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들꽃 무성하던 푸른 들판이 깎여 나가고 또 낮은 산들이 깎이고 잇다. 곧 대단지의 아파트가 들어설 모양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가던 그 들꽃의 공간을 잃어버린 지 두어 달은 된다. 나는 이제 이곳의 집. 이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 놓여 있는 집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 기쁨이나 환희에 가까운 슬픔의 집?
이 겨울 동백이 피고, 저 남쪽 바다는 더욱 따뜻하고 맑아지리라. 아이들의 깨끗한 눈빛 속 에 이 어둠 속에서 꺼낸 한 송이 붉은 꽃을 쥐어주며 나는 마음과 귀를 저 바다 쪽에 묶어 두게 되리라.
1994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