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대학 시절 수업 시간이 떠오른다. 전영애 교수님의 <독일명작의 이해> 시간이었다. 매번 지정된 작가의 작품을 미리 읽고, 강의실에서는 여러 작품을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그날의 수업 주제는 ‘카프카.’ 나는 카프카의 단편소설 작품 중 한 편에 관한 내 생각을 한창 말했다. 그러다 다른 학생 하나가 나의 실수를 지적했다. 나는 작품 제목 ‘법 앞에서’를 ‘문 앞에서’로 착각하고 읽었던 것이다. 제목부터 엉뚱하게 파악했으니 내용 해석도 엉뚱할 수밖에. 아마 그 학생에게 내 말이 이상하게 들렸으리라 싶다.
그런데 전영애 교수님께서는 내 의견이 흥미롭다고 코멘트하셨다. 내가 토론에서 망신당할까 봐 걱정하셔서 말씀하시는 건 아닌 듯했다. 쓰고 계신 안경 너머로 교수님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작품에 법 대신 문을 집어넣어 해석하면 어떤 의미가 될까, 짧지만 진지한 평론가의 눈빛이었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씀으로 나는 해석했다.
지금까지 평론을 쓰면서 전영애 교수님께 많은 빚을 졌다. 문학 작품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수많은 주저함과 망설임의 순간이 있었다. 나의 해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내가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그럴 때마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씀은 언제나 큰 용기가 되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편의 글은 제법 오랫동안 썼던 주저함과 망설임의 결과물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용기를 내어서 계속 엉뚱한 생각을 해나가야겠다.
슬픔을 이야기하기, 곧 슬픔이라는 심적 고통과 상처를 그대로 두지 않고 소설이라는 허구적 세계 속 이야기로 써내는 작업이야말로 진정한 애도의 한 방식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 수록된 여러 작품이 슬픔과 불안을 이야기하는 것은 타인의 비극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호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 슬픔에 관한 애도의 이야기는 삶에 대한 성찰과 인간적 가치에 관하여 다시 한번 돌아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비평문을 작성하던 시간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작품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마주하면 금방이라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흥분하다가, 막상 본격적으로 글을 쓸 때면 애초의 자신감은 사라지고 불안감과 압박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괴로움 속에서 한참을 허우적대다 보면, 어느새 일체의 잡념 없이 그저 무덤덤하게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짧지만 강렬하게 찾아오는 그 순간, 충일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글을 쓰는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고, ‘그래서’ 즐거움의 시간이었다.
이 책으로 문학평론 삼부작은 마무리 되지만 작품을 읽고 쓰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글 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즐거움이란 너무나도 강렬한 이끌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