두고 있는 아버지를 빌미로 나에게 무슨 협박이라도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가족들이 모여 있는 식당 안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은 일어나 코트를 입고 있었다.
“로비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어요. 술 한잔 하고 들어갈게요.”
“아버지가 출마하신다고 꼭 얘기해. 네 또래 표가 제일 중요해.”
작은아버지가 말했다.
“네.”
나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대답했고, 식구들은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호텔을 빠져나갔다.
나는 호텔 커피숍으로 들어가 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터리가 고갈 표시를 내고 있어 나는 커피숍의 공중전화기를 썼다.
“너 도대체 왜 그래?”
나는 혜린이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말했다. 혜린은 잠자코 있었다.
“너 여기까지 쫓아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나는 혜린에게 좀 더 부드럽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불쾌함과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이 나를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감독님 쫓아온 거, 아니에요. 취재 왔어요.”
“취재? 무슨 프로인데? 너 계속 일 안 하고 있잖아. 내가 소개해준 최 피디한테 찾아가지도 않았다면서?”
혜린은 야단맞는 아이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혜린에게 호텔 커피숍으로 당장 오라고 소리쳤다.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커피숍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대는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어린아이처럼 머뭇머뭇하는 혜린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됐기도 하고, 그런 만큼 짜증이 치밀었다. 한편으로는 내 짜증이 너무나 뻔뻔하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혜린의 무력한 태도가 나를 더욱 뻔뻔한 놈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뻔뻔해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뻔뻔해지는 것이 혜린이나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에게 더 나으리라. 그러니 혜린이 무슨 짓을 하든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단념시키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혜린이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가뜩이나 마른 몸이 그사이 훨씬 더 말라 있었고, 청승스러워 보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혜린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커피숍 밖으로 끌고 나갔다. 커피숍 안의 사람들이 모두 혜린과 나를 쳐다보았다. 혜린은 이러지 말라는 말도 못 하고 나에게 질질 끌려 호텔 밖으로 나왔다. 나는 호텔과 면한 강변 자전거 도로에 가서야 혜린의 팔목을 놓았다.
갈대숲과 이어진 자전거 도로에는 인적이 없었다. 드문드문 켜진 오렌지 빛 가로등 불빛이 강가로 펼쳐진 갈대밭을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이게 만들었다. 혜린은 내 시선을 피하며 아무 말이 없었다.
“힘들지?”
“…….”
“나도 힘들어. 정말 힘들거든?”
“나 때문에 힘드실 거 없어요.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이유로 내가 여기 온 거 아니에요.”
“무슨 이유인지 상관없어. 그냥 우리 그만 보자. 안 보게 해줘. 응?”
혜린이 시선을 돌려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약간의 원망과 아쉬움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나는 기운이 쭉 빠졌다. 비로소 나는 혜린과 헤어지기로 한 후 이런 식의 다툼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 그때마다 나는 매번 마음이 약해져서 오히려 혜린에게 빌미를 주었다는 것, 아니 혜린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스스로 빌미를 주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지난달에도 마지막 정리라고 만나서 혜린과 같이 자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그래놓고는 허둥지둥 나를 변명하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렇다, 나는 일부러 사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어떻게 이 고비를 넘기고, 그러고 나면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솔직히 내가 바라는 바였다.
나는 기가 막혀 허허 웃었다. 혜린이 그 웃음을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생각했는지 입을 열었다.
“감독님한테 무슨 피해를 주려는 게 아니에요. 제가 그러고 싶다고 해도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너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이런저런 생각이 많지만…… 감독님한테 어떻게 하려는 건 없어요. 저는 그냥, 처음 감독님과 제가 만난 것부터 뭔가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감독님은 모르셔도 돼요. 감독님과 상관없는 일이라니까요!”
“너 횡설수설할래? 나와 상관없다면서 여긴 왜 와? 너 나 스토킹 하니? 내가 고향 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방송국에 전화했었니?”
자전거 한 대가 우리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소리 질렀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또 어떤 여지를 남길 것 같았다.
“나한테 해코지를 할 수 있다면, 한번 해봐, 어디. 우리 식구 이미 다 아는데, 뭘 더 어쩔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렇지만 이건 알아둬. 너하고 난 분명히 끝난 거야. 네가 뭘 하든 달라지지 않아. 너는 정말 끝까지 날 나쁜 놈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인데, 할 수 없지. 내가 나쁜 놈 될게.”
“그게 중요해요? 감독님이 나쁜 놈인지, 아닌지?”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럼에도 나는 억지를 부리며 계속 혜린에게 소리를 질렀다. 혜린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내 목소리에서 점차 기운이 빠졌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날씨는 매섭게 추웠다.
“서울로 가. 당장.”
“내일 갈 거예요. 약속이 있어요.”
“약속? 누구랑?”
“알 거 없어요. 감독님과 상관없는 일이라니까요. 내일 올라갈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누구를 만날 거냐고 계속 따져 물었지만 혜린은 말하지 않았다. 나는 혜린을 데리고 호텔 뒤편에 있는 포장마차로 갔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나빴다.
혜린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라왔지만 속이 좋지 않다면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나는 이런저런 말들을 두서없이 뱉으며 혼자 소주 두 병 혹은 세 병을 마셨다. 그러고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다. 필름이 끊긴 것이다. 술이 과하면 필름이 끊기는 것은 내 오랜 버릇이다. 한번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딱 하나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내가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눈이 내리고 있었다는 것, 내 뺨 위로 차가운 눈의 감촉을 느낀 것, 그것이 전부였다.
다음 날 아침 내가 잠에서 깼을 때, 세상은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흰 눈으로 덮인 세상은 누구의 눈에도 순결하게만 보인다. 모든 허물과 상처는 눈 아래 덮여 영원히 침묵할 것만 같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흰 세상을 보며,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모든 것을 눈이 덮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미래가 눈을 굴리며 마당에 나타났다. 눈사람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나를 발견한 미래가 한쪽 손을 들며 웃어 보였다. 나도 미래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술에 취한 채 어디서 긁혔는지 오른손에 상처가 나고 멍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상처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사라질 것들이었다. 모든 것은 지나가니까.
경찰이 찾아온 것은 거의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그사이 방송국에서 촬영팀이 두 차례나 방문하여 우리 가족의 모습을 찍어 갔고, 마지막 촬영이 진행 중이었다. 아내는 약속대로 촬영 직전에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인근 호텔—아마 동강 호텔이겠지만—에 투숙한다고 말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앞치마를 둘렀다. 가족들 역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내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아내도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감히 내가 그 하모니를 깬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도 성심성의껏 다정한 남편 역을 연기했다. 우리 가족 전체가 똑같은 무늬와 광택을 가진 수입 그릇 세트가 되는 순간이었다.
피디는 할아버지와 나, 두 사람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했다. 그림이 좋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가능한 한 아버지가 많이 나오는 것이겠지만 할아버지는 잠자코 허락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마당에서 눈을 치웠다.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찍히는 사람 입장에서도 편하고, 그림도 잘 나오는 법이다. 그사이 눈은 빠르게 녹아 미래가 만든 눈사람은 흉물스럽게 녹아내렸고, 응달만 빼고는 질척이는 흙바닥이 드러났다. 할아버지는 빗자루를 들고 마당에 남아 있던 눈을 치웠다. 구순 가까이 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군살 하나 없는 체격에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삽으로 구석의 눈을 한곳으로 치웠다.
경찰이 마당으로 들어선 것은 그때였다. 거의 20년째 집안일을 도와주는 함안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주었다. 경찰은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오며 할아버지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했다.
“J 경찰서 강력계 최 형삽니다.”
“아, 그래요. 어쩐 일이신가?”
“손자분께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우리 손자? 근데 왜?”
경찰은 힐긋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카메라맨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카메라맨은 조용히 카메라를 끄고 거실로 들어갔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 가서 섰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불안으로 가슴이 요동쳤다.
“동강 호텔 근처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알고 보니 손자분과 관련이 있는 여성이어서…….”
“혜린이가요? 혜린이가 죽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나의 실수였다. 경찰은 혜린이 죽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혜린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경찰이 나를 찾아올 리가 없다고 순간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은 사실이었다.
“잠시 경찰서로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그때 할아버지가 형사 앞으로 다가갔다. 거실에서 다른 가족들이 무슨 일인가 하며 밖으로 나왔다. 아내만이 주방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떤 사건인지는 말해주셔야지요. 심각한 사건이면 더더욱 가족들이 알아야 되지 않겠소?”
할아버지가 침착하게 말했다. 경찰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결국은 사건 개요를 설명했다.
“이혜린이라는 여성이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은 손자분과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니 몇 가지 사실만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그 여성이 죽은 게 언제입니까?”
“지난주 수요일입니다. 발견된 건 사흘 전이고요.”
“지난주 수요일에는 우리 가족이 모두 같이 식사를 했소만. 아 참, 넌 동창을 만난다고 했지? 그러고는 술에 취해서 12시쯤 집에 왔잖아. 설마 동창이 아니라 그 아가씨를 만난 거냐?”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경찰에게 물었다.
“혹시 체포 영장이라도 가지고 오셨소?”
“아닙니다. 지금은 참고인 수사입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점이 드러난다면 영장 청구도 가능하겠지.”
“그야…….”
“경찰이 하는 일을 방해할 수는 없지. 하지만 나는 우리 애를 철석같이 믿고 있어요. 만약 우리 애가 용의자가 된다거나 할 경우에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우리 쪽에 미리 알려주시겠지요?”
“그럼요. 경찰도 예전처럼 무지막지하게 조사하지 않습니다.”
“다행이군. 예전에 내가 화력발전소 건으로 잡혀갔을 때는 고문까지 당했어. 그때 나를 조사했던 경찰들은 나중에 모두 옷을 벗었지. 나는 그런 건 용납할 수가 없어. 공권력은 엄격하게 집행되어야 하는 거요.”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아내가 웃옷을 가져다주었다. 옷을 건네는 아내의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나는 눈으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아내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다른 식구들은 침묵을 지켰다. 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하고는 할아버지가 쳐둔 방어막의 보호를 받으며 경찰을 따라갔다. 대문을 나설 때 할아버지의 경쾌한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피디 양반, 다 같이 점심을 먹고 다시 촬영합시다. 우리 집에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진 않지요?”
나는 평생 나 자신을 모범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나 어머니의 병치레 같은 몇 가지 어두운 기억들이 있었지만 나는 동네에서 말하는 ‘언덕 위의 큰 집’에 사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내 또래의 소녀들이 대문 앞에 서서 나무 대문 틈에 눈을 대고 집 안을 구경하는 모습과 종종 마주쳤다. 내가 초인종을 누르고 대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노라면 소녀들은 저만치 서서 나를 힐끔힐끔 훔쳐보곤 했다. 선생님들조차 “네가 그 집 아들이냐?”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니 나의 정체성이란 내가 사는 집과 무관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치과 의사로 일하던 70년대 중반에 이 집을 지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당시 할아버지는 먼 충청도까지 사람을 보내 집터를 보는 지관을 불러 왔는데, 터를 보고 난 지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땅기운이 너무 세서 사람을 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가 더 센 사람이 있어 땅을 휘어잡으면 큰 영화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땅을 사들였다. 그리고 그 기가 센 땅 위에 멀리서도 보일 만큼 크고 웅장하게, 1층에만 방 다섯 개, 2층에 네 개, 도합 아홉 개의 방이 있는 이 집을 지었다. 할아버지는 특별히 설계를 변경하여 2층 베란다 밑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큰 기둥까지 추가로 세웠다. 땅기운을 눌러야 한다는 논리였다. 화강암 기둥 때문인지, 아니면 할아버지의 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후로 할아버지는 승승장구했다. 할아버지의 인생만 보면 땅기운은 성공적으로 잡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마치 이 집이 언제 뚫고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악귀를 깔고 앉은 것 같아 늘 불안했다. 그 악귀는 오로지 할아버지만이 누를 수 있어 이 집에서 할아버지만 사라지면 당장에 벽과 바닥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내가 어릴 때부터 늘 시름시름 앓아오던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이 집은 기가 너무 세서 내가 아픈 거야”라고 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폭풍이 몰려올 때는 마치 땅끝에서 악귀가 풀려나고 싶어 안달이라도 하는 것처럼 집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그때마다 나는 무서워서 땅보다 더 기가 세다는 할아버지의 품속으로 숨곤 했다. 그러나 아침이면 바다로부터 비쳐드는 찬란한 햇빛과 함께 간밤의 불안과 공포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나는 든든한 할아버지와 넉넉한 집안을 가진 복 많은 아이로 돌아가 한결같은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해준다. 나는 사람을 지치고 주눅 들게 만드는 대부분의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나는 크게 친한 친구도 없고, 좋아하는 여학생도 한 명 없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조건에 감사하며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착실하게 공부하는 범생이로 자랐다.
나에게 예외적인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은 미국 유학 시절일 것이다. 몇 번의 마리화나, 몇 번의 코카인, 그로 인한 몇 가지 실수……. 그중 어떤 일은 아직도 나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말하자면 나는 미국에서 생애 처음으로 방종의 맛을 경험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고, 그 친구들도 다들 괜찮은 집안 출신인 데다 공부도 무섭게 잘하는 애들이어서 방종이 그다지 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미국 캘리포니아라는 장소가 마약을 일종의 패션 아이템처럼 느끼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방을 쌌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메모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비행기에 올랐다. 박사 과정을 고작 한 학기 남겨둔 때였다. 집에서는 학위를 포기하고 돌아온 나에 대해 충격과 실망을 감추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시적인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돌려보내려고 온갖 설득을 다 했지만 그때도 할아버지가 내 편을 들어주었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챘던 것 같다. 결국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한국에 남을 수 있었고, 다시 모범생의 길을 갔다. 나는 방송사 시험에 합격했고, 집안에서 소개한 여자와 몇 개월 사귄 후 결혼했다. 아내는 예쁘고, 착하고, 성실하고, 여러 모로 좋은 여자였다. 아내와 있으면 나는 안도감을 느꼈고, 아이가 빨리 생기지 않는 것만 제외하고 내 생활은 완벽했다.
혜린을 만난 것은 1년 전쯤이었다. 나는 조연출을 끝내고 사건 재연 프로그램에 투입되어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참이었다. 「의혹 속으로」라는 그 프로그램은 과거의 미제 사건들, 해결되었다 하더라도 의문이 남은 사건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파헤친다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같이 일할 작가를 섭외하는 중이었다.
혜린은 내가 맡은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하고 싶다며 나를 찾아왔다. 내가 조연출일 때 같이 일하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 작가가 있었는데, 그녀가 나를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경력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작가연수원을 1년 정도 다녔고, 다른 방송사에서 스크립터로 1년 정도 일했다고 했다.
사실 자료 조사도 조사지만 써야 하는 글 분량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좀 더 경험 있는 작가를 원하고 있었지만 선뜻 허락했다. 나는 처음부터 혜린을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팀장에게 전부터 내가 알고 지내던 실력 있는 작가라고 거짓말까지 했다.
일의 특성상 혜린과 나는 거의 늘 붙어 다녔다. 둘이서 회의하고, 둘이서 인터뷰를 따러 가고, 편집 때도 혜린은 내 옆에 있었다. 혜린은 키가 그다지 크지 않고 아주 마른 편이어서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닐 때는 어딘가 미처 성숙하지 못한 미소년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에 나는 혜린을 귀여운 여동생쯤으로 생각한다고 애써 믿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처음부터 혜린을 볼 때마다 그녀와 같이 자는 것을, 어린애 같은 그녀의 몸을 마구 움켜쥐는 것을 상상하며 흥분에 휩싸이곤 했다. 단지 그것을 보통의 남자들이 가지는 판타지라고 치부하고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애썼을 뿐이다.
그러던 중에 나는 우연히 미국으로 간 작가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혜린을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자 그녀는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 작가는 혜린을 알지도 못했다. 나는 혜린이 일했다는 프로그램의 홈페이지를 검색해보았다. 제작진 정보에 혜린의 이름은 없었다. 경력도 거짓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엄청나게 화가 나서 당장 혜린을 불러냈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는지를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혜린은 어떻게든 프로그램을 맡고 싶어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다. 방송국에서는 대개 알음알음으로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엉뚱한 핑계를 대고 접근한 것일 테고, 일만 제대로 해냈다면 그다지 문제 삼을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 어색할 만큼 화가 났다. 혜린은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고도 여러 번 나에게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혜린의 문자를 씹었다. 혜린은 방송국으로 나를 만나러 왔다.
일은 그날 터졌다. 방송국 로비에 서 있는 혜린을 보는 순간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동안 내가 은밀히 즐기면서 동시에 억눌러왔던 욕망의 구체적인 형태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나는 그녀와 자고 싶었다. 욕망에 휘말린 사람은 그 욕망의 성취를 위해 얼마나 교활해질 수 있는지. 나는 혜린과 술을 마셨고, 비겁하게도 술과 혜린의 거짓말을 핑계로 그녀를 울게 만들고, 결국 내가 원하는 바를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혜린과 처음 자던 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완전히 필름이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처음 나는 혜린과 나의 관계를 사고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사회적으로 공인되지 못한 관계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사고’라고 합리화한다. 마치 자신의 의지나 의도가 개입되지 않았다는 듯이. 나 역시 그랬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그저 우발적인 사고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날 밤 일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도 나에게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혜린과의 관계는 그 이후에도 이어졌고, 나는 혜린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육체에 끌리는 것이며, 일탈의 매혹에 빠진 것뿐이라고 나를 계속 합리화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혜린을 만나면서도 언제나 끝내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혜린에게 우리의 관계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나는 이 관계를 진지한 연애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비겁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수법, 선택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방법을 택했다. 혜린은 내 말에 수긍하면서 자신은 상관없다고 말했다. 나는 혜린의 그 말을 내 비겁함에 대한 면죄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내가 혜린과 나의 관계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혜린에게 그만두자고 말할 수 있었다. 그때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혜린에게 냉정하게 결별을 선언하며 내가 자제력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 때문에 적이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혜린은 실수였고, 나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다시 모범생의 길을 갈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할아버지의 부탁 때문이겠지만, 형사는 나에게 친절했다. 최소한 나를 취조했던 두 형사 중에서 자신을 ‘김’이라고 밝힌 젊은 형사는 그랬다. 그보다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이는 형사—그는 ‘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는 말이 별로 없었고 표정도 없이 나를 묵묵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취조는 주로 김 형사가 이끌고 나갔다.
혜린은 둔기로 머리를 맞았다. 하지만 그 상처는 치명적이지 않았다. 부검 결과 사인은 교살이었다. 쓰러진 혜린의 목을 조른 것이다. 혜린의 지갑이 현금과 카드가 사라진 채 부근에서 발견되었고, 그 때문에 경찰은 혜린의 신원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경찰은 주변을 탐문한 결과, 어떤 남자가 혜린을 호텔 커피숍에서 끌고 나가는 것을 봤다는 호텔 직원의 증언과 밤늦은 시각에 강변 자전거 도로에서 남녀가 다투는 것을 봤다는 증언, 그리고 혜린이 어떤 남자와 술을 마시면서 다투었다는 포장마차 주인의 증언까지 모두 확보해두었다. 안타깝게도 증언 속의 어떤 남자가 바로 나였다. 경찰은 심지어 내가 호텔의 공중전화에서 혜린에게 전화를 건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나는 혜린과 나의 관계부터 설명해야 했다. 김 형사는 친절한 말투로 관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끝났는지, 마지막으로 잠자리를 한 것은 언제였는지 따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수사상 필요하니까요. 양해 좀 하십시오.”
내가 불쾌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김 형사가 싹싹하게 덧붙였다.
“사귄 지 1년 정도 되었습니다. 방송국에서 같이 일하던 작가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지금은 다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