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옛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엄마의 입에는 작은 이야기 샘이 있는 것 같았지요. 춘향전, 심청전, 흥부놀부, 장화홍련, 콩쥐팥쥐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다르게 들렸어요. 엄마 기분에 따라 목소리도 달라지고 조금씩 살을 붙였다 뺐다 한 덕분이에요.
이야기가 끝나면 엄마께선 꼭 한 마디씩 덧붙이는 말이 있었어요. 그 중에 제일 많이 당부를 한 것은 말을 곱게 하라는 것이었어요.
“한 마디의 말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단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거야.”
엄마가 항상 당부하신 덕분인지 우리 일곱 남매는 서로 싸우는 일이 드물었어요.
그리고 이런 말씀도 자주 하셨어요.
“말이 씨가 되는 법이란다.”
자기가 한 말이 결국 그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었어요. 말이 마음이고 마음이 곧 말이기 때문에, 말의 씨가 고우면 그만큼 훌륭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된다고 말이에요. 그 말이 정말 딱 맞는 것 같았어요. 엄마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 많은 사람들 중 말을 곱고 예쁘게 하는 착한 사람들은 다 복을 받았어요. 하지만 못된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은 거의 다 벌을 받고 말았거든요.
이 책의 주인공인 예은이는 말을 함부로 해요. 같은 반 친구인 미니가 휙휙 던지는 말을 듣고 멋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그렇게 되지요. 아이들의 특징을 꼬집어 별명을 만들어 부르거나 놀리는 미니의 행동이 재치 있어서 인기가 많은 거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듣는 사람들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요? 게다가 말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메신저로까지 욕을 먹거나 왕따를 당한다면?
말뿐만 아니라 글은 생각과 말을 담은 도구예요. 따라서 그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시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 도구는 향기 나는 꽃이 되기도 하고 칼 같은 무기가 되기도 해요. 그 무기는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요.
말은 듣는 사람에게만 상처를 주지만, 글은 돌에 새겨진 것처럼 지워지지 않고 흔적을 남겨요. 따라서 결국에는 나쁜 글이 쓴 사람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같이 상처를 받게 되어 있어요. 예은이와 반 친구들도 재미삼아 무심코 나쁜 말을 하고, SNS에 글을 올려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올린 글을 보고 상처를 받게 되지요.
진짜 멋진 사람은 고운 말과 바른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은 절대로 상처 주는 말과 글을 쓰지 않아요. 나쁜 말과 나쁜 글은 사람들 사이에 두꺼운 벽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옛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던 엄마는 요즘 문자를 자주 보내 주세요.
바람이 참 좋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라. 사랑한다.
엄마의 말과 글은 내 마음에 예쁜 꽃을 활짝 피워 놓아요.
아픈데 없지? 내가 늘 기도하고 있다.
엄마가 보낸 향기 나는 문자를 보면 기분이 좋아서 저도 마음을 듬뿍 담은 글을 보낸답니다.
엄마, 사랑해요. 언제까지나 건강하세요.
2014년 9월 박서진
“오늘처럼 상큼한 사과 맛이 나는 날에는 반바지가 딱이야!”
엄마는 늘 날씨를 맛에 비유하는 걸 좋아한다.
오늘은 약간 더운 듯하지만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그래서 사과 맛이 난다고 한 걸 거다.
“반바지에는 이 남방이 딱이고.”
엄마가 체크무늬 남방을 내 턱에다 갖다 댔다.
“엄마, 학교 갔다 올게.”
옷을 입고 잽싸게 밖으로 뛰어 나갔다. 푸른 아파트 앞을 지나 천천히 걸어가는데 이상한 옷차림이 눈에 확 들어 왔다. 모두 한여름 반팔을 입고 있는데 긴 팔을, 그것도 보는 것만으로도 더워 보일 정도의 점퍼를 입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반 소림이었다.
웬일이래! 안 그래도 소림이는 엉뚱하다고 놀림을 받는 애다. 며칠 전에는 양말도 짝짝이로 신고 왔다. 게다가 자리에 앉아 항상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넌 북극에서 왔냐?”
모른척 지나치려고 했는데 불쑥 나타난 경태가 소림이 앞에서 길을 막았다. 땅을 보고 걷던 소림이가 걸음을 우뚝 세웠다.
“정말 관종이다!”
요즘 우리 반에서는 관종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관심종자를 줄인 말인데 관심받기 위해 애쓴다는 뜻이다.
“안 그러냐?”
경태가 나를 보며 턱을 쳐들었다.
“맞아, 또라이 같아.”
“그렇지? 쟤 돌았어, 돌아!”
내 말에 경태가 손가락을 머리 위로 올리고 빙빙 돌렸다. 그런데 소림이는 피식 웃기까지 했다. 뭐야, 쟤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정말 이상해보였다.
“쟤, 왜 저래?”
경태가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막 뛰어가 버렸다.
“야! 에스키모다!”
소림이가 교실로 들어오는 걸 보고 애들이 소리쳤다. 경태가 그사이 애들에게 다 말했나 보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힌 소림이는 교실에 들어와서야 점퍼를 벗었다.
“야, 이거 봐.”
미니가 들어오자 경태가 쪼르르 달려갔다. 미니는 반에서 여짱이다. 경태는 미니에게 핸드폰에 찍힌 소림이의 사진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대박!”
의자에 가방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미니가 한 마디 던졌다. 나는 미니의 그런 모습이 은근 부럽다. 무슨 말이든 거침없이 잘하기 때문이다.
“아까 쟤랑 오는데 같은 반이라는 게 졸라 창피했다니까.”
경태가 방금 일어난 일처럼 신이 나서 말했다.
“나도 뒤에서 니들 뛰는 거 보고 따라서 뛰었다. 뛰니까 열라 덥더라.”
옆에 있던 성현이도 끼어들었다.
“뭐, 쟤만 그러니. 삼겹살 덩어리는 두꺼운 옷을 안 입어도 곰인데. 둘이 북극으로 보내면 딱이겠네.”
반에서 제일 뚱뚱한 성배를 보면서 미니가 말을 내뱉었다. 옆에 있던 애들이 덩어리라는 말을 듣고 킥킥 거렸다. 성배 얼굴이 빨개지는 걸 봤는데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덩어리라니! 미니의 말솜씨는 정말로 끝내준다.
“쟤들 좀 심하네.”
짝꿍 한세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나도 미니처럼 말을 잘하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선생님 오신다!”
누군가 복도를 뛰어 교실로 들어오면서 외쳤다. 아이들이 모두 우르르 자리로 돌어갔다. 우리 반 선생님은 잘생긴 남자 선생님이시다. 그래서 우리 반 애들은 선생님을 좋아한다. 선생님도 우리들의 말을 잘 들어준다. 하지만 선생님이 한 가지 싫어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치고 받으며 싸우는 거다. 예전에 남자애들이 싸우는 걸 보고 수업도 안하고 크게 야단을 쳤다. 선생님이 그렇게 화를 낸 건 처음이었다. 그 다음부터 우리 반 애들은 모두 싸우지 않겠다고 선생님께 약속을 했다. 싸운 아이들은 반성문을 쓰고 부모님 싸인도 받아왔다.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자 모두 큰 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하면서 손을 들었다.
소림이는 공부가 끝나자 다시 점퍼를 입고 집으로 갔다. 애들이 킥킥 거리면서 소림이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정말 약간 이상한 걸까?
소림이를 생각하니 더 더운 것 같아서 집으로 뛰어 들어가려는데 놀이터에서 물총을 든 오빠들이 뛰어 왔다.
“나이아가라 폭포수다, 받아라!”
키가 큰 오빠가 작은 오빠에게 물을 마구 쏘아 댔다. 키가 작은 오빠는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그런데 어느새 다가온 키 큰 오빠가 얼굴에다 물을 뿌려댔다. 정말 재미있어 보였다.
“복수할 거야!”
작은 오빠가 큰 오빠에게도 물을 마구 뿌려댔다. 한참 뛰어놀던 오빠들이 힘이 드는지 모래에 쪼그리고 앉으며 소리쳤다.
“개 재밌다!”
“짱 신나지?”
개 재밌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짱 재밌다는 정말 재밌다는 말인데 앞에 개자를 붙인 것은 잘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