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코미디 배우이자 작가로, ‘코미디계의 비틀스’로 일컬어지는 전설적인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선(Monty Python)’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직접 대본을 집필하고 출연한 시트콤 “폴티 타워스(Fawlty Towers)”는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론 조사에서 역사상 최고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꼽힐 만큼 큰 발자취를 남긴 코미디계의 거인이다.
존은 1939년 영국 남서부 서머싯주 해안의 작은 도시 웨스턴슈퍼메어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원래 성씨는 치즈(Cheese)였으나, 이 이름을 창피하게 생각하던 아버지가 젊은 시절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육군에 입대하면서 클리즈로 바꾸었다. 196센티미터의 키다리 배우로 유명한 존 클리즈는 열두 살 무렵에 벌써 180센티가 넘은 키 때문에 학교에서 괴롭힘의 표적이 되기 일쑤였는데, 이런 상황을 모면하는 방편으로 유머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클리프턴 칼리지에서는 축구팀과 크리켓팀 주전 선수로 활약하는 한편 학업 성적 또한 우수했지만, 존의 가장 큰 관심사는 코미디가 되었다.
그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다우닝 칼리지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하는 한편, 교내의 이름난 연극 클럽 ‘풋라이츠(Footlights)’에서 코미디 쇼의 대본을 쓰고 공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졸업한 뒤 BBC 방송국에서 일하게 된 클리즈는 “프로스트 리포트”를 비롯하여 여러 텔레비전,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 및 배우로 활동했다. 이런 프로들을 통해 그는 지극히 멀쩡한 생김새를 하고서 몹시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코미디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1969년에 클리즈는 그레이엄 채프먼, 테리 길리엄, 에릭 아이들, 테리 존스, 마이클 페일린과 함께 텔레비전 프로그램 “몬티 파이선의 비행 서커스”를 선보였다. 초현실주의적 스케치 코미디들로 구성된 이 프로는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몇 년 후 미국에서도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클리즈는 이후에도 ‘몬티 파이선’ 멤버들과 함께 영화 “몬티 파이선과 성배”(1975),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1979), “몬티 파이선의 삶의 의미”(1983) 등을 내놓았다.
1970년대 중반에는 당시 아내였던 코니 부스와 함께 시트콤 “폴티 타워스”를 만들었다. 역시 컬트적인 인기를 모은 “폴티 타워스”로 클리즈는 1980년 영국 아카데미 텔레비전상 연예공연 부문을 수상했다. 이 시트콤은 2000년에 영국영화협회가 선정한 ‘최고의 영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100선’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클리즈가 연기한 시니컬하고 무례한 호텔 경영인 배질 폴티는 2001년 ‘채널 4’ 방송국에서 발표한 ‘최고의 TV 캐릭터 100명’ 중 2위에 올랐다.
영화 쪽에서도 활발히 활동해온 그는 1988년 개봉한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의 주연과 시나리오를 맡아,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는 동시에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는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라는 유령을 연기했고,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본드에게 첨단장비를 마련해주는 Q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슈렉 시리즈에서 목소리 연기도 선보였다.
한편 클리즈는 자신이 1972년에 설립한 회사 ‘비디오 아츠’를 통해 기업 교육용 영화들을 제작하고 직접 출연하면서, 시간관리라든가 고객 서비스, 창의성 같은 비즈니스 실무를 유머러스하게 담아냈다. 또한 정신의학자 로빈 스키너와 함께 인간관계를 다룬 책 “가족, 그리고 가족에게서 살아남는 법”(1983)과 “삶, 그리고 삶에서 살아남는 법”(1992)을 집필했다. 교육계와 인연을 맺기도 한 클리즈는 1970년대 초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학장을 역임했고, 1999년 코넬 대학교에서 A.D. 화이트 특임교수에 임명되었으며 나중에는 초빙교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