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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진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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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시인의 말을 대신하여 메시지를 파괴하기 위해 나는 애써 남이 모르게 말하려고 한다. 그 방법론을 ‘모르게 하기’라고 이름 지어본다. 파괴된 메시지, 그것이 내 형식이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랑스러운 형식주의자다. 그리고 이러한 제스처는 궁극적으로 침묵과 연대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분일 뿐이다. ─진이정, 「모르게 하기를 위하여」 중에서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는 1993년 11월 진이정 시인이 타계하고 두 달 만에 세상에 나온 시집이다. 시인의 첫 작품이자 유고집이 된 이 시집은, 아쉽게도 오랜 시간 절판 상태로 있다가, 28년이 지난 올해 다시 출간을 하게 되었다. 10여 년 만에 그의 시를 다시 읽어본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젊은 날 그의 구체적인 아트만들은 영영 사라졌지만, 그의 시들 속엔 아직도 생생한 젊음이 살고 있다. 나는 그의 시가 긴 세월 언어의 산화를 견디며 더욱 새로워져 있다는 것에 놀란다. 생전에 그는 당시의 시적 트렌드나 패러다임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에서 시를 썼고, 그 때문에 외로웠지만, 그만의 방외의 언어를 끝까지 고수했기에 비로소 낡지 않는 새로움을, 새로움의 시적 영토를 갖게 되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시집엔 총 40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연작을 포함한 절반 이상의 시는 그가 세상을 뜨기 직전에 몰아 쓴 시들이고, 나머지는 나와 2인 동인을 시작한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쓴 작품 중에서 고른 시들이다. 이 시집의 처음엔 시인의 죽음을 암시하는 시가, 시집의 마지막엔 탄생에 관한 시가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아마도 그건 죽음과 삶의 순환구조, 윤회의 구조를 시적 내러티브에 담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시의 배열에 관해서도, 시 한 편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작업만큼이나 세심하게 고려하곤 했다.) 그가 내게 탈고한 시집 원고를 맡기던 날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내가 새로 쓴 시편들이 특히 좋다고 말하자, 지쳐 보이는 그의 얼굴엔 대답 대신 홀가분한 미소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홀연히 세상을 떠나갔다. 나는 그가 윤회의 고리를 끊고 영원한 침묵의 세계에 이르기를 기원한다. 살아생전에도 그에게 시쓰기는 ‘궁극적으로 침묵과 연대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분일 뿐’이었기에. 2022년 9월 유하 21세기 전망을 대신하여 2023년은 진이정 시인이 타계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생전에 발표되지 않은 다수의 시편들은 물론 시론에 해당하는 글과 문학에 관한 산문들을 남겼다. 참 다행이다. ‘21세기 전망’ 동인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진이정의 시와 산문들을 모아 전집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그가 30년 전에 남긴 글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자못 심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22년 9월 함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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