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숲에 버려진 헨젤과 그레텔이 작은 새에 이끌려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하다니! 정말 놀라웠지요.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도 문어 나라 속 글자의 숲에 들어가 이야기의 재미에 풍덩 빠지길 바라요. 문해력은 이야기를 먹고 자라니까요. 쓴 책으로 《악어 엄마》, 《달걀 생각법》, 《소피의 사라진 수학 시간》 등이 있어요.
어느 사대주의자의 고백
처음엔 실학자들에게 반했다.
우연히 들른 실학 박물관에서 그들이 꿈꾸고 이루려 애쓴 세상에 대해 알고 나서, 혼자 들이파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글을 쓰며 교류했던 멋진 지성들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전에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프랑스에만 있는 줄 알았다. 프랑스 혁명의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고 물을 주고 마침내 세계 역사의 방향을 튼 멋진 사상가들은 유럽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실학자는 그저 교과서로 달달 외운 유형원-반계수록, 이익-성호사설, 한백겸-동국지리지. 그렇게 박제된 지식으로만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이 뭔지도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한자로 된 고리타분한 두꺼운 책인 줄로만 알았다. 오호통재라~ 교과서에 한두 줄 박힌 정보로는 도저히 그들의 매력과 훌륭함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우연히 들른 실학 박물관에서 사대주의자의 뚜껑이 열렸다. 아, 우리나라에도 계몽주의가 있었구나. 그 싹이 트지 못하고, 개혁과 혁명의 역사로 이어지지 못했을 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구하고, 책을 쓰고, 좋은 자리를 얻는 도구로 전락한 과거 시험을 과감히 그만두고 실제적이고 근본적인 학문을 들이파던 공부벌레들이 조선 시대에 이토록 많았구나.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사상가들을 모르고 있었을까? 왜 로크나 루소만 위대한 줄 알았을까? 사대주의적 역사관을 심어 준 교과서를 원망하며, 이 매력적인 조선의 지성-실학자들을 아이들에게 군침이 돌 만큼 재미나게 전해 줄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엔 창덕궁에 반했다.
이십대에 처음 유럽 여행을 한 뒤 유럽 도시들에 눈이 뒤집혔다. 사대주의 세례를 제대로 받은 내 눈엔 우리나라 기와집보다 유럽의 박물관, 오래된 건물이 멋있어 보였다. 서울엔 왜 이렇게 오래된 건물이 없는 거야? 한탄하다가 차츰 고궁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조선 시대 왕들이 살던 창덕궁. 그 뜰에 해당하는 창경궁. 거기엔 조선 산천과 딱 어울리는, 규격화되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 과학 정신이 녹아 설계되어 있는 조선 건축이 세워져 있었다.
이렇게 뒤늦게 조선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눈이 뜨인 나는 매력적인 지성-실학자들을 이 아름다운 창덕궁에 모셔 들인다면 어떨까,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나무꾼과 물고기 도서관, 내가 반한 실학자들을 내가 반한 궁전 창덕궁에 살게 하자. 아이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나라 동네 곳곳에 창덕궁 같은 도서관이 세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이 책은 한때 골수 사대주의자였던 인간이 속죄 차원에서 지은 책이다. 조선 지성의 아름다움과 조선 건축의 아름다움을 우리 아이들에게, 유럽과 서구의 아름다움과 우월함에 눈뜨기 전에 먼저 알려 주자. 시급하다, 그런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