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본격 미스터리가 아니고, 처절한 사회파 소설도 아닙니다. 제가 쓴 소설 중에는 가장 물처럼 술술 읽힐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작품보다 공을 덜 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간 제가 쓴 소설들의 주제를 굳이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도시의 모험’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작품은 그것에 가장 충실하게 썼습니다.
이 소설은 본격 미스터리가 아니고, 처절한 사회파 소설도 아닙니다. 제가 쓴 소설 중에는 가장 물처럼 술술 읽힐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작품보다 공을 덜 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간 제가 쓴 소설들의 주제를 굳이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도시의 모험’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작품은 그것에 가장 충실하게 썼습니다.
이 소설은 본격 미스터리가 아니고, 처절한 사회파 소설도 아닙니다. 제가 쓴 소설 중에는 가장 물처럼 술술 읽힐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작품보다 공을 덜 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간 제가 쓴 소설들의 주제를 굳이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도시의 모험’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작품은 그것에 가장 충실하게 썼습니다.
이 소설은 본격 미스터리가 아니고, 처절한 사회파 소설도 아닙니다. 제가 쓴 소설 중에는 가장 물처럼 술술 읽힐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작품보다 공을 덜 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간 제가 쓴 소설들의 주제를 굳이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도시의 모험’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작품은 그것에 가장 충실하게 썼습니다.
이런 의문을 갖게 된 건 작가생활을 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판결문을 찬찬히 읽었을 때 낯선 것들이 보였다. 불완전했고, 거친 논리가 럭비공처럼 튀고 있었다. 이런 논리로 올바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데도 ‘유전무죄만 아니면’ 되는 걸까. 나는 그동안 정말 판결이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판사가 ‘우리’여서 무의식적으로 편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 순간, 판결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재판을 비난하거나 누구를 규탄하거나 현실의 결론을 바꾸려는 의도는 없다. 독자들이 그 사건과 이 작품의 사건을 동일시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소재도 ‘젤리’로 바꾸었고, 당사자들의 성별도 바꾸었다. 결국 이 이야기는 허구다. 진실은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가 전하려는 것에 있다.
어쨌든 간에 판사가 아니었다면 쓰지 못했을 책이다. 또, 판사였으면 출간하지 못했을 책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썼던 삼 년 전 난 판사였고, 책이 나온 지금은 아니다. 정확히 그렇게 되었다.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법원을 나온 건 아니지만, 법원을 나와 이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