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치 금잔화를 믿듯 세상을 믿는다.’
매일 내 존재를 증명해야하는 사회에서 불안과 분노가 피어날 쯤 이 시집을 읽는다. 금잔화를 믿듯 세상을 믿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작가와 이야기하기 위해서.
2023년 리스본행 야간열차 소설의 작가인 피터 비에리가 타계했다는 기사를 봤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영화는 본 적이 있지만 정작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꽤 두꺼운 책이라 계속 읽기를 미뤄왔기 때문이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소설을 읽게 됐고, 페터비에리라는 작가에 빠져 그를 파기 시작했다. 삶의 격, 자기 결정 같은 비문학 책도 연달아 읽었다. 페터비에리의 책들을 읽고 왜 그는 ‘리스본’이라는 지역을 택했을까. 그것이 또다시 궁금해졌다.
포르투갈 리스본 역시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나라다. 포르투갈은 어떤 나라일까 호기심이 맥스로 차올랐다. 지금 당장 리스본으로 떠날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포르투갈 작가가 쓴 문학작품을 읽는 일이다. 이런 과정으로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작가를 알게 됐고 그가 쓴 시가 마침 회사에서 퇴근하던 길 지나는 중고 서점에 있어 간편하게 손에 넣었다.
왼쪽 페이지에는 포르투갈의 언어로 쓰인 시를, 오른쪽 페이지에는 한국어로 옮겨진 시를 동시에 볼 수 있다. 파파고로 셀프 옮김 해보는 재미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스페인어 기능만 사용할 수 있는 한계는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불닭볶음면 같은 존재다. 일터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 날 불닭볶음면을 먹을 각오를 하는 것처럼 나는 이 책을 읽을 각오를 한다. 빨리 퇴근해서 가장 편한 내방 의자에서 아끼는 잠옷을 입고 책을 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읽을 모든 이에게,
챙 넓은 모자를 들어 인사한다
(중략)
인사하면서 기원한다, 해가 나기를,
또 비가 필요하면 비가 오기를,
그리고 그들의 집에
열린 어느 창문가에
나의 시를 읽으며 앉아 있을
아끼는 의자 하나가 있기를,
그리고 내 시를 읽으며 생각하기를
콘텐츠를 제작하며 악귀에 물드는 때가 있다. 내가 만든 콘텐츠로 누군가가 날 인정해주길 바라거나, 괜한 복수심으로 쓸데없는 콘텐츠를 기획한다거나, 자격지심을 표출하게 되는 그런 순간. 이런 찌질한 내 모습을 직면하는 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이 시를 읽으면 내가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일 뿐이다. 그리고 내가 만든 콘텐츠를 봐주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인정도, 보상도 바라지 않는 태도를 유지해야 내 삶이 행복해진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도 해가 나기를, 필요하면 비가 오기를, 아끼는 가치 하나는 훼손당하지 않기를 기원하며 인류애를 충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