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의심하지 말라던 사람들은 당대에 큰 믿음을 얻었지만 기대만큼 오래가지 못했다. 확신에 차 내놓은 해답, 의심 대신 받아들인 정답은 질문이 바뀌자 힘을 잃었다. 이내 다른 답이 빈 자리를 차지했지만, 한번 시작된 의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의심이 의심을 낳고,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 새로운 답이 속속 나타나, 서로를 의심하며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인류의 진보와 지성의 전진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철학자 이진우는 이를 '의심의 철학'이라 부르며, 의심과 질문이 사라지는 과학과 기술의 시대에 여전히 철학이 필요하다고, 아니 의심과 질문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신을 의심한 니체, 의식을 의심한 프로이트부터 예술을 의심한 베냐민과 정치를 의심한 아렌트까지, '의심의 학파' 열한 명을 불러내 의심의 주제와 방법을 전하고는, 과학, 정의, 정치, 신 그리고 자신의 존재까지 의심하라고 부추기는데, 의심스러운데도 자꾸 따라 의심하게 되니 비로소 존재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고통과 쾌락을 오가는 진짜 삶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 인문 MD 박태근 (2017.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