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먼저 도일한 오빠를 따라 1936년 10세의 나이로 어머니와 현해탄을 건너 도일했다. 이후 도쿄, 쓰쿠바, 아오모리 등을 전전하면서 생활하다 1941년 조선인과 결혼해 태평양전쟁과 전후의 궁핍기를 이겨내며 4형제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2016년 현재는 이바라키현 오미다마시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조선에서 어린 나를 데리고 일본에 온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나를 남겨두고 조국으로 돌아가셔서,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못한 채 80년의 생애를 마치셨습니다. 일본 동북지방 아오모리(靑森)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후 10년간 빈곤기를 같이 생활했던 시어머니는 57살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두 분이 저 세상에서 나를 위해 아들들에게 좋은 며느리를 점찍어 주셨습니다. 나의 지금의 행복은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보내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년 올해 나는 만 90살이 되었습니다. 원래 청소나 잡초 뽑기를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만, 이젠 나이가 들어 더운 날씨에 장시간 잡초를 뽑는 일은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할 생각입니다. 나를 태어나게 해준 조선과 나와 이이들을 먹고 살게 해준 일본, 두 나라 사이에서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는 그날까지 잡초를 뽑으면서 살아가렵니다.
그런 한편으로 나는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80여 년의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1936년, 멋모르고 현해탄을 건넜던 십 세의 어린 소녀 이름은 박옥희, 일본에서는 ‘타마짱’이라고 불렸습니다. 그 조그만 조선의 소녀가 어떤 운명을 타고 났는지는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어린 소녀가 불현 듯 현해탄을 건너서 살아가야 했던 80여 년의 삶을 잔잔히 되돌아보면서, 잡초를 뽑는 심정으로 인생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