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한국 독자들이 한국의 정치ㆍ법제사 연구와 관련한 질문들을 제기하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대명률(大明律)》을 조선 법률의 근거로 삼은 태조 이성계도 명청시기 중국이 그랬듯이, 조선 법률에서 능지형에 유사한 지위를 부여했는가? 만약 그러했다면, 조선 왕조 전반에 걸쳐서 형벌로서 능지형은 실제로 집행되었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1812년 홍경래(洪景來)의 난 때 주모자 9명이 능지처참에 처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모든 ‘능지처참’이 능지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이 죄수들이 왕조를 전복하려는 운동에 가담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정말로 능지형이 집행되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이와 유사한 사례를 70년 후 19세기 말 개화파 지식인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의 죽음에서 찾을 수 있는데, 상하이에서 암살당한 김옥균의 시신을 국내에서 육시(戮屍)의 형벌로 절단했던 것이다.
그런 의문들을 연구해 보는 흥미로운 작업을 통해서 한국사에서 처형의 의미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형벌 문화, 더 나아가 중국 문화와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중국 능지형의 역사를 연구할 때 중국 외부의 역사를 도외시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처럼, 동아시아 처형의 역사를 연구할 때 동아시아 지역의 서로 다른 문화들이 어떻게 형벌을 인식하고 형벌 집행에 반응했는지를 고려해야만 한다. 이런 작업은 역사적으로 교훈적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서 공통적인 형벌제도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런 제도가 존속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좀 더 명확히 하는 데 공헌할 것이다.
한국이 기후 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저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기후 문제에 민감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역사학자들이 동아시아에서 역사적 변화를 분석함에 있어 기후를 고려한 최초의 학자들 중 하나라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나는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 제가 발견한 내용을 잘 이해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도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곡물 가격과 기후 변화 사이의 연관성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의견을 듣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 연관성은 명나라가 겪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조선에도 거대한 정치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론 17세기 당시 그 누구도 남중국해에서 발행한 작은 사건과 갈등이 이후 도래할 제국의 시대 또는 오늘날 볼 수 있는 국가 지원 기업들이 연합하는 시대의 전조가 되리라고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셀던 지도에 나타나는 항해자와 무역가들이 바다를 항해한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지 다른 무엇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재미없는 욕망이 세상을 바꾸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하지만 그들의 세상이 반드시 우리 시대와 달랐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쇠너가 담담하게 지적했듯이 “당신은 이 시대를 알고 있다 You know the times."
이미 정형화되고 기정사실화된 역사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그 복잡 다양함을 오롯이 담아내는 역사서가 되기를 희망했다. 나는 또한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또 곧 알게 될 지식에 너무 많이 의존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외부에서 바라보는 역사가 아니라, 역사의 내부에 밀착하여 숱한 세월을 함께 살아내고 자세히 얽어내는 역사서가 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