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문학상 수상자라는 황홀한 소식을 접하고 나자 투명인간, 일십백운동, 진짜 주인공과 음식이 차례로 떠올랐다. 정작 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나태에 빠져 소홀히 하는 창작의 밑거름이다. 「불」의 순이, 「빈처」의 아내, 「할머니의 죽음」의 중모, 「운수 좋은 날」의 김 첨지, 「사립정신병원장」의 W군…… 나는 문학적 상처와 아픔의 통과의례를 거치는 동안 이들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었다. 독자가 소설 속 인물들을 내 이웃처럼 느끼며 그들의 애틋한 목소리를 들었다는 건, 작가가 충실히 시대를 재해석하고 소시민들의 삶을 눈여겨봤다는 뜻이다. 마침내 귀한 상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그 순간 선명한 줄이 내 마음속에 그어져 더 기쁘고 설ㅤㄹㅔㅆ다. 그건 바로 소설 창작의 출발선이었다. ‘현진건’이란 고매한 이름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지 않도록 긴장하면서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소설을 쓰겠다. 소설가로서 다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손을 잡아준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도도하면서도 살가운 ‘소설’과 인연을 맺은 게 2002년 1월이다. 마치 혼인신고를 한 것처럼 그해 1월 1일자 신문에 실린 나의 신춘문예 당선작을 보면서 뭉클했던 기억이 새롭다. 간절히 원했음에도 뜻밖이라 여겨진 행운 앞에서 나는 소설과 함께라면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등단의 꿈을 이룸과 동시에 문운을 떨치리라는 순진한 생각은 애당초 품지 않았으나 황망하게도 어느새 나는 홀로 공백기 속을 거닐고 있었다. 몇 해가 지나 이번에는 장편소설로 신문과 잡지에 내 이름 석 자를 올려 주목받았지만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오로지 소설뿐이라는 ‘일편단심’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묘한 기분으로 나의 첫 소설집에 실릴 작품들을 한 편 한 편 살펴보면서 수시로 부끄러웠다. 특히 등단 초기에 쓴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랬다. ‘소설 쓰기’의 내공이 웬만큼 쌓인 지금의 눈으로 초기 작품들을 보면 얼마나 어설플까 싶어, 그 퇴고 작업이 만만치 않으리란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다 펼쳐본 소설들 앞에서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문장이 빼어나거나 어떤 문제의식이 돋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때’의 소설에는 ‘지금’의 소설에 쑥 빠져 있는 무엇이 흥건했다. 그건 바로 소설을 향한 ‘순수와 열정’이었다.
컴퓨터 속에서 곤히 잠자고 있던 소설들이 신인 시절의 나를 되찾아줬으니 이번 소설집 출간은 내게 있어 전환기나 다름없다. ‘소설은 곧 인간학’이라는 누군가의 지당한 말씀을 되새기며 나만의 눈과 머리로 재해석한 세상과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인물들을 하얀 도화지에 차곡차곡 그려 넣자는 다짐도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