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1856
순턴푸의 본명은 “푸”이고 관직에 나가면서 왕에게서 하사받은 공식적인 관직명은 “프라순트라워한”이다. 태국인들은 본명을 붙여 “순턴푸”라고 부르며 사랑한다. 현재의 라따나꼬신 왕조(짜끄리 왕조) 성립 4년째 되는 해에 태어난 순턴푸는 라마 4세가 영국과 맺은 라따나꼬신 왕조 최초 문호 개방 조약인 “태영 우호 조약”을 맺은 다음 해인 1856년에 사망했다.
순턴푸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기행시로는 <니랏> 9편이 있다. 니랏 중 <니랏 푸카오텅>이 태국 내 니랏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외에 서사 문학으로는 <프라아파이마니>, <코붓>, <락사나웡> 등이, 전통 무용 극본으로는 <아파이누랏>이, 속담집으로는 ≪사왓디락사≫, ≪수파싯 선잉≫, 세파로는 <쿤창과 쿤팬 이야기> 중 일부, 그리고 뱃놀이용 노래로 <헤르아 까끼>, <헤르아 프라아파이마니>, <헤르아 코붓> 및 <헤르아 짭라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