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작업은 주변에 무심히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별것 아닌 사물들을 깊이, 오래, 느리게, 가만히 보는 일이다. 내 생활의 한 모퉁이에서 깊고 조용한 아우라를 가지고 그저 거기에 있는 사물들을 내가 알아채는 어느 한순간, 작업은 시작된다.
사진의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그것들을 보고 또 보고 여러 번 쓰다듬으면서 나는 그 사물을 품은 사진 속 세상을 아주 천천히 이루어나간다. 작업을 할 때의 나는 그 사물들을 온몸으로 본다고 느낀다. 길고긴 시간 동안 들여다본 그 사물들이 절대 고요 속 마침내 가장 그것다운 모습으로 보일 때, 그때 비로소 그 이미지는 완성된다.
오래도록 바라본 사물들은 이전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싶은 그 무엇이 되어, 가장 적당한 무게로 바로 거기에 ‘있다’. 가볍지 않고, 무겁지 않다. 완성된 이미지들을 마주할 때면 나는 그 사물들을 통해 최대한 천천히 온 정성을 다해 숨을 들이마시고, 또 그와 같은 과정으로 내쉰 깊은 호흡을 느낀다. 내 작업을 통해 완성된 하나의 사물은 이처럼 깊은 호흡이 주는 몸과 마음의 충만한 현존감을 닮아 있다.
1996년 처음 이 작업을 만났을 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로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연결된 덩어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사물을 만날 때마다 나는 새로운 우주를 만난다. 시간은 흐르고 이 작업이 주는 의미를 하나씩 더해가면서 나는 이를 아주 천천히 깨달아가고 있다. 느린 걸음으로 목적지 없는 고요한 산책을 하고 있다.
2024년 12월 - 작업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