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되도록이면 괴테와 다산의 모습을 쉽고 전체적으로 그린다는 생각으로 두 사람의 생애를 비교하여 서술하였다. 이어 두 사람의 정신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은 주관적 평가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한 두 사람의 문헌에서 직접 인용하기로 하였다. 종합적으로 괴테와 다산이 오늘의 우리 한국인에게 어떤 의미와 가르침을 주는지 되새겨보고자 했다.
작년과 금년 난데없이 세 번 러시아여행을 하였다. 작년 8월 교수직 정년퇴임 기념으로 난생 처음 피서여행을 바이칼 호수로 갔다가,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1982-1950)의 소설 <유정(有情)>이 이곳을 무대로 쓴 작품임을 재발견하였다. 춘원 스스로 당신의 많은 작품 중에서 이 소설이 외국어로 맨 먼저 번역되기를 바란다고 했을 정도로 세계문학성이 강한 이 작품이 왜 하필 바이칼을 무대로 했을까 많은 생각을 자아내게 하였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도 불함(不咸)문화론을 주장했지만, 실제로 가보니 한국민족의 기원이 이곳에서부터 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그래서 1년에 3천명이나 피서여행을 간다는 이곳에 <유정> 문학비를 하나 해세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 분들에게 얘기하니 매우 뜻있는 일이라고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주기도 하여 현재 추진중이다. 이렇게 시작하여 내킨 김에 춘원이 발을 디딘 러시아 땅을 실제로 답사하고 싶어 한 달이 지나 연해주로 시베리아 종단열차여행을 감행했다. 금년 8월초에는 춘원이 살던 치타(Chita)에 다녀왔다. 춘원은 1914년 중국 상하이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하는 <신한민보(新韓民報)> 주필로 초청되어 가는 길에 이곳에 7개월 머물다가 세계 제1차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길이 막혀 좌절되어 귀국 후 일본으로 가서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였다. 22세의 망국청년으로 우수와 고민의 세월을 보낸 치타는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 한국인 학자로 그의 족적을 찾아 간 사람으로는 최초가 아닌가 싶다. 또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과제를 안고 돌아왔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여행 때 Nothingbok 이란 나만의 일기장 겸 시 노트 겸 스케치북을 호주머니에 들고 다닌다. 여행의 짬짬에 쓰고 그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니 그것을 위해 여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기도 쓰지만 느낌을 담는 데는 시가 최적이다. 사진도 찍지만
그려야 오래 인상이 남는다.
이런 발자취를 시화집이라 하여 모아본다. 여행시집을 여러 권 냈지만 춘원을 생각하며 러시아여행을 시화집으로 묶는 새로운 맛과 감회가 있다. 작품성보다도 춘원연구의 주변이랄까 심정을 이렇게 표현해보는 것이 보람되고 기쁘다. 오늘은 내가 그간 오랫동안 작업하여 출간을 의뢰한 <나의 일생: 춘원 자서전>이 나온 날이다. 이날 이런 시화집의 서문을 쓰는 것이 더욱 기쁘다.
2014년 9월 5일 -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