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혐오의 정치화와 그 거대한 대중적 동원력을 볼 때마다 이 현실에 좌절하다가도, 그에 맞서는 흐름이 기어이 어떻게든 터져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정치는 늘 우리를 실망시키지만, 때로 우리에게 어떠한 감동을 주는 찰나의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이 바로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지금시간Jetztzeit이다. 그러한 순간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성좌에 대한 기대는 우리로 하여금 정치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정치에 대한 권리를 민주주의의 핵심적 이해 방식이자 존재 이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결정과 집합적 자기 통치를 위한 정치의 권리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해방적 대항 정치를 만들어 가야 할 근본적 이유를 발견한다.
새로움이 없다는 것, 변화가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파국이라는 형벌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 성찰은 그런 반복의 순환을 넘어서는 변화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자신의 노동을 이어가야 한다. 정치적 독자가 되는 것은 그러한 실천의 한 방편이다.
또 더 나아가 고백하건대, 필자 자신도 현재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한복판에서 고전적 텍스트들을 독해하려고 시도하는 한 사람의 정치적 독자임에 틀림없다. 결국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정치철학은 언제나 정치적 독자들이 수행한 정치적 독해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과거의 텍스트와의 끊임없는 대결 속에서 전개돼왔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