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왕초,’ ‘쪽방의 대부.’ 이 단어들이 김흥용 목사의 별명이다. 그는 1997년부터 자신의 사비를 털어 <나사로의 집>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1939년 강원도 삼척시에서 태어난 김흥용 목사는 군 제대 후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였다. 서울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그는 걸인 생활을 하며 도시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때 경험한 걸인의 삶은 이후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 당시 추위를 피해 들어간 교회에 대한 경험은 그를 목회자의 길로 인도했다. 찹쌀떡 장사, 이발소 조수, 공장 직공, 방범대원 등을 전전하며 결혼까지 하게 된다.
1975년 차를 끓이는 일용직 사환으로 한국은행에 입사하였고, 성실한 태도를 인정받아 2년 후 도서관 정규직 사서가 되었다. 공부도 멈추지 않아, 성균관대학교에서 사서와 경영을 공부했다.
그러던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신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는 수술대에 올랐고, 이후에 또 한 번의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신장 하나를 완전히 적출했고, 남은 신장도 3분의 2를 잘라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는 삶이 얼마나 쉽게 사라질 수 있는지를 체험하였고, 자기의 삶을 보다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목회자가 되기로 서원하며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 훈련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3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20년간 근무한 한국은행을 퇴직한 1년 뒤인 1996년, 그는 자신이 평생 헌신할 사명을 만나게 된다. 이전까지는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들이지만 이번에는 그의 눈과 마음에 깊이 박혔다. 서울역 주변을 떠도는 걸인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결심을 가족에게 말했고, 가족들의 그 결심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1997년 그는 퇴직금을 털어 용산 쪽방촌에 50평 규모의 <나사로의 집>을 설립했다. 목욕탕 시설이 있는 쉼터였다. 이어 예술인연합선교회, 양지교회 등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였으며, 2001년 3월부터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중구청으로부터 남대문 지역 상담소를 위탁받아 10년간 운영했으며, 이것을 계기로 전국에 쪽방인들을 위한 상담소가 설치되었다.
저서 : <나는 무엇으로 남으리>, <사랑을 심으며>, <이 생명 다하도록>, <심은 대로 거두리라>, <아빠 쪽방에서 살아요>, <쪽방에도 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