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책 읽고, 글 쓰고, 수다 떨며 ‘거짓말’하는 것이
좋아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사람은 이야기로 구성된다고 믿는
인문주의자이며, 한 나라의 문화정책은 ‘추진’만이 아니라
‘추구’하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87년 전북 군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소설 습작을
하며 구파발성당에서 운영하는 ‘다울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했으며, 졸업 후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노문연)과
민예총에서 문화운동을 했다. 한국작가회의 젊은작가포럼
위원장, 『내일을여는작가』 편집위원, 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
‘베트남을이해하려는젊은작가들의모임’ 대표, 서울시 50+
서부캠퍼스 인생학교 교수 등을 지냈다. 자활근로자,
노숙인, 교도소 수용자, 장애인을 비롯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육과 문화예술교육에 오랫동안
참여했다. 현재 경희대 실천교육센터 운영위원, 문학 웹진
《비유》 편집위원, 문화예술교육 웹진 《아르떼365》 편집위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이며, 문화예술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정책사업에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인문적 인간』을 비롯해 『천상병 평론』,『달이
떴다』(이상 편저),『행복한 인문학』,『자치와 상상력』,『경성에서
서울까지』,『노년 예술 수업』,『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이상
공저)를 쓰고 엮었다. 요즘은 20년 넘게 살고 있는 서울
양천구에서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모색하는 ‘동네지식인’을
자처하고 있다.
지난 십 년의 시간을 회고할 때, 시와 예술의 힘이 없었더라면 나는 외로움과 산다는 일의 막막함에 지쳐 여러 번 쓰러졌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것은 한 줄의 시와 예술 작품들이었다. 고정희의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에 나오는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라는 구절을 조용히 읊조리는가 하면, 천상병 시 「나의 가난은」 속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이라는 구절을 위안 삼아 “비쳐오는 이 햇살에 떳떳”해지기로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리고 문학을 제외한 타 장르에도 관심과 눈길을 돌리고, 그 분야 예술가들을 만나 이우異友의 우정을 나누었다. 기존에 살아온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살고자 했다고 해야 할까. 그런 과정에서 『논어』에 나오는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라는 말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말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기쁘게 지내면 멀리 있는 사람들이 찾아온다’라는 뜻이다.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온기’를 함께 나누고, ‘인기척’을 서로 나누고자 했다. 제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았더라면 쉽사리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났고, 제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못 했을) 고민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게 되었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이문재) 살고자 한 십 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각자’와 ‘각자’로 만나 서로 연대하고, 우리 사는 대한민국을 터무늬 있는 ‘비빌리힐스Hills’로 바꾸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했다. ‘나홀로 볼링’(퍼트넘)을 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각자도생의 사회는 절대 좋은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_「사람의 줄무늬는 몸 안에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