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의 복간이다.
관 뚜껑 닫은 지 오래되어 살은 흩어지고 뼈만 남았는데
새삼 불러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복간에 즈음해,
오늘날의 감수성에 어긋난 구절들을 걷어냈다.
읽어보니 압력 장치가 고장난 밥솥에서 지은 밥처럼
푸슬푸슬한 느낌이 든다.
찰기 없는 불편한 밥이 몸에는 더 좋다는
세간의 말을 믿기로 했다.
분골을 수습하고 일어서니
내 일이 아니라 여겼던 내일이 바투 다가와 선다.
2022년 겨울 - 개정판 시인의 말
잡초 무성한 두어 평 묵정밭에서 농사랍시고 지어 펼쳐놓으니 온통 뉘, 싸라기뿐이다. 죽 한 그릇도 못 끓일 좁쌀 한 줌을 세상에 내어놓는 심정이 참담하지만 어쩌랴, 텅 빈 뒤주에 쥐새끼들만 들락거리니 이 가난한 시업에 무엇을 더 보태고 뺄 것인가.
생명과 반생명의 극단을 오가며 베낀 노래와 신음의 언어로 8년만에 세 번째 시집을 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