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벽두에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이후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영화 비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영향을 기꺼이 인정하는 이와 극렬히 부정하는 이와 어색하게 감추는 이가 있을 뿐이다. 플롯과 인물과 사상보다는 영화를 구성하는 시청각적 요소들의 반복과 차이에 집중하는 하스미적 비평이 오늘날의 변모된 영화적 풍경에서 얼마나 유효한지는 따져볼 일이다. 하스미적 비평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과 홍상수와 리산드로 알론소 같은 영화작가들의 작품과 대면할 때 거의 무력해지거나 소박해질 수밖에 없고, 각종 디스플레이 기기와 미술 전시실로 산포된 영화의 상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영화를 규정하는 산업-예술 복합체의 정치경제학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20세기 영화비평의 힘을 가장 강력히 웅변하는 이 책의 창조적 극복을 위해서라도, 어느새 절판된 이 책은 꼭 다시 나와 더 널리 읽힐 필요가 있다.