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 선생은 1945년 12월에 함경남도 홍원에서 출생하여 100일 만에 서울로 이주하였다고 하신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고향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고 하신다. 그 '기억'을 선생은 오로지 '시'를 통해 구성해간 것이다. 그 '기억'의 비평적 해석을 위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분들의 노력과 관심이 보태졌다. 문단에서 선생과 직간접적인 관련을 맺어온 열다섯 분의 필자가 참여해주셔서 이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 모쪼록 이 책이 강은교의 시세계에 대한 총체적 분석과 평가를 위한 충실한 조감도가 되기를 바란다.
최근 김수영에 대한 논의가 폭증하고 있다. 이는 그의 시편들이 탁월한 내구성을 지닌 시사적 유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시가 우리 문학 담론의 지형에 시사하는 몫이 매우 크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주지하듯 그의 시는 우리 문학이 구축해왔던 담론적 대립쌍들 이를테면 ‘참여/순수’ ‘진보/보수’ ‘리얼리즘/모더니즘’ ‘근대/탈근대’ ‘소시민/민중’ 등의 구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해석의 코드를 끊임없이 제공해주는 원천이 되어왔다.
특별히 1990년대 들어 근대 이후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우리는 그에 대한 심화된 각론들을 통해 근대성의 성취와 극복이라는 이중적 과제에 대한 유력한 시사를 받고자 하였다. 그가 자본주의적 일상의 구체성을 투시하면서도 그 속에 은폐되어 있는 자기 소외와 자기 혁명의 가능성을 동시에 사유했다는 점, 그리고 근대를 긍정하면서도 근대 이후의 비전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은 점을 감안해볼 때, 우리는 김수영이 근대가 내장하고 있는 억압과 해방의 양극성에 대한 주체적 지양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동안 우리 민족문학이 추구해왔던 이른바 ‘해방의 근대성’ 의 실천적 진경을 그가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영에 대한 이러한 해석 가능성은 그의 문학이 우리에게 선사해준 놀라운 고백의 에너지와 현실적 투시력에서 오는 것이다. 그만큼 김수영의 시나 산문은 일차적으로는 김수영의 내면을 충실하게 드러내는 고백의 자료가 되고, 그 다음으로는 1950―60년대 우리 시사에서 발현된 극점의 담론적 원천이 될 것이다.
김종삼은 1921년 4월 25일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시와 술과 음악으로 삶을 살다가 1984년 12월 8일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김종삼은 시와 음악이 보여주는 초월적이고 순수한 예술의 영역에 매혹되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제물로 바친 시인이다. 일상인으로서의 생활 감각이 전무한 까닭에 말년에는 지독한 가난과 병고,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김종삼은 자신의 소멸해가는 육신을 넘어서 아름답고 신성한 초월적 세계를 꿈꾸었다. 이는 한국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딛고 일어서기 위한 고투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종삼의 시는 타락하고 비극적인 현실세계와, 가닿을 수 없는 절대순수 세계와의 간극에서 생성된다. 맑고 평화로운, 마치 진공(眞空) 상태와 같은 순수한 시 세계는 한국시사에 있어서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이다. 이해가 아니라 정서적 충격으로밖에 감각될 수 없는 영역이, 그의 시에는 있다. 그렇기에 김종삼의 시는 시대를 넘어 여전히 새롭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