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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25
  • 연루됨
    조문영 (지은이) | 글항아리 | 2024년 12월 "인류학자 조문영의 비판적 세상 읽기"

    책의 서문에서 조문영은 자신에게 인류학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나에게 인류학적 세계 읽기란 단단한 이해를 거쳐 책임 있는 비판을 길어내는 과정이었다." 이 문장 이후로 따라오는 세상 비판, 삶의 이해에 대한 책임감과 열망에 관한 묵묵한 고백은 왠지 낯설지 않다. 인문학, 사회과학을 정확하게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저마다 이와 비슷한 열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권위를 경계하고 자신을 의심하며 오로지 실낱같은 진실들을 찾아내어 그것으로 쌓아 올린 세계의 비판적 상을 구성하는 일. 마주하는 순간마다 기존의 문법에서 균열을 발견하고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히 어렵고 고독한 일일 테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해낸 작업물은 비슷한 길을 따르는 동료 시민들에게 큰 기댈 언덕이 되어 준다.

    그리고 이 책이 그렇다. 인류학자로서 그가 만나고 기록한 세계는 구석구석 입체적이고 섬세하게 비판적이다. 한 편 한 편 칼럼들에서 그의 시선은 주로 빈민, 노동자, 노인, 여성, 장애인, 원주민, 이주민, 지방, 비인간 등 '취약한' 존재들에 머무른다. 그리고 이들과 나, 이들과 당신들, 이들과 세계의 관계를 끊임없이 묻고 연결하고 재정의한다. 각자의 세계가 만나는 접촉면에 관한 주목은 지금 한국 사회의 민중들이 도달한 '연결'의 감각과 공명한다. 연결을 일차원적으로 감각한 다음에 우리는 어떤 구체적인 질문을 해나가야 할까? 조문영의 칼럼들은 이 고민에 대한 실마리를 쥐고 있다. 그의 글은 조심스럽고 성찰적이며 책임감 있게 삐딱하다. 현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태도라고 감히 말해본다.

  • 기록이라는 세계
    리니 (지은이) | 더퀘스트 | 2025년 1월 "새해, 기록으로 나를 다시 설계하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쓰며 살아왔다. 낙서, 일기, 숙제 등 그 행위의 이름은 달랐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모두 '기록'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단순히 쓰는 행위였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기록이 단순히 쓰는 것을 넘어 자신을 발견하고 세계를 확장하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깨닫게 된다. <기록이라는 세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기록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늘 해왔던 평범한 행동이지만, 그것이 쌓이고 확장되면서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와 방향성을 부여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 책은 기록이 단순히 무언가를 적는 행위를 넘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확장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한 줄 일기, 루틴 트래커, 실패 노트, 미래 일기 등 다양한 기록법을 통해 기록의 세계를 탐험한다. 기록은 그저 하루를 정리하거나 지나간 시간을 남기는 것만이 아니다.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타인의 시선을 배우며, 내면을 확장해가는 여정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심히 지나쳤던 순간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점차 더 넓고 깊은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이 어떻게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이야기로 바꾸는지 설득력 있게 전한다.

    새해는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 자신을 돌아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기록이라는 세계>를 지금 읽기에 가장 완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기록법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기록이 우리 삶에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설득력 있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이 새로운 출발의 동반자가 되어주길 바란다. 오늘 한 줄의 기록이 쌓여 내일은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것이다. 변화의 시작, 기록으로부터.

  •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리사 리드센 (지은이), 손화수 (옮긴이) | 북파머스 | 2024년 12월 "그들은 서로에게 돌아갈 길을 찾고 있었다."

    보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몸의 기력이 나날이 떨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치매에 걸린 아내는 3년 전 요양시설로 떠났다. 혼자 남은 그는 아내의 향기를 보관하기 위해 그녀의 스카프를 병 속에 넣어두었는데, 이제 그 병의 뚜껑을 여는 것도 쉽지 않다. 그의 고요한 일상은 매일 찾아오는 요양보호사들에 의해 잠시 깨어질 뿐 그리고 오랜 친구 투레와 반려견 식스텐만이 유일한 기쁨이다. 아들 한스와의 관계는 망가진 지 오래다. 아들은 식스텐을 데려가려고 한다. 보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이 숲에 가서는 안되고, 식스텐 같은 개들은 시골길을 한 번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더 긴 산책이 필요하다면서. 보는 자신에게서 반려견 식스틴을 떼어놓으려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식스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의 감정은 크게 흔들리고, 그는 삶의 여러 순간을 되돌아본다. 그는 남은 시간 동안 삶의 문제들을 잘 풀어낼 수 있을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리사 리드센의 데뷔작이자 2024년 스웨덴 올해의 도서상 수상작. 작가는 할아버지를 방문하면서 우연히 오래된 메모를 발견한다. 요양보호사가 남긴, 할아버지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의 기록들.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 청소와 식사, 목욕 등을 도우면서 작가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인생 이야기에 매료되고, 나아가 자신이 인생 이야기에 그토록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할아버지 덕분이라고 훗날 인터뷰를 통해 고백한다. 노인을 향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신의 존엄성과 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위대한 마지막 모습들. 이 소설은 바로 그렇게 쓰여졌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대 간의 소통, 가족 간의 사랑, 오랜 동료와의 우정, 뜨거운 화해와 온화한 작별의 과정을 사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소설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 코끼리를 만지면
    엄정순 (지은이) | 우리학교 | 2024년 12월 "한 번도 본 적 없는 코끼리"

    엄정순 작가는 오랫동안 시각 장애 아이들을 대상으로 미술 교육을 해 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아이들과 커다란 동물을 만나는 미술 프로젝트 '코끼리 만지기'를 기획해, 아이들과 함께 태국 치앙마이로 건너가 코끼리와 직접 대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이들이 코끼리를 만나고, 손끝의 감각으로 예술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코끼리를 만지면>에 담았다.

    아이들은 치앙마이에 머물면서 코끼리 소리로 아침을 시작하고, 코끼리 냄새를 맡고, 코끼리와 함께 산책하며 특별한 교감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코끼리 실체를 직접 만난 경험과 감각,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해 각기 다른 작품을 창조해냈다. 코끼리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양한 모습의 코끼리를 이 책에서 만난다. "창조의 세계는 어떤 결핍도 무거워하지 않는다"라는 작가의 말과, 손끝으로 펼쳐지는 예술의 세계가 얼마나 놀라운지 이 책이 증명해 보인다.

1.72025
  •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
    나민애 (지은이), EBS 제작팀 (기획) | 페이지2(page2) | 2024년 12월 "새해의 다짐이 독서라면, 먼저 이 책"

    독서는 새해 다짐 리스트에 빠짐없이 올라가지만, 책을 의무로 읽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독서가 꾸준하려면 무엇보다 재미가 솟아야 한다. 올해엔 기필코 책 읽는 습관을 들이겠다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책에 대한 부채감을 재미로 바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시인의 딸로 태어나 시학을 공부하며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된 저자 나민애는 우리에게 국어가 무엇인지,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장르별로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며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 그야말로 독서의 기초를 전방위적으로 알려준다. 책을 읽으라 말하는 선생들은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이렇게 세세하게 알려주는 전문가는 흔치 않다.

    무엇보다 이 책의 특장점은 초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는 데에 있다. 편한 단어와 재치 있는 비유로 설명하는 책의 효용을 읽다 보면 독서가 그리 멀리 있는 취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취미든 새로 시작할 땐 동력과 매뉴얼이 필요한 법, 둘 모두를 손에 쥐여주는 책이다.

  • 세스 고딘의 전략 수업
    세스 고딘 (지은이), 안진환 (옮긴이) | 쌤앤파커스 | 2025년 1월 "세스 고딘, 경제경영 바이블 완결판"

    세스 고딘은 현대 마케팅의 패러다임을 바꾼 선구자이자 비즈니스 혁신의 아이콘이다. 인터넷 초창기, 그가 설립한 요요다인(Yoyodyne)은 온라인 마케팅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오늘날 전자상거래의 초석을 다졌다. <보랏빛 소가 온다>와 <마케팅이다>를 통해 "차별화의 중요성"과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을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통찰을 선사한 그는, 이번에는 ‘전략’이라는 주제로 돌아왔다. 세스 고딘은 단순히 성공을 위한 규칙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는 사고방식을 통해 삶과 비즈니스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전략을 이야기한다.

    오늘날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복잡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시대에 개인과 조직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고,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또한 단순한 전략 지침서를 넘어, 사고방식을 전환시키는 도구를 제공한다. 세스 고딘은 시간이 가진 잠재력,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게임의 원리, 타인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공감의 중요성,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힘을 강조한다. 이러한 네 가지 축은 단지 사업적 성공을 넘어, 개인의 삶과 커리어, 사회적 관계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원칙들이다. 새로운 관점과 구체적인 사례로 가득한 이 책은 지금 당신의 전략적 사고를 혁신할 완벽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를 다시 믿어 보자. 제목이 먼저 자신 있게 말하지 않는가. 이것이 '전략'이라고.

  • 소원을 이루어주는 섬
    유영광 (지은이)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1월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 작가 신작 소설"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 유영광의 신작 소설. 신인 작가의 이 소설은 10만 독자를 만났고, 21개국에 수출되었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섬>은 작가가 삶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나던 무렵,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2021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개인 출판했던 그의 첫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제 삶에도 진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년, 다리를 잃은 노인, 팔을 잃은 검사, 날개를 잃은 천사가 '방황의 성'에서 '행복의 섬'을 향해 모험을 떠난다. 불행의 여신이 깊은 동굴 속에 숨긴 꿈과 커다란 바위 밑에 숨긴 용기를 찾아 잠든 행복의 여신을 깨우는 것이 이 여정의 목적이다. 이들은 절망의 계곡, 좌절의 늪, 고난의 들판을 지나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아 순례한다. 자기계발서로도, 판타지 소설로도 읽기 좋은 이야기를 따라 '소원을 이루어주는 섬'을 향해 지도와 나침반을 쥐고 걷다보면 나다운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날 용기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루이스 세풀베다 (지은이), 엄지영 (옮긴이) | 열린책들 | 2024년 12월 "수평선 너머의 세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래는 오래전부터 인간들을 보아왔다. 그들이 약한 널빤지 네 개를 엉성하게 엮어 만든 것을 타고 바다에 나왔을 때부터. 수평선과의 대결이 두려워 잠시도 해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집요하고 끈질긴 인간의 모습을 보며, 고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곧 배우겠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인간은 곧 바다에서 움직이는 법을 익혔다. 그들은 더 큰 배를 만들고, 방향을 일러 주는 하늘과 별을 발견했다. 그러자 그들은 과감히 어둠을 가르고 망망대해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용기와 의지에 감탄하기도 하였으나, 곧 그들이 허락도 받지 않고, 고마워할 줄도 모르며 모든 것을 빼앗고 파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다의 일부처럼 살아가는 소수의 ‘바다의 사람들’과 그들을 수평선 너머의 자유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트렘풀카웨’를 지키는 사명을 띤 달빛 향유고래는 낯선 인간들, 침략자들에 맞서 용감히 싸운다. 고래는 인간들에게 ‘모차 딕’이라는, 두려움과 증오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름을 얻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꿈꾸며 평생 투쟁해 온 루이스 세풀베다의 생애 마지막 작품.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2019년 5월 발표된 발표한 이 이야기는 거대한 향유고래가 바다의 평화를 깨뜨리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에게 맞서 투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자연의 리듬에 따라 조화롭게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이 작품은, 우리 현대인들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보호하기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달빛 향유고래 ‘모차 딕’의 등에 꽂힌 백여 개의 작살이 부메랑이 되어 인류에게 다시 돌아오기 전에, 우리는 멈출 수 있을까.

1.102025
  •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김민섭 (지은이) | 어크로스 | 2025년 1월 "2025년 새해, 작지만 빛나는 기적을 꿈꾸며"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로 대한민국에서 '을'로 살아가는 삶을 가감 없이 써 내려가던 저자 김민섭은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통해 그러한 삶 속에서도 타인과의 연결, 소통을 강조하며 김민섭식의 위로를 전해왔다. 이번 신간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는 그 어느 때보다 어둡고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대한민국에 맞춤인 책이다. 현실은 암울하고 매일의 일상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지만,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적극적인 연대를 강권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의 속도에 자꾸만 밀려 자신과 타인을 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살피며, 다정함이 가진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이 한 줄기 빛이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결국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결국 다정함은 모든 걸 이기니까.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지은이) | 사이드웨이 | 2024년 12월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나"

    2010년대 내내 각종 미디어엔 공무원 시험에 청년기를 통째 바친 청년들의 이야기가 나왔었다. 뉴스에도, 드라마에도 노량진 고시 학원에 몇 년씩 틀어박혀 공부하는 공시생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공무원들의 이른 퇴사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열망이 좌절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공직 사회에서 무엇을 본 걸까?

    저자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10년간 사무관으로 일하다 서기관으로 승진한 후 퇴사했다. 그는 자신이 퇴사한 이유를 "가랑비에 옷이 젖듯 습득한 무기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책은 그 무기력의 이유를 밝힌다. 실체 없는 바쁨, 소통 없는 수직 관계, 실무와 동떨어진 윗선의 지시, 면피로 지킬 수밖에 없는 개개인의 안위... 서늘한 문장들이 현실의 공직 사회를 차분히 해부한다. 10년이란 기간 동안 내부인이었고 이젠 외부인인 저자의 꾸밈없는 눈길이 공무원 업무 문화의 구석구석에 샅샅이 닿는다.

    어떤 개인이든 존재하는 한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도) 정치의 스펙트럼 위 어딘가에 서 있고, 그렇기에 저자가 말하는 것들이 무균실의 표백된 비판이라고 할 순 없다. 다만 외부까지 유출된 공공기관 내부의 문제적 사실들, 공무원들의 퇴직률, 젊은 공무원들의 무기력한 분위기 등을 생각해 볼 때, 이 책이 전해줄 수 있는 일말의 진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짚어봐야 할 제안이다.

  • 아이의 뇌
    김붕년 (지은이)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2월 "뇌과학에서 찾아낸 4가지 양육 원칙"

    국내 발달뇌과학의 최고 권위자 김붕년 교수의 이 책은 뇌 발달에 맞춘 양육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아이의 뇌는 태어날 때 약 30%만 기능하며, 나머지는 성장 과정에서 발달한다. 특히 만 12세까지가 뇌 발달의 중요 시기로, 이 시기에 양육자가 어떤 환경과 자극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사고력, 감정 조절, 행동 능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가령 만 3세까지는 감정과 감각을 담당하는 뇌가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아이와 교감을 많이 나누고,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논리적 사고나 학습은 아직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무리해서 가르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저자는 양육자가 “아이를 귀한 손님처럼 존중하라”고 조언한다. 아이를 양육자의 기준에 맞추려 하지 말고,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하며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랑과 희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뇌 발달 과정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양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초보 부모가 아이를 똑똑하고 당당하게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든든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 그때 뽑은 흰머리 지금 아쉬워
    사단법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포푸라샤 편집부 (지은이), 이지수 (옮긴이)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1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후속작"

    2024년 1월부터 3월까지 알라딘 시 부문 월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책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의 두 번째 시리즈가 찾아왔다. 3행 5-7-5 글자, 17개 음으로 된 짧은 시에 촌철살인의 익살을 담는 시의 한 장르, ‘실버 센류(川柳)’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가 주최한 제23회 실버 센류 공모전의 입선작과 응모작 여든여덟 수를 수록했다. 셀프 계산대를 보면 주눅들어 피하고 AI 기술에겐 내 남은 수명을 물어보고 싶은, 실버의 몸으로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이들의 맵고 뭉클한 삶의 이야기를 한 수 청해 들어본다.

    자기 소개 때 / 돌아가며 말한다 / 이름 고향 취미 지병
    아픈 데 찾으니 / 여기 저기 거기 / 어라 전부네

    삶이라는 풍파를 함께 겪던 머리털도 못 견디고 도망가버렸다. 휑해진 정수리를 불현듯 발견했던 그 날 흰머리 시인들은 '그때 뽑은 / 흰머리 / 지금 아쉬워' 투덜댄다. 허약해지는 몸을 시로 기록하는 이들의 시선은 유연한 유머로 너그럽게 흐른다. 선물하기도 좋고, 소리 내어 읽기도 좋고, 따라 써보거나 규칙대로 시 짓기를 해봐도 좋다. 피식 웃다보면 각오로 무장하느라 긴장한 어깨가 조금쯤 풀어질 것이다.

1.142025
  • 요정 개, 올빼미 머리 그리고 나
    M. T. 앤더슨 (지은이), 준이 우 (그림), 송섬별 (옮긴이) | 책읽는곰 | 2024년 12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짜릿한 모험 이야기"

    바이러스의 창궐로 집에만 있게 된 소년 클레이. 일상이 지루해져 못 견디는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클레이 앞에 길 잃은 '산아래 왕국'의 요정 개 '엘피노어'가 나타난다.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엘피노어는 클레이 집에 머무르며 인간과 공존하는 삶을 서서히 체득하고, 가족의 일원으로 자리잡는다.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엘피노어는 클레이를 숲속 마법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곳에서 올빼미 머리를 가진 '에이모스'를 만나고, 셋은 함께 신나는 모험에 뛰어든다.

    제목으로 내용을 짐작하기 쉽지 않은 이 책은, 일단 첫 장을 넘기기만 하면 단숨에 빠져들게 된다. 푸른 거인, 소원을 이루어 주는 호수의 공작, 올빼미 머리 사람들, 죽음의 기수, 시간과 그림자의 강을 지키는 정령, '산아래 왕국'의 사람들 외 미지 세계의 다양한 존재들이 끊임없이 등장하여 환상의 모험 속으로 이끈다. 서로 다른 존재인 클레이와 엘피노어, 에이모스가 끈끈한 우정으로 연대하는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험 이야기만큼 중요한 축을 이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짜릿한 즐거움과 뭉클한 감동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은이) | 래빗홀 | 2025년 1월 "2025 필립 K. 딕 상 후보작"

    한강 작가는 2016년 부커상을 수상한 후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년 <흰>의 한강, 2022년 <저주토끼>의 정보라, 2023년 <고래>의 천명관, 2024년 <철도원 삼대>의 황석영이 부커상 최종 후보로 이름을 올리며 다음 장을 기대케 했다. 바로 그 정보라의 두 번째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가 <그녀를 만나다>(2021)에서 옷을 갈아입고 개정 출간되었다. 안톤 허의 번역으로 영문판이 소개되어 2024년 미국 타임지의 '2024 올해의 책’으로 선정, 2025년 1월 '필립 K. 딕 상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한 작품이다.

    표제작 <너의 유토피아>의 의료용 휴머노이드 314와 스마트카는 세계의 상실을 애도하며 나아간다. <그녀를 만나다>의 120세가 내일모레인 할머니 주인공은 한 마디에 백 마디로 대꾸하는 할머니 특유의 장광설로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죽은 청년을, 크레인이 무너져 깔린 사람을, 광고판을 고치다 지하철에 치어 죽은 사람을, 배가 가라앉고 독극물을 뿜어내고 치고 떨어트리고 밀어내는 장비, 기계, 생산설비, 공장, 작업장, 일터에서 죽고 또 죽은 사람들을, (241쪽) 차별하지 않았으면 살아있었을 그녀를, 지치지 않고 기억하고 애도한다. 웃고 기억하고 행진하는 사람들처럼 이야기는 뚜벅뚜벅 전진한다.

    '공포스럽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통해 인류의 운명을 다룬다'고 타임지는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정보라 소설이 묘사하는 그 많은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의 연쇄에도, <영생불사연구소> 같은 한국적인 회사 (1912년에 '일제가 망해도 우리만은 영생불사'라는 일말의 진실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이 유치찬란해보이는 캐치프레이즈로 설립된 회사)의 서늘한 우스꽝스러움에도 한국인들은 일가견이 있다. 정보라의 소설을 그 누구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사람들, 환멸스럽고 소중한 이 세계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같은 언어권 사용자에게 이 책을 특히 힘주어 소개하고 싶다.

  • 울지 않는 달
    이지은 (지은이) | 창비 | 2025년 1월 "달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실까?"

    동그랗고 뽀얀 달이 하늘에서 인간들은 내려다본다. 사람들은 달에게 소원을 빈다. 자신을 보살펴주리라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달에게 기도를 들어줄 신비한 힘 따위는 없다. 무책임하게 소원을 빌기만 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들에게 환멸만 느낀다. 긴 시간이 지나 인간들의 기도 소리가 잦아들 때쯤, 달은 땅에 떨어진다. 인간이 거의 사라진 땅에서 만난 엄마를 잃은 아이와 늑대 카나. 카나와 달은 아이를 포식자 멧돼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함께 한다. 왜 아이를 돌봐야 하냐는 문장엔 물음표가 붙지 않는다. 그 편이 오히려 달이 차고 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니.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하고 <팥빙수의 전설>, <이파라파 냐무냐무> 등 베스트셀러 그림책의 작가 이지은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청소년 소설 <울지 않는 달>. 작가는 자신의 그림책을 읽고 자란 청소년들과 어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자 이 작품을 썼다. 소중한 존재를 위해 기꺼이 손길과 숨결을 나누는 삶의 진정한 모습과 사랑을 그려내며, 방황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마음이 깊이 담겨 있다.

  • 유물멍 : 가만히 바라볼수록 좋은 것들
    국립중앙박물관 유물 큐레이션 「아침 행복이 똑똑」 필진 (지은이)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1월 멍하니 바라보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소개하며 10만 구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뉴스레터 '아침 행복이 똑똑'이 알라딘 북펀드를 통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책에는 유물을 직접 수집, 보존하는 학예사와 박물관을 자주 찾는 관람객이 함께 고른, 각자의 사연들로 더욱 의미가 깊어진 100점의 유물 이야기가 펼쳐진다.
    달항아리, 금동반가사유상, 나전 경대 등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굿즈로 만들어진 유명 유물부터 베개 밑 걱정인형을 떠올리게 하는 투박한 모양새의 신라시대 토우까지, 다양한 유물들을 가까이 살펴볼 수 있다.

    옛 시대에 추구했던 미감과 가치관, 기술력의 결정체로서의 숭고한 유물 이미지에서 벗어나, 초등학생, 작가, 변호사 등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 간질간질한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손길과 눈길로 애정을 듬뿍 담은 무언가를 소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라면, 한 때 누군가의 애장품이었을 이 유물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들릴 것이다

1.172025
  •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주디스 버틀러, 프레데리크 보름스 (지은이), 조현준 (옮긴이)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2월 "버틀러와 보름스 대담"

    우리의 삶은 살 만한가. 살 만하지 않은데 살아가고 있는가. 살 만한 삶이란 무엇이며 살 만하지 않은 삶은 무엇인가. 이 주제들에 대해 정치윤리학자 주디스 버틀러와 프레데리크 보름스가 두 번의 대담을 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을 가르는 기준에서부터 시작한 대화는 난민, 기후위기, 팬데믹 등 현재 시급한 현실의 문제들을 아우르며 나아간다.

    두 학자의 입장엔 차이가 있다. 주디스 버틀러는 그간의 저작들에서 펼쳐온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상호 주체적 관점에서 사회적 인정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가 살 만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본다. 이와 달리 프레드리크 보름스는 죽음과의 대비를 통해 살 만한 삶의 객관적 조건을 주요하게 주시한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시작한 두 사상가의 주장은 그러나, 인간의 상호 의존성을 인정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만 우리 모두가 살 만해진다는 같은 결론으로 나아간다. 어지러운 세계의 한복판에서 삶에 대한 입체적 사유를 제시하는 밀도 높은 대담.

  •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고선경 (지은이) | 열림원 | 2025년 1월 "“그러니까 이 시 꼭 사서 간직해”"

    2022년 등단.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로 '독자들이 먼저 알아본 한국시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화제가 된 고선경의 두 번째 시집. 열림원 시인선 시리즈 ‘시-LIM 시인선’의 첫 번째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소다수의 기포처럼 솟아오르던, 짙고 파란 여름을 연상시키던 첫 시집을 지나서 얼어붙어 단단해진 토마토를, '사람의 것과 사람의 것 아닌 아름다움 /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폭설도 내리지 않고 새해>)를 내밀며 이렇게 시인의 말을 적었다.

    아삭아삭할 겁니다
    겨울을 견뎌 본 심장이라서요 (5쪽)

    사주를 보면 남을 돕는 팔자를 가졌다는데 회사는 월급도 못 주고, 가스는 끊기고, 살 집은 없다. 답답한 마음에 신년 운세를 보러 간 내게 사주쟁이가 권한 개운법은 한정판 순금 부적. '단돈 칠만 원 / 없어 인마'라고 중얼거리며 화자는 (곤도 마리에적인 기적을 기다리며) 방 청소를 한다. 이제 화자는 훨씬 '가성비'있는 행운 아이템을 찾아낸다. '그러니까 이 시 꼭 사서 간직해 / 알았지?'하며 내미는 것은 토마토처럼 빨간 시집. 인터넷 서점 판매가 10,800원짜리 시집은 단돈 칠만 원 부적보다 훨씬 싸고 이런 마케팅이라면 기꺼이 유혹당하고 싶을 정도다. 1부를 여는 첫 시집 <신년 운세>의 이야기이다.

    1부의 '신년 운세'부터 4부의 '팬레터-12월 31일'까지 한 해 내내 쓰다듬으며 슬프고 추울 때마다 막연한 행운을 기원하며 매만지고 싶은 부적 같은 시집이다. 시를 인용해 이 시집을 소개해본다. "참 귀엽죠? 귀여우니까...... 좋아하실 거예요. 어디에나 두루...... 잘 어울릴 거고요." <도전! 판매왕, 130쪽>

  • 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은이), 김지우 (옮긴이) | 한길사 | 2025년 1월 "사회적 덫에 갇힌 한 여성의 은밀한 욕망"

    늦가을 치고는 따스하고 화창한 11월의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 늦잠을 자는 남편을 위한 담배를 사기 위해 길을 나선 발레리아는 아주 우연한 충동으로 담배 가게 진열대에 가지런히 쌓여 있던 까만 공책 한 권을 샀다. 그는 공책에 일기를 쓰려고 마음먹었다. 일기장의 존재는 비밀이었다. 아들이 발견하면 대학 노트로 가져가 버릴 것이고, 딸의 눈에 띄면 일기장으로 쓰겠다고 제 방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가버릴 것이다. 발레리아는 새삼 집 안에 비밀 일기장을 숨겨놓을 만한 자신만의 온전한 공간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첫 발견을 시작으로, 아내이자 엄마 이상의 존재로 자신을 계속해서 재발견해 간다. 일기장 위를 빼곡하게 채워 나가는 글자처럼, 발레리아의 자아와 욕망도 서서히 형체를 갖추어간다. 이 책은 발레리아가 1950년 11월 26일부터 1951년 5월 27일까지, 반년 동인 기록한 일기 그 자체이다.

    20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알바 데 세스페데스의 작품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반파시스트 활동으로 두 번 투옥된 바 있었던 세스페데스의 작품들은 파시스트 당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 바 있어 오랜 시간 잊혔으나, 엘레나 페란테가 에세이를 통해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작품”이라고 언급한 이후 유럽과 영미권에서 다시 주목받기도 하였다. 본 작품은 1952년 쓰여졌지만, 70여 년 전에 쓰여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됐으며, 가부장제 아래 억압받던 한 여자가 자기 자신의 일상을 일기로 기록하기 시작하며 욕망의 주체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이 이야기는 지극히 현재적이다. 세프세데스의 작품들이 이탈리아 문학계에서 ‘여성을 위한 글쓰기’에 불과하다고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금지된 일기장>은 내용뿐만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현상까지도 여성들에 대한 억압을 고발하고 있는 듯하다.

  • 스모크 & 피클스
    에드워드 리 (지은이), 정연주 (옮긴이)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자유롭게 마음대로 요리하기를"

    에드워드 리 셰프는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를 통해 거친 질감과 우아한 품격의 매력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전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의 첫 요리책인 <스모크 & 피클스>는 이민자로서의 저자를 둘러싼 복잡한 풍경 속에서 탄생한 풍미 깊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남아시아의 길거리에서의 볼 법한 되직한 그릭요거트를 넣은 로티와 IPA 한 잔, 달궈진 그릴 위에 향신료가 뿌려진 구운 고기와 데킬라 샷, 모든 것을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전통적인 샤워크라우트 피클 등 보는 것만으로 군침이 도는 이국적인 레시피가 가득하다.
    대담하고 자유로운 미국 남부의 문화에 대한 설명과 함께, 멀리 떨어진 낙원에서야 볼 수 있는 재료만 찾아내던 셰프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최고의 식재료를 찾기 위해 여전히 집요한 열정을 보이는 오늘날 저자의 모습과 겹쳐져 더욱 재미를 더한다. 푸짐하지만 소박한, 탐닉적이지만 단순한 태도로 자신의 정체성을 단단히 만들어간 에드워드 리 셰프의 사랑스럽고, 뜨거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1.212025
  • 설자은, 불꽃을 쫓다
    정세랑 (지은이) | 문학동네 | 2025년 1월 "정세랑의 통일신라 여성탐정, 설자은 시리즈"

    정세랑의 명랑 미스터리 '설자은 시리즈'가 돌아왔다. <시선으로부터,>의 예술가 가모장 심시선, <보건교사 안은영>의 피로하고 용감한 안은영에 이어 이번엔 당나라 유학파인 통일신라의 남장 탐정 설자은이다. 죽은 오빠의 신분을 대신 쓰는 설자은은 망국 백제 출신인 장인 목인곤을 식객으로 들여 금성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비상한 발상으로 해결한다. 시리즈의 첫 권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의 뒷부분에서 비로소 왕을 만난 설자은은 2권에서 '집사부' 대사로 임명되어 왕의 직속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지귀는 올 것이다. 얼룩져 부패해가는 금성을 처음으로 돌리기 위해, 훨훨 날아올 것이다!” (104쪽)

    선덕여왕을 사모해 스스로를 태웠다는 '지귀'의 요설이 흥성흥성한 금성을 휩쓴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은 고금의 진리. 넓은 영토와 풍족한 삶을 누리는 이 태평성대에도 몰락의 기미가 스친다. '웃고 있지만 성정이 찬' 목인곤과 달리 '웃지 않지만 차지 않은' 설자은은 스스로의 사려깊음에 걸려넘어지면서도 자기답게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아이들과 연인이 불에 타고 죽임을 당해야 했던 이유, 하나하나의 귀한 삶에게 주어져야 마땅한 답을 찾기 위해 설자은은 불꽃을 쫓는다.

    좋은 시리즈는 한동안의 삶을 또 기쁘게 한다. <듄: 파트 3>과 <위키드: 포 굿>을 기다리는 그 마음으로, 설자은 시리즈 3편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를 기다려 본다. 다시 황금빛 금성으로, 정세랑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 새처럼
    포푸라기 (지은이) | 창비 | 2025년 1월 "자유와 평화를 향해"

    눈이 소복이 내린 어느 겨울날, 아이는 혼자 밖으로 향한다. 눈 위에는 새 발자국만이 도장처럼 남아 있다. 새 발자국을 따라 걸으니 많은 새들이 놀다 간 놀이터도 발견한다. 새의 발자국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니 발자국 자체가 새처럼 보인다. 훨훨 날아오르는 아이는 그제야 친구도 만나 자유롭게 하늘을 비행한다. 가끔 먹구름이 끼고 번개가 쳐 무섭지만 용기를 내면 괜찮다. 그보다 더 큰 아이의 소망은 내일도 새처럼 날아오르는 것이다.

    제2회 창비그림책상 응모작 586편 중 대상으로 선정된 이 책 <새처럼>은 "작품의 기호적 요소와 이미지의 어울림(심사평)"에 주목하여 거듭해 읽게 된다. 자유롭게 하늘을 비행하는 새는 자유를, 하얀 눈 위를 어지러이 흩트린 신발자국은 군홧발을 떠올리게 한다. 그림을 들여다볼수록 냉혹한 현실에 자유를 빼앗긴 아이들이 떠오른다. 작가는 그런 아이들을 생각하며 새처럼 용감하고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기를 고대하며 이 그림책을 그렸다고 한다. 두려울 테지만 용감한 날갯짓으로 평화로운 일상이 그 아이들에게 깃들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
    로레인 대스턴 (지은이), 홍성욱, 황정하 (옮긴이) | 까치 | 2025년 1월 "규칙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의심 없이 지켜오던 사회의 규칙들이 삽시간에 허물어져 내리는 것을 보며 아연하고 불안하다. 그간 우리 모두가 합의해온 규칙은 무엇이었던가, 이 혼란한 날들에 맞는 새로운 규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책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규칙에 대한 질문을 본질적으로 파고든다. 세계적인 과학사학자 로레인 대스턴이 인간이 어떻게 규칙을 만들고 바꾸고 없애는지, 규칙은 현실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탐구하며 인간의 세계에서 규칙이란 무엇인지를 분석했다.

    그는 규칙을 세 가지 틀로 나눈다. 측정 및 계산의 도구로서의 규칙인 알고리즘, 따라야 할 모델로서의 규칙인 패러다임, 그리고 사회 통제를 규칙과 연결한 법이다. 그는 이 세 가지 범주 속에서 규칙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어 왔는지 살피며 규칙이 유연하거나 엄격해지게 하는 요인이나 규칙의 개념이 흔들릴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등의 질문들을 통해 개념을 공고히 다진다. 과학사학계의 거장인 저자의 대표작답게 과학적, 철학적 논의들과 일상에 맞닿은 이야기들이 잘 꿰어져서 어렵지 않게 잘 읽힌다.

    어지러운 현실을 해석할 근거를 찾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조금 다른 방식의 접근이 되어줄 것 같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시의적이되 보편적인 내용으로서 사고의 기반이 되어줄 수 있는 책이다.

  •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프로데 그뤼텐 (지은이), 손화수 (옮긴이) | 다산책방 | 2025년 1월 "한 사람이 온 생을 통해 선명하게 남긴 사랑에 대한 이야기"

    오전 5시 30분. 피오르 해안의 작고 고요한 마을. 닐스 비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눈을 떴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찾아 입고, 커피를 끓이고, 아침 식사를 마련한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면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배를 탈 것이다. 일생 반복하며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진 그 모든 일들이 끝나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닐스는 평생을 마을과 도시, 섬과 육지를 오가며 무수한 사람들을 배로 태워 날라 온 페리 운전수였다. 하지만 그의 이날의 승객은 조금 특별하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반려견 루나를 시작으로, 한때 닐스의 배를 탄 적이 있는, 그러나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이들이 차례로 배에 오른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닐스 역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를 스쳐 간 수많은 삶과 죽음들, 그리고 가운데 단단하게 자리 잡은 먼저 떠난 아내에 대한 기억. 그가 되돌아본 삶이란 그 모든 것의 총합이었다.

    노르웨이 최고 권위의 브라게 문학상 2023년 수상작. 노르웨이 문학계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새로운 작품을 출간할 때마다 현지 문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프로데 그뤼텐의 10여 년 만의 장편 소설이다. 소설은 피오르 해안가 곳곳에서 서로 긴밀하게 또는 느슨하게 연결된 채 살아온 이들이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며 닐스의 배에 올랐던 이야기들, 그들 삶의 찬란했던 혹은 비루했던 순간들과 죽음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깎아지는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피오르의 바다로 나아가는 동시에, 시간을 거슬러 삶을 되짚어가는 닐스의 초현실적인 마지막 항해를 따라 먼바다에 이르는 사이에 독자들은 그 끝에서 만날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경외로 가득한, 한 사람이 온 생을 통해 선명하게 남긴 사랑에 대한 이야기.

1.242025
  • 시간의 계곡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지은이), 김보람 (옮긴이) | 다산책방 | 2025년 1월 "예견된 상실을 마주한 인간의 딜레마"

    동쪽으로는 20년 후의 미래, 서쪽으로는 20년 전의 과거의 시간이 흐르는 마을. 마을과 마을 사이는 철책으로 단절되어 있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 그 경계를 넘기 위한 조건은 오직 하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만이, 그 대상을 보지 않고서는 삶을 이어갈 수 없을 때, 애도를 위해 다른 마을을 방문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오딜은 다른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나 미래를 방문한다고 해도 진정한 위로는 받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동쪽에서 온 방문객을 목격하고, 그들이 에드메의 부모인 것을 알고 동요한다. 사랑하는 에드메의 예정된 죽음. 하지만 예정된 사건을 막으면 시간의 흐름을 바꾸고 마을 전체에 걸쳐 큰 혼돈을 가져올 수도 있다. 시간을 가르는 철책 앞에 선 오닐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선택은 무엇을 불러올까.

    “가즈오 이시구로, 테드 창, 무라카미 하루키와 나란히 놓일 놀라운 데뷔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놀라운 데뷔작.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어린 나이에 절친한 친구를 잃은 뒤 큰 슬픔에 빠졌던 경험을 고백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에게 무한한 시간이 펼쳐져 있으며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줄곧 걸어왔던 철학자의 길에 의문을 품고는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소설 속 오딜의 상황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미처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아버지를 잃은 자신의 슬픔마저 외면하고 ‘누군가 애도의 뜻을 표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라고 독백하던 오딜이 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작가는 오닐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여태껏 피해 왔던 상실과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있느냐고.

  • 나는 AI와 공부한다
    살만 칸 (지은이), 박세연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월 "AI가 여는 새로운 교육의 세계"

    AI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의 거대한 쌍벽이 있다. 획기적인 기술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불러오고, 우리는 압도적인 가능성들 앞에서 어디로 향할지를 신중하게 살펴보고 골라야 한다. 이 책은 그중 AI를 이용한 교육의 희망적 측면을 집중 조명하는 쪽이다.

    책의 저자는 살만 칸. 빌 게이츠가 "아들과 함께 보는 강의"라고 소문난 미국의 비영리 교육단체 '칸 아카데미'의 설립자다. 그는 AI에서 우리 교육의 혁신적 미래를 본다. 그는 AI가 학생 개개인의 맞춤형 교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설정값을 잘 입력하여 컨트롤한다면 AI는 모든 과목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도울 수 있고 심지어 상담자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교육 분야에서의 AI 사용에 대한 여러 우려의 목소리들을 반박하며 그는 이 획기적인 기술이 불러올 교육 평등에 희망의 눈빛을 반짝인다.

    교육계의 AI 침투는 눈앞의 현실이 되었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 책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이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면 좋을지를 제안한다. 새로운 시대의 교육에 대해 고민이 많은 양육자와 교사 들은 특히 눈여겨볼 만한 책이다.

  • 절교의 여왕
    박현숙 (지은이), 모차 (그림) | 다산어린이 | 2025년 1월 "초등학생의 생생한 고민을 녹여낸 박현숙표 동화"

    누구보다도 더 많이, 더 가까이 수많은 어린이 독자들 곁에서 <수상한> <구드래곤> <천개산 패밀리> <귀귀당> 시리즈 등 다수의 작품으로 소통해온 박현숙 작가. 많은 작품 수만큼, 그만이 펼치는 창작의 세계는 다채롭고 넓다. 이번 신작은 모차 그림작가가 작업한 화려한 색감의 그림과 <절교의 여왕> 제목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늘부터 1일?'과 '하버드 수학 학원' 그리고, 표제작 '절교의 여왕' 총 세 편의 각기 다른 이야기의 동화가 수록되어 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귀여운 에피소드에 대해 들려준다. 한 초등학교 강연회에서 어떤 아이가 작가의 손에 쪽지 하나를 쥐여 주었다고 한다. 그 쪽지에는 친한 친구 두 명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다른 한 명과 자신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했다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는 고민의 글이 적혀 있었다고. 아이들의 현실적인 고민에서부터 시작된 이 책은, 성적, 친구 관계,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설렘, 질투, 시기, 불안, 두려움 등 아이들의 심리를 생생하게 그린다. 책 속 주인공들과 비슷한 고민에 빠진 어린이 독자에게 다감하게 손 내미는 박현숙표 동화다.

  • 당신은 사업가입니까
    캐럴 로스 (지은이), 유정식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월 "사업, 시작하세요. 이 책을 읽고 난 후!"

    20대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꿈을 그리곤 했다.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나중에 편의점 차려야겠다"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고, 전공을 바탕으로 다른 사업을 해볼까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직장에 들어가고 30대에 접어들면서 현실은 조금씩 달라졌다. 안정적인 직장과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급여는 점점 안락함을 가져다줬다. 그렇게 직장인으로 안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날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지금에 이르러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때 다시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사업'이다. 당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미 그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사업가입니까>는 이러한 고민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사업에 대한 기술이나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을 넘어, 사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우리가 사업을 고민하게 되는지를 들여다본다. 책 속에는 당신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출발한 이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열정과 도전으로 시작했지만 실패를 통해 성장한 사람, 직장을 다니며 안정과 불안 사이에서 갈등하다 새로운 도전을 한 사람, 삶의 전환점을 찾아 사업에 뛰어든 사람들의 사례가 담겨 있다. 그들의 경험은 지금 당신이 선 자리를 다시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게 만든다.

    사업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의 태도이다. 저자는 사업을 통해 삶의 주체가 되는 법, 나만의 가치를 발견하는 법, 그리고 세상과 더 넓게 소통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창업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미 몇 번의 시도를 해본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이제 중요한 질문을 던져볼 차례다. "나는 정말 사업가로 살고 싶은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에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