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보아 이 책의 글들을 묶어주는 키워드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역량과 지평을 가늠하는 일은 비평과 이론이 늘 관심을 가져왔고 또 그래야 마땅한 주제였다. 소설장르가 근대문학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추어볼 때 이 주제는 근대적 현실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살아내고 넘어서려는 노력과도 이어져 있다. 여기서는 루카치와 싸르트르, 바흐찐과 로뜨만, 들뢰즈와 랑시에르를 거쳐 리비스와 벨에 이르는 외국 이론가들의 논의를 촘촘하고 두텁게 읽어내는 데 초점을 둔다.
앞선 담론과 논쟁이 남긴 실마리와 한계를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오늘의 비평이 맞닥뜨린 질문을 풀어가려는 노력은 여기서 다루는 이론가들에게서도 엿보이지만 수록된 글들이 담론의 현재성에 연루된 긴장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팽팽하게 지속한 데서 잘 드러난다. 소설에 관한 중요한 이론들을 정리하고 싶을 때, 그러면서 동시에 미학의 핵심쟁점들을 짚어보려 할 때, 그에 그치지 않고 한국문학 비평에서 제기된 주요 논의들의 좌표를 그려보고자 할 때, 그밖의 많은 경우에 이 책이 참조문헌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코즈모폴리턴이라는 마지막 단계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여정의 길목마다 숱하게 깔린 물리적이고 정치적이며 또 감정적인 난관들을 통과하며 그가 보여주는 최대한의 정직함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정직함에는 “불의도 불필요한 슬픔도 없는 세계를 상상하고 그 세계를 위해 싸우는 일이 왜 중요한지 절대 잊지 않겠노라”는 그의 소년 시절의 맹세가 고스란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