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고영성(작가·북 큐레이터)
독서 전문가이자 사회과학, 인문 전문 작가이다.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성장, 학습, 독서, 양육법 등에 대한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이 필요함을 절감했다. 그래서 발달심리학, 교육학, 뇌과학, 생물학, 행동경제학을 기초로 많은 연구자료를 종합하고 분석하여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과학적 사실들을 담은 『부모공부』를 집필했다.
어린이경제신문 교육 수석자문으로 자녀양육 및 학습에 관한 칼럼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으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에서 북 큐레이터로서 좋은 책들을 선정해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인 『어떻게 읽을 것인가』, 『명저, 비즈니스에 답하다』, 『경제를 읽는 기술 HIT』, 『누구나 처음엔 걷지도 못했다』 등이 있다.
팟캐스트 <영어, 독서, 공부 합시다>를 진행하며, 여러 매체에 다양한 글을 기고하고, 카페, 페북 커뮤니티에서 많은 지지를 받으며 SNS, 방송, 강의 등으로 독자와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카카오 채널 : 부모공부
팟캐스트 : 영어 독서 공부 합시다
페이스북 : 인생공부, 부모공부
블로그: blog.naver.com/justalive
이메일: justalive@naver.com
부모공부
부모
공부
‘모든 부모’를 위한 종합 교양서
초판 인쇄 2016년 8월 20일
초판 발행 2016년 8월 25일
지은이 고영성
펴낸이 유해룡
펴낸곳 (주)스마트북스
출판등록 2010년 3월 5일 | 제313-2011-44호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84 (성산동) 월드PGA빌딩 4층
편집전화 02)337-7800|영업전화 02)337-7810|팩스 02)337-7811|홈페이지 www.smartbooks21.com
종이책ISBN 979-11-85541-38-9
전자책ISBN 979-11-85541-39-6
원고 투고 : smartbooks1@naver.com
copyright ⓒ 고영성,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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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by SmartBooks, Inc. Printed in Korea
내 사랑하는 아내이자
결·겸의 엄마 ‘임보경’에게
Prologue
왜 부모공부를 썼는가
“자, 그럼 이번에는…… ‘당근’!”
내 외침과 동시에 방 한쪽 끝에 있던 나와 4세 된 딸은 반대쪽 방 끝으로 후다닥 갔다. 우리는 방 끝 쪽에 몇 장의 한글카드를 놓아두고, 내가 호명한 단어가 씌어 있는 카드를 누가 먼저 찾아오는지 겨루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내가 ‘당근’ 카드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척 헤매는 시늉을 하는 동안, 딸은 ‘당근’이라고 씌어 있는 카드에 손을 뻗어 놓고는 내 얼굴을 살폈다. 딸은 카드에 적힌 글자가 정말 맞는지는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동안 한글카드 놀이를 반복하면서 아빠의 표정을 살피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어느새 학습해버린 아이는, 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그제야 안심하며 재빨리 그 카드를 들고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신나는 목소리로 외쳤다.
“야호, 내가 이겼다!”
나는 아이와 즐겁게 한글카드 놀이를 하면서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사실 딸이 일찍부터 책을 좋아하고 열심히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은근히 품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글카드 놀이를 해서 아이가 즐겁게 놀면서 한글을 깨우치게 할 수 있도록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와 이렇게 한글카드 놀이를 며칠간 반복하던 나는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렸다. 새로운 한글카드를 만들어 놀이를 하고 나면 아이가 그 전에 외웠던 글자를 대부분 잊어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직 어리니까 쉽게 배우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언제 배웠는지도 모를 새로운 어휘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에 비해 아이의 한글 습득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을 잘 할 수 있도록 놀이 중에 단어를 반복하여 외우는 시간을 늘렸다. 그러자 아이는 표정이 어두워지며 이제 한글카드 놀이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닌가. 다시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내가 단어를 잘 외웠는지 아이에게 자주 확인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좀 받은 듯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최대한 학업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로 다짐했던 터라, 나는 결국 한글카드 놀이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솔직히 아쉽기도 했다. 이왕이면 내 아이가 한글을 빨리 배워서 스스로 독서를 시작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해하거나 알지 못했던 것들
나는 전작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쓰면서 독서에 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의 독서에 대해서도 많은 자료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결국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완전히 잘못된 독서교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무리하게 한글카드 놀이를 밀어붙였다면 아이에게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아이들에 대한 연구 자료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오해하고 있었거나 알지 못했던 사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은 아이와 관련된 지식들을 열거한 것이다. O, X, 또는 ‘모르겠음’으로 천천히 답해보자.
1. 자녀가 생기면 대체로 부부관계가 좋아진다. (O, X, 모르겠음)
2. 아이가 엄마의 간섭 없이 최대한 스스로 결정하도록 할 때 아이의 자율성은 향상된다. (O, X, 모르겠음)
3. 엄마가 감정을 잘 다스리고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명확하게 설명한 다음 체벌할 경우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O, X, 모르겠음)
4. 아이가 스스로 규칙을 잘 지키게 하고 학습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칭찬 스티커’는 매우 유용한 교육 도구이다. (O, X, 모르겠음)
5. 미취학 아동이 TV를 보는 것은 무조건 좋지 않다. (O, X, 모르겠음)
6. 외둥이는 형제가 있는 아이보다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O, X, 모르겠음)
7. 1월에 태어난 아이와 12월에 태어난 아이의 학업 성취 차이(월령효과)는 중학교부터는 거의 사라진다. (O, X, 모르겠음)
8. 어떤 칭찬이든 자주 할수록 좋다. (O, X, 모르겠음)
9. 태교를 잘 하면 평범한 아이도 영재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O, X, 모르겠음)
10. 아이큐는 아이의 창의성을 측정하는 데 유용한 지표이다. (O, X, 모르겠음)
11. 아이는 어른들보다 대체적으로 외국어를 더 빨리 배운다. (O, X, 모르겠음)
12. 5세 전에 글자를 배워서 스스로 독서를 한 아이는 7세 때 글자를 배워서 스스로 독서를 한 아이보다 초등학교 졸업 즈음에 독서능력이 더 높다. (O, X, 모르겠음)
13. 아이들의 자존감은 나이가 들면서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O, X, 모르겠음)
14. 우리나라 학생들은 선진국 아이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창의성이 높지 않다. (O, X, 모르겠음)
15.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 더 공격적인 편이다. (O, X, 모르겠음)
16. 학습을 놀이와 연계하면 효과가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O, X, 모르겠음)
명확하게 알고 있는 답은 얼마나 되는가? 답은 이 글의 마지막에 있다.
부모가 아이에 대해 알아야 할 필수 지식
나는 시중에 나온 다양한 양육서적들을 보기 시작했고, 아이의 교육에 대한 지식이 쌓여갈수록 한편으로는 과학적 사실에 입각하여 부모가 자녀에 대해 알아야 할 지식들을 집대성한 대중서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좋은 책들도 이미 꽤 나와 있지만 대부분 (아이의) 학습, 감정, 놀이, 독서 등으로 분야가 세분화되어 있어서, 자녀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을 그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런 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내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온 뇌과학, 심리학, 경영학, 경제학 등과 최신 양육이론을 연계하여 아이의 발달이 아이의 미래를 어떻게 규정하게 될지 밝히려고 노력했다. 나의 만용(蠻勇)이 많은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기 전에 부모님들이 반드시 참고했으면 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과학적 지식이 항상 옳지는 않다. 과거의 많은 과학적 지식이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므로 책에 나온 내용이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면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지식들은 낡은 지식이 되거나 잘못된 지식이 될 수 있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하다. 하지만 다른 어떤 지식보다 과학적 지식은 신뢰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무언가를 믿고 따라야 한다면 한 개인의 경험담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 지식을 따를 때 더 성공적인 자녀 양육과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연구 결과들은 대부분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가 아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연구는 어떤 결과를 내는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을 뿐이다. 사회과학에서 인과관계를 규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결과에 영향을 주는데 그것을 정확히 측정하기도 어렵고 완벽히 통제된 실험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책을 많이 읽을수록 아이가 책을 많이 읽는다’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 부모의 독서가 아이의 독서를 불러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부모의 독서는 아이의 독서와 상관성이 있다’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셋째, 책에 나온 연구들은 대부분 집단의 평균적인 결과이다. 즉 한 개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확한 설명도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불행한 사건을 많이 겪을수록 성인이 됐을 때 불행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는 집단의 평균적인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불행한 경험을 겪은 어떤 한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넷째, 양육에 치이다 보면 책 읽기가 쉽지 않다. 과학적 지식의 밀도가 높은 책은 더욱 읽기가 힘들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최대한 읽기 쉽도록 구성했다.
내 아이와 관련해 궁금한 분야부터
책은 편하게 읽는 것이 좋다. 이 책은 처음부터 쭉 읽어도 좋지만 차례를 보고 먼저 자신의 자녀에 대해 알고 싶은 분야부터 읽는 것을 추천한다. 자녀를 생각하면서 궁금한 분야부터 읽어간다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부모공부’ 카카오 채널, 페이스북 페이지, 내 블로그를 통해 책 내용을 쉽게 정리한 카드 뉴스를 함께 보면 책을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응원하는 많은 부모들에게, 그래서 나아가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부디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자, 이제 앞에 실시했던 테스트의 답을 공개하겠다. 16문제의 모든 답은 X이다. 왜 그럴까? 책의 본문 속에서 확인해보자.
2016년 8월 고영성
Contents
Prologue 왜 부모공부를 썼는가?
Part 1
아이의 환경
1. 부모
완벽한 부모는 없다
엄마는 신이 아니다 / 양육 완벽주의 / 잠 좀 자게 해주세요! / 사랑스러운 미치광이 / 심각한 부부관계 / 의지력 고갈
Special
좋은 부부관계를 위해 알아두면 좋을 것들
2. 스트레스
아이의 미래를 망치다
파블로, 파울로, 파블리토 /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 / 스트레스의 위험성 /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떨까?
3. 애착
아이는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
성장장애의 원인 / 아이는 사랑 전문가 / 애착과 접촉 / 애착의 안정성 / 안정 애착 엄마의 6가지 특징
Special
분리불안에 대한 이해
4. 양육방식
사랑과 복종의 멋진 하모니
앤의 양육방식 / 양육방식 4가지 / 발달에 가장 탁월한 양육방식 / 학습된 무기력과 자율성 / 처벌과 아이의 심리적 메커니즘 / 보상과 아이의 심리적 메커니즘 / 설명과 일관성의 위력
5. 스크린
독이 든 성배
TV는 무조건 나쁠까? / 스크린을 반드시 멀리해야 하는 경우 / TV 속 폭력의 효과 / 잘못된 고정관념 / TV와 학습, 그리고 건강 / 부모의 스크린 생활전략 8가지
Special
게임에 대하여
6. 남아와 여아
진실과 오해
어린 맹신주의자 / 성 역할은 타고나는 것인가? / 남녀의 실제 차이
7. 형제
순서가 삶을 바꾸다
형제가 다른 이유 / 순서가 중요하다 /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 / 외둥이는 어떨까?
Special
형제는 타인의 마음을 더 알게 한다
8. 월령효과
11월생의 미래는?
엘리트 선수들의 월령효과 / 학업에도 월령효과가 나타날까? / 명예의 전당은 왜 월령효과가 적을까? / 고통과 역경의 이면
Part 2
아이의 정신
1. 사고방식
아이는 어떻게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가?
세계 최고 요리사의 선택 / 내 아이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까? / 수학, 고정형 사고방식, 그리고 나 / 고정형 사고방식이 바뀔 수 있을까? / 고정형 아이를 만드는 부모의 태도 / 성장형 사고방식의 아이로 키우려면
2. 뇌의 발달
결정적 시기와 가소성의 힘
미성숙이 긴 이유 / 뇌, 그리고 태아 / 뇌는 변한다 / 아이 양육과 뇌의 가소성
Special
태교 책에 대한 한 가지 팁
3. 아이큐(IQ)
헛똑똑이 예언가
기증자 9623번 / 지능 검사 / 아이큐는 얼마나 유전적일까? / 환경의 영향 / 아이큐의 예측 능력
Special
영아의 지능지수는?
다중지능
4. 언어발달
아이는 언어 천재일까?
지니 / 언어 이전 시기 / 말하기 / 어휘력 / 외국어
Special
말 더듬는 아이
5. 독서
아이는 어떻게 읽을 것인가?
독서영재 / 문자는 아이와 친하지 않다 / 왜 7세가 더 효과적인가? / 아이와 어떻게 읽을 것인가 / 하시모토 선생의 독특한 수업방식 / 슬로리딩의 효과
Special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집에서 슬로리딩하기(초등학생)
6. 자기 개념
자아와 자존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거울 앞의 자기 / 자기 인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 자존감 / 자존감의 중요성 / 잠재력과 자기실현적 예언
Special
아이가 정체성과 만났을 때
7. 호기심
아이의 또 다른 본능
칸지가 하지 못한 것 / 호기심의 혜택 / 가리키기와 옹알이, 그리고 호기심 / 안정성은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Special
어떤 아이가 질문을 많이 할까?
8. 창의성
아이를 창의적으로 키우고 싶다면
우리나라 아이들의 창의성 / 창의성은 아이큐와 무관하다 / 비순응자 / 낯설음 /도전과 실패
Part 3
아이의 마음
1. 감정
아이에게 눈물보다는 웃음을!
어떤 영재의 마음 / 감정의 출현 / 죄책감과 수치심 / 감정 조절 / 감성 지능(EQ) / 감정이 곧 선택이다 / 정서적 스트레스
Special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에서 말하는 부모의 4가지 유형
2. 성격
성실성은 지능보다 강하다
지능보다 더 중요한 것 / 성실성의 힘! / 자제력의 힘! / 성실성을 높이는 법 / 아이의 자제력을 키우는 법
Special
수학시험과 질문지 작성의 상관관계
3. 사회성
아이는 사회생활 전문가!
가장 두려운 것 / ‘따돌림’이라는 악마 / 기본 신경망: 사회인지 / 옥시토신과 소속의 욕구 / 사회생활 전문가로 태어나다 / 협동의 힘
4. 공격성
아이들은 평화주의자?
아이들은 천사? / 남녀의 차이 / 유전과 환경 / 공격성의 해결
5. 놀이
빼앗겨서는 안 될 절대 권리
학대하는 부모의 극적인 변화 / 놀이하는 인간 / 놀이의 유익 / 아빠가 놀아주어야 한다
6. 행복
지금, 당신의 아이는 행복합니까?
우리 아이들은 행복한가? / 불행의 대물림 / 행복의 조건
참고문헌
아기는 향기로울 수 있고, 사랑스러울 수 있고,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른이라면 너무나 뻔뻔스러워서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든 특성 또한 가지고 있다. ―애덤 필립스―
“10시간 동안 애가 보챘던 날은, 애가 우니까, 이런 말까지 하면 정말 그렇지만……, 애 입에 손수건을 물려버리고 싶다, 미칠 것 같고, 버리고 싶다…….”
EBS 다큐멘터리 「마더 쇼크」에서 방송된 김가은(가명) 씨의 고백이다. 출산 2개월인 그녀는 말을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 눈물은 단지 육아의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양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런 생각까지 든 적이 있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런 고백을 하는 자신을 죄인처럼 여기는 듯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다른 엄마 이수진(가명) 씨는 우는 아이를 안고 이렇게 말했다.
“안쓰럽죠. 모유량이 빨리 늘어서 애가 배부르게 먹어야 하는데, 아이는 점점 크는데, 모유량이 그걸 받쳐주지 못하니 많이 미안하고…….”
이수진 씨는 모유 수유를 하고 싶지만 젖이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방법을 모두 써보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해 여간 고생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포기는 할 수 없다. 어떤 책이나 미디어를 보아도 모유 수유의 장점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유 수유는 장점이 많다. 하지만 ‘모유 수유’로 뉴스 검색을 해보면, 마치 모유가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찬양하는 기사들을 수없이 볼 수 있다. 모유는 아이의 면역체계를 개선시키고, 지능지수를 올려주며, 각종 질병들을 예방해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중에는 고소득자까지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유가 분유에 비해 아이들의 지능을 더 올려준다는 근거가 없다는 연구도 여럿 있다. 또한 지능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 중에서 수유방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 심지어 서울대학교 최경호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모유를 먹는 우리나라 신생아들은 환경호르몬(DEHP)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여부를 떠나 모유를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엄마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수진 씨는 이렇게 고백했다.
“어떻게든 모유를 먹이는 부모가 좋고, 분유를 먹이는 엄마는 ‘무조건’ 나쁘다는 극단적인 글을 본 적이 있어요. 기분이 너무 나쁘더라고요. 엄마로서 모유가 아이한테 줄 수 있는 선물인데, 그걸 제대로 못 해주었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들고, ‘아,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한 엄마지?’, ‘나는 왜 모유도 제대로 못 먹일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이처럼 모유를 강요하는 사회적 압박이 그녀에게 죄인의 굴레를 씌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앞으로 사회가 말하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수유방식뿐만이 아니다.
최근에 SNS에서 인기리에 공유된 양육 관련 기사를 보았다. 기사는 감정표현도 대물림되므로, 부모가 욱하거나 아이들에게 함부로 분노를 표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이다. 전반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기사 내용 중에 매우 거슬리는 표현이 있었다.
“백 번 잘해도 한 번 욱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엄마들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모유수유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절대 화를 내서도 안 되며, 아무리 잘하더라도 한 번 욱하면 지금까지의 공든 탑이 무너질 처지에 빠졌다. 이렇게 세상은 부모들을 ‘완벽’이라는 감옥으로 세차게 떠밀고 있다.
「마더 쇼크」에서는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에 참여한 엄마들의 말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엄마는 아이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엄마 1년차
엄마는 인내심이 많아야 한다. ―엄마 5년차
엄마는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 ―엄마 5년차
엄마는 맛있는 건 자식에게 주어야 한다. ―엄마 6년차
엄마는 항상 아이들 옆에 대기 중이어야 한다. ―엄마 11년차
엄마는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 ―엄마 3년차
엄마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엄마 8년차
엄마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해야 한다. ―엄마 6년차
엄마는 신이다. ―엄마 5년차
엄마는 아이가 최우선이 되어야 하며, 외출을 자제하고, 항상 아이들 옆에 대기해야 한다. 화를 내서도 안 되며, 모든 것을 다 이해해야 하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설문에 참여한 한 엄마가 말한 것처럼, 심지어 엄마는 신이 되어야 할 지경이다. 하지만 엄마는 신이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인간이 신처럼 되고자 한다면, 결국 얻는 것은 죄책감과 무력감뿐이다.
한편 요즘은 엄마에게만 이런 모습을 요구하지 않는다. 제2의 양육자로서 아빠의 영향력이 부각되면서, 아빠도 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슈퍼맨은 되어야만 한다. SNS에서 어떤 아빠가 “육아 책을 보면 저는 쓰레기……”라고까지 고백하는 것을 보았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한 존재이므로 완벽을 과하게 요구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2015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40대 기혼여성 1,106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의 90%가 산후우울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리고 산후우울의 원인 중 압도적 1위는 ‘아이 양육’이었다. 내가 엄마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 한참 모자라다고 생각하면, 또는 남들은 다 잘하고 있는데 나는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힘들까?
그런데 문제는 산후우울증이 양육에 매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후우울증에 걸린 엄마의 절반 이상이 ‘아이를 거칠게 다루거나 때린 적이 있다’라고 답했고, 10%는 ‘아이에게 욕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심지어 아이에게 모유나 분유를 주지 않은 적이 있다고 답한 엄마까지 있었다.
다시 말해 완벽을 요구하는 ‘양육 완벽주의’가 엄마를 완벽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엄마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아이를 버리고 싶은 적이 있다’면서 울며 고백하던 김가은 씨도 진단 결과 산후우울증으로 판명되었다.
부모가 아닌 사람들은 좀 놀랄 수도 있겠지만, 부모들은 양육을 생각보다 좋아하지 않는다. 노벨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팀의 연구에 의하면, 육아는 엄마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활동 19개 중 겨우 16위에 그쳤다. 이는 TV 시청, 낮잠, 쇼핑은 물론이거니와 집안일보다 낮은 순위였다. 우리 부부도 집안일(설거지와 청소 등)과 8개월 된 둘째를 보는 일을 놓고 실랑이를 벌일 때가 있었다. 서로 자기가 집안일을 맡겠다고 말이다.
양육의 주체인 ‘부모’를 이해하는 것은, 양육의 대상인 ‘아이’를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부모에게 닥친 상황을 제대로 바라본다면, 양육 완벽주의가 얼마나 큰 폭력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발 좀!”
아내의 외마디 외침에 눈을 번쩍 떴다. 아내의 절규를 들으니 내가 뭐라도 잘못한 양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이가 코가 막혀 며칠째 잠을 잘 못 자고 있었다. 우리 부부 또한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아내는 나보다 더했다. 나는 조용히 세수를 한 후, 아내에게 내가 아이를 재울 테니 눈을 좀 붙이라고 했다. 아내는 그렇게 지쳐 쓰러졌고, 나는 아이를 안고 1인용 소파에 피곤한 몸을 기대었다. 첫째 때 이미 많은 훈련을 했고, 둘째는 평소 잠을 잘 자는 편이었는데도 수면부족은 여전히 힘들었다. 몸과 마음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초보 부모들에게 아이가 주는 첫 번째 괘씸한 선물은 수면부족이다. 아기를 낳은 엄마는 처음 1년 동안 수면시간이 평균 700시간 줄어든다고 한다. 영국의 한 연구팀의 조사에 의하면, 신생아 엄마의 64%가 하루 평균 약 3시간 30분밖에 못 잔다. 수면의 절대량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질도 형편없다. 신생아 부모는 주로 토막잠을 자기 때문에, 수면이 마음과 육체를 회복시켜주는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잠 좀 못 자는 게 뭐가 대수롭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수면부족은 인체에 매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수면시간이 크게 줄어들면 췌장 기능이 손상되며, 만성 수면부족 상태가 되면 기초대사가 줄어들고, 인슐린 분비에 장애가 생겨 당뇨병의 위험에 노출된다. 또한 만성적 수면장애는 돌연사 확률을 높인다.(한 연구에서 쥐를 2주 동안 잠을 못 자게 했더니 죽어버렸다.)
듀크대학의 연구진에 따르면, 잠이 부족한 노인은 뇌가 더 빨리 퇴화되었다. 특히 인지능력과 관련된 부분의 퇴행이 빨랐다. 미국 공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8일 동안 3시간씩만 재웠더니, 작업 반응 속도가 눈에 띄게 늦어졌으며 실수가 잦아졌다. 1989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심각한 기름 유출 사건의 원인도 승무원의 만성적인 수면부족 때문이었음이 드러났다. 2주 동안 잠을 4~6시간밖에 자지 못하면, 업무능력이 이틀 연속 잠을 자지 않은 상태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대니얼 카너먼은 연구를 통해 수면시간이 하루 7시간 이상인 여성과 6시간 이하인 여성의 삶의 만족도 차이는 연소득 3천만원 이하인 집단과 9천만원 이상인 집단 사이의 차이보다 더 크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잠을 1시간 더 자는 것은 연간 6천만원의 소득 증가와 같은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아내와 10년 동안 연애를 했고 결혼 7년차지만, 이처럼 울먹이며 짜증내는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수면부족에 지쳐 있는 아내를 보며, 그리고 피곤한 상태로 일을 해야 하는 내 상황을 되새기며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무슨 복을 받자고 애를 낳았나.”
“그만! 엄마가 미칠 것 같다!”
첫째인 딸아이가 1분 간격으로 ‘엄마’를 부르며 무언가를 계속 묻고 요구하자, 아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 딸은 지금은 덜하지만, 3,4세까지만 해도 가끔 엄마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곤 했다. 그런데 연구에 의하면 우리 첫째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하버드대학에서 엄마와 만 2세 아이 90쌍을 관찰한 결과,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약 3분 간격으로 엄마에게 무언가를 요구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2.5분마다 갈등을 빚는다고 한다. 물론 더 어린 아이들은 20초 간격으로 엄마의 주의를 끄는 행동을 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된다고 생각해보라. 미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혹자는 이런 말까지 했다.
“오늘날의 모든 육아 지침서들은 모두 누군가(아이들)를 미치게 만들지 않는 방법과, 누군가(아이들)로 인해 미치지 않는 방법을 담고 있다.”
또한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사고를 친다. 부모가 아무리 신신당부를 해도 소파에 낙서를 하고, 우유를 쏟고, 샤워기를 들고 온 화장실에 물을 뿌리며, 겨우 재웠던 갓난이 동생을 깨운다. 예쁘면 그냥 쓰다듬으면 되지, 왜 프로레슬러들이 하는 헤드록을 거는지!
아이들은 산만하고 충동적이며 불확실성 그 자체이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며, 부모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말해도 좀처럼 먹히지 않는다. 애덤 필립스(Adam Phillips)는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기는 향기로울 수 있고, 사랑스러울 수 있고,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른이라면 너무나 뻔뻔스러워서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든 특성도 가지고 있다.”
어린 아이를 둔 모든 부모들은 이러한 사랑스러운 미치광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드라마에는 부부가 아이를 낳은 후 매우 행복해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당연히 그럴 것 같다. 신비롭게 탄생한 아이를 보면서 부부의 사랑을 매일 재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각종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것은 그와 다르다. 아이가 생기면 부부관계는 아이가 없을 때에 비해 심각하게 안 좋아질 수 있다.
2003년의 한 연구에서 자녀 탄생과 결혼 만족도의 관계를 다룬 100여 개의 연구를 분석했다. 아이가 생긴 엄마의 60% 이상이 결혼 만족도가 그 이전보다 오히려 하락했다. 2009년 132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무려 90%의 부부가 첫아이가 태어난 후 결혼 만족도가 떨어졌다.
부부 만족도에 문제를 일으키는 원흉 중 하나가 잠자리 횟수이다. 보통 아이를 낳으면 이전보다 성관계 횟수가 3분의 1 이상 줄어든다. 게다가 아이 때문에 서로에게 집중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성관계의 질도 상당히 떨어진다.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들의 불만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수면부족, 만성 피로, 바깥출입 및 사회적인 접촉 제한, 직장생활에 따른 충족감 및 소득 포기, 늘어난 빨랫감과 다림질감,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 밤낮이 따로 없으며 휴일도 없이 갓난아기를 돌보아야 하는 장시간 노동, 엉망으로 변해가는 집안 꼴, 임신 뒤 생긴 각종 후유증과 건강 문제
과연 이런 상황에서 원활한 성관계가 가능할까? 임신 때부터 스킨십을 자주 못하게 된 부부는 출산 후 이런 상황들이 고착화되면서 본의 아니게 서로에 대한 애정이 식어간다. 육체적 접촉이 이처럼 줄어든 가운데 가사분담에 대한 불만, 양육방식에 대한 불일치 등의 문제까지 불거지면 어느새 위기의 부부가 되어간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아이가 6세를 넘기면, 부부 만족도는 아이를 낳기 전의 수준까지 회복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서면 다시 위기가 오지만 말이다.
의지력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부모가 되면 겪는 상황들을 살펴보았다. 극심한 수면부족,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며 사고를 치는 사랑스러운 미치광이들과의 나날들, 악화되는 부부관계, 그리고 경력단절과 갈수록 힘들어지는 체력적 부담, 과거보다 더 커진 재정적 압박…….
부부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며 살기 위해서는 매일 엄청난 의지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의지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마크 무레이븐(Mark Muraven)은 연구를 통해 ‘의지력이란 쓸수록 고갈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각각 쿠키와 초콜릿, 래디시(무)를 주었다(실험 참가자들은 미각 테스트를 하는 줄 알았고, 지시에 의해 한 끼를 굶은 상태였다). 그런 다음 한 그룹에게는 쿠키와 초콜릿만 먹으라고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래디시만 먹도록 했다.
학생들이 할당된 양을 먹고 나자, 이제 다음 테스트까지 기다리는 동안 가벼운 수수께끼 문제를 풀라고 했다. 그런데 그 수수께끼는 사실 답이 없는, 매우 어려운 기하학적 문제였다. ‘의지력을 얼마나 발휘하느냐’를 보는 실험이었던 것이다.
실험 결과 쿠키와 초콜릿을 먹은 그룹은 문제를 푸는 데 평균 20분을 매달렸다. 하지만 래디시만 먹어야 했던 그룹은 문제 풀이를 8분 만에 포기해버렸다. 심지어 신경질을 부리는 학생들까지 있었다. 그들은 이미 쿠키와 초콜릿을 먹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며 의지력을 소진했기에, 어려운 문제를 풀 때 의지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무레이븐의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의지력은 유한하며 쓸수록 소진된다. 의지력이 소진되면 유혹에 저항하며 자신을 억제하기가 힘들어진다. 의지력을 다시 회복하려면 충분히 쉬어야만 하며 신경 쓸 일이 적어야 한다.
부모들의 의지력은 어디까지인가?
그렇다면 부모의 상황은 어떤가? 한창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수면부족과 만성 피로, 하루 종일 쉴 틈 없는 육아노동, 죄책감 등에 시달린다. 신경 쓸 일투성이고 쉴 틈이 없다. 한마디로 의지력을 가지고 자신을 제어하기가 너무 힘든 상황이다. 자신을 제어하기 위해 무척 노력하지만, 저도 모르게 욱하고 고함치고, 심지어 순간적으로 아이가 너무 미워지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완벽하지 못한 부모들’이 있는 게 아니다. 최악의 조건에서조차 아이를 위해 조금 더 노력하는, 그러나 때로는 실수하는 부모들이 있는 것이다. 있는 힘껏 노력하되, 육아 완벽주의에 갇히지는 말자. 또한 부부가 서로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때로는 실수를 할지라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양육이 주는 의미와 즐거움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양육 스트레스는 부부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악화된 부부관계는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아이를 돌보는 것 이상으로, 부부관계를 원만하게 이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음은 좋은 부부관계를 위해 알아두면 좋은 것들이다.
1. 프랭크 핀챔과 토머스 브래드버리는 신혼부부 130쌍을 장기간에 걸쳐 추적 연구했다. 그 결과 결혼 초기에 갈등이 생겼을 때 문제의 원인을 배우자의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에 두고 대화한 부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초점을 두고 대화한 부부보다 더 불행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의 원인을 상대의 기질로 놓고 말하면, ‘낙인’을 찍는 것이므로 앞으로 개선점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상황으로 놓고 이야기하면 언제든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2. 부부 파경 문제 전문가인 존 고트먼은 부부의 대화 속에서, 특히 ‘경멸’의 뉘앙스가 담긴 말을 할 경우 파경에 이를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경멸’을 담는 말은 절대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3. 존 고트먼은 다음의 것들만 해도 꾸준히 해도 부부관계가 좋아진다고 주장한다.
· 아침에 헤어질 때: 출근 전에 서로 배우자의 일과를 어느 정도 알아둔다.
· 저녁에 다시 만날 때: 가볍고 편안한 이야기를 서로 나눈다.
· 애정 표시: 쓰다듬기, 포옹, 키스 등을 통해 다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 칭찬과 감사: 적어도 하루 1번씩 칭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4. 연구에 의하면, 좋은 결혼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행복도 측면에서 한 해 약 1억원을 버는 것과 같다고 한다. 또한 1년 동안 1명과 섹스를 하는 사람은 같은 기간에 여러 명과 번갈아가며 섹스를 하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
5. 데이트를 할 때 미술관 관람 등 정적인 활동보다 하이킹이나 롤러코스터 등 역동적이고 가슴 뛰는 일을 하면 사이가 더 돈독해진다고 한다. 또한 요리, DIY, 게임 등 일상에서 같은 취미를 갖는 것도 부부의 행복도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왕이야. 그런데 너는? 넌 그냥 내 ‘물건’이야! ―피카소―
파울로(Paulo)는 6세 딸과 8세 아들의 손을 잡고, 한 저택의 대문 앞에 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초인종을 누른 후 한참 만에 늙은 수위가 나타났다. 그는 파울로와 두 아이에게 주인과 약속을 하고 왔는지 물었다. 파울로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수위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는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주인님이 오늘은 안 만나겠다고 합니다. 작업을 하시는 중이라서.”
파울로와 두 아이는 비를 맞으며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벌써 몇 년 동안이나 세 사람은 이런 일을 되풀이했고, 대저택의 주인은 이들을 만나줄 때도 있었고, 만나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 주인의 이름은 파블로(Pablo)로, 그는 파울로의 아버지이자 두 아이의 할아버지였다.
파블로는 파울로에게 어렸을 때부터 이런 식의 말을 자주 했다.
“나는 왕이야. 그런데 너는? 넌 그냥 내 ‘물건’이야!”
실제로 파울로는 아버지의 물건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조차도 아버지의 지시에 의해서 만들어질 정도였다. 파블로는 아들이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자 경멸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이런 취급을 받은 파울로는 성인이 되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파울로는 한평생 여기저기 떠돌면서 술에 빠져 살았고, 단 한 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을 무시하며 권력을 휘둘렀던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서 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거지처럼 구걸하며 살았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파울로의 아들이자 파블로의 손자인 파블리토(Pablito)는 1973년 할아버지인 파블로가 죽자, 이틀 뒤 표백제를 마시고 자살했다.
파블로, 파울로, 파블리토의 성(姓)은 피카소(Piccaso)이다. 맞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미술계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그는 캔버스에는 최고의 그림을 그렸지만, 자녀라는 캔버스에는 이처럼 최악의 그림을 그렸고, 결국 그 그림은 망가져버렸다.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아동기 때 겪으면 치명적일 수 있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ACE, Adverse Childhood Experience)’ 검사항목을 개발했다. ACE는 총 10개의 항목으로 다음과 같다.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ACE)의 항목(1문항당 1점)
1. 집안 어른이 모욕을 주거나 신체적인 위협을 가했다.
2. 집안 어른이 매질을 하거나 뺨을 때리거나 상처를 입혔다.
3. 어른이 성적 학대를 했다.
4. 가족 중 아무도 사랑하거나 지지해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5. 부모가 별거나 이혼을 했다.
6. 음식이나 의복이 부족하거나, 부모가 너무 술에 취하거나 약에 취해 있어서 자식을 돌볼 수 없을 정도였다.
7. 어머니, 혹은 양어머니가 신체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8. 알코올이나 약물을 사용하는 자와 함께 살았다.
9. 가족 구성원 중에 우울증이거나 자살충동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10. 가족 구성원이 투옥된 적이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종합건강관리기관의 빈센트 펠리티와 애틀랜타 질병관리센터의 로버트 앤더는 2년 동안 1만 7,000여 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ACE)’을 묻는 대규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률은 70%나 되었으며, 응답자는 대학 졸업자가 75%, 백인이 75%, 평균 연령은 57세로, 이들은 미국의 중산층을 어느 정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환자마다 ACE 점수를 매겼고, 그것을 환자들의 진료기록과 일일이 비교했다.(ACE 점수는 해당되는 항목마다 1점씩을 주었는데, 이를테면 3개 항목이 해당되면 3점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ACE 점수가 높을수록 중독성 행위부터 만성 질병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안 좋은 것들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었다.
ACE 점수가 4점 이상인 사람들은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흡연 가능성이 2배, 알코올 중독 가능성이 7배, 18세 이전에 성관계를 가질 확률이 7배나 높았다. 신체적 질병에 걸릴 확률도 높았다. 만성 기관지염으로 고생할 가능성은 4배, 심장병이나 암에 걸릴 가능성은 2배나 높았다. ACE 점수가 5점 이상인 남성들은 0점인 남성들보다 약물을 할 가능성이 46배나 높았다. 또한 ACE 점수가 6점 이상인 사람들은 0점인 사람들보다 자살 시도 가능성이 36배나 높았다.
물론 어린 시절에 불행한 경험에 1~2번 노출된다고 성인기에 바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나도 ACE 항목 10개 중에 3개나 겪었지만, 큰 무리 없이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늘어날수록 평생 겪게 될 부정적 결과의 비율 역시 상승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들이 아이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까?
불안정하고 지속적으로 반응이 없는 양육, 정서적 또는 신체적 학대, 부모의 약물 남용, 불행한 가정사는 아이들의 뇌 발달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인간은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인 HPA 축을 통해 스트레스를 조절한다. 위험이 될 요소가 나타나면 인간의 무의식적인 생리과정을 제어하는 시상하부가 뇌하수체를 작동시키는 화학물질을 내뿜고, 이어서 뇌하수체는 부신을 자극하는 호르몬을 방출한다. 이 호르몬(당질코르티코이드)을 일명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도 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몇 가지 방어 반응을 일으킨다. 불안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 심장이 뛰거나 입이 바짝 마르는 등의 신체적 반응을 불러온다. 실제로 거의 모든 동물은 이러한 방어 시스템을 통해 위험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고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스트레스가 극심해지고 만성적이면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근육에 충분한 혈액을 흘려보내기 위해 혈압을 높인다. 이는 위급한 상황에서는 꼭 필요한 몸의 대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혈압을 과도하게 높이고, 더 나아가 이 반응이 지속되면 심장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아동기의 불행한 경험이 불러오는 스트레스는 심장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처럼, 아이들의 뇌를 심하게 망가뜨릴 수 있다.
스트레스는 아이들의 뇌를 망친다
뇌에서 스트레스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실행기능(executive functions)이 있는 전전두엽이다. 실행기능은 뇌의 다양한 부분들이 저항을 어떻게 다루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작동할지를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스트레스로 인해 이 실행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아이들은 집중을 하거나 충동을 제어하고 지시를 따르는 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당연히 학교생활도 잘 해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베이뷰 아동건강센터의 버크 해리스(Burke Harris)는 ACE 점수와 학교생활 사이에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아냈다. ACE 점수가 0점인 학생들은 단 3%만이 학교에서 학습이나 행동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4점 이상인 학생들은 무려 51%나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아동기의 불행한 경험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불러오고, 이는 아이들의 뇌에 문제를 일으켜 육체적, 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학습과 행동 면에서까지 평생 동안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 10가지를 어느 정도 특수한 경우라고 본다면, 일반적이고 평범한 아이들은 ACE 점수가 3점 이하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일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