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칠순 때, 나는 어머니의 가냘픈 손을 잡고 약속 한 가지를 드렸다. 그 약속은‘어머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개인전을 열어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아마도 어머니는 바쁘게 살아가는 아들에게“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아, 그 마음만 받을게”라는 표현으로 내 등을 쓰다듬어 주신 것 같다. 나는 그 약속을 23년이 지나 어머니의 임종 때까지 이루어 드리지 못했다. 늘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그리고 어머니 역시 그 약속을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는 늘 내 편이셨고 힘들 때마다 내 손을 잡아주셨지만 아들에게 부담될 말은 입 밖에도 뻥끗하지 않으시는 분이셨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나는 어머니의 작은 비석 앞에서, 파릇파릇 자라나는 잔디를 쓰다듬으며 부끄럽지만 또 한 번의 약속을 드렸다. 약속은 상대방이 있어야 지켜지는 것이지만, 그 약속은 어머니의 묘 앞에서 내가 나에게 했던 약속이었다.
그 두 번의 약속은 내게 아직 유효하다. 내가 아직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고, 사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를 이등분해 이틀을 사는 듯 살아가고 있다.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는 어머니의 환한 미소는 내게 동력이 되고 에너지가 된다. 첫 번째 약속, 개인전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듯하지만, 가을이 깊어가는 날 두 번째 약속인 시집 출간이 이루어져 오랜 시간 기다려 준 어머니를 뵐 면목에 소풍 가는 전날처럼 마음이 한껏 들떠 있다. 어머니는 늘 내 곁에 계실 때에도 불현듯 바람처럼 몰려오는 그리움이었다.
틈틈이 써놓은 시들을 정리하다 보니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를 끄집어낼 수 있었는데 그것은‘그리움’이었다. 그 그리움은 나를 끌고 여기까지 온 모티브였고, 끊임없이 나를 재촉한 발걸음이었다. 밤을 밝히는 빛나는 별빛이었고, 지친 나를 만지고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40년을 살아도 문득 문득 생소해지는 이방인의 아픔이었다. 내속엔 그 희로애락의 순간 모두가 그리움으로 각인돼 마음에 새겨져 있다. 기억의 앨범 속에 고스란히 감춰져 있던 시간들을 펼치면 시 한 구절이 노래처럼 입술에 담겨진다. 어머니와의 두 번째 약속을 준비하며 시집 첫 장에 들어갈 문장을 정리하다보니 벌써 그리움이 깊어가고 있다.
그리움이 창가에 앉아 나를 부르고 있다.
나의 첫 번째 시집 『바람에 기대어』를 어머니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