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은 신성했다. 그건 믿음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용은 용을 낳는다. 한때 개천에서 돌연변이 용이 나기도 했으나 개천은 모두 복개되었다. 시멘트 아래 고여 있는 개천에 호스를 박아 썩은 물을 뿜어 올리는 건 TV상자와 신화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주역에 '혹약재연(或躍在淵)이면 무구(无咎)니라' 하는 궤사가 있다. 못에서 자란 이무기가 용이 될 수 있을까하여 도약해보다 여의치 않으면 다시 연못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연못은 오랫동안 가문이었으나 격변기에 그 연못에도 변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연못이 생겼고 기존의 연못들은 더 커지거나 고갈되었고, 고색창연함으로 부패를 감추었다. 분명한 건 용이 되려는 이무기는 연못에 살고, 연못은 집이나 논이나 밭, 산이나 공장, 구멍가게에 비해 너무 적다는 사실이다. 구멍가게 옆이나 공장 옆으로 나란히 흐르던 개천이 마른 뒤, 사람들은 꿈 없이 젖은 자리를 뒤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